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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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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검휘필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2.57분

15화 - #2


의기양양해진 라마와 일행이 향한 곳은 낙현의 관아였다.

길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걷다가 낙현의 관아에 다다르니, 조여령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 다 왔습니다."

고운월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나지막이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 내 역할은 끝난 건가?"

라마가 살짝 아쉬운 듯이 이야기하니, 조여령이 그런 라마를 보며 부탁하듯 말했다.

"이곳에서 며칠이라도 머물다 가시지요. 제 숙부님께서 이곳 관아를 맡고 계시니, 편히 지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녀의 말에 유림이 라마 곁에 바짝 다가서며 속삭이듯 말했다.

"익주의 태수(太守) 조철웅이 조여령의 숙부라 하니, 거참...."

유림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미녀가 그렇게 많다는데..."

귀가 솔깃한 얘기였다.

라마는 얼른 조여령을 보며 대답했다.

"뭐 또 그렇게... 부탁을 하시니...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라마가 웃으며 대답하자, 조여령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염려 마십시오. 소협께서 편히 머물다 가실 수 있게 청을 올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하하."

관아 앞에 이르니, 그 앞을 지키던 병사들이 경계하듯 막아섰다.

"누구냐?"

그러자, 고운월이 한걸음 나서 대답했다.

"이분은 조철웅 태수의 조카이며, 조수강 왕야의 자제시다. 비켜서라."

병사들은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길을 터두었다.

고운월이 조여령의 옆으로 물러서니, 조여령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당당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내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기웃거리듯 다가서자, 조여령이 그를 보며 물었다.

"태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조카 여령이 왔다고 전하거라."

그녀의 말에 내관이 화들짝 놀라 해 하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내 내관이 서둘러 어딘가로 달려가다가, 마주한 다른 내관들에게 말을 건네니, 그 내관들 중 하나가 부랴부랴 안으로 달려갔고, 먼저 대화를 나눴던 내관이 다시 돌아와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조여령과 일행은 내관을 따라 손님을 맞이하는 관정(館亭)으로 향했다.

관정 안은 어지간한 객점 만한 크기에, 관아 전체에 비하면 아담하게 꾸며진 장소였다.

안에 들어서서 각자 관정 안에 놓인 장식품들을 구경하거나, 가만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사이, 이내 누군가 관정 안으로 들어섰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것 같은 데다가, 붉은 피부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길에서 마주치면 절로 움츠러 들만큼 강한 인상의 사내였다.

"오! 여령이구나!"

그는 조여령을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섰고, 여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달려갔다.

"숙부님!"

그녀가 달려가 품에 안기자, 그가 껄껄 웃으며 여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그래,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가 왔구나. 그런데... 행색이 어찌 된 것이냐?"

여령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하소연하듯 대답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명을 받잡고, 장사에 다녀오다가 기습을 받았습니다. 오라버니와 헤어진 후, 인연이 있었던 표국에 의뢰하여 호위를 부탁하였습니다."

고운월이 한걸음 나서 조철웅에게 읍을 하며 말했다.

"소인, 풍진표국의 고운월이라 하옵니다. 마마님을 안전하게 뫼시기 위해, 남장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조철웅이 그런 고운월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수고가 많았다. 내 보상을 톡톡히 할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편히 머물도록 하라."

"감사하옵니다."

고운월이 대답하고 나자, 여령이 조철웅을 보며 말했다.

"숙부님, 저기 계신 소협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령이 라마를 소개하자, 라마도 황급히 고운월을 따라 읍을 해 보였다.

"오, 그래? 무공이 출중하신 모양이구만."

"놀라웠습니다. 여러 명의 고수를 단숨에 제압하기도 했습니다."

여령이 신이 난 듯, 라마 대신 자랑을 하니, 라마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습관적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 그렇게 까진...."

그런 라마를 보며 조철웅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카를 대신해서 감사 하마. 이곳에 머무는 동안 편히 머물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보상도 넉넉히 챙겨줄 것이다."

여령이 기쁜 표정으로 조철웅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숙부님."

"하하, 이 정도쯤이야. 자자, 숙모님께도 네 안부를 전해야지. 이리 따라오너라."

여령이 조철웅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뒤이어 내관 한 명이 들어서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앞으로 필요하신 것은 이 사람에게 말씀 주시면 되옵니다."

그의 말에 라마와 송이개, 유림, 고운월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유림이 먼저 한걸음 나서 말했다.

"흠흠, 뭐 당장 급한 것이 있겠냐마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긴 여정을 헤쳐왔지요. 고단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탄식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며, 다가와 내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내관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아... 식사를... 준비할까요?"

"쯧쯧..."

유림이 다시금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세속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드리겠습니다."

"예예..."

"일단 피로를 풀 수 있는 고기가 있어야겠지요."

"아, 예..."

"그리고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풍미가 풍부한... 그런 술이 있어야겠지요."

"예예, 곧 술과 고기를..."

내관이 물러나려 하는 것을 유림이 붙잡았다.

"그러나 어찌 그것만 가지고 충분하다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네?"

내관이 어리둥절해하니, 유림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어리둥절한 내관이 라마와 일행들을 돌아보자, 유림이 다시금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었다.

"아하... 땀냄새가 진동하고 몇 날 며칠 지겹도록 본 사람들끼리 뭘 또 보겠습니까? 향긋한 향기와 섬섬옥수 같은 손이 술을 따라준다면, 어찌 피로가 풀리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내관의 표정이 환해졌다.

"기녀들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유림이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내관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라마, 고운월, 송이개가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펼쳐 보였다.

"훗!"

유림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준비된 식사는 풍족했다.

과연 황족답게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놓았으니,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였다.

라마와 유림이 마주 앉고 좌우로 송이개와 고운월이 마주 앉았는데, 처음에는 네 사람 사이에 기녀들이 앉아 술잔을 따라주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네 여인 모두 유림의 곁에 가 있었다.

유림은 도적떼와 있었던 일이며, 무림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들려주며 여인들과 희희낙락한데 반해, 나머지 세명은 똥 씹은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놈은 어찌 저리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겁니까?"

라마가 유림을 보며 송이개에게 나지막하게 말하니, 송이개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설마 그걸... 제게 물으시는 겝니까?"

라마가 고개를 돌려 송이개를 바라보니, 거기에는 거지꼴을 한 상거지가 앉아 있었다.

"아, 미안하오...."

라마가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여 고운월에게 물었다.

"저놈이 저 여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비결이 뭐라 생각하시오?"

라마의 물음에 고운월이 유림을 힐끔힐끔 보더니,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그거야, 번드르르하게 생긴 외모 하며, 뛰어난 말재주까지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라마가 고운월을 살펴보니, 비록 중년의 나이라고는 하나 그리 못생기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한 풍채 하며 남자다운 면모가 있어 보였기에,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 근데, 송공은 그렇다 친다 해도, 나나 귀공은 어찌 여인이 없는 게요?"

고운월이 찝찌름한 표정으로 술잔을 비우더니, 입에 쓴맛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야, 여인을 다루는 재주가 없는 게지요. 저도 익히 들어왔습니다. 여인네들이 저랑 있으면 재미가 없다더군요."

"재미?"

"저기 저놈... 아, 송구합니다. 서공을 보시오. 아주 여인들과 말을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 말주변이 없어서..."

라마가 유림을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저 육시랄 것 말입니까?"

막 술잔을 다시 채우고 들이키려던 고운월은 그만 술이 기도에 걸려 토할 뻔했다.

얼른 입가를 닦아낸 고운월이 의아한 듯 물었다.

"동료... 분이 아니셨습니까?"

라마가 탄식하듯 대답했다.

"진작에 요절을 냈었을 것을... 넓은 아량으로 봐주었더니... 이후로 이렇게나 쫓아다닙니다."

"안타깝군요. 찢어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분명 아까까지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지금은 원수가 따로 없었다.

라마와 고운월이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송이개는 그런 것에 안중이 없는 듯 열심히 고기를 챙겨 먹고 있었다.

고운월이 그런 송이개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혹... 저기 저 송공은... 거...세....를 하였소?"

여인에게 관심 없어하는 송이개를 보며 고운월이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라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송이개를 바라보았다.

"퍽, 의심하고 있소."

라마의 진지한 대답에, 고운월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측은한 표정으로 송이개를 바라보았다.

그런 것을 알길 없는 송이개는 고기를 잡고 뜯다가, 고운월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 보였다.

문득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난 유림이 변소에 다녀온 다며 술에 취한 듯 휘청거리며 나가자, 라마가 후다닥 일어나 그 뒤를 쫓아갔다.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 유림을 기다렸다가, 그가 나오자마자 그 곁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어찌 그리... 인기가 많소?"

"예?"

유림은 난데없이 라마가 지척에 다가와 물으니,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협?"

"그러니까... 어찌 그리 여인들이 좋아하느냐, 그 말이오."

라마의 물음을 알았다는 듯, 유림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아하~ 그것이 궁금하셨군요. 하하, 그거야 쉽죠. 여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라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듣고 싶은 말이 무언지 어찌 안단 말이오?"

"허허... 안타깝군요. 무엇이 듣고 싶은 말인지 모른다니... 대게 여인네들이란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 아주 좋아하죠. 가령 이렇습니다. '어제 길을 가다 꽃을 보았는데, 분홍빛이 정말 너무 고왔습니다.' 하면, '꽃이 그리 곱더냐?' 하고 묻고, '예, 바람도 살살 부는 것이 꽃향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하면 '꽃향기가 좋았구나.'하고 맞장구 쳐주면 되는 것이지요."

라마는 유림의 말을 세상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가?"

라마가 재촉하듯 묻는 말에, 유림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라마를 바라보았다.

"이런이런... 이렇게 감이 없어서야.... 정 모르겠으면, 그냥 여인네들이 하는 말에 끝말을 따라 하시면 됩니다."

"끝말을?"

"예. 여인네들이 하는 말에 끝말을 적당히 따라 하면, 대화를 쭈욱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라마는 유림의 말을 들으며 뭔가 결심을 한 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디,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유림이 라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묻는 말에, 라마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리로 돌아간 라마가 자리에 앉아, 유림이 자리에 앉기 전 여인들을 보며 말했다.

"자자, 이제 다 같이 술을 한잔씩 하게, 어서 너희들도 각자 자리에 가서 술잔을 채워 드리거라."

여인들은 유림의 말에 아쉬운 듯 자리를 떠나 각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유림이 앉고 술잔이 채워지는 사이, 라마는 자신의 술잔을 따라주는 여인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기회를 살폈다.

여인은 라마가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자 의아한 듯 물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라마는 올타구나 싶은 생각에 얼른 대답했다.

"있으면?"

당황한 여인의 표정이 굳어지며,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속히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일러?"

여인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동공은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아, 아니.... 소녀가 잘못 아뢴 듯합니다. 직접 가서 챙겨 오겠습니다."

"챙겨 와?"

울상이 된 여인은 창백한 표정으로 얼른 라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런 여인을 보며 라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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