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19
엄청나게 빨라진 도깨비를 보며 나래는 걱정이 되었지만, 초코가 이쪽으로 가다가 저쪽으로 홱 돌아서고, 저쪽으로 가다가 이쪽으로 홱 돌아서며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버리니, 빨라진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술래 도깨비는 그때마다 초코와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속도를 높인 것이 오히려 단점이 되어 버렸지만, 술래 도깨비는 자각하지 못한 체 점점 더 빨리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초코는 능숙하게 술래 도깨비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고, 그 덕에 오공과 솔이, 나래는 굳이 도망 다니지 않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얼음!"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고, 이제 혼자 남은 도투락 도깨비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것을 알자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신중하게 거리를 좁혀오는 백하때문에 도투락 도깨비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당황해하다 한쪽으로 냅다 달려갔다. 하지만 백하가 재빨리 그쪽을 막아서며 그를 잡아챘다.
백하의 손이 도투락 도깨비의 몸에 닿는 순간, 그는 바로 얼음 상태로 변했고, 그와 동시에 붉은빛의 둥근 원 형태의 결계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이겼다!"
솔이가 제일 먼저 기쁜 목소리로 양손을 번쩍 치켜들며 좋아했고, 오공도 신이 나서 양손을 들어 팔짝팔짝 뛰다가 솔이와 둘이 껴안고 좋아했다.
나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백하를 바라보았고, 백하는 수고했다는 듯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런 멍청한 놈들!"
홍저왕의 외침이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도투락 도깨비들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떨었다.
"썩 물러가거라!"
홍저왕의 일갈에 도투락 도깨비들이 우르르 나왔던 곳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씩씩 거리던 홍저왕이 백하와 나래를 보며 말했다.
"흥! 두 번째 내기는 첫 내기와는 다를 것이다. 두 번째 내기는 편전이다."
홍저왕의 말에 나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편전? 그게 뭐예요?"
백하가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편쌈, 또는 편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콩주머니로 줄 안에 사람을 맞추고, 맞은 사람은 줄 밖으로 나가 콩주머니를 던지는 방식인데, 안쪽 사람이 모두 맞아 밖으로 나가면 지는 것이다."
백하의 설명에 나래가 알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기듯이 말했다.
"아~ 피구~ 저 그거 알아요."
나래가 중학교 시절 가장 흔하게 하던 체육 활동 중에 하나가 피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래가 피구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경기 규칙만큼은 익숙했다.
이번에도 도투락 도깨비들이 들어간 문으로 다른 요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나게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청색빛의 괴물과 함께, 솔이보다도 작은 요괴 넷이 같이 나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있는 듯 없는 듯했으며, 청록색 미끌미끌한 피부에 배는 하얗게 톡 튀어나와 있는 것이 흡사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개구리처럼 두 눈도 톡 튀어나와 있었으며, 손가락 사이에는 갈퀴가 달려있었다.
그들이 백하와 나래 일행 앞으로 다가가자, 이번에도 홍저왕이 양손을 모아 주문을 외웠고, 땅바닥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붉은 줄이 생겨났다.
둘 사이로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고 반들반들한 배를 드러낸 요괴 하나가 걸어왔다.
발은 꼭 사람 발에, 머리는 호랑이 머리를 하고서, 홍저왕처럼 붉은 옷을 입고 있었으나, 배는 훤히 드러났으며, 손등에도 털이 복슬복슬해 보였다.
"범이어요."
솔이가 무서운 듯 나래 뒤에 숨으며 알려주자, 나래가 되물었다.
"범?"
"범이요."
"범이?"
"예, 호랑이 요괴여요. 저는 저 범이가 젤루 무서워요."
솔이가 무서운 표정을 짓자, 나래가 그런 솔이를 감싸 안으며 범이를 바라보았다.
범이 손에 둥근 공 하나가 들려있는데, 무늬가 전혀 없이 온전히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공 자체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공을 높이 던지면 뛰어올라 붙잡는 쪽이 먼저 공을 던진다."
범이 말에 백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고, 상대 쪽에서는 체격이 어마어마한 요괴가 앞으로 나섰다.
"쟤들은 뭐야? 개구리처럼 생긴 애들?"
나래의 물음에 솔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요수(妖獸)들은 종류가 워낙 많아서 다 알기 힘들답니다."
"요수?"
"예, 범이도 그렇고 저렇게 동물이 사람 행세를 하면, 그걸 요수라고 해요, 아씨."
나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범이 손에 들려져 있던 공이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백하가 힘껏 뛰어보지만, 거대한 체격의 요괴는 이미 그 키 높이에서 백하를 압도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거대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흡사 개구리처럼 엄청난 높이로 뛰어올랐다.
공을 가볍게 낚아챈 괴물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땅에 내려서는데, 그때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지 귀가 웅웅 거리며 울릴 지경이었다.
"옛다!"
그리고 내려서자마자 그 괴물은 바로 코 앞에 있는 백하에게 공을 집어던졌다.
아차 하는 사이, 백하의 몸에 맞은 공은 다시 요괴에게 튕겨져 돌아갔고, 공을 잡은 요괴가 신이 난 듯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치사해!"
나래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새 백하의 몸이 절로 사라지더니, 상대편 선 밖으로 옮겨져 있었다.
"낄낄낄, 식은 죽 먹기구만."
거대한 괴물은 나래와 오공, 솔이, 초코를 보며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었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홍저왕도 기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있었다.
구경을 하던 사방의 요괴들 역시 흥이 나는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고, 깔깔 거리며 웃는 소리 또한 들려왔다.
"어떻게.... 백하도령만 믿고 있었는데..."
오공이 울먹거리며 말하자 나래가 공을 들고 있는 요괴를 응시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두 번째 공격은 솔이에게로 향했다.
경기 규칙을 알고 있는 솔이였기에, 날아오는 공을 잡아보려 손을 내뻗어 봤지만, 막상 공이 눈앞으로 날아오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바람에, 공은 손바닥에 맞고 공중으로 높게 솟아올랐다.
"잡아야 돼!"
나래가 외치며 공이 날아가는 쪽으로 달려가 봤지만, 공은 반대편으로 떨어졌고, 상대편 요괴 중 하나가 그 공을 받아 들었다.
공을 잡는 순간, 솔이 몸이 휙 하고 사라지더니, 상대편 바깥쪽에 나타났다.
"그렇지!"
홍저왕이 기뻐하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고, 주위에서는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떨며 박수를 쳤다.
나래는 자신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강력한 공격을 잡기도 힘들고, 도망만 다닐 수도 없었다.
나래는 어떻게든 공을 잡아보기 위해 양손을 앞으로 하고, 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반면 오공은 나래 뒤에 숨어서 어쩔 줄 몰라할 뿐이었다.
그런 오공이 요괴의 눈에 들어왔는지, 이번에는 요괴의 공격이 오공을 향했다.
"어떡해!"
오공은 공이 자신에게로 날아들자,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나래를 붙잡아 당겼다.
"앗!"
나래가 순간 균형을 잃고 오공 쪽으로 이끌리자, 공은 나래와 오공의 몸에 차례대로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걸 깨달은 순간 이미 나래와 오공은 상대편 바깥쪽으로 몸이 이동한 뒤였다.
이제 남은 건 초코 뿐이었다.
"초코님..."
나래가 걱정스럽게 초코를 바라보자, 초코는 자기 눈앞에 있는 공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낄낄낄"
상대팀 요괴들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공을 획득했지만, 정작 초코는 공을 던질 수 없었다.
나래는 속상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초코는 머리로 공을 힘껏 밀어 보지만, 그저 데구르르 굴러가 요괴의 손에 쥐어줄 뿐이었다.
요괴는 공을 쥐자마자 있는 힘껏 초코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초코는 체격도 작고 재빨라 공격을 쉽게 피했다.
"쳇!"
요괴가 입맛을 다셨고, 반대편 밖으로 나가버린 공은 저절로 요괴의 손으로 돌아왔다.
몇 차례 같은 공격이 이어졌지만, 초코는 번번이 요괴의 공격을 피해냈고, 나래는 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틀렸는데, 기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오공의 말에, 나래가 그녀를 쏘아보았다.
"왜 그렇게 말해?"
"해봐야 소용없는데 뭐하러 해?"
"하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공도 못 던지는데 뭘 해봐? 해봐야 뻔한 거 아냐?"
나래는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매사 모든 일을 그렇게 바라보고 살아왔던 자신이지 않은가?
해봐야 소용없는 일, 해봐야 바뀌지 않을 상황들, 그저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무기력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이 바로 코 앞에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겠는데,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어떤 말이든, 자신이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래가 고민하는 사이, 몇 차례의 공격이 더 이어졌고, 요괴는 꽤 화가 난 상태였다.
"안 되겠다."
공을 든 요괴가 뒤쪽의 작은 요괴들을 보며 하는 말에, 작은 요괴들이 태연히 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그 요괴들이 저절로 초코가 있는 쪽 선 밖으로 이동했다.
"언제까지 피하는지 볼까?"
공을 든 요괴가 의기양양하게 말하더니, 초코 뒤쪽에 있는 요괴에게 공을 던졌다.
초코는 재빨리 다른 쪽으로 몸을 피했지만, 초코를 둘러싼 작은 요괴들이 서로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초코가 잠시도 쉴 틈 없이 뛰게 만들었다.
"아... 안돼..."
나래는 이를 보며 안타까움에 절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지쳐버린 초코가 결국 공에 맞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친 초코가 공에 맞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공과 선들이 사라져 버렸고, 요괴들은 양손을 들어 기뻐했다.
"이야호!"
나래가 속상한 마음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자, 옆에서 오공이 화를 돋웠다.
"거봐... 소용없다고 했잖아."
그런 오공을 홱하니 노려보자, 오공은 얼른 입을 다물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자, 이로써 동점이로구나."
홍저왕의 기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경기에서 이긴 요괴들은 의기양양하게 양손을 들어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호응하면서, 나왔던 곳으로 퇴장하고 있었다.
나래와 백하, 오공, 솔이와 초코가 한데 모이자, 홍저왕의 말이 이어졌다.
"마지막 경기다. 마지막은 숨바꼭질로 하자."
나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바꼭질?"
"나오너라!"
홍저왕의 외침에, 이번엔 약 스무 마리의 요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제각각의 기괴한 모습을 한 요괴들이었고, 그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나래와 일행 앞에 두 줄로 섰다.
"너희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명은 모습을 바꾸어 지금 눈앞에 있는 요괴들 중 하나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그 한 명이 요괴들 사이에서, 자기편을 모두 찾아내면 너희가 승리하는 것이고, 한 명이라도 틀리면 너희가 지는 것이다."
백하는 홍저왕의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 나서 대답했다.
"거부한다. 우리에게 불리한 경기다."
백하의 거부에 홍저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분해하는 사이, 나래는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 듯 얼른 백하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조건을 걸어요."
백하가 나래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조건?"
"예. 제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쓸 수 있게 해 주면, 하겠다구요."
"네가 가진 물건?"
"네네. 제가 찾아낼게요."
나래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백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알았다."
백하가 큰 소리로 홍저왕에게 말했다.
"우리가 가진 물건을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응하겠다."
백하의 대답에 홍저왕이 잠시 의아한 표정이 지었다가, 이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낄낄거렸다.
"좋다. 분명히 응한다 하였다. 무르는 것은 없다! 누가 찾을 것이냐?"
이번엔 나래가 나서 대답했다.
"제가 찾겠어요."
홍저왕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더니, 양손을 합장하여 주문을 외우자, 나래를 제외하고 초코와 솔이, 백하와 오공의 모습이 사라졌다.
"자, 그들은 모두 지금 눈앞에 있는 요괴들 중 하나로 모습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찾아보거라!"
홍저왕의 말에 나래는 얼른 품 안에서 천윤도를 꺼내 들었다.
천윤도의 뚜껑을 연 나래는 양손으로 꼭 쥐고, 마음속으로 '백하도령을 찾아주세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윤도의 바늘은 미동도 없었고, 천윤도 특유의 빛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나래가 어리둥절해 하자, 홍저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것들, 내가 네놈들 수작을 모를 줄 알았더냐? 이곳 천태산의 결계 아래에서는 천계의 힘은 무용지물이다. 네가 가진 물건들도 필경 천계의 물건들일 터, 이곳에서 그것들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으하하하"
신나 해 하는 홍저왕을 보며,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맙소사. 설마 그런 상황일 줄이야...
굳어진 표정으로 눈앞의 스무 요괴를 바라보았지만, 누가 백하고, 누가 오공인지 구분해낼 방도가 없었다.
"으하하하, 이곳에서는 오직 도깨비와 요괴의 힘만을 사용할 수 있다. 으하하하하."
신이 난 홍저왕이 웃어대며 외치는 소리에, 나래는 낙담하여 눈물이 왈칵 솟구쳐 나왔다.
속도를 높인 것이 오히려 단점이 되어 버렸지만, 술래 도깨비는 자각하지 못한 체 점점 더 빨리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초코는 능숙하게 술래 도깨비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고, 그 덕에 오공과 솔이, 나래는 굳이 도망 다니지 않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얼음!"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고, 이제 혼자 남은 도투락 도깨비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것을 알자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신중하게 거리를 좁혀오는 백하때문에 도투락 도깨비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당황해하다 한쪽으로 냅다 달려갔다. 하지만 백하가 재빨리 그쪽을 막아서며 그를 잡아챘다.
백하의 손이 도투락 도깨비의 몸에 닿는 순간, 그는 바로 얼음 상태로 변했고, 그와 동시에 붉은빛의 둥근 원 형태의 결계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이겼다!"
솔이가 제일 먼저 기쁜 목소리로 양손을 번쩍 치켜들며 좋아했고, 오공도 신이 나서 양손을 들어 팔짝팔짝 뛰다가 솔이와 둘이 껴안고 좋아했다.
나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백하를 바라보았고, 백하는 수고했다는 듯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런 멍청한 놈들!"
홍저왕의 외침이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도투락 도깨비들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떨었다.
"썩 물러가거라!"
홍저왕의 일갈에 도투락 도깨비들이 우르르 나왔던 곳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씩씩 거리던 홍저왕이 백하와 나래를 보며 말했다.
"흥! 두 번째 내기는 첫 내기와는 다를 것이다. 두 번째 내기는 편전이다."
홍저왕의 말에 나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편전? 그게 뭐예요?"
백하가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편쌈, 또는 편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콩주머니로 줄 안에 사람을 맞추고, 맞은 사람은 줄 밖으로 나가 콩주머니를 던지는 방식인데, 안쪽 사람이 모두 맞아 밖으로 나가면 지는 것이다."
백하의 설명에 나래가 알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기듯이 말했다.
"아~ 피구~ 저 그거 알아요."
나래가 중학교 시절 가장 흔하게 하던 체육 활동 중에 하나가 피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래가 피구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경기 규칙만큼은 익숙했다.
이번에도 도투락 도깨비들이 들어간 문으로 다른 요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나게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청색빛의 괴물과 함께, 솔이보다도 작은 요괴 넷이 같이 나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있는 듯 없는 듯했으며, 청록색 미끌미끌한 피부에 배는 하얗게 톡 튀어나와 있는 것이 흡사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개구리처럼 두 눈도 톡 튀어나와 있었으며, 손가락 사이에는 갈퀴가 달려있었다.
그들이 백하와 나래 일행 앞으로 다가가자, 이번에도 홍저왕이 양손을 모아 주문을 외웠고, 땅바닥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붉은 줄이 생겨났다.
둘 사이로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고 반들반들한 배를 드러낸 요괴 하나가 걸어왔다.
발은 꼭 사람 발에, 머리는 호랑이 머리를 하고서, 홍저왕처럼 붉은 옷을 입고 있었으나, 배는 훤히 드러났으며, 손등에도 털이 복슬복슬해 보였다.
"범이어요."
솔이가 무서운 듯 나래 뒤에 숨으며 알려주자, 나래가 되물었다.
"범?"
"범이요."
"범이?"
"예, 호랑이 요괴여요. 저는 저 범이가 젤루 무서워요."
솔이가 무서운 표정을 짓자, 나래가 그런 솔이를 감싸 안으며 범이를 바라보았다.
범이 손에 둥근 공 하나가 들려있는데, 무늬가 전혀 없이 온전히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공 자체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공을 높이 던지면 뛰어올라 붙잡는 쪽이 먼저 공을 던진다."
범이 말에 백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고, 상대 쪽에서는 체격이 어마어마한 요괴가 앞으로 나섰다.
"쟤들은 뭐야? 개구리처럼 생긴 애들?"
나래의 물음에 솔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요수(妖獸)들은 종류가 워낙 많아서 다 알기 힘들답니다."
"요수?"
"예, 범이도 그렇고 저렇게 동물이 사람 행세를 하면, 그걸 요수라고 해요, 아씨."
나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범이 손에 들려져 있던 공이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백하가 힘껏 뛰어보지만, 거대한 체격의 요괴는 이미 그 키 높이에서 백하를 압도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거대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흡사 개구리처럼 엄청난 높이로 뛰어올랐다.
공을 가볍게 낚아챈 괴물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땅에 내려서는데, 그때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지 귀가 웅웅 거리며 울릴 지경이었다.
"옛다!"
그리고 내려서자마자 그 괴물은 바로 코 앞에 있는 백하에게 공을 집어던졌다.
아차 하는 사이, 백하의 몸에 맞은 공은 다시 요괴에게 튕겨져 돌아갔고, 공을 잡은 요괴가 신이 난 듯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치사해!"
나래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새 백하의 몸이 절로 사라지더니, 상대편 선 밖으로 옮겨져 있었다.
"낄낄낄, 식은 죽 먹기구만."
거대한 괴물은 나래와 오공, 솔이, 초코를 보며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었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홍저왕도 기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있었다.
구경을 하던 사방의 요괴들 역시 흥이 나는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고, 깔깔 거리며 웃는 소리 또한 들려왔다.
"어떻게.... 백하도령만 믿고 있었는데..."
오공이 울먹거리며 말하자 나래가 공을 들고 있는 요괴를 응시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두 번째 공격은 솔이에게로 향했다.
경기 규칙을 알고 있는 솔이였기에, 날아오는 공을 잡아보려 손을 내뻗어 봤지만, 막상 공이 눈앞으로 날아오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바람에, 공은 손바닥에 맞고 공중으로 높게 솟아올랐다.
"잡아야 돼!"
나래가 외치며 공이 날아가는 쪽으로 달려가 봤지만, 공은 반대편으로 떨어졌고, 상대편 요괴 중 하나가 그 공을 받아 들었다.
공을 잡는 순간, 솔이 몸이 휙 하고 사라지더니, 상대편 바깥쪽에 나타났다.
"그렇지!"
홍저왕이 기뻐하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고, 주위에서는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떨며 박수를 쳤다.
나래는 자신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강력한 공격을 잡기도 힘들고, 도망만 다닐 수도 없었다.
나래는 어떻게든 공을 잡아보기 위해 양손을 앞으로 하고, 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반면 오공은 나래 뒤에 숨어서 어쩔 줄 몰라할 뿐이었다.
그런 오공이 요괴의 눈에 들어왔는지, 이번에는 요괴의 공격이 오공을 향했다.
"어떡해!"
오공은 공이 자신에게로 날아들자,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나래를 붙잡아 당겼다.
"앗!"
나래가 순간 균형을 잃고 오공 쪽으로 이끌리자, 공은 나래와 오공의 몸에 차례대로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걸 깨달은 순간 이미 나래와 오공은 상대편 바깥쪽으로 몸이 이동한 뒤였다.
이제 남은 건 초코 뿐이었다.
"초코님..."
나래가 걱정스럽게 초코를 바라보자, 초코는 자기 눈앞에 있는 공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낄낄낄"
상대팀 요괴들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공을 획득했지만, 정작 초코는 공을 던질 수 없었다.
나래는 속상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초코는 머리로 공을 힘껏 밀어 보지만, 그저 데구르르 굴러가 요괴의 손에 쥐어줄 뿐이었다.
요괴는 공을 쥐자마자 있는 힘껏 초코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초코는 체격도 작고 재빨라 공격을 쉽게 피했다.
"쳇!"
요괴가 입맛을 다셨고, 반대편 밖으로 나가버린 공은 저절로 요괴의 손으로 돌아왔다.
몇 차례 같은 공격이 이어졌지만, 초코는 번번이 요괴의 공격을 피해냈고, 나래는 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틀렸는데, 기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오공의 말에, 나래가 그녀를 쏘아보았다.
"왜 그렇게 말해?"
"해봐야 소용없는데 뭐하러 해?"
"하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공도 못 던지는데 뭘 해봐? 해봐야 뻔한 거 아냐?"
나래는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매사 모든 일을 그렇게 바라보고 살아왔던 자신이지 않은가?
해봐야 소용없는 일, 해봐야 바뀌지 않을 상황들, 그저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무기력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이 바로 코 앞에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겠는데,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어떤 말이든, 자신이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래가 고민하는 사이, 몇 차례의 공격이 더 이어졌고, 요괴는 꽤 화가 난 상태였다.
"안 되겠다."
공을 든 요괴가 뒤쪽의 작은 요괴들을 보며 하는 말에, 작은 요괴들이 태연히 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그 요괴들이 저절로 초코가 있는 쪽 선 밖으로 이동했다.
"언제까지 피하는지 볼까?"
공을 든 요괴가 의기양양하게 말하더니, 초코 뒤쪽에 있는 요괴에게 공을 던졌다.
초코는 재빨리 다른 쪽으로 몸을 피했지만, 초코를 둘러싼 작은 요괴들이 서로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초코가 잠시도 쉴 틈 없이 뛰게 만들었다.
"아... 안돼..."
나래는 이를 보며 안타까움에 절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지쳐버린 초코가 결국 공에 맞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친 초코가 공에 맞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공과 선들이 사라져 버렸고, 요괴들은 양손을 들어 기뻐했다.
"이야호!"
나래가 속상한 마음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자, 옆에서 오공이 화를 돋웠다.
"거봐... 소용없다고 했잖아."
그런 오공을 홱하니 노려보자, 오공은 얼른 입을 다물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자, 이로써 동점이로구나."
홍저왕의 기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경기에서 이긴 요괴들은 의기양양하게 양손을 들어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호응하면서, 나왔던 곳으로 퇴장하고 있었다.
나래와 백하, 오공, 솔이와 초코가 한데 모이자, 홍저왕의 말이 이어졌다.
"마지막 경기다. 마지막은 숨바꼭질로 하자."
나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바꼭질?"
"나오너라!"
홍저왕의 외침에, 이번엔 약 스무 마리의 요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제각각의 기괴한 모습을 한 요괴들이었고, 그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나래와 일행 앞에 두 줄로 섰다.
"너희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명은 모습을 바꾸어 지금 눈앞에 있는 요괴들 중 하나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그 한 명이 요괴들 사이에서, 자기편을 모두 찾아내면 너희가 승리하는 것이고, 한 명이라도 틀리면 너희가 지는 것이다."
백하는 홍저왕의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 나서 대답했다.
"거부한다. 우리에게 불리한 경기다."
백하의 거부에 홍저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분해하는 사이, 나래는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 듯 얼른 백하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조건을 걸어요."
백하가 나래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조건?"
"예. 제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쓸 수 있게 해 주면, 하겠다구요."
"네가 가진 물건?"
"네네. 제가 찾아낼게요."
나래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백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알았다."
백하가 큰 소리로 홍저왕에게 말했다.
"우리가 가진 물건을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응하겠다."
백하의 대답에 홍저왕이 잠시 의아한 표정이 지었다가, 이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낄낄거렸다.
"좋다. 분명히 응한다 하였다. 무르는 것은 없다! 누가 찾을 것이냐?"
이번엔 나래가 나서 대답했다.
"제가 찾겠어요."
홍저왕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더니, 양손을 합장하여 주문을 외우자, 나래를 제외하고 초코와 솔이, 백하와 오공의 모습이 사라졌다.
"자, 그들은 모두 지금 눈앞에 있는 요괴들 중 하나로 모습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찾아보거라!"
홍저왕의 말에 나래는 얼른 품 안에서 천윤도를 꺼내 들었다.
천윤도의 뚜껑을 연 나래는 양손으로 꼭 쥐고, 마음속으로 '백하도령을 찾아주세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윤도의 바늘은 미동도 없었고, 천윤도 특유의 빛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나래가 어리둥절해 하자, 홍저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것들, 내가 네놈들 수작을 모를 줄 알았더냐? 이곳 천태산의 결계 아래에서는 천계의 힘은 무용지물이다. 네가 가진 물건들도 필경 천계의 물건들일 터, 이곳에서 그것들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으하하하"
신나 해 하는 홍저왕을 보며,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맙소사. 설마 그런 상황일 줄이야...
굳어진 표정으로 눈앞의 스무 요괴를 바라보았지만, 누가 백하고, 누가 오공인지 구분해낼 방도가 없었다.
"으하하하, 이곳에서는 오직 도깨비와 요괴의 힘만을 사용할 수 있다. 으하하하하."
신이 난 홍저왕이 웃어대며 외치는 소리에, 나래는 낙담하여 눈물이 왈칵 솟구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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