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8
방방이, 귀동이, 막동이, 하람이, 다솜이, 가람이에 이어 새라까지, 모두 불러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주자, 아이들은 모두 한껏 기쁜 표정으로 나래를 부둥켜안았다.
"나래 대단해!"
"나래가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어."
아이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한울이 나래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으니, 도깨비 왕이십니다."
한울의 말에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한울을 따라 나래에게 예를 올렸다.
"뭐야~? 그러지 마."
나래가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한울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자가 도깨비 왕이야. 그러니까, 나래는 우리들의 왕이지."
"하지만, 여왕님도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던데?"
한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하지만, 여왕이 가진 건 홍치(紅治)지만, 나래가 가진 건 백이(白理)지. 백이는 도깨비방망이 중에서도 으뜸이야. 우리 모두가 소가 되어도, 네가 소가 되지 않았던 건, 네가 가진 백이가 홍치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야."
나래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도깨비방망이를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맑은 색상에 나뭇결 무늬가 아주 살짝 곁들여진 방망이였고, 여왕이 들고 있던 것은 나래 것보다는 길쭉하고 가늘었으며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띠고 있었음을 기억했다.
"그래서... 소가 안된 거구나."
나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나래의 시선이 발끝에 가 닿았다.
그녀가 신고 있는 꽃신은 새오녀의 꽃신인데, 어째서 안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여왕님이 알면 펄쩍 뛸 일이구만."
산돌아범의 말에 나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나래는 외양간으로 달려가더니, 소마다 도깨비 방망이로 툭툭 치며 외쳤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라! 뚝딱!"
그러자 그때마다 '펑'소리를 내며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펑', '펑'소리가 연달아 나면서, 소의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갔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 무렵에는 모두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의 모습을 꼭 빼닮은 도깨비들이었다.
사람과는 사뭇 다른, 털이 온몸에 숭숭하게 난 도깨비도 있는가 하면, 개의 모습이 반쯤 섞이거나 고양이 모습이 반쯤 섞인 이들도 있었다.
모두 제 모습을 찾자 나래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나래는 서둘러 그들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도깨비들은 나래를 기다렸다.
"왜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죠?"
나래는 도망치지 않는 도깨비들을 보면서 의아한 듯 물었다.
"나래는 우리들의 왕이야. 우린 왕을 지켜야 해."
한울의 말에 나래는 당황했다.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 어서!"
한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사실 우리도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 모르거든."
나래는 난처해졌다.
이대로라면 여왕의 수하들에게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당연히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돌아가는 방법을 모를 줄이야.
나래는 어떻게 돌려 보내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어둠으로 변해 버렸다.
"뭐야?"
나래는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래 본인의 몸은 또렷하게 잘 보였다.
"여긴 어디야? 왜 갑자기?"
나래가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빛이 서서히 밝아왔다.
빛이 나는 방향을 바라보자, 그쪽에서 하얀색 옷을 입은 백하도령이 다가와 섰다.
"돌아왔구나."
백하도령의 말에 나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기쁜 표정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도령님!"
나래는 반가운 마음에 백하도령을 와락 껴안아버렸다. 백하도령은 그런 나래의 행동에 놀라 멈칫했다.
"아,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떨어져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뒤이어 따지듯 화를 내는 나래를 보며 백하도령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떤 곳으로 간 것이냐?"
"그게... 사람들이 버린 생명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토끼는 원주민이라 했어요. 그리고..."
백하도령은 나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 듯 여유롭기만 했다.
"도깨비 아이들... 도깨비들을 제가 구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래가 기억을 더듬거리며 말끝을 흐리자, 백하도령이 조용히 물었다.
"갑자기 이곳으로 온 것이냐?"
"네. 네네. 맞아요. 갑자기 이곳으로 왔어요. 어떻게 된 거죠?"
"이곳은 너와 내가 신(神)으로 있는 틈의 세계다. 모든 세계와 세계를 연결 짓는, 일종의 통로와 같은 곳이지."
"그럼... 제가 있던 곳은요?"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틈의 세계와 연결된 수많은 세계 중에 하나겠지. 그 모든 세계는 사실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제가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거죠?"
"기억을 잘 더듬어 보거라. 네 눈앞에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지 않았더냐?"
나래는 그곳으로 떠나던 순간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 맞아요. 뭔가 눈앞에서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올라서... 그걸 손댔더니..."
"그래. 그것이 바로 틈의 세계에 끝없이 뻗쳐 있는 수많은 세계들의 통로다. 너는 무수히 많은 세계 중에 한 군데를 다녀온 것이다."
"다녀 왔다구요? 다시 못 가요?"
"글세... 그 수많은 세계 중 어디인지 찾아야겠지."
나래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백하도령을 바라보았다.
"아... 안돼요. 아이들... 다시 소가 될 텐데... 모두를 구해야 돼요."
"구해?"
"네. 어떻게 다시 그곳으로 가죠?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건가요?"
백하도령은 다급히 묻는 나래를 보면서 말했다.
"걱정 말거라.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얼마든지 머물러도 된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너와 나는 언제든 원하면 이곳으로 올 수 있다."
"원하면요?"
"그래. 너와 나는 언제든 이곳으로 올 수 있고, 또 나갈 수 있다. 들어올 때는 이곳이지만, 나갈 때는 원하는 어느 곳으로 든 갈 수 있지. 이것은 흡사 너와 나의 세계에서 순간이동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래는 백하도령이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언제든 올 수 있다는 말에 얼른 되물었다.
"그럼 가는 건... 아지랑이는 언제 다시 나타나나요? 그게 어느 세계로 가는 건지 어떻게 알아요?"
백하도령이 나래의 어깨를 감싸며 함께 한 곳을 바라보았다.
"잘 보거라. 아지랑이는 언제든 네가 원하면 보일 것이다."
백하도령의 말에 눈앞을 지긋이 응시하자, 과연 일전에 보았던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며 넘실 거렸다.
"하지만... 이걸 손대면 빨려 들어가잖아요."
"그래... 하지만 손댈 때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노력해보거라. 힘을 주어 버텨보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이 시키는 대로 아지랑이 하나를 살짝 휘어잡으면서 바짝 긴장한 체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과연 아지랑이는 나래를 강하게 잡아당기다가, 나래의 저항에 팽팽하게 늘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어떤 세계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 세계는 칠흑 같은 어둠과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는 세계였다.
"보이느냐?"
백하도령의 물음에 나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보여요. 그런데... 이곳이 아니에요."
"그럼 아지랑이를 놓거라."
나래가 손을 놓자 눈앞에 펼쳐지던 풍경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다른 것을 잡아보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이 시키는 대로, 또 다른 아지랑이를 잡아보았다.
이번에도 힘을 주어 버티니, 그 세계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온통 푸른 물이 가득차 넘실거리는 그 세계는 육지라곤 보이지 않는 물 뿐인 세상이었다.
"이곳도 아니에요."
나래가 손을 놓자 풍경이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찾아야 하는 건가요?"
"그래. 맞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있거라."
백하도령이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받아 든 나래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선물인가요?"
나래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묻는 말에, 백하도령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 그 목걸이를 차고 있으면, 네가 어느 세계에 있던지 내가 너를 찾을 수 있다."
나래는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완전 기분 좋은데요?"
"그러하냐?"
"네. 언제든 저를 찾을 수 있다니깐요. 기분 좋죠. 제가 도령님을 찾으려면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백하도령이 재밌다는 듯이 세상 밝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걱정 말거라. 언제든 네가 나를 찾는다면, 내 기꺼이 네 앞으로 갈 것이다."
"약속하셔요. 얼마나 애타게 찾았다구요."
나래가 새끼손가락을 펼친 손을 내밀자, 백하도령이 마주 내밀어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엮었다.
"약속 하마."
"도장 찍어요."
나래가 엄지를 내밀자, 백하도령이 엄지를 마주 찍었다.
"그나저나, 이 많은 세계 중에서 어떻게 제가 있던 곳을 찾죠?"
"도깨비는 같은 도깨비가 잘 찾을 것이다."
"같은 도깨비요? 도깨비를 어떻게 부르죠?"
"네겐 무엇이든 부를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있지 않느냐? 귀수산에 솔이가 있으니 불러 보거라."
나래는 "아~"하며 밝은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어디다가 도깨비방망이를 쳐야 할까요?"
나래가 어리둥절해 하자, 백하도령이 하하 하고 웃어 보였고, 순식간에 주위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우와~"
나래가 놀라 감탄사를 내뱉자, 백하도령은 한쪽에 현대식 건물을 하나 만들었다.
그것은 새것 같아 보이지 않는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그 건물을 알아본 나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화방 건물이네요?"
그렇다. 나래 기억 속에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했던 바로 그 만화방 건물이었다.
"이 세계에서 나는 타인의 기억 속을 이용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네 기억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꺼낸 것이니, 앞으로는 이곳에서 머물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을 향해 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만화방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익숙한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막상 안에 아무도 없자 괜스레 실망스러웠다.
"영이란 아이를 보고 싶은 것이냐? 비록 허상이라도, 필요하다면 불러내 줄 수 있다. 그리 해줄까?"
따라온 백하도령이 묻는 말에, 나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허상이라면... 그보다, 솔이를 불러야죠."
나래가 바닥에 대고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치며 외쳤다.
"솔이 나와라 뚝딱!"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솔이가 나타났다.
솔이는 뭔가를 따려는 듯 손을 있는 힘껏 들어 올리고, 뒤꿈치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갑자기 다른곳으로 옮겨지자 어리둥절해 했다가 나래를 발견하고는 기뻐 소리쳤다.
"아씨!"
솔이가 와락 달려들자, 나래도 기뻐하며 솔이를 껴안았다.
"솔아!"
"나래 대단해!"
"나래가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어."
아이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한울이 나래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으니, 도깨비 왕이십니다."
한울의 말에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한울을 따라 나래에게 예를 올렸다.
"뭐야~? 그러지 마."
나래가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한울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자가 도깨비 왕이야. 그러니까, 나래는 우리들의 왕이지."
"하지만, 여왕님도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던데?"
한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하지만, 여왕이 가진 건 홍치(紅治)지만, 나래가 가진 건 백이(白理)지. 백이는 도깨비방망이 중에서도 으뜸이야. 우리 모두가 소가 되어도, 네가 소가 되지 않았던 건, 네가 가진 백이가 홍치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야."
나래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도깨비방망이를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맑은 색상에 나뭇결 무늬가 아주 살짝 곁들여진 방망이였고, 여왕이 들고 있던 것은 나래 것보다는 길쭉하고 가늘었으며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띠고 있었음을 기억했다.
"그래서... 소가 안된 거구나."
나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나래의 시선이 발끝에 가 닿았다.
그녀가 신고 있는 꽃신은 새오녀의 꽃신인데, 어째서 안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여왕님이 알면 펄쩍 뛸 일이구만."
산돌아범의 말에 나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나래는 외양간으로 달려가더니, 소마다 도깨비 방망이로 툭툭 치며 외쳤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라! 뚝딱!"
그러자 그때마다 '펑'소리를 내며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펑', '펑'소리가 연달아 나면서, 소의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갔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 무렵에는 모두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의 모습을 꼭 빼닮은 도깨비들이었다.
사람과는 사뭇 다른, 털이 온몸에 숭숭하게 난 도깨비도 있는가 하면, 개의 모습이 반쯤 섞이거나 고양이 모습이 반쯤 섞인 이들도 있었다.
모두 제 모습을 찾자 나래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나래는 서둘러 그들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도깨비들은 나래를 기다렸다.
"왜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죠?"
나래는 도망치지 않는 도깨비들을 보면서 의아한 듯 물었다.
"나래는 우리들의 왕이야. 우린 왕을 지켜야 해."
한울의 말에 나래는 당황했다.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 어서!"
한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사실 우리도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 모르거든."
나래는 난처해졌다.
이대로라면 여왕의 수하들에게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당연히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돌아가는 방법을 모를 줄이야.
나래는 어떻게 돌려 보내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어둠으로 변해 버렸다.
"뭐야?"
나래는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래 본인의 몸은 또렷하게 잘 보였다.
"여긴 어디야? 왜 갑자기?"
나래가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빛이 서서히 밝아왔다.
빛이 나는 방향을 바라보자, 그쪽에서 하얀색 옷을 입은 백하도령이 다가와 섰다.
"돌아왔구나."
백하도령의 말에 나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기쁜 표정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도령님!"
나래는 반가운 마음에 백하도령을 와락 껴안아버렸다. 백하도령은 그런 나래의 행동에 놀라 멈칫했다.
"아,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떨어져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뒤이어 따지듯 화를 내는 나래를 보며 백하도령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떤 곳으로 간 것이냐?"
"그게... 사람들이 버린 생명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토끼는 원주민이라 했어요. 그리고..."
백하도령은 나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 듯 여유롭기만 했다.
"도깨비 아이들... 도깨비들을 제가 구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래가 기억을 더듬거리며 말끝을 흐리자, 백하도령이 조용히 물었다.
"갑자기 이곳으로 온 것이냐?"
"네. 네네. 맞아요. 갑자기 이곳으로 왔어요. 어떻게 된 거죠?"
"이곳은 너와 내가 신(神)으로 있는 틈의 세계다. 모든 세계와 세계를 연결 짓는, 일종의 통로와 같은 곳이지."
"그럼... 제가 있던 곳은요?"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틈의 세계와 연결된 수많은 세계 중에 하나겠지. 그 모든 세계는 사실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제가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거죠?"
"기억을 잘 더듬어 보거라. 네 눈앞에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지 않았더냐?"
나래는 그곳으로 떠나던 순간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 맞아요. 뭔가 눈앞에서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올라서... 그걸 손댔더니..."
"그래. 그것이 바로 틈의 세계에 끝없이 뻗쳐 있는 수많은 세계들의 통로다. 너는 무수히 많은 세계 중에 한 군데를 다녀온 것이다."
"다녀 왔다구요? 다시 못 가요?"
"글세... 그 수많은 세계 중 어디인지 찾아야겠지."
나래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백하도령을 바라보았다.
"아... 안돼요. 아이들... 다시 소가 될 텐데... 모두를 구해야 돼요."
"구해?"
"네. 어떻게 다시 그곳으로 가죠?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건가요?"
백하도령은 다급히 묻는 나래를 보면서 말했다.
"걱정 말거라.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얼마든지 머물러도 된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너와 나는 언제든 원하면 이곳으로 올 수 있다."
"원하면요?"
"그래. 너와 나는 언제든 이곳으로 올 수 있고, 또 나갈 수 있다. 들어올 때는 이곳이지만, 나갈 때는 원하는 어느 곳으로 든 갈 수 있지. 이것은 흡사 너와 나의 세계에서 순간이동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래는 백하도령이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언제든 올 수 있다는 말에 얼른 되물었다.
"그럼 가는 건... 아지랑이는 언제 다시 나타나나요? 그게 어느 세계로 가는 건지 어떻게 알아요?"
백하도령이 나래의 어깨를 감싸며 함께 한 곳을 바라보았다.
"잘 보거라. 아지랑이는 언제든 네가 원하면 보일 것이다."
백하도령의 말에 눈앞을 지긋이 응시하자, 과연 일전에 보았던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며 넘실 거렸다.
"하지만... 이걸 손대면 빨려 들어가잖아요."
"그래... 하지만 손댈 때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노력해보거라. 힘을 주어 버텨보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이 시키는 대로 아지랑이 하나를 살짝 휘어잡으면서 바짝 긴장한 체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과연 아지랑이는 나래를 강하게 잡아당기다가, 나래의 저항에 팽팽하게 늘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어떤 세계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 세계는 칠흑 같은 어둠과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는 세계였다.
"보이느냐?"
백하도령의 물음에 나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보여요. 그런데... 이곳이 아니에요."
"그럼 아지랑이를 놓거라."
나래가 손을 놓자 눈앞에 펼쳐지던 풍경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다른 것을 잡아보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이 시키는 대로, 또 다른 아지랑이를 잡아보았다.
이번에도 힘을 주어 버티니, 그 세계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온통 푸른 물이 가득차 넘실거리는 그 세계는 육지라곤 보이지 않는 물 뿐인 세상이었다.
"이곳도 아니에요."
나래가 손을 놓자 풍경이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찾아야 하는 건가요?"
"그래. 맞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있거라."
백하도령이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받아 든 나래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선물인가요?"
나래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묻는 말에, 백하도령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 그 목걸이를 차고 있으면, 네가 어느 세계에 있던지 내가 너를 찾을 수 있다."
나래는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완전 기분 좋은데요?"
"그러하냐?"
"네. 언제든 저를 찾을 수 있다니깐요. 기분 좋죠. 제가 도령님을 찾으려면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백하도령이 재밌다는 듯이 세상 밝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걱정 말거라. 언제든 네가 나를 찾는다면, 내 기꺼이 네 앞으로 갈 것이다."
"약속하셔요. 얼마나 애타게 찾았다구요."
나래가 새끼손가락을 펼친 손을 내밀자, 백하도령이 마주 내밀어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엮었다.
"약속 하마."
"도장 찍어요."
나래가 엄지를 내밀자, 백하도령이 엄지를 마주 찍었다.
"그나저나, 이 많은 세계 중에서 어떻게 제가 있던 곳을 찾죠?"
"도깨비는 같은 도깨비가 잘 찾을 것이다."
"같은 도깨비요? 도깨비를 어떻게 부르죠?"
"네겐 무엇이든 부를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있지 않느냐? 귀수산에 솔이가 있으니 불러 보거라."
나래는 "아~"하며 밝은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어디다가 도깨비방망이를 쳐야 할까요?"
나래가 어리둥절해 하자, 백하도령이 하하 하고 웃어 보였고, 순식간에 주위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우와~"
나래가 놀라 감탄사를 내뱉자, 백하도령은 한쪽에 현대식 건물을 하나 만들었다.
그것은 새것 같아 보이지 않는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그 건물을 알아본 나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화방 건물이네요?"
그렇다. 나래 기억 속에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했던 바로 그 만화방 건물이었다.
"이 세계에서 나는 타인의 기억 속을 이용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네 기억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꺼낸 것이니, 앞으로는 이곳에서 머물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을 향해 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만화방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익숙한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막상 안에 아무도 없자 괜스레 실망스러웠다.
"영이란 아이를 보고 싶은 것이냐? 비록 허상이라도, 필요하다면 불러내 줄 수 있다. 그리 해줄까?"
따라온 백하도령이 묻는 말에, 나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허상이라면... 그보다, 솔이를 불러야죠."
나래가 바닥에 대고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치며 외쳤다.
"솔이 나와라 뚝딱!"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솔이가 나타났다.
솔이는 뭔가를 따려는 듯 손을 있는 힘껏 들어 올리고, 뒤꿈치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갑자기 다른곳으로 옮겨지자 어리둥절해 했다가 나래를 발견하고는 기뻐 소리쳤다.
"아씨!"
솔이가 와락 달려들자, 나래도 기뻐하며 솔이를 껴안았다.
"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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