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6
눈을 뜬 나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안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게 될지 머릿속에 궁금한 것들이 가득했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 속에서 미루어두고, 일단 옷을 추슬러 입은 뒤 방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서는 소리에 아토가 바닥에서 일어나 하품을 하더니 온몸으로 기지개를 켰고, 일찌감치 일어났던 초코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래는 그런 둘을 보며 웃음 짓고는 신발을 신고 걸어 나왔다.
이곳이 거대한 거북이의 등껍질 위라는 게 실감 나지 않을 만큼 산 꼭대기의 풍경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산 아래가 바로 바다이니, 마치 산이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와..."
산과 바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나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함지박만 하게 뜨고 바라보았다.
어디서 따라왔는지 갈매기 몇 마리가 하늘 위를 날고 있었고, 산꼭대기에서 보는 갈매기의 모습은 또 다른 신선함을 주었다.
저 너머의 수평선은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고, 막 동이 튼 햇살은 수면 위에 보석을 수놓듯 반짝거렸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거대한 귀수산은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묘하게 좌우로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일어났느냐?"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백하가 어제와 다름없는 그 모습 그대로 다가왔다.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에, 나래는 신기하면서도 그가 꽤나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청의가 조찬을 준비하고 있으니, 요기를 한 뒤에 출발하자꾸나."
백하의 말에 나래는 대답 없이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백하는 나래가 자신을 바라보고만 서 있으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그러느냐?"
나래는 어디서 튀어나온 용기인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그 말투는 원래 그런 건가요?"
"말...투?"
"네. 꼭 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할아버지처럼 말을 하니 신기해서요."
백하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가만히 이를 지켜보던 아토가 껄껄 거리며 웃어댔다.
"아하하, 재밌다, 재밌어. 백하도령이 저런 소리를 언제 들어볼까? 아하하, 저 녀석이 백하도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아하하"
아토의 웃음에 백하는 더욱 멋쩍은 표정이 되어서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것이... 내가... 자란 곳에서는 다들 그리 말하여서..."
당황하여 변명하는 백하를 보며, 아토는 더욱 더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아토의 웃음소리에 나래도 피식 웃음 지었다.
"흠... 그... 조, 조찬이 준비되었는지, 보고 오, 오...마..."
백하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부랴부랴 청의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아토는 놀리듯이 계속 큰소리로 웃어댔다.
"이제 그만 웃어요."
나래가 핀잔을 줘보지만, 아토는 못 들은 척 계속 웃어댔고, 그 옆으로 초코가 다가와 짧게 말했다.
"닥쳐."
순간 아토의 웃음이 멈췄다.
아토는 싸늘한 눈빛으로 초코를 보며 말했다.
"뭐라? 이 닭대가리가 진짜..."
그런 둘을 보면서 나래는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나래는 다시금 지나는 풍경을 이어서 감상했다. 어느덧 다시 돌아온 백하가 그녀를 불렀다.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이쪽으로 오너라."
백하의 부름에 나래가 얼른 "네."하고 답하며 걸어 가자, 티격태격하고 있던 아토와 초코도 급히 나래의 뒤를 쫓아 갔다.
앞쪽 안채의 대청에 상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 청의동자가 서 있었다.
때마침 소쿠리에 뭔가를 담아가지고 나오는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여인은 백하를 보고는 얼른 인사를 해 보였고, 나래를 보고도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나래는 그녀가 인사를 해오자, 얼른 마주 인사하였는데, 그녀의 선한 인상에 절로 호감이 생겨났다.
상 앞으로 다가가자 여인이 소쿠리를 상위에 놓았고, 소쿠리에 담긴 큼지막한 만두가 눈에 들어왔다.
"우와~"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생김새와 냄새였다.
만두가 담긴 소쿠리 한켠에는 물에 젖은 잎사귀 같은 것이 놓여 있어서 저건 무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드셔 보세요."
여인의 말에 나래는 얼른 하나 가져가 먹고 싶었지만, 그녀가 앉은 위치에서는 집기 어려운 데다가,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뜨거워 보였다.
백하가 잎사귀를 하나 들어 손위에 놀려놓더니, 뜨거운 만두를 하나 집어 잎사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호~하고 불자 금세 김이 가셨다.
"자, 찬김을 넣어서 뜨겁지 않을 것이다."
백하가 나래에게 건네자 나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는 얼굴로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나래가 고개를 꾸벅이며 받아 든 다음, 입술 끝으로 살짝 대보니, 정말 따스한 온기 정도만 남아있었다.
배고픔에 얼른 한입 베어 물자, 원래 알고 있던 만두 맛을 잊어버릴 만큼 묘하고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우와, 너무 맛있어요."
나래의 말에 여인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입에 맞는다니, 다행입니다."
나래는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아주머니도 여기 앉아서 얼른 드세요."
나래의 권유에 여인은 예의 웃는 얼굴로 답했다.
"저는 만들면서 먹었으니 개의치 마세요. 그러고 보니 저도 여기 머물면서 저와 같은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군요."
생각도 못한 여인의 말에 나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아... 정말요?"
나래의 시선이 백하와 청의에게로 향했다.
둘 다 만두 하나씩을 들고서 맛나게 먹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을 오랜만에 본다니... 그럼 저들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나래는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긴 했지만, 이내 만두의 향긋한 내음이 그런 것들을 잊게 만들었다.
"선과(仙果)로 만든 것이라, 먹어두면 든든하고 삿된 것들을 몰아낼 힘을 줄 것입니다."
여인의 말에, 나래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큼지막한 만두는 마치 햄버거처럼 느껴졌는데, 그 달콤함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맛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나래가 우물우물 먹고 있는데, 옆을 보니 백하가 새로운 만두를 들어 호호 불면서 나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도 나래가 마지막 한입까지 다 먹고 나면 새로 주려 하는가 보다 싶은 생각에, 나래는 얼른 남은 것을 입안에 넣었다.
"천천히 먹어도 된다."
백하의 걱정이 담긴 말에, 나래는 입안 가득 만두를 문 체 우물거리며 웃어 보였다.
백하는 그런 그녀의 손에 놓인 잎사귀 위에 새 만두를 올려주었다.
"많이 있으니 든든히 먹어두거라. 이건 한번 먹으면 하루 종일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나래는 그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입안 가득 만두가 있으니 무슨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나래의 눈에 옆에 앉아 있는 아토와 초코가 보였다.
그런데 아토의 표정이 여태껏 과는 사뭇 다르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차!'
나래는 얼른 자신의 손에 들려진 만두를 반으로 쪼개어, 하나는 아토 앞에, 다른 하나는 초코 앞에 놓아주었다.
아토는 눈앞에 놓인 만두를 보았다가 다시 나래를 올려다보고는 예의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구만."
그러더니 얼른 만두를 집어 먹기 시작했고, 초코는 아무 말 없이 만두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나래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이, 백하가 다시 새 만두를 집어 호호 불고는 나래의 손에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래가 해맑게 웃으며 만두를 받으니, 백하도 기분이 좋은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환하게 웃으니 기분이 좋구나."
백하의 말에 나래는 저도 모르게 놀라 버렸다.
어느샌가 자신이 진심으로 웃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지금 자신이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버렸다.
돌아가야 할 텐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직원들이 없어진 자신을 찾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들이 연이어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먹거라."
백하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하는 말에, 상념에 젖어있던 나래가 백하를 보았다.
"네?"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잠깐 내려놓고 식사부터 하거라."
백하의 자상한 말에 나래는 살며시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그러고는 다시 만두를 한입 베어 무니, 아까의 상념들이 사그러 들었다.
"많아?"
옆에서 아토가 자기 몫의 만두를 다 먹고 아직 반이상 남은 초코의 만두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초코는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많아 보이는데?"
"돼지."
"뭐라고? 이 닭대가리가 진짜..."
나래는 얼른 자기가 먹던 것의 반을 잘라서 다시 아토 앞에 놔주었다.
"자, 이거 먹어요."
아토는 나래를 큼지막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래라고 했지? 기특한 구석이 있구나."
아토는 다시 만두를 먹기 시작했고, 나래는 그런 아토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래는 중년 여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해 보였고, 백하는 어제처럼 커다란 두루미를 불러냈다.
백하가 내민 손을, 나래는 이제 거부감 없이 붙잡을 수 있었다.
백하의 손을 잡으면 몸이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공중으로 사뿐히 날아오를 수 있었다.
물론 나래의 의지로 날아오르는 건 아니지만, 날아오르는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루미의 등위에 올라타서 백하의 허리춤을 잡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청의동자가 걱정을 담아 인사를 하자, 백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래도 다음에 또 보자꾸나."
청의동자의 말에 나래는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해 보였다.
"감사했습니다."
이어 중년 여인에게도 인사를 해 보였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에 목소리를 키워 인사를 해 보이니, 여인이 인자한 미소를 띤 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두루미가 힘껏 날아오르자, 단박에 높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나래의 눈앞으로 구름들이 펼쳐놓은 장관을 보며 "우와~"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마치 내비게이션이 길이라도 알려주는 듯, 무지개가 하늘 위에 펼쳐지고, 그 위를 두루미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도 초코 위에 올라탄 아토가 따라서 날아오고 있었다.
"이러다 멀어지겠어. 좀 더 빨리 못 날아?"
아토의 투덜거림에도 초코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나래는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걱정스러운 말을 전했다.
"걱정 말라고~"
아토가 거만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다가 순간 휘청하고 떨어질 뻔하더니, 초코에게 화를 냈다.
"똑바로 날아!"
"엉덩이가 크다."
"내 엉덩이는 정상이야."
왠지 한결 가까워진 느낌에 나래는 그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세안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게 될지 머릿속에 궁금한 것들이 가득했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 속에서 미루어두고, 일단 옷을 추슬러 입은 뒤 방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서는 소리에 아토가 바닥에서 일어나 하품을 하더니 온몸으로 기지개를 켰고, 일찌감치 일어났던 초코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래는 그런 둘을 보며 웃음 짓고는 신발을 신고 걸어 나왔다.
이곳이 거대한 거북이의 등껍질 위라는 게 실감 나지 않을 만큼 산 꼭대기의 풍경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산 아래가 바로 바다이니, 마치 산이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와..."
산과 바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나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함지박만 하게 뜨고 바라보았다.
어디서 따라왔는지 갈매기 몇 마리가 하늘 위를 날고 있었고, 산꼭대기에서 보는 갈매기의 모습은 또 다른 신선함을 주었다.
저 너머의 수평선은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고, 막 동이 튼 햇살은 수면 위에 보석을 수놓듯 반짝거렸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거대한 귀수산은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묘하게 좌우로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일어났느냐?"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백하가 어제와 다름없는 그 모습 그대로 다가왔다.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에, 나래는 신기하면서도 그가 꽤나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청의가 조찬을 준비하고 있으니, 요기를 한 뒤에 출발하자꾸나."
백하의 말에 나래는 대답 없이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백하는 나래가 자신을 바라보고만 서 있으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그러느냐?"
나래는 어디서 튀어나온 용기인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그 말투는 원래 그런 건가요?"
"말...투?"
"네. 꼭 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할아버지처럼 말을 하니 신기해서요."
백하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가만히 이를 지켜보던 아토가 껄껄 거리며 웃어댔다.
"아하하, 재밌다, 재밌어. 백하도령이 저런 소리를 언제 들어볼까? 아하하, 저 녀석이 백하도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아하하"
아토의 웃음에 백하는 더욱 멋쩍은 표정이 되어서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것이... 내가... 자란 곳에서는 다들 그리 말하여서..."
당황하여 변명하는 백하를 보며, 아토는 더욱 더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아토의 웃음소리에 나래도 피식 웃음 지었다.
"흠... 그... 조, 조찬이 준비되었는지, 보고 오, 오...마..."
백하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부랴부랴 청의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아토는 놀리듯이 계속 큰소리로 웃어댔다.
"이제 그만 웃어요."
나래가 핀잔을 줘보지만, 아토는 못 들은 척 계속 웃어댔고, 그 옆으로 초코가 다가와 짧게 말했다.
"닥쳐."
순간 아토의 웃음이 멈췄다.
아토는 싸늘한 눈빛으로 초코를 보며 말했다.
"뭐라? 이 닭대가리가 진짜..."
그런 둘을 보면서 나래는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나래는 다시금 지나는 풍경을 이어서 감상했다. 어느덧 다시 돌아온 백하가 그녀를 불렀다.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이쪽으로 오너라."
백하의 부름에 나래가 얼른 "네."하고 답하며 걸어 가자, 티격태격하고 있던 아토와 초코도 급히 나래의 뒤를 쫓아 갔다.
앞쪽 안채의 대청에 상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 청의동자가 서 있었다.
때마침 소쿠리에 뭔가를 담아가지고 나오는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여인은 백하를 보고는 얼른 인사를 해 보였고, 나래를 보고도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나래는 그녀가 인사를 해오자, 얼른 마주 인사하였는데, 그녀의 선한 인상에 절로 호감이 생겨났다.
상 앞으로 다가가자 여인이 소쿠리를 상위에 놓았고, 소쿠리에 담긴 큼지막한 만두가 눈에 들어왔다.
"우와~"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생김새와 냄새였다.
만두가 담긴 소쿠리 한켠에는 물에 젖은 잎사귀 같은 것이 놓여 있어서 저건 무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드셔 보세요."
여인의 말에 나래는 얼른 하나 가져가 먹고 싶었지만, 그녀가 앉은 위치에서는 집기 어려운 데다가,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뜨거워 보였다.
백하가 잎사귀를 하나 들어 손위에 놀려놓더니, 뜨거운 만두를 하나 집어 잎사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호~하고 불자 금세 김이 가셨다.
"자, 찬김을 넣어서 뜨겁지 않을 것이다."
백하가 나래에게 건네자 나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는 얼굴로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나래가 고개를 꾸벅이며 받아 든 다음, 입술 끝으로 살짝 대보니, 정말 따스한 온기 정도만 남아있었다.
배고픔에 얼른 한입 베어 물자, 원래 알고 있던 만두 맛을 잊어버릴 만큼 묘하고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우와, 너무 맛있어요."
나래의 말에 여인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입에 맞는다니, 다행입니다."
나래는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아주머니도 여기 앉아서 얼른 드세요."
나래의 권유에 여인은 예의 웃는 얼굴로 답했다.
"저는 만들면서 먹었으니 개의치 마세요. 그러고 보니 저도 여기 머물면서 저와 같은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군요."
생각도 못한 여인의 말에 나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아... 정말요?"
나래의 시선이 백하와 청의에게로 향했다.
둘 다 만두 하나씩을 들고서 맛나게 먹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을 오랜만에 본다니... 그럼 저들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나래는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긴 했지만, 이내 만두의 향긋한 내음이 그런 것들을 잊게 만들었다.
"선과(仙果)로 만든 것이라, 먹어두면 든든하고 삿된 것들을 몰아낼 힘을 줄 것입니다."
여인의 말에, 나래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큼지막한 만두는 마치 햄버거처럼 느껴졌는데, 그 달콤함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맛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나래가 우물우물 먹고 있는데, 옆을 보니 백하가 새로운 만두를 들어 호호 불면서 나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도 나래가 마지막 한입까지 다 먹고 나면 새로 주려 하는가 보다 싶은 생각에, 나래는 얼른 남은 것을 입안에 넣었다.
"천천히 먹어도 된다."
백하의 걱정이 담긴 말에, 나래는 입안 가득 만두를 문 체 우물거리며 웃어 보였다.
백하는 그런 그녀의 손에 놓인 잎사귀 위에 새 만두를 올려주었다.
"많이 있으니 든든히 먹어두거라. 이건 한번 먹으면 하루 종일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나래는 그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입안 가득 만두가 있으니 무슨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나래의 눈에 옆에 앉아 있는 아토와 초코가 보였다.
그런데 아토의 표정이 여태껏 과는 사뭇 다르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차!'
나래는 얼른 자신의 손에 들려진 만두를 반으로 쪼개어, 하나는 아토 앞에, 다른 하나는 초코 앞에 놓아주었다.
아토는 눈앞에 놓인 만두를 보았다가 다시 나래를 올려다보고는 예의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구만."
그러더니 얼른 만두를 집어 먹기 시작했고, 초코는 아무 말 없이 만두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나래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이, 백하가 다시 새 만두를 집어 호호 불고는 나래의 손에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래가 해맑게 웃으며 만두를 받으니, 백하도 기분이 좋은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환하게 웃으니 기분이 좋구나."
백하의 말에 나래는 저도 모르게 놀라 버렸다.
어느샌가 자신이 진심으로 웃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지금 자신이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버렸다.
돌아가야 할 텐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직원들이 없어진 자신을 찾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들이 연이어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먹거라."
백하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하는 말에, 상념에 젖어있던 나래가 백하를 보았다.
"네?"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잠깐 내려놓고 식사부터 하거라."
백하의 자상한 말에 나래는 살며시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그러고는 다시 만두를 한입 베어 무니, 아까의 상념들이 사그러 들었다.
"많아?"
옆에서 아토가 자기 몫의 만두를 다 먹고 아직 반이상 남은 초코의 만두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초코는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많아 보이는데?"
"돼지."
"뭐라고? 이 닭대가리가 진짜..."
나래는 얼른 자기가 먹던 것의 반을 잘라서 다시 아토 앞에 놔주었다.
"자, 이거 먹어요."
아토는 나래를 큼지막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래라고 했지? 기특한 구석이 있구나."
아토는 다시 만두를 먹기 시작했고, 나래는 그런 아토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래는 중년 여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해 보였고, 백하는 어제처럼 커다란 두루미를 불러냈다.
백하가 내민 손을, 나래는 이제 거부감 없이 붙잡을 수 있었다.
백하의 손을 잡으면 몸이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공중으로 사뿐히 날아오를 수 있었다.
물론 나래의 의지로 날아오르는 건 아니지만, 날아오르는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루미의 등위에 올라타서 백하의 허리춤을 잡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청의동자가 걱정을 담아 인사를 하자, 백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래도 다음에 또 보자꾸나."
청의동자의 말에 나래는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해 보였다.
"감사했습니다."
이어 중년 여인에게도 인사를 해 보였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에 목소리를 키워 인사를 해 보이니, 여인이 인자한 미소를 띤 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두루미가 힘껏 날아오르자, 단박에 높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나래의 눈앞으로 구름들이 펼쳐놓은 장관을 보며 "우와~"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마치 내비게이션이 길이라도 알려주는 듯, 무지개가 하늘 위에 펼쳐지고, 그 위를 두루미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도 초코 위에 올라탄 아토가 따라서 날아오고 있었다.
"이러다 멀어지겠어. 좀 더 빨리 못 날아?"
아토의 투덜거림에도 초코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나래는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걱정스러운 말을 전했다.
"걱정 말라고~"
아토가 거만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다가 순간 휘청하고 떨어질 뻔하더니, 초코에게 화를 냈다.
"똑바로 날아!"
"엉덩이가 크다."
"내 엉덩이는 정상이야."
왠지 한결 가까워진 느낌에 나래는 그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