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7
바다 위를 날고 있던 두루미는 어느새 육지 위를 날고 있었고, 멀리 제법 규모가 커 보이는 마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곳이 모꼬지 마을이다."
백하의 말에 나래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바깥쪽으로 목책이 둘러져 둥근 형태를 띠고 있는 마을이었고, 여기저기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입구로 내려가자."
백하의 말에 두루미가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던 목책이 막상 내려서 보니 어지간한 사람 키높이만큼 높다는 사실에, 나래는 은근 놀랐다.
"내 손을 잡거라."
백하의 말에 나래는 백하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 그의 손을 잡았다.
몸이 둥실 떠오르는 느낌과 동시에 사뿐하게 땅에 내려서자, 두루미는 다시 하늘 위로 높게 날아올랐고, 그와 동시에 초코와 아토가 바닥에 내려섰다.
아토를 태우고 날아온 초코는 별달리 힘들어 보이지 않은 반면, 타고 온 아토는 진이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젠장... 살을 좀 찌워라. 삐쩍 말라가지고 엉덩이가 아프단 말이다."
"돼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투닥거리는 아토와 초코는 백하와 나래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후다닥 따라 들어왔다.
마을 안은 제법 분주한 풍경이었다.
꽤 많은 이들이 오다니고 있는데, 하나같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 소선기에 들어섰을 때처럼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묘한 호기심에 이곳저곳으로 눈길이 향했다.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나래가 두리번거리며 묻는 말에, 따라 걷던 아토가 대답했다.
"여긴 수많은 요괴와 아리아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마을이다. 그들을 상대로 별의별 장사들을 다 하지."
나래가 아토를 보며 되물었다.
"아리아요? 아리아가 뭐예요?"
아토가 나래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리아가 아리아지 뭐야? 아리아가 뭐냐니? 뭐라고 말해야 돼? 고양이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아... 그렇군요. 아리아..."
그러자 아토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저놈도 아리아야."
아토의 시선을 끝에는 곱상하게 생긴 외모의 여인이었는데, 이마 위로 곤충의 더듬이 같은 것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여태 말이 없던 초코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도깨비."
아토가 수긍하듯 이어 말했다.
"그렇지. 도깨비가 아리아야."
"도깨비 가요?"
"그래. 도깨비. 그런 놈들을 아리아라고 불러."
나래는 뭔가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다.
앞장서 걷고 있던 백하가 어느 허름한 집 앞에 이르러 멈춰 서자, 나래와 아토, 초코도 그 뒤에 멈춰 섰다.
"모지랑 아범 있는가?"
백하가 누군가를 찾듯이 부르는 소리에, 문이 벌컥 열리며 수염이 잔뜩 뻗쳐 있는 한 남자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아이고, 백하도령 아니십니까?"
그는 백하를 알아보더니 헐레벌떡 나와서 허리를 숙여 조아렸다.
"그간 잘 지냈는가?"
백하가 온화한 표정으로 안부를 묻자, 그는 고개도 들지않고 숙인 채로 대답했다.
"그럼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열린 문 너머로 아직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나래는 그 아이가 어쩐지 꽤나 이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도 호기심때문인지 몰라도 마주친 눈을 피하지않고 뚫어져라 나래를 쭉 응시했다.
나래는 나름 친한 척을 해보려,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였는데, 아이는 금세 눈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그 사이 백하는 모지랑 아범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자네는 세상 모든 물건에 대해 아는 바가 많으니, 내 물을 것이 있어 찾아왔네. 혹 초공연화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가?"
백하의 물음에 모지랑 아범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백하를 보았다가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그 물건에 대해서는 어찌 물으십니까?"
"내 듣기로 그 물건에는 누리와 누리를 잇는 힘이 있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다른 누리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같은 물건 입죠."
"그 물건을 홍저왕이 가지고 있다 들었는데... 맞는가?"
홍저왕의 이름이 나오자, 모지랑 아범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것이... 그렇습죠. 신묘한 물건이라면 밝히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욕심이 많은 요괴 입죠. 초공연화 또한 홍저왕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저도 들었습니다."
백하가 몸을 돌려 나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가 다른 누리에 있다가 초공연화를 통해 이쪽 누리로 온 인간의 아이일세. 어찌하여 오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돌아가기 위해서는 초공연화가 필요하다 들었네."
백하의 말에 모지랑 아범이 또다시 놀란 표정으로 나래를 쳐다보았다.
"인간의 아이라구요? 허허... 요괴들이나 도깨비들이 알면 큰일이 날 겁니다."
백하가 다시 모지랑 아범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네가 좀 도와주게."
모지랑 아범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제가 도령께 진 신세가 있는데, 무엇인들 돕지 못하겠습니까? 먼저 저 아이에게서 인간의 냄새를 지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가능한 것인가?"
"제게 마침 새끼 구미호의 털이 있습니다. 그것을 품에 지니고 있으면,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네."
모지랑 아범이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금세 무언가를 챙겨가지고 나왔다.
여우털인 듯 보이는 것을 흡사 붓의 털처럼 가지런히 모아 묶어 든 물건이었는데, 그걸 나래에게 불쑥 내밀어 보였다.
"이걸 가지고 있거라. 꼭 품에 잘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나래는 그 물건을 받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어 모지랑 아범이 백하를 보며 말했다.
"초공연화를 가지고 있다 하여도, 어느 누리에 있는 초공연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들었습니다. 다만, 이미 초공연화를 타고 온 이라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였으니, 초공연화를 구해, 이곳으로 넘어왔을 때 처음 당도했던 그 장소로 가져가 기원을 한다면, 능히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지랑 아범의 말에 백하가 기쁜 얼굴로 화답했다.
"다행이구나."
나래 역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순간 기쁜 표정이 되었다가, 그런 이성적인 생각과는 달리 가슴속 어딘가에서 묘한 실망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뭐지?'
그런 자신의 감정에 나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돌아가기 싫은 건가...'
나래의 표정 변화를 알아챈 듯, 백하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어찌 그러느냐?"
나래는 얼른 씩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아닙니다. 돌아갈 수 있다 하니 너무 기뻐서 그렇습니다."
나래의 대답에 백하도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 역시 기쁘구나."
이어 모지랑 아범을 보며 말했다.
"그럼 홍저왕을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백하의 물음에 모지랑 아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말씀하실까 걱정했습니다. 홍저왕은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한때 요괴들을 진두지휘하여 천상계와 전쟁을 하였던 자입니다. 그런 위험한 자를 가까이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백하는 괜찮다는 듯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한 과거는 나도 알고 있네. 나도 성급히 찾아가 초공연화를 달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그저 어디 있는지만 말해주시게."
백하의 말에 모지랑 아범은 마지못한 듯,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천태산(天太山) 자락에 있는 석요궁(石妖宮)에 있다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도 왕 행세를 하며 산다 들었지요."
그 말에 백하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천태산이라... 짐작하였던 곳들 중에 가장 위험한 곳이구나."
모지랑 아범이 백하와 나래를 번갈아 보더니, 뒤쪽을 돌아보며 방안의 아이를 향해 손짓하며 불렀다.
아이는 모지랑 아범이 부르자, 쪼르르 달려와 부끄러운 듯 모지랑 아범 다리에 매달려 자신의 모습을 반쯤 감추고 얼굴만 쏙 내밀었다.
"이 아이를 데려가시지요."
모지랑 아범의 말에 나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 애를 데려가라구요? 어째서요?"
나래가 성급하게 묻는 말에, 모지랑 아범은 나래를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도깨비입니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것을 제가 데려다가 밥을 먹였지요. 백하도령께서는 천인(天人)이시고, 인간의 아이와 함께이니, 두 분 이서만 천태산으로 가려한다면 위험하고 또 위험한 일입니다."
이어 모지랑 아범이 자기 다리에 매달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아이는 온누리에 퍼져 사는 도깨비 입죠. 특히나 인간의 특색을 고루 갖추고 있는 아이라, 두 분의 기운을 가리고, 오해를 피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보시기엔 아직 어려 보여도, 영특하고 눈치가 빨라,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모지랑 아범이 몸을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했다.
"솔아, 이분들을 모시고 천태산에 있는 해지개 마을로 갈 수 있겠느냐?"
모지랑 아범의 물음에 솔이라고 불린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여 보였다.
모지랑 아범은 솔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백하를 보며 말했다.
"솔이가 길 안내를 해줄 것입니다. 이 아이는 도깨비라 어디를 가든 이 아이를 앞세우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하는 모지랑 아범의 말을 듣고, 솔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릴 도와줄 수 있겠느냐?"
백하의 물음에 솔이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에도 백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모지랑 아범을 쳐다보았다.
"천태산까지는 꽤 먼길인데... 정말 괜찮겠느냐?"
"걱정 마십시오. 외모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엄연히 오랜 세월을 산 도깨비입니다."
"그래, 고맙구나."
"천태산까지는 어찌 가실지 모르겠으나, 혹여 날아가시려 하신다면, 봉오산에 이르러 반드시 지릅고개를 걸어서 지나셔야 합니다. 천태산을 날아서 들어가려 했다가는 흑비천상(黑飛天狀)들이 달려들 것이니, 결코 날아서 가서는 아니 됩니다."
"알겠네. 알려주어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제가 진 신세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허면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백하가 모지랑 아범과 인사를 나누자, 나래도 얼른 나서 인사를 꾸벅하였다.
백하와 나래가 다시 마을 입구 쪽으로 향하니, 그 뒤를 솔이와 초코, 아토가 뒤따랐고, 나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백하에게 물었다.
"그... 천태산이란 곳이... 혹시 요괴들이 득실 거리는 곳인가요?"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백하의 대답에 나래는 걱정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요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는데, 그곳으로 아직 앳되어 보이는 소녀와, 고양이, 그리고 닭을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인가?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 나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한가득 담은 체 백하의 뒤를 쫓아 걸었다.
"저곳이 모꼬지 마을이다."
백하의 말에 나래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바깥쪽으로 목책이 둘러져 둥근 형태를 띠고 있는 마을이었고, 여기저기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입구로 내려가자."
백하의 말에 두루미가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던 목책이 막상 내려서 보니 어지간한 사람 키높이만큼 높다는 사실에, 나래는 은근 놀랐다.
"내 손을 잡거라."
백하의 말에 나래는 백하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 그의 손을 잡았다.
몸이 둥실 떠오르는 느낌과 동시에 사뿐하게 땅에 내려서자, 두루미는 다시 하늘 위로 높게 날아올랐고, 그와 동시에 초코와 아토가 바닥에 내려섰다.
아토를 태우고 날아온 초코는 별달리 힘들어 보이지 않은 반면, 타고 온 아토는 진이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젠장... 살을 좀 찌워라. 삐쩍 말라가지고 엉덩이가 아프단 말이다."
"돼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투닥거리는 아토와 초코는 백하와 나래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후다닥 따라 들어왔다.
마을 안은 제법 분주한 풍경이었다.
꽤 많은 이들이 오다니고 있는데, 하나같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 소선기에 들어섰을 때처럼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묘한 호기심에 이곳저곳으로 눈길이 향했다.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나래가 두리번거리며 묻는 말에, 따라 걷던 아토가 대답했다.
"여긴 수많은 요괴와 아리아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마을이다. 그들을 상대로 별의별 장사들을 다 하지."
나래가 아토를 보며 되물었다.
"아리아요? 아리아가 뭐예요?"
아토가 나래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리아가 아리아지 뭐야? 아리아가 뭐냐니? 뭐라고 말해야 돼? 고양이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아... 그렇군요. 아리아..."
그러자 아토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저놈도 아리아야."
아토의 시선을 끝에는 곱상하게 생긴 외모의 여인이었는데, 이마 위로 곤충의 더듬이 같은 것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여태 말이 없던 초코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도깨비."
아토가 수긍하듯 이어 말했다.
"그렇지. 도깨비가 아리아야."
"도깨비 가요?"
"그래. 도깨비. 그런 놈들을 아리아라고 불러."
나래는 뭔가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다.
앞장서 걷고 있던 백하가 어느 허름한 집 앞에 이르러 멈춰 서자, 나래와 아토, 초코도 그 뒤에 멈춰 섰다.
"모지랑 아범 있는가?"
백하가 누군가를 찾듯이 부르는 소리에, 문이 벌컥 열리며 수염이 잔뜩 뻗쳐 있는 한 남자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아이고, 백하도령 아니십니까?"
그는 백하를 알아보더니 헐레벌떡 나와서 허리를 숙여 조아렸다.
"그간 잘 지냈는가?"
백하가 온화한 표정으로 안부를 묻자, 그는 고개도 들지않고 숙인 채로 대답했다.
"그럼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열린 문 너머로 아직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나래는 그 아이가 어쩐지 꽤나 이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도 호기심때문인지 몰라도 마주친 눈을 피하지않고 뚫어져라 나래를 쭉 응시했다.
나래는 나름 친한 척을 해보려,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였는데, 아이는 금세 눈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그 사이 백하는 모지랑 아범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자네는 세상 모든 물건에 대해 아는 바가 많으니, 내 물을 것이 있어 찾아왔네. 혹 초공연화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가?"
백하의 물음에 모지랑 아범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백하를 보았다가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그 물건에 대해서는 어찌 물으십니까?"
"내 듣기로 그 물건에는 누리와 누리를 잇는 힘이 있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다른 누리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같은 물건 입죠."
"그 물건을 홍저왕이 가지고 있다 들었는데... 맞는가?"
홍저왕의 이름이 나오자, 모지랑 아범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것이... 그렇습죠. 신묘한 물건이라면 밝히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욕심이 많은 요괴 입죠. 초공연화 또한 홍저왕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저도 들었습니다."
백하가 몸을 돌려 나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가 다른 누리에 있다가 초공연화를 통해 이쪽 누리로 온 인간의 아이일세. 어찌하여 오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돌아가기 위해서는 초공연화가 필요하다 들었네."
백하의 말에 모지랑 아범이 또다시 놀란 표정으로 나래를 쳐다보았다.
"인간의 아이라구요? 허허... 요괴들이나 도깨비들이 알면 큰일이 날 겁니다."
백하가 다시 모지랑 아범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네가 좀 도와주게."
모지랑 아범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제가 도령께 진 신세가 있는데, 무엇인들 돕지 못하겠습니까? 먼저 저 아이에게서 인간의 냄새를 지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가능한 것인가?"
"제게 마침 새끼 구미호의 털이 있습니다. 그것을 품에 지니고 있으면,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네."
모지랑 아범이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금세 무언가를 챙겨가지고 나왔다.
여우털인 듯 보이는 것을 흡사 붓의 털처럼 가지런히 모아 묶어 든 물건이었는데, 그걸 나래에게 불쑥 내밀어 보였다.
"이걸 가지고 있거라. 꼭 품에 잘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나래는 그 물건을 받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어 모지랑 아범이 백하를 보며 말했다.
"초공연화를 가지고 있다 하여도, 어느 누리에 있는 초공연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들었습니다. 다만, 이미 초공연화를 타고 온 이라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였으니, 초공연화를 구해, 이곳으로 넘어왔을 때 처음 당도했던 그 장소로 가져가 기원을 한다면, 능히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지랑 아범의 말에 백하가 기쁜 얼굴로 화답했다.
"다행이구나."
나래 역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순간 기쁜 표정이 되었다가, 그런 이성적인 생각과는 달리 가슴속 어딘가에서 묘한 실망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뭐지?'
그런 자신의 감정에 나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돌아가기 싫은 건가...'
나래의 표정 변화를 알아챈 듯, 백하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어찌 그러느냐?"
나래는 얼른 씩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아닙니다. 돌아갈 수 있다 하니 너무 기뻐서 그렇습니다."
나래의 대답에 백하도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 역시 기쁘구나."
이어 모지랑 아범을 보며 말했다.
"그럼 홍저왕을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백하의 물음에 모지랑 아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말씀하실까 걱정했습니다. 홍저왕은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한때 요괴들을 진두지휘하여 천상계와 전쟁을 하였던 자입니다. 그런 위험한 자를 가까이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백하는 괜찮다는 듯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한 과거는 나도 알고 있네. 나도 성급히 찾아가 초공연화를 달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그저 어디 있는지만 말해주시게."
백하의 말에 모지랑 아범은 마지못한 듯,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천태산(天太山) 자락에 있는 석요궁(石妖宮)에 있다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도 왕 행세를 하며 산다 들었지요."
그 말에 백하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천태산이라... 짐작하였던 곳들 중에 가장 위험한 곳이구나."
모지랑 아범이 백하와 나래를 번갈아 보더니, 뒤쪽을 돌아보며 방안의 아이를 향해 손짓하며 불렀다.
아이는 모지랑 아범이 부르자, 쪼르르 달려와 부끄러운 듯 모지랑 아범 다리에 매달려 자신의 모습을 반쯤 감추고 얼굴만 쏙 내밀었다.
"이 아이를 데려가시지요."
모지랑 아범의 말에 나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 애를 데려가라구요? 어째서요?"
나래가 성급하게 묻는 말에, 모지랑 아범은 나래를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도깨비입니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것을 제가 데려다가 밥을 먹였지요. 백하도령께서는 천인(天人)이시고, 인간의 아이와 함께이니, 두 분 이서만 천태산으로 가려한다면 위험하고 또 위험한 일입니다."
이어 모지랑 아범이 자기 다리에 매달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아이는 온누리에 퍼져 사는 도깨비 입죠. 특히나 인간의 특색을 고루 갖추고 있는 아이라, 두 분의 기운을 가리고, 오해를 피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보시기엔 아직 어려 보여도, 영특하고 눈치가 빨라,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모지랑 아범이 몸을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했다.
"솔아, 이분들을 모시고 천태산에 있는 해지개 마을로 갈 수 있겠느냐?"
모지랑 아범의 물음에 솔이라고 불린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여 보였다.
모지랑 아범은 솔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백하를 보며 말했다.
"솔이가 길 안내를 해줄 것입니다. 이 아이는 도깨비라 어디를 가든 이 아이를 앞세우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하는 모지랑 아범의 말을 듣고, 솔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릴 도와줄 수 있겠느냐?"
백하의 물음에 솔이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에도 백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모지랑 아범을 쳐다보았다.
"천태산까지는 꽤 먼길인데... 정말 괜찮겠느냐?"
"걱정 마십시오. 외모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엄연히 오랜 세월을 산 도깨비입니다."
"그래, 고맙구나."
"천태산까지는 어찌 가실지 모르겠으나, 혹여 날아가시려 하신다면, 봉오산에 이르러 반드시 지릅고개를 걸어서 지나셔야 합니다. 천태산을 날아서 들어가려 했다가는 흑비천상(黑飛天狀)들이 달려들 것이니, 결코 날아서 가서는 아니 됩니다."
"알겠네. 알려주어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제가 진 신세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허면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백하가 모지랑 아범과 인사를 나누자, 나래도 얼른 나서 인사를 꾸벅하였다.
백하와 나래가 다시 마을 입구 쪽으로 향하니, 그 뒤를 솔이와 초코, 아토가 뒤따랐고, 나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백하에게 물었다.
"그... 천태산이란 곳이... 혹시 요괴들이 득실 거리는 곳인가요?"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백하의 대답에 나래는 걱정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요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는데, 그곳으로 아직 앳되어 보이는 소녀와, 고양이, 그리고 닭을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인가?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 나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한가득 담은 체 백하의 뒤를 쫓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