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27
나래의 귀에 들려온 것은 놀랍게도 버스의 경적 소리였다.
그슨대들은 버스의 경적소리에 놀란 듯 사방으로 흩어졌고, 낡은 버스 한 대가 망령과 그슨대 사이를 보란 듯이 뚫고 달려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건너온 버스는 나래 앞쪽에 멈춰 서더니 문이 열렸고, 망자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나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늙고 노쇠한 이들 사이에 젊어 보이는 이도 있었고, 심지어는 개와 고양이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버스에서 내려 저승전으로 향했는데, 그중에 개 한 마리가 나래를 보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며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버스 안내원으로 보이는 이가 뭐라고 소리를 치자, 금세 꼬리를 내리며 시무룩하게 다른 망자들을 따라 저승전쪽으로 향하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나래는, 버스에서 망자들이 모두 내리자 뭔가 생각난 듯 후다닥 달려갔다.
"잠시만요."
나래가 버스 앞쪽 문에 다가가자, 곧 문이 열렸다.
"저... 저 나가야 해요."
나래의 말에 버스기사가 나래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운전석 옆에 있는 돈통을 툭툭 쳐 보였다.
나래는 얼른 버스에 올라타서, 아까 남은 엽전을 꺼내 들어 보였다.
"이거... 되나요?"
나래의 물음에 버스기사는 대답 없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래가 가지고 있는 엽전과는 다른, 버스 토큰이 돈통 안에 들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일전에 홍저왕의 창고에서 챙겨가지고 나온 회수권 보관함이었다.
나래는 회수권 보관함을 돌려 회수권 한 장을 꺼내 들어 버스기사에게 보여주자, 버스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나래는 얼른 회수권을 돈통에 넣었고, 버스 기사는 갑자기 나래의 품 안을 가리켰다.
아토, 초코, 솔이를 차례대로 가리키자, 나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네, 같이 갈 거예요."
나래는 회수권 보관함에서 회수권을 3장 더 꺼내 돈통에 넣었고, 버스기사는 들어가라는 듯이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나래는 서둘러 가서 빈자리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앉았고, 버스는 나래만을 태운 체 문을 닫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버스 주위로 그슨대와 망령들이 우글우글했지만, 놀랍게도 버스 주위만 맴돌 뿐 버스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나래를 태운 버스는 덜컹 거리며 달리고 있었고, 나래는 초코, 아토, 솔이를 꼭 안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내 동굴 길로 들어서니, 동굴 너머의 자그마한 불빛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망령들이 만들어낸 묘한 그림자가 동굴벽에 비치는 모습이, 흡사 사람들의 모습 같았다.
덜컹덜컹 버스는 그런 망령들을 스치고 지나 빵빵 거리며 달렸다.
이윽고 동굴 길을 빠져나와 황량한 사막길에 이르자, 버스는 멈춰 섰다.
나래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 쪽으로 다가가자, 안내원 도깨비가 버스 문을 열어주었다.
열린 버스 문 너머로 나래가 내려서자, 버스 문이 닫히며 "오라이~"하는 소리가 들렸고, 버스는 이내 선회하여 다른 곳을 향해 달렸다.
"후~"
나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초코와 아토가 스르륵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솔이는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잘하셨어요!"
솔이가 기뻐 나래에게 달려와 안기자, 나래도 그런 솔이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그래, 다행이야. 다행이야."
나래 역시 기뻐했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아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새끼 고양이로 사는 줄 알았네."
"왜? 귀여운데."
초코의 말에 아토가 초코를 싸늘한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어서 돌아가자. 여기는 더 있기 싫다고."
아토가 퉁명스레 말하자, 나래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허리춤에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청의동자 나와라, 뚝딱!"
나래가 청의동자를 부르자, 청의동자가 눈앞에 '펑!'하고 나타났다.
그는 뭔가를 막 먹으려다가 입안에 들어오는 것이 없자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래 일행을 의식하고는 흠칫 놀랐다.
"그... 저... 저를 부르는 방법에 대해 뭔가 의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거 무서워서 볼일도 못 볼 것 같습니다."
청의동자가 난처해하며 하는 말에, 나래는 물론, 솔이와, 아토, 초코까지 다 같이 웃음 지었다.
이어 아토가 나래를 보며 물었다.
"그 뚝딱은 꼭 넣어야 하는 거야?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나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요. 해야 돼요. 도깨비방망이 부릴 땐 뚝딱해주는 게 국룰이죠."
"국...뭐?"
"히히, 법이라고요, 법."
"법?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있어요. 저희 쪽 세계에서는. 무조건 뚝딱을 넣어야 해요."
"거참..."
묘한 대화를 듣고 있던 청의동자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거대한 머리의 거구귀로 변하였다.
입을 쩍 벌리자 그 안으로 길이 보였고, 나래와 아토, 초코, 솔이는 익숙한 듯 그 안으로 서둘러 달려 들어갔다.
거구귀가 입을 닫자 그 모습이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사라져 버렸고, 일행은 모두 반대편 거구귀의 입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청의동자의 집이 있는 귀수산 정상이었고, 거구귀는 작아지더니 다시 청의동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명계에서 볼일은 다 마치신 겁니까?"
청의동자의 물음에 나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안에서 대별왕이 건네준 작은 종을 들어 보였다.
"이 종을 울리면 홍저왕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할 것이라 했어요."
종을 본 청의동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맙소사. 대별왕의 종이군요. 이건 홍저왕 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필멸의 존재들은 다 두려워하는 물건입니다. 죽음을 다스리는 신의 목소리가 담긴 종이니깐요. 홍저왕이든 누구든 이 종소리를 들으면 무서워 벌벌 떨 것이니, 제 능력을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나래는 청의동자의 설명에 오히려 더 놀란 표정이 되어버렸다.
"아... 그렇구나. 조심해야겠네요."
나래는 종을 조심스럽게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어서 백하도령님을 구하러 가요."
청의동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다시 거대한 거구귀로 변하였다.
그가 입을 쩍 벌리자 그 시커먼 입 너머로 또 다른 입이 열리고 있었고, 그 너머는 이미 한번 가본 적 있는 홍저왕의 흑석궁 입구가 보였다.
나래가 먼저 거구귀 너머의 흑석궁 입구 쪽으로 달려가니, 솔이와 아토, 초코가 그 뒤를 쫓아 달렸다.
일행 모두가 흑석궁 입구에 도착하자, 거구귀는 이전처럼 작아지며 이내 사라져 버렸고, 나래가 도착하자마자 흑석궁 안쪽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요괴들이 무리 지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저 많은 놈들을 어찌 상대해? 일단 도망치자."
아토가 긴장된 목소리로 외치자, 잠시 당황한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나래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보니, 그것은 총명 부인이 준 작은 보따리 중 파란색 보따리였다.
"도와주세요."
나래가 말을 하며 파란색 보따리를 풀자, 그 작은 보따리 안에서 큼지막한 두꺼비 한 마리가 훌쩍 튀어나왔다.
"뭐야 이건?"
아토가 흠칫 놀라자, 두꺼비는 눈을 껌뻑 껌뻑거리다가 달려오고 있는 요괴들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두꺼비의 입에서 푸른빛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주위를 순식간에 가득 채워 버렸고, 달려오던 요괴들은 그 연기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흐물흐물 해지더니 픽픽 쓰러져 버렸다.
"요괴독이어요."
솔이가 놀라 외치니,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았다.
"요괴독?"
"예, 오직 요괴한테만 효과가 있는 독이어요. 홍저왕의 수하들은 대부분 요괴들이어요."
그러자 아토가 나서 말했다.
"도깨비는 얼마 안 된단 말이지? 하지만... 이게 요괴독이라면, 나랑 초코도 위험해."
아토의 말에 나래가 아토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줘요. 금방 다녀올게요."
아토와 초코는 나래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나래가 한 손에 대별왕의 종을 쥔 체 푸른 연기 속으로 달려가자, 솔이도 얼른 그 뒤를 쫓아 달렸다.
연기 속이라 앞이 잘 안 보이고 여기저기 쓰러진 요괴들을 피하며 달리느라,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제게 앞장 설게요. 아씨."
솔이가 말을 하며 도깨비불로 변하여 앞장 서니, 다행히 시야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둘은 금세 홍저왕이 있던 곳에 당도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나이 든 도깨비 하나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홍저왕은 어디로 갔나요?"
나래가 나이 든 도깨비에게 다가가 물으니, 도깨비는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이 오고 있다면서, 도망을 쳤습니다요."
나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디로... 어디로 도망갔나요?"
"그것은 저도 모릅죠."
나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속상해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씨, 어디로 가셔요?"
솔이가 얼른 뒤쫓으며 묻는 말에, 나래는 달려가며 대답했다.
"보물창고."
나래는 한번 가본 적 있는 보물창고로 향했고, 창고 안에 들어서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역시."
"왜요?"
솔이의 물음에 나래는 창고 안에 가득한 물건들을 보며 말했다.
"이곳에 보물을 두고 갔다는 건, 이곳을 아예 떠날 생각으로 도망가지는 않았다는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래는 초공연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는 원래 큼지막하고 두꺼운 철문으로 닫혀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차!"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홍저왕이 다른 물건들은 버려두고 가장 귀한 것들만 가지고 도망간 것이 틀림이 없었다.
철문 안에 들어가 보니, 미처 다 챙기지 못한 듯 이런저런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중한 것들만 챙겨 갔구나."
속상해하는 나래를 보며 솔이가 물었다.
"홍저왕을 도깨비방망이로 부를 순 없을까요?"
나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 부를 수가 없어."
문득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품 안에서 이번에는 빨간색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홍저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나래가 빨간색 주머니를 열자, 그 안에서 한쌍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어? 이게 뭐야?"
나래가 놀라서 멈칫 하자, 옆에 있던 솔이가 외쳤다.
"사나래여요."
"사나래?"
사나래라 불린 날개 한쌍은 그대로 나래의 등 뒤에 매달리더니 저절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어?"
나래가 놀라 당황하는 사이, 날개는 나래를 데리고 날기 시작했다.
솔이는 재빨리 나래의 어깨에 가 달라붙었고, 솔이가 어깨에 앉자 사나래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홍저왕이 있는 곳으로 가나 봐"
나래가 솔이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사나래를 단 나래는 어느새 천태산을 훌쩍 벗어나 초록빛으로 물든 대지 위를 날고 있었다.
그슨대들은 버스의 경적소리에 놀란 듯 사방으로 흩어졌고, 낡은 버스 한 대가 망령과 그슨대 사이를 보란 듯이 뚫고 달려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건너온 버스는 나래 앞쪽에 멈춰 서더니 문이 열렸고, 망자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나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늙고 노쇠한 이들 사이에 젊어 보이는 이도 있었고, 심지어는 개와 고양이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버스에서 내려 저승전으로 향했는데, 그중에 개 한 마리가 나래를 보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며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버스 안내원으로 보이는 이가 뭐라고 소리를 치자, 금세 꼬리를 내리며 시무룩하게 다른 망자들을 따라 저승전쪽으로 향하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나래는, 버스에서 망자들이 모두 내리자 뭔가 생각난 듯 후다닥 달려갔다.
"잠시만요."
나래가 버스 앞쪽 문에 다가가자, 곧 문이 열렸다.
"저... 저 나가야 해요."
나래의 말에 버스기사가 나래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운전석 옆에 있는 돈통을 툭툭 쳐 보였다.
나래는 얼른 버스에 올라타서, 아까 남은 엽전을 꺼내 들어 보였다.
"이거... 되나요?"
나래의 물음에 버스기사는 대답 없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래가 가지고 있는 엽전과는 다른, 버스 토큰이 돈통 안에 들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일전에 홍저왕의 창고에서 챙겨가지고 나온 회수권 보관함이었다.
나래는 회수권 보관함을 돌려 회수권 한 장을 꺼내 들어 버스기사에게 보여주자, 버스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나래는 얼른 회수권을 돈통에 넣었고, 버스 기사는 갑자기 나래의 품 안을 가리켰다.
아토, 초코, 솔이를 차례대로 가리키자, 나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네, 같이 갈 거예요."
나래는 회수권 보관함에서 회수권을 3장 더 꺼내 돈통에 넣었고, 버스기사는 들어가라는 듯이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나래는 서둘러 가서 빈자리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앉았고, 버스는 나래만을 태운 체 문을 닫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버스 주위로 그슨대와 망령들이 우글우글했지만, 놀랍게도 버스 주위만 맴돌 뿐 버스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나래를 태운 버스는 덜컹 거리며 달리고 있었고, 나래는 초코, 아토, 솔이를 꼭 안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내 동굴 길로 들어서니, 동굴 너머의 자그마한 불빛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망령들이 만들어낸 묘한 그림자가 동굴벽에 비치는 모습이, 흡사 사람들의 모습 같았다.
덜컹덜컹 버스는 그런 망령들을 스치고 지나 빵빵 거리며 달렸다.
이윽고 동굴 길을 빠져나와 황량한 사막길에 이르자, 버스는 멈춰 섰다.
나래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 쪽으로 다가가자, 안내원 도깨비가 버스 문을 열어주었다.
열린 버스 문 너머로 나래가 내려서자, 버스 문이 닫히며 "오라이~"하는 소리가 들렸고, 버스는 이내 선회하여 다른 곳을 향해 달렸다.
"후~"
나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초코와 아토가 스르륵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솔이는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잘하셨어요!"
솔이가 기뻐 나래에게 달려와 안기자, 나래도 그런 솔이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그래, 다행이야. 다행이야."
나래 역시 기뻐했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아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새끼 고양이로 사는 줄 알았네."
"왜? 귀여운데."
초코의 말에 아토가 초코를 싸늘한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어서 돌아가자. 여기는 더 있기 싫다고."
아토가 퉁명스레 말하자, 나래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허리춤에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청의동자 나와라, 뚝딱!"
나래가 청의동자를 부르자, 청의동자가 눈앞에 '펑!'하고 나타났다.
그는 뭔가를 막 먹으려다가 입안에 들어오는 것이 없자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래 일행을 의식하고는 흠칫 놀랐다.
"그... 저... 저를 부르는 방법에 대해 뭔가 의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거 무서워서 볼일도 못 볼 것 같습니다."
청의동자가 난처해하며 하는 말에, 나래는 물론, 솔이와, 아토, 초코까지 다 같이 웃음 지었다.
이어 아토가 나래를 보며 물었다.
"그 뚝딱은 꼭 넣어야 하는 거야?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나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요. 해야 돼요. 도깨비방망이 부릴 땐 뚝딱해주는 게 국룰이죠."
"국...뭐?"
"히히, 법이라고요, 법."
"법?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있어요. 저희 쪽 세계에서는. 무조건 뚝딱을 넣어야 해요."
"거참..."
묘한 대화를 듣고 있던 청의동자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거대한 머리의 거구귀로 변하였다.
입을 쩍 벌리자 그 안으로 길이 보였고, 나래와 아토, 초코, 솔이는 익숙한 듯 그 안으로 서둘러 달려 들어갔다.
거구귀가 입을 닫자 그 모습이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사라져 버렸고, 일행은 모두 반대편 거구귀의 입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청의동자의 집이 있는 귀수산 정상이었고, 거구귀는 작아지더니 다시 청의동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명계에서 볼일은 다 마치신 겁니까?"
청의동자의 물음에 나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안에서 대별왕이 건네준 작은 종을 들어 보였다.
"이 종을 울리면 홍저왕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할 것이라 했어요."
종을 본 청의동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맙소사. 대별왕의 종이군요. 이건 홍저왕 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필멸의 존재들은 다 두려워하는 물건입니다. 죽음을 다스리는 신의 목소리가 담긴 종이니깐요. 홍저왕이든 누구든 이 종소리를 들으면 무서워 벌벌 떨 것이니, 제 능력을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나래는 청의동자의 설명에 오히려 더 놀란 표정이 되어버렸다.
"아... 그렇구나. 조심해야겠네요."
나래는 종을 조심스럽게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어서 백하도령님을 구하러 가요."
청의동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다시 거대한 거구귀로 변하였다.
그가 입을 쩍 벌리자 그 시커먼 입 너머로 또 다른 입이 열리고 있었고, 그 너머는 이미 한번 가본 적 있는 홍저왕의 흑석궁 입구가 보였다.
나래가 먼저 거구귀 너머의 흑석궁 입구 쪽으로 달려가니, 솔이와 아토, 초코가 그 뒤를 쫓아 달렸다.
일행 모두가 흑석궁 입구에 도착하자, 거구귀는 이전처럼 작아지며 이내 사라져 버렸고, 나래가 도착하자마자 흑석궁 안쪽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요괴들이 무리 지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저 많은 놈들을 어찌 상대해? 일단 도망치자."
아토가 긴장된 목소리로 외치자, 잠시 당황한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나래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보니, 그것은 총명 부인이 준 작은 보따리 중 파란색 보따리였다.
"도와주세요."
나래가 말을 하며 파란색 보따리를 풀자, 그 작은 보따리 안에서 큼지막한 두꺼비 한 마리가 훌쩍 튀어나왔다.
"뭐야 이건?"
아토가 흠칫 놀라자, 두꺼비는 눈을 껌뻑 껌뻑거리다가 달려오고 있는 요괴들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두꺼비의 입에서 푸른빛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주위를 순식간에 가득 채워 버렸고, 달려오던 요괴들은 그 연기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흐물흐물 해지더니 픽픽 쓰러져 버렸다.
"요괴독이어요."
솔이가 놀라 외치니,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았다.
"요괴독?"
"예, 오직 요괴한테만 효과가 있는 독이어요. 홍저왕의 수하들은 대부분 요괴들이어요."
그러자 아토가 나서 말했다.
"도깨비는 얼마 안 된단 말이지? 하지만... 이게 요괴독이라면, 나랑 초코도 위험해."
아토의 말에 나래가 아토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줘요. 금방 다녀올게요."
아토와 초코는 나래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나래가 한 손에 대별왕의 종을 쥔 체 푸른 연기 속으로 달려가자, 솔이도 얼른 그 뒤를 쫓아 달렸다.
연기 속이라 앞이 잘 안 보이고 여기저기 쓰러진 요괴들을 피하며 달리느라,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제게 앞장 설게요. 아씨."
솔이가 말을 하며 도깨비불로 변하여 앞장 서니, 다행히 시야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둘은 금세 홍저왕이 있던 곳에 당도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나이 든 도깨비 하나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홍저왕은 어디로 갔나요?"
나래가 나이 든 도깨비에게 다가가 물으니, 도깨비는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이 오고 있다면서, 도망을 쳤습니다요."
나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디로... 어디로 도망갔나요?"
"그것은 저도 모릅죠."
나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속상해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씨, 어디로 가셔요?"
솔이가 얼른 뒤쫓으며 묻는 말에, 나래는 달려가며 대답했다.
"보물창고."
나래는 한번 가본 적 있는 보물창고로 향했고, 창고 안에 들어서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역시."
"왜요?"
솔이의 물음에 나래는 창고 안에 가득한 물건들을 보며 말했다.
"이곳에 보물을 두고 갔다는 건, 이곳을 아예 떠날 생각으로 도망가지는 않았다는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래는 초공연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는 원래 큼지막하고 두꺼운 철문으로 닫혀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차!"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홍저왕이 다른 물건들은 버려두고 가장 귀한 것들만 가지고 도망간 것이 틀림이 없었다.
철문 안에 들어가 보니, 미처 다 챙기지 못한 듯 이런저런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중한 것들만 챙겨 갔구나."
속상해하는 나래를 보며 솔이가 물었다.
"홍저왕을 도깨비방망이로 부를 순 없을까요?"
나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 부를 수가 없어."
문득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품 안에서 이번에는 빨간색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홍저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나래가 빨간색 주머니를 열자, 그 안에서 한쌍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어? 이게 뭐야?"
나래가 놀라서 멈칫 하자, 옆에 있던 솔이가 외쳤다.
"사나래여요."
"사나래?"
사나래라 불린 날개 한쌍은 그대로 나래의 등 뒤에 매달리더니 저절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어?"
나래가 놀라 당황하는 사이, 날개는 나래를 데리고 날기 시작했다.
솔이는 재빨리 나래의 어깨에 가 달라붙었고, 솔이가 어깨에 앉자 사나래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홍저왕이 있는 곳으로 가나 봐"
나래가 솔이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사나래를 단 나래는 어느새 천태산을 훌쩍 벗어나 초록빛으로 물든 대지 위를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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