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3
마치 산 위에 얹어놓은 구슬마냥, 산마루에 걸터앉아 환하게 빛나는 태양은, 그 햇살을 곧게 내뻗어 사찰 구석구석에 가 닿았다.
선들 불어오는 바람은, 사찰에 달려있는 풍경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았고, 차갑던 새벽의 공기는 따사로운 햇살에 도망가기 바빴다.
소연은 이른 아침, 작은 보따리 하나만 등에 짊어맨 체, 사찰을 찾았다.
마치 그녀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한 노스님이 입구에서 다가오는 소연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소연은 스님이 보이자 서둘러 다가가 합장하며 인사했고, 스님 역시 반가운 표정으로 소연을 맞았다.
"송구합니다, 스님... 항상 같이 오던 스승님께서는..."
소연이 체 말을 다하기도 전에, 스님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소연이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자, 스님은 손을 내밀어 법당쪽 길을 가리키며 소연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스님이 앞서 걸어가자, 소연이 그뒤를 따랐다.
스님은 소연을 어느 작은 법당으로 안내했고, 그곳에는 불상과 함께 하나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고즈넉해 보이는, 그 작은 공간을 보는 순간, 소연의 가슴속에 그리움이 차올라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오랫동안 머물러있었던듯 군데군데 놓인 백무의 물건들로인해 그녀의 체취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3년 전이었을까요, 이곳에 오셔서 저 촛불을 밝히셨죠. 놀랍게도, 얼마 전까지 촛불은 그저 불만 밝힐 뿐, 초가 녹지 않았었습니다."
소연은 놀란 표정으로 스님을 돌아보았다.
"초가... 녹지 않았다고요?"
"예. 그런데 며칠 전부터 녹기 시작하더군요. 백무께서 부탁하신 일이 있기에, 초가 다 녹기 전에, 계속 다른 초로 바꾸어 밝히고 있긴 합니다."
소연이 보니 초가 반쯤 녹아 있는 상태였다.
법당안으로 들어서 초가 밝혀있는 불단가까이 다가가자 , 그 앞에는 어떤 여인의 것으로 보이는 노리개가 있었다.
노리개를 가만히 지켜보던 소연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중얼거렸다.
"그럼... 이것이 세자빈 마마를 지켜주는 촛불인가 보구나.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초가 녹기 시작한 거야."
소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스승인 백무는 언제부터인가 점점 능력이 쇠퇴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기가 대략 세자빈을 지키기 위한 이 초를 밝힌 시점부터였던 것 같았다.
'그럼?'
소연은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승의 원수는 어쩌면 세자빈을 그렇게 만든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소연은 다시 법당 밖으로 나와 스님을 보며 간청했다.
"당분간만... 당분간만 더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소연을 향해 합장하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지요."
소연 역시 합장으로 인사하며 서둘러 사찰을 나섰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이것은 단순히 스승에 대한 복수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수현이었다.
'나리를 만나야 한다.'
소연은 의지를 다진후, 다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저녁 무렵 조사를 마치고, 함께 환궁하던 세자와 연희가 궁궐 인근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또다시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거지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구걸조차 못하는 삼길이란 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저하... 잠시만..."
연희의 부탁에 세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에서 내려주었다.
"어찌 그러느냐?"
"저기 저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런 것이옵니다. 먼저 들어가시옵소서. 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 챙겨준 연후에 들어가겠습니다."
세자가 고개를 들어 먼발치에 있는 거지 아이들을 보았다.
이내 그는 연희를 따라 말에서 내려섰다.
"저하...."
"함께 가자."
"하오나..."
"괜찮다. 괜찮으니 함께 가자."
수행하던 수하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려서니, 세자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멀리 가지 않을 것이니, 여기서 기다리거라."
"예, 저하."
연희는 가까운 곳에서 떡을 팔고있는 장수가 보여 인절미와 가래떡을 조금 산 뒤에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얘들아"
연희가 부르자, 거지 아이들은 금세 우르르 몰려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애기씨."
아이들은 저마다 인사를 하며 허겁지겁 연희가 내어주는 떡을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연희는 길쭉한 가래떡을 하나를 들고, 힘싸움에 밀려난 삼길이에게 다가갔다.
"자, 어서 먹거라."
연희가 가래떡을 내밀자, 쳐다보던 삼길은 연희에게 꾸뻑 인사를 하곤 배가 고팠던듯 이내 받아들어 먹기 시작했다.
"강사..항니다."
입안 가득 물고있는 떡때문에 말소리가 웅얼거리듯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연희는 그런 삼길이를 보며 웃을을 지었고, 뒤편에 서서 연희의 모습을 보고있던 세자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에도 이리 챙겨주시고, 참으로 마음씨가 고우십니다. 꼭 제 누이 같습니다."
삼길이는 입안의 떡을 꿀덕 삼키고는 감사와 약간의 그리움이 담긴 눈길로 연희를 쳐다보았다.
연희는 그런 삼길이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 그런데 네 누이는 어디 있는 것이냐?"
연희의 물음에 삼길이의 표정은 울상이 되었고,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먹던 떡을 급하게 씹어 삼키며 대신 대답했다.
"삼길이 누이는 죽었습니다."
연희는 조금 놀라 애처로운 표정으로 삼길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미안하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삼길은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연희가 웃으며 삼길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씩씩 하구나."
아직 앳되 보이는 아이인데, 누이를 잃었다는 말에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더해졌다.
"종종 이 앞으로 오너라. 내 기회가 되는대로 맛난 것을 사주마."
삼길이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초롱초롱 빛났다.
"감사합니다, 아기씨. 감사합니다."
연신 꾸벅꾸벅 인사하는 삼길이를 보며 환하게 웃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자를 향해 걸어갔다.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걸인들에게 선심을 쓰는 것이냐?"
세자의 물음에 연희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은... 부총관 나리께서 조금씩 주시곤 하십니다."
세자가 살짝 웃음 지었다.
"그래. 잘하였다. 보기 좋구나."
세자의 칭찬에 연희는 더욱 머쓱해진 기분이었다.
"가자."
세자가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자 뒤따라 걷던 연희는 문득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먹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삼길이는 연희를 보며 다시금 허리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연희는 그런 삼길이를 보며 환하게 미소지어 보이고는 작게 손짓하며 마주 인사해주었다.
***
이른 아침, 궁궐로 향하던 수현은, 순간 누군가 다가옴을 느꼈다.
익숙한 기운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기다리니, 그의 앞에 소연이 나타났다.
소연은 수현을 보자 살짝 웃어 보이며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아~, 그래. 소연이구나."
반갑게 인사하던 수현은, 이내 미안한 표정으로 소연을 쳐다보았다.
"네게는 면목이 없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수현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닙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오히려 나리가 크게 다치셨다 들어 많이 걱정하였습니다. 이제는 괜찮으신 겁니까?"
소연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는 괜찮다.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이냐?"
"예, 나리를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쓰러져 사경을 헤맬때 꾸었던 백무의 꿈이 기억난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연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나도 네게 할 말이 있을 듯 하구나. 이리 들어오겠느냐?"
"아닙니다. 궁으로 가시는 길이시지요? 걸으며 이야기하여도 충분합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이 먼저 걷기 시작하자, 소연이 그 곁을 따라 걸었다.
"그래, 할 말이 무엇이냐?"
수현이 묻자 잠시 망설이던 소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른 것이 아니오라, 세자빈 마마에 대해 좀 여쭙고 싶습니다."
소연이 의외의 질문을 하자, 수현은 조금놀라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아한 눈으로 소연을 쳐다보았다.
"세자빈 마마?"
"예. 듣기로는 혼례를 올리기 전에 쓰러지셨다 들었습니다."
수현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랬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했다 들었다."
"예, 당시 그 세자빈 마마의 아버지이신 예판 대감께서 찾아오셨었습니다. 의식을 찾을 때까지 몸이 망가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소연의 말에 수현이 의문스럽다는듯 물었다.
"그래? 어찌 알고 찾아간 거지?"
소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대답했다.
"예, 바로 그 말입니다. 어찌 알고 찾아온 것일까요? 그날 이후 스승님께서는 세자빈 마마의 몸을 지키기 위해 주술을 걸었고, 그 주술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 힘을 잃고 계셨습니다."
소연의 말에 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이냐? 그것을 어찌 이제 이야기하는 것이야?"
소연이 속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그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생전에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기에..."
"정말 그런 것이라면... 예판이 어찌 알고 백무를 찾아갔는지 알아봐야겠구나."
"예, 실은 저도 그것을 부탁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 소연을 보며 수현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수현의 한숨소리에 소연은 의아한 눈으로 수현을 쳐다봤다. 궁금함을 담은 소연의 눈빛에 수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실은.... 나도 네게 할 말이 있다."
잠시 뜸을 들인 수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날... 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백무였다."
순간, 소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에게... 돌아가라고. 그리고 뒷일은 네게 맡겨 두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 말하더구나."
수현이 말을 마치자, 소연의 눈가에 한줄기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수현은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연을 바라보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소연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나리 잘못이 아닙니다."
이어 고개를 들어 단호한 표정을 대답했다.
"이전의 스승님이라면 결코 그렇게 당하실 분이 아니셨는데....힘이 약해진 틈을 노려 스승님을 해친 그자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기필코 제가 복수할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수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소연은 붉어진 눈가를 소매로 훔치며, 수현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지어 보였다.
선들 불어오는 바람은, 사찰에 달려있는 풍경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았고, 차갑던 새벽의 공기는 따사로운 햇살에 도망가기 바빴다.
소연은 이른 아침, 작은 보따리 하나만 등에 짊어맨 체, 사찰을 찾았다.
마치 그녀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한 노스님이 입구에서 다가오는 소연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소연은 스님이 보이자 서둘러 다가가 합장하며 인사했고, 스님 역시 반가운 표정으로 소연을 맞았다.
"송구합니다, 스님... 항상 같이 오던 스승님께서는..."
소연이 체 말을 다하기도 전에, 스님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소연이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자, 스님은 손을 내밀어 법당쪽 길을 가리키며 소연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스님이 앞서 걸어가자, 소연이 그뒤를 따랐다.
스님은 소연을 어느 작은 법당으로 안내했고, 그곳에는 불상과 함께 하나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고즈넉해 보이는, 그 작은 공간을 보는 순간, 소연의 가슴속에 그리움이 차올라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오랫동안 머물러있었던듯 군데군데 놓인 백무의 물건들로인해 그녀의 체취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3년 전이었을까요, 이곳에 오셔서 저 촛불을 밝히셨죠. 놀랍게도, 얼마 전까지 촛불은 그저 불만 밝힐 뿐, 초가 녹지 않았었습니다."
소연은 놀란 표정으로 스님을 돌아보았다.
"초가... 녹지 않았다고요?"
"예. 그런데 며칠 전부터 녹기 시작하더군요. 백무께서 부탁하신 일이 있기에, 초가 다 녹기 전에, 계속 다른 초로 바꾸어 밝히고 있긴 합니다."
소연이 보니 초가 반쯤 녹아 있는 상태였다.
법당안으로 들어서 초가 밝혀있는 불단가까이 다가가자 , 그 앞에는 어떤 여인의 것으로 보이는 노리개가 있었다.
노리개를 가만히 지켜보던 소연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중얼거렸다.
"그럼... 이것이 세자빈 마마를 지켜주는 촛불인가 보구나.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초가 녹기 시작한 거야."
소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스승인 백무는 언제부터인가 점점 능력이 쇠퇴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기가 대략 세자빈을 지키기 위한 이 초를 밝힌 시점부터였던 것 같았다.
'그럼?'
소연은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승의 원수는 어쩌면 세자빈을 그렇게 만든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소연은 다시 법당 밖으로 나와 스님을 보며 간청했다.
"당분간만... 당분간만 더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소연을 향해 합장하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지요."
소연 역시 합장으로 인사하며 서둘러 사찰을 나섰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이것은 단순히 스승에 대한 복수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수현이었다.
'나리를 만나야 한다.'
소연은 의지를 다진후, 다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저녁 무렵 조사를 마치고, 함께 환궁하던 세자와 연희가 궁궐 인근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또다시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거지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구걸조차 못하는 삼길이란 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저하... 잠시만..."
연희의 부탁에 세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에서 내려주었다.
"어찌 그러느냐?"
"저기 저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런 것이옵니다. 먼저 들어가시옵소서. 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 챙겨준 연후에 들어가겠습니다."
세자가 고개를 들어 먼발치에 있는 거지 아이들을 보았다.
이내 그는 연희를 따라 말에서 내려섰다.
"저하...."
"함께 가자."
"하오나..."
"괜찮다. 괜찮으니 함께 가자."
수행하던 수하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려서니, 세자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멀리 가지 않을 것이니, 여기서 기다리거라."
"예, 저하."
연희는 가까운 곳에서 떡을 팔고있는 장수가 보여 인절미와 가래떡을 조금 산 뒤에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얘들아"
연희가 부르자, 거지 아이들은 금세 우르르 몰려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애기씨."
아이들은 저마다 인사를 하며 허겁지겁 연희가 내어주는 떡을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연희는 길쭉한 가래떡을 하나를 들고, 힘싸움에 밀려난 삼길이에게 다가갔다.
"자, 어서 먹거라."
연희가 가래떡을 내밀자, 쳐다보던 삼길은 연희에게 꾸뻑 인사를 하곤 배가 고팠던듯 이내 받아들어 먹기 시작했다.
"강사..항니다."
입안 가득 물고있는 떡때문에 말소리가 웅얼거리듯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연희는 그런 삼길이를 보며 웃을을 지었고, 뒤편에 서서 연희의 모습을 보고있던 세자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에도 이리 챙겨주시고, 참으로 마음씨가 고우십니다. 꼭 제 누이 같습니다."
삼길이는 입안의 떡을 꿀덕 삼키고는 감사와 약간의 그리움이 담긴 눈길로 연희를 쳐다보았다.
연희는 그런 삼길이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 그런데 네 누이는 어디 있는 것이냐?"
연희의 물음에 삼길이의 표정은 울상이 되었고,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먹던 떡을 급하게 씹어 삼키며 대신 대답했다.
"삼길이 누이는 죽었습니다."
연희는 조금 놀라 애처로운 표정으로 삼길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미안하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삼길은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연희가 웃으며 삼길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씩씩 하구나."
아직 앳되 보이는 아이인데, 누이를 잃었다는 말에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더해졌다.
"종종 이 앞으로 오너라. 내 기회가 되는대로 맛난 것을 사주마."
삼길이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초롱초롱 빛났다.
"감사합니다, 아기씨. 감사합니다."
연신 꾸벅꾸벅 인사하는 삼길이를 보며 환하게 웃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자를 향해 걸어갔다.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걸인들에게 선심을 쓰는 것이냐?"
세자의 물음에 연희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은... 부총관 나리께서 조금씩 주시곤 하십니다."
세자가 살짝 웃음 지었다.
"그래. 잘하였다. 보기 좋구나."
세자의 칭찬에 연희는 더욱 머쓱해진 기분이었다.
"가자."
세자가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자 뒤따라 걷던 연희는 문득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먹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삼길이는 연희를 보며 다시금 허리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연희는 그런 삼길이를 보며 환하게 미소지어 보이고는 작게 손짓하며 마주 인사해주었다.
***
이른 아침, 궁궐로 향하던 수현은, 순간 누군가 다가옴을 느꼈다.
익숙한 기운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기다리니, 그의 앞에 소연이 나타났다.
소연은 수현을 보자 살짝 웃어 보이며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아~, 그래. 소연이구나."
반갑게 인사하던 수현은, 이내 미안한 표정으로 소연을 쳐다보았다.
"네게는 면목이 없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수현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닙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오히려 나리가 크게 다치셨다 들어 많이 걱정하였습니다. 이제는 괜찮으신 겁니까?"
소연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는 괜찮다.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이냐?"
"예, 나리를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쓰러져 사경을 헤맬때 꾸었던 백무의 꿈이 기억난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연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나도 네게 할 말이 있을 듯 하구나. 이리 들어오겠느냐?"
"아닙니다. 궁으로 가시는 길이시지요? 걸으며 이야기하여도 충분합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이 먼저 걷기 시작하자, 소연이 그 곁을 따라 걸었다.
"그래, 할 말이 무엇이냐?"
수현이 묻자 잠시 망설이던 소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른 것이 아니오라, 세자빈 마마에 대해 좀 여쭙고 싶습니다."
소연이 의외의 질문을 하자, 수현은 조금놀라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아한 눈으로 소연을 쳐다보았다.
"세자빈 마마?"
"예. 듣기로는 혼례를 올리기 전에 쓰러지셨다 들었습니다."
수현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랬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했다 들었다."
"예, 당시 그 세자빈 마마의 아버지이신 예판 대감께서 찾아오셨었습니다. 의식을 찾을 때까지 몸이 망가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소연의 말에 수현이 의문스럽다는듯 물었다.
"그래? 어찌 알고 찾아간 거지?"
소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대답했다.
"예, 바로 그 말입니다. 어찌 알고 찾아온 것일까요? 그날 이후 스승님께서는 세자빈 마마의 몸을 지키기 위해 주술을 걸었고, 그 주술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 힘을 잃고 계셨습니다."
소연의 말에 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이냐? 그것을 어찌 이제 이야기하는 것이야?"
소연이 속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그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생전에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기에..."
"정말 그런 것이라면... 예판이 어찌 알고 백무를 찾아갔는지 알아봐야겠구나."
"예, 실은 저도 그것을 부탁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 소연을 보며 수현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수현의 한숨소리에 소연은 의아한 눈으로 수현을 쳐다봤다. 궁금함을 담은 소연의 눈빛에 수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실은.... 나도 네게 할 말이 있다."
잠시 뜸을 들인 수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날... 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백무였다."
순간, 소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에게... 돌아가라고. 그리고 뒷일은 네게 맡겨 두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 말하더구나."
수현이 말을 마치자, 소연의 눈가에 한줄기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수현은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연을 바라보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소연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나리 잘못이 아닙니다."
이어 고개를 들어 단호한 표정을 대답했다.
"이전의 스승님이라면 결코 그렇게 당하실 분이 아니셨는데....힘이 약해진 틈을 노려 스승님을 해친 그자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기필코 제가 복수할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수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소연은 붉어진 눈가를 소매로 훔치며, 수현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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