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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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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32분

15화 - #15


백하가 그 공터가 있던 자리에 번듯한 오두막 집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우와~"

그 모습에 나래는 연신 감탄을 하며 집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전히 아늑한 집이었다.

바닥에는 언제 만들었는지, 아까 오공이 만들었던 하얀 솜이불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이야~"

나래가 신이 나서 그 하얀 솜이불 위로 뛰어드니, 솔이도 따라서 뛰어들었다.

"폭신 폭신해!"

나래가 뒹굴거리자, 솔이도 따라 뒹굴거리며 헤헤 웃었다.

"좋지?"

나래가 묻는 말에 솔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너무너무 좋습니다. 폭신 폭신합니다."

그 모습에 오공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신이 났구만."

"너두 이리 와."

나래가 오공을 보며 손짓하자, 오공은 됐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꼬?"

그때 뒤에서 초코의 소리가 들리자, 오공이 기겁을 하며 나래한테 뛰어들었다.

"으앗!"

오공이 나래 뒤로 드러눕자, 나래와 솔이가 동시에 깔깔거리며 둘이 다시 뒹굴뒹굴 굴러다니자, 오공도 따라 웃더니 이내 같이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뭐하는 짓들이야?"

아토가 뒤따라 들어와 그 모습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솜이불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백하가 문을 닫더니, 한쪽에 난 큰 창틀에 걸터앉았다.

그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져 있어, 이를 본 나래가 누운 체로 고개만 들어 백하를 보며 물었다.

"그게 뭔가요?"

백하는 손에 들린 것을 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호드기라는 것이다. 버드나무의 잔가지로 만든 것이지."

어느덧 어두워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백하가 들고 있는 호드기를 입으로 가져가 불자, 피리 같은 소리가 났다.

"아... 버들피리, 어렸을 때 봤어요."

나래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을 이었다.

"저 어렸을 때, 시골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가 버들피리 만들어서 불어주시곤 했어요. 와, 그때가 언제지? 나 완전 어렸을 때였는데..."

나래가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자, 백하가 빙그레 웃어 보이더니, 호드기를 불어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산 한가운데, 오두막집에서, 밤에 듣는 호드기 소리는, 왠지 모를 정겨움이 담겨 있었다.

"좋다."

나래는 백하도령의 호드기 연주를 들으며 다시 누웠다.

이런 평온함을 느껴본게 언제였을까? 이런 아늑함에 취해본 것은 또 언제였을까?

분명 그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그 노랫가락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슬며시 눈이 감겨왔다.

나래가 잠이 들고 얼마 후, 솔이와 오공도 금세 잠이 들어 버렸고, 백하가 손가락을 하나 펴자, 그곳으로 반딧불이 하나 날아와 앉았다.

백하가 반딧불을 향해 "후~"하고 가벼운 입김을 불자, 반딧불이 날아올라 천정에 가 붙었고, 은은한 불빛이 방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백하는 잠든 나래를 한번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집 밖으로 나갔다.

백하가 나가고 얼마나 지났을까, 은은한 불빛 아래 비치는 나래가 뒤척이자 불빛에 반사된 그녀의 그림자도 따라서 움직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건만, 나래의 그림자는 여전히 뒤척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그림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누워있는 나래를 확인하는 듯 움직인 그림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오공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오공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함만이 남았다.

***

부스스한 눈으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오공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모를 찜찜함에 불쾌한 표정으로 집 밖으로 나온 오공은 기지개를 켜며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전에 없던 두통이 심하게 몰려왔다.

"왜 이러지?"

오공이 휘청이듯 집 옆으로 걷다가 그만 무릎이 꺾여 넘어졌다.

"으..."

오공은 당장이라도 구토를 할 듯 고통스러워하며 콜록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왜...."

점점 더 고통이 심해지자 바닥에 쓰러진 체 몸부림쳤다.

그녀의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수도 없이 바뀌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되었다, 여자가 되었다, 노인이 되었다, 아이가 되기도 했다.

"커헉!"

큰 신음소리를 끝으로 마치 죽은 사람처럼 널브러지고는 꼼짝하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고 솔이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집 옆으로 튀어나와있는 오공의 발을 보고는 놀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오공님?"

솔이가 부르는 소리에도 꼼짝하지 않자, 솔이는 아주 천천히 집 옆쪽으로 걸어갔다.

마지막걸음에 용기를 내어 성큼 옮기며 오공을 확인하는 찰나, 그녀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처음보는 여자가 서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아... 누구신가요?"

솔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자, 그 여자는 솔이를 보며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이 오공이 입고 있던 옷이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솔이가 물었다.

"어째서 그 옷을... 오공님이세요?"

오공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솔이를 보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했다.

"먹을 것을 좀 구하러 가자."

솔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먹을 거요? 어디서요?"

"따라와 봐."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수풀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고, 솔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녀의 뒤를 쫓아 서둘러 수풀 안으로 들어섰다.

그 둘이 사라지고 잠시 후, 나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나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솔아~"하고 부르며 솔이를 찾았다.

"얘가 아침부터 어딜 간 거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나래의 발 사이로 아토와 초코가 집 밖으로 나왔다.

"넌 안 우냐? 아침인데 네가 자면 어떻게? 새벽같이 나와서 울어야지."

아토의 핀잔에 초코가 짧게 대답했다.

"귀찮아."

"팔자 좋은 닭이구만."

둘의 대화를 듣는 와중에도 나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솔이를 찾았다.

"솔아~"

그때 언덕길 위쪽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백하도령의 모습이 보였다.

"도령님. 솔이가 안 보여요. 오공도 안보이고요."

나래가 다가오는 백하쪽으로 달려가 말을 하자, 백하도령이 살며시 웃어 보이며 답했다.

"곧 올 것이니, 염려 말거라. 나는 기감(氣感)이 있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능히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느낄 수 있으니,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백하가 말을 마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풀 속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실한 것이 많습니다."

솔이가 앞장서서 기쁜 얼굴로 양손 한가득 복숭아를 따 가지고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백하와 함께 서 있는 나래를 보고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나래 앞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나래는 솔이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보고 놀라 표정이 굳어졌다.

솔이를 따라 나타난 이가 다름 아닌 나래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원래 자신의 모습을 한, 성인 모습의 나래였다.

나래가 놀라 성인 나래를 멍하니 바라보니, 백하도령이 눈치를 채고 다가가 호통을 쳤다.

"이놈! 네놈이 모습을 바꾸는 재주가 있다고 하나, 이것은 엄연히 기만이 아니더냐?"

백하의 호통에도 성인 나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백하의 뒤를 따라 다가온 나래를 응시하며 물었다.

"나한테 왜 화를 내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묻는, 그 목소리며 모습이 온전한 원래의 나래 모습이었다.

"오공, 이런 장난 재미없어!"

나래가 화를 내듯 말하자, 중간에 서 있던 솔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얼른 나래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오공이 누구야? 내 이름은 나래야."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말에 나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는 "하..."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백하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어찌 된 일인가... 어찌하여 답변에 거짓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백하의 말에 나래가 백하를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글세... 나도 모르겠구나. 어쩐지 오공의 말에서 거짓됨이 느껴지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정녕... 너는 오공이 아닌 것이냐?"

백하가 다시 물으니 이번에는 백하를 응시하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전 최나래예요."

그러자 나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최나래는 나야!"

또 하나의 나래가 진짜 나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도 최나래야. 나는 최나래면 안되는 거야?"

그러자 진짜 나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건... 하지만 모습까지 나랑 똑같잖아. 왜 내 흉내를 내는 거야?"

그러자 또 하나의 나래 표정이 어두워지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난 흉내 내지 않았어. 나는 그냥 나야. 왜 나한테 뭐라고 해? 난 뭐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랬어?"

눈물을 흘리는 또 하나의 나래를 보면서, 나래는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심지어는 울고 있는 저 모습은 흡사 자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울고 있는 저게 나인 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만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또 하나의 나래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뭐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어쨌는데?"

"뭘 어쨌다니? 지금 네가 내 흉내를 내고 있잖아. 네 모습으로 돌아와."

"내 모습이 어떤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난 모르겠는데? 넌 알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넌... 넌 요괴야. 오공이라고."

"그래, 너한테 나는 요괴겠지, 아니 혹시 괴물은 아니니?"

뭐지? 왠지 모르게 나래의 마음속이 복잡 미묘해졌다.

저 말들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게 들려와, 나래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고 있는 것이다.

"넌..."

나래가 무슨 말인가 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나래가 진짜 나래를 향해 쏟아내듯 말했다.

"넌 날 항상 괴롭혔어. 항상 나는 뒷전이었다고. 언제 나한테 관심이나 있었어?"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맙소사. 저 말들은 나래가 사회생활을 하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던 말들이 아닌가?

직장상사에게, 동료에게, 친구에게, 혹은 그 어떤 누군가에게.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외치고, 울부짖었던 바로 그 말들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래 뒤에 서 있던 초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침 해가 환하게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그림자가 있는데, 오직 나래에게만 그림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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