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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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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31분

42화 - #1


하인이 부랴부랴 다가와 주동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요."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있던 주동환은 살며시 눈을 뜨며 하인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우포청 포도대장 나리께서 오셨습니다요."

주동환의 눈이 잠시 번쩍 뜨였다가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오늘 몸이 좋지 않아 일어나지 못하셨다고 전하거라."

"예, 나리."

하인은 다시 서둘러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서있는 우포청 포도대장 박지언에게 하인이 나와 꾸벅 인사를 해 보이며 고했다.

"나리, 대감마님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일어나지 못하실 듯 하니, 다음에 오시라 하셨습니다."

박지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갑자기 고뿔이라도 나신겐가... 알았네, 다음에 다시 오지."

박지언은 별다른 의심없이 발길을 돌렸고, 돌아가는 박지언을 바라보던 하인은 대문을 닫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박지언을 세자와 수현이 먼발치에서 은밀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는 우포청의 포도대장 박지언입니다."

세자는 수현의 말에 박지언의 뒷모습을 살피며 물었다.

"박지언이라면... 도총관과 호각을 다투었다는 그 사람 아닌가?"

"맞습니다. 스승님이 아니 계셨다면, 능히 조선제일검이 되었을 사람입니다."

세자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런 자가 어찌 좌상대감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 부끄러운 자로구나."

세자가 개탄스럽게 이야기하자, 수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제가 알기론, 무인으로써의 됨됨이는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을 좇고 재물을 탐하는 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 그럼 어찌 좌상대감을 찾아왔단 말인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오나, 필시 다른 연유가 있을 것이옵니다."

잠시 생각하던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좌상 쪽에서 먼저 다가갔을 것이다. 병판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터, 지금 병판이 있는 자리를 대신함과 동시에, 전하의 충신인 홍여립 장군을 견제하려 했겠지."

수현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됐다. 그만 돌아가자."

세자가 미련없이 돌아섰다. 박지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던 수현도 얼른 세자의 뒤를 쫓아 걸었다.

"어찌 그리 서두르십니까?"

"서두르긴? 볼일 다 봤으니, 그만 가자는 것 아니냐?"

"굳이 염탐을 하러 나온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기왕 지사 나온 김에 좀 더 살펴보고 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되었다. 볼만큼 보았으니, 더 볼 것도 없다."

수현이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누가 보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 줄 알겠습니다."

"암, 있지. 연희가 기다리지 않느냐?"

예상외로 순순히 인정하는 세자를 보며, 수현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정녕... 연희에게 마음을 두신 것입니까?"

먼저 걷던 세자가 멈춰 서서 수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왜? 안될 것이 있느냐?"

"하지만... 백성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세자빈은 백성이 아니더냐?"

수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더니 툴툴거리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연심은 아니라 하시더니..."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된다더냐?"

"정녕 연심이신 것이옵니까?"

되묻는 수현을 보다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린 세자가 조금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수현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 뒤를 쫓으니, 세자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체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것을 연심이라 한다면, 연심이 맞다."

마치 독백을 하는 듯한 세자의 말을, 수현은 그저 뒤따르며 말없이 듣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마냥 웃음이 나오는 것이 연심이라면... 그 또한, 연심이 맞다. 함께 있으면 세상 힘든 일을 모두 잊게 되는 것이 연심이라면... 그 역시 연심이 맞다."

이어 세자가 수현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연심이면... 안 되는 것이냐?"

수현은 절로 나오는 걱정스런 한숨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연희의 마음도... 같은 것이옵니까?"

수현의 물음에 세자는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수현이 얼른 따라 걸으며 재차 물었다.

"연희의 마음은... 확인해 보지 않으신 겁니까?"

"뭐... 딱히... 확인하고 할 겨를이 없었다."

이어 세자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곤, 수현을 돌아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일국의 세자가 연심을 품었다는데... 기뻐할 일 아니더냐?"

수현은 무심한 듯 맥 빠진 얼굴로 세자를 쳐다보았다.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요. 연희가 싫다 하면 어쩌실 겁니까?"

세자는 다시금 입을 열어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망설이더니, 이내 불편한 얼굴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돌연 세자가 다시 멈춰서서는 수현을 보며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떠하냐?"

"예?"

수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으니, 세자가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네가 보기에, 나는 어떠하냐 말이다."

이어 수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이없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세자빈의 자리는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더욱이 세자빈 마마께옵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계신데..."

세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수현의 말을 체 다 듣기도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저하..."

수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그 뒤를 쫓아갔다.

"하오면 차라리 연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수현이 체념한 듯 뒤따라 오며 건네는 말에 세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았다.

"뭐라고 말이냐? 내가 너에게 연심을 품었다, 그리 말하라는 것이냐?"

"아니 뭘, 또, 꼭 그렇게... 알아듣게 적당히 돌려서 말하면 될 것 아닙니까?"

"적당히 어떻게? 어떻게 말이냐?"

사뭇 진지하게 묻는 세자를 보고 있자니, 절로 툭하고 웃음이 나올것 같았다.

"흠흠... 그러니까..."

살짝 거만한 표정으로 수현이 곰곰이 생각하는척하며 대답했다.

"꽃을... 준비해서... 이렇게... 건네주면서 말이죠. 내 마음에... 네가 있는 듯 하구나. 뭐 이렇게?"

수현의 말에 세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더러 그런 닭살 돋는 말을 하란 것이냐?"

수현이 짧은 한숨과 함께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들 그렇게 합니다.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말이죠."

"그래도 명색이 국본인데... 어찌 그런... 남사스러운 표현을 허허..."

손을 저으며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세자를 보며, 수현은 더욱 어이없는 표정으로 음성에 힘을 실어 말했다.

"원래 연심이고, 연애란 것이... 그토록 유치 찬란한 법입니다. 저하..."

"됐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것이다."

"저하의 방식이란 것이 무엇이옵니까?"

"명할 것이다. 네가 이... 내... 그... 마음? 에... 뭐... 있다고...."

수현이 풋하고 웃으니 세자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비웃는 것이냐?"

세자가 화를 내듯 물으니, 수현이 얼른 정색하였다.

"아니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분명 비웃는 것이었다."

"죽여주시옵소서."

수현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은밀히 그러나 티가나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민망한 세자는 붉어진 얼굴로 홱하니 돌아서더니 빳빳하게 굳어 어색한 걸음걸이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하!"

뒤따라오며 저를 부르는 수현을 향해, 세자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됐다! 따라오지 말거라!"

"저하~~"

능글맞게 웃으며 따라오는 수현을 따돌리기라도 하려는 듯, 세자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



연희는 오랜만에 자신이 머물던 거처로 돌아와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생각에 빠져있던 그녀는 문득 인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소연이 대문앞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멋쩍은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소연을 알아본 연희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연은 연희의 눈치를 살피다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 앞에 섰다.

무슨말을 하려는듯 입을 열었다 다시 닫으며 입술을 자근자근 씹어대며 망설이던 소연은 이내 결심한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 스승님의... 부탁을 받고 왔소."

연희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소연이 부연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스승님은... 세자마마를 돕던 무당이셨소. 천태호라는 자의 꾀임에 넘어가 힘을 잃고 죽임을 당하셨고, 내 그 일을 복수하고자 하였던 것이오."

정확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왠지 소연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그 천태호란 자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연희의 물음에 소연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연희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자, 받으시오."

소연이 뭔가를 내밀어 보이니, 바로 파사신검이었다.

연희는 소연의 손에 들려진, 낯익은 그 단검을 보고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찌... 그것을 제게 주십니까?"

소연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 칼은, 파사신검이란 신검으로, 이 검으로 당신을 찌르면, 당신은 소멸될 것이오. 허나, 이 신검으로 당신에게 주술을 건 천태호를 찌르면... 천태호가 만들어낸 모든 주술이 일거에 풀릴 것이오."

그 말에 연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런데 어찌하여 제게...."

소연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이 칼로 그를 찌르면.... 당신도 소멸될 것이오."

연희는 떨리는 눈빛으로 소연을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그걸 알기에... 그는 당신이 이 칼로 자신을 찌르리라... 의심하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연희는 이해되었다.

스스로도 죽는 길이기에, 결코 찌르지 못할 것이라 여길 것이기에, 의심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연희는 두려움에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소연의 손에서 칼을 집어들었다.

어쩐지 칼을 든 손이 찌릿찌릿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할 수... 있겠소?"

소연이 걱정스럽게 묻는 말에, 연희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소연 역시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듯 시선을 돌렸다.

"그럼... 부탁하겠소."

소연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홀로 남겨진 연희는 파사신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품 안에 갈무리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사이로 물기가 어렸다.

이내 두 눈에서 흘러내린 처량한 눈물은, 아무도 모르게 땅 밑으로 스며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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