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4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던 세자의 눈에 문득, 어느 책 아래 깔려있는 붉은 표지의 책이 들어왔다.
여느 책과는 그 모양새가 남다른 것이, 예사로운 책 같지가 않았다.
"금령제중술(擒靈制衆術)이라...."
책의 제목을 따라읽은 세자는 가만히 그 이름을 곱씹다가, 책을 펼쳐 내용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제대로 된 글자도 아니었고, 몇몇 알아볼 수 있는 글자도 그 순서가 해괴망측하여 도저히 독해가 불가능해 읽을 수가 없었다.
세자의 곁으로 다가온 수현도 책안의 내용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는 주술사들이 읽는 특이 문자 같습니다. 가져가서 백무에게 한번 물어보시지요."
세자도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일단 품 안에 갈무리하였다.
그때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쥐새끼들을 찾아라!"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일행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수현이 말을 하며 주위를 살피더니, 뒤쪽의 문을 발견하고 말했다.
"저쪽으로 나가시죠. 서둘러야 합니다."
세자는 아직 알아낸것이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일단 여기서 접고 피해야함을 느끼고 수현의 말대로 수하들과 함께 뒤쪽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일행은 좁은 길을 따라 사당 외곽 쪽으로 뛰기시작했다.
그러다 수현이 돌연 멈춰 섰다.
"젠장!"
수현이 당혹해 하자, 세자도 뭔가를 느낀듯 멈추어섰다.
"왜 그러십니까?"
주위 수하들이 그런 둘의 모습에 답답한듯 물었다.
"포위되었다. 앞뒤로 다가오고 있구나."
수현의 말에 수하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세자의 안전이 최우선인 수현은 이내 세자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일단 몸을 숨겨야겠습니다."
"숨길곳이 있어보이지 않는구나.."
잠시 주위를 더 둘러보던 세자는 일행에게 따라오라는듯 고개짓했다.
"이쪽으로..."
세자를 따라 모두 모퉁이 담장 구석의 그늘진 곳으로 몸을 낮춰 기색을 숨겼다.
"이래서야 금방 들키지 않겠습니까?"
수현의 물음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일단 숨어서 동태를 살펴보자, 아무래도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일련의 무리가 눈앞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나같이 칼을 든 체,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자일행이 있는 담장 구석 쪽으로 거의 다가왔을때, 어딘가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요! 여기요!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한 여인의 외침에 그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고, 그 목소리를 들은 수현은 놀라 아연한 눈빛으로 세자를 돌아봤다.
"연희?"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아무래도 연희 낭자가 우릴 도와주려는 모양이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것을 어찌알고 말입니까?"
"사당문을 나설때 언뜻 멀리서 쳐다보고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도움이 헛것이 되지않도록, 어서 서두르자."
세자의 재촉에, 수현과 수하들은 방금 전 사내들이 왔던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연희는 세자가 머물렀던 방 입구에 서 있었다.
경계를 서던 병사들과 허당주가 달려오자, 허당주를 보며 말했다.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연희가 방안을 가리키자, 허당주가 앞장서 들어갔다.
아까 세자 일행을 안내해 주었던 수하였다.
누워있는 그의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다가가 혈자리를 풀어주었다.
쓰러져 있던 수하는 순간 자신이 왜 이렇게 누워있는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게...."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허당주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밖으로 나왔다.
"뭣들 하느냐 어서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이어 자신들을 부른 연희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연희가 멋쩍은 듯 시선을 피했다.
"쯧..."
허당주는 혀를 차더니, 이내 마지못한 듯 수하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실 연희는 세자와 수현이 아까 사당으로 향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준수한 용모 덕에, 멀리서도 세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세자가 하고자하는 일에 혹시라도 작은 기회나마 만들어 줬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핏 눈이 마주친듯도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세자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뿌듯하고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해서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뭘 그리 웃고 있느냐?"
생각에 빠져있던 연희의 뒤로 주동환이 나타나 묻는 말에, 방심하고 있던 연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이어 주동환이 의아한 듯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의식은 다 끝난 것입니까?"
"아니... 아직 한창이지."
"그럼... 어서 그쪽으로 가시지요."
연희는 세자가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텐데..라는 걱정스런 맘을 감추고는 혹여 주동환이 다른 낌새라도 느낄새라 그의 팔소매를 잡고 이끌었다.
"어? 어... 그래..."
주동환은 연희가 이끄는 대로, 다시 사람들이 모여있는 제단 쪽으로 향했다.
'부디 몸조심 가십시오.'
연희는 마음속으로 세자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 무렵, 사당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세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제대로 알아낸 것이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저것 챙겨가지고 나왔으니, 살펴보면 의외의 정보가 있을 수 있을것이다. 아직 낙담하기는 이르다."
"네, 이제 곧 좌포청 군사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만 이곳을 떠나시지요."
수현의 말에 세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좌포청? 맞다... 안에 연희가 있는데... 다시 잡히면, 이번에는 여지없이 사교도로 몰릴 것이다."
수현의 표정도 따라서 굳어졌다.
"설마... 아마도 빠져나가지 않겠습니까? 저리 사람이 많으니.. 좌포청이 모두 잡아들일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그땐 어찌 빼낼 것이냐?"
수현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미 우리 얼굴을 아는 자가 둘이나 있지 않습니까?"
세자가 수풀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고 연희를 위험 속에 두고 갈 수는 없다."
단호한 세자의 말에 수현이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허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수하들과 함께 본진으로 복귀하시지요."
"아니다. 내가 직접 무사한지 눈으로 봐야겠다."
"저하! 어찌 이러십니까? 위험한 곳입니다. 제발 소신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무력하게 허개비처럼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란 말인가?"
세자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자, 수현의 표정이 당혹스러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란 것인가? 또? 또 그래야 하는 것이야? 이제는 싫다. 무슨 일이든, 놓치기 싫은 것이 있거든, 내손으로 지켜내겠다. 내가 직접 헤아려 살필 것이다. 이제 그 어떤 것도, 그저 가만히 기다리며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세자가 수풀 속을 나가 사당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수현과 수하들이 마지못한 듯 따라나섰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곁에 따라붙은 수현의 묻는 말에, 세자는 걸어가며 대답했다.
"아직.... 없다."
수현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휘파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이건...."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횃불이 밝혀지고, "와~"하는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좌포청 병사들입니다. 저하, 피하셔야 합니다."
수현의 다급한 요청에도, 세자는 요지부동으로 제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하!"
수현과 수하들은 재빨리 세자의 뒤를 쫓았다.
사방에서 좌포청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 나오자, 이에 놀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고, 연희 역시 닥친 상황에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어찌할줄 모르며 서 있었다.
"가자!"
주동환이 멍하니 서있는 연희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연희의 손을 붙잡아끌며 수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히 뒷길 쪽으로 몸을 숨겼고, 연희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 상황을 우두커니 쳐다보며 그에게 끌려갔다.
"연희야!"
세자는 아비규환 같은 정신없는 무리 속에 파고들며 연희의 이름을 불렀다.
"연희야!"
시끄러운 비명과 함성소리가 어우러져 연희의 귀에 세자의 부르짖는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연희야!"
문득 연희가 고개를 돌렸다.
왠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설마....'
연희는 아닐 거라고 자신이 잘못들은거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다시 한번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희야!"
연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확신이 드는 순간, 연희는 주동환의 손을 뿌리치고 아비규환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연희야?"
주동환은 연희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뿌리치자 놀라 돌아섰지만, 그녀는 이미 사람들 무리 속으로 파고든 뒤였다.
"연희야!"
놀란 주동환이 연희를 찾기위해 그녀 뒤를 따르려 했으나, 뒤에서 수하가 만류하였다.
"두목! 늦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러나 주동환은 이미 수하들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연희야!"
주동환은 연희의 이름을 부르며, 무리 속을 파고들었다.
그 사이, 어지러운 난장판 속에서 연희는 무작정 걸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연희야!"
다시 한번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연희는 안도감과 기쁨이 솟아났다.
너무 기쁜나머지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저하!"
연희는 벅찬마음에 세자를 부르며 그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주위 소리에 비해 턱없이 너무 작았다.
"저하!"
연희는 다시한번 크게 세자를 부르며 세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딪혀 몸이 휘청이면서도, 아비규환 같은 곳에서 자신을 부르며 찾고 있을 세자를 향해 있는 힘껏 나아갔다.
"연희야!"
"저하!"
애타게 연희를 찾던 세자의 귀에 비로소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야!"
세자는 다급히 연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저하!"
연희도 다시 한번 세자를 부르며 나아갔다.
드디어 서로를 찾는 세자의 눈과 연희의 눈이 마주쳤다.
"저하..."
연희가 조금 더 다가가려는 찰나, 뛰어도망가던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혔다.
"악!"
연희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자, 세자는 황급히 사람들을 뿌리치며 나아갔다.
"연희야?"
넘어진 연희가 혹 사람들에게 밟힐까, 세자는 몸을 날려 연희의 위로 자신의 몸을 덮었다.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성소리가 가득한...
그러나 지금 연희와 세자에게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괜찮느냐?"
세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희의 얼굴을 살펴보며 물었다.
"... 예...."
연희가 부끄러운 듯 대답하니, 세자가 연희를 부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하!"
때마침 도착한 수현과 수하들이 세자와 그녀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주동환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세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연희를 보며, 그는 굳어진 얼굴로 망연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세자는 조심스럽게 연희를 놓아주었고, 연희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걸음 물러났다.
"저하... 어찌... 돌아오셨습니까?"
세자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나서 대답했다.
"여기서 좌포청 군사들에게 잡히면... 그땐 사교도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나와 함께 나가자."
연희는 참을 수 없는 애뜻한 감격에 치밀어 오르는 감명의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이 위험 속을 파고들었단 말에 눈물이 날만큼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서두르십시오.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는 연희를 보호하듯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아 이끌며 수현과 수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본진으로 향했다.
여느 책과는 그 모양새가 남다른 것이, 예사로운 책 같지가 않았다.
"금령제중술(擒靈制衆術)이라...."
책의 제목을 따라읽은 세자는 가만히 그 이름을 곱씹다가, 책을 펼쳐 내용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제대로 된 글자도 아니었고, 몇몇 알아볼 수 있는 글자도 그 순서가 해괴망측하여 도저히 독해가 불가능해 읽을 수가 없었다.
세자의 곁으로 다가온 수현도 책안의 내용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는 주술사들이 읽는 특이 문자 같습니다. 가져가서 백무에게 한번 물어보시지요."
세자도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일단 품 안에 갈무리하였다.
그때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쥐새끼들을 찾아라!"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일행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수현이 말을 하며 주위를 살피더니, 뒤쪽의 문을 발견하고 말했다.
"저쪽으로 나가시죠. 서둘러야 합니다."
세자는 아직 알아낸것이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일단 여기서 접고 피해야함을 느끼고 수현의 말대로 수하들과 함께 뒤쪽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일행은 좁은 길을 따라 사당 외곽 쪽으로 뛰기시작했다.
그러다 수현이 돌연 멈춰 섰다.
"젠장!"
수현이 당혹해 하자, 세자도 뭔가를 느낀듯 멈추어섰다.
"왜 그러십니까?"
주위 수하들이 그런 둘의 모습에 답답한듯 물었다.
"포위되었다. 앞뒤로 다가오고 있구나."
수현의 말에 수하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세자의 안전이 최우선인 수현은 이내 세자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일단 몸을 숨겨야겠습니다."
"숨길곳이 있어보이지 않는구나.."
잠시 주위를 더 둘러보던 세자는 일행에게 따라오라는듯 고개짓했다.
"이쪽으로..."
세자를 따라 모두 모퉁이 담장 구석의 그늘진 곳으로 몸을 낮춰 기색을 숨겼다.
"이래서야 금방 들키지 않겠습니까?"
수현의 물음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일단 숨어서 동태를 살펴보자, 아무래도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일련의 무리가 눈앞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나같이 칼을 든 체,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자일행이 있는 담장 구석 쪽으로 거의 다가왔을때, 어딘가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요! 여기요!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한 여인의 외침에 그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고, 그 목소리를 들은 수현은 놀라 아연한 눈빛으로 세자를 돌아봤다.
"연희?"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아무래도 연희 낭자가 우릴 도와주려는 모양이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것을 어찌알고 말입니까?"
"사당문을 나설때 언뜻 멀리서 쳐다보고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도움이 헛것이 되지않도록, 어서 서두르자."
세자의 재촉에, 수현과 수하들은 방금 전 사내들이 왔던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연희는 세자가 머물렀던 방 입구에 서 있었다.
경계를 서던 병사들과 허당주가 달려오자, 허당주를 보며 말했다.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연희가 방안을 가리키자, 허당주가 앞장서 들어갔다.
아까 세자 일행을 안내해 주었던 수하였다.
누워있는 그의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다가가 혈자리를 풀어주었다.
쓰러져 있던 수하는 순간 자신이 왜 이렇게 누워있는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게...."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허당주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밖으로 나왔다.
"뭣들 하느냐 어서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이어 자신들을 부른 연희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연희가 멋쩍은 듯 시선을 피했다.
"쯧..."
허당주는 혀를 차더니, 이내 마지못한 듯 수하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실 연희는 세자와 수현이 아까 사당으로 향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준수한 용모 덕에, 멀리서도 세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세자가 하고자하는 일에 혹시라도 작은 기회나마 만들어 줬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핏 눈이 마주친듯도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세자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뿌듯하고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해서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뭘 그리 웃고 있느냐?"
생각에 빠져있던 연희의 뒤로 주동환이 나타나 묻는 말에, 방심하고 있던 연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이어 주동환이 의아한 듯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의식은 다 끝난 것입니까?"
"아니... 아직 한창이지."
"그럼... 어서 그쪽으로 가시지요."
연희는 세자가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텐데..라는 걱정스런 맘을 감추고는 혹여 주동환이 다른 낌새라도 느낄새라 그의 팔소매를 잡고 이끌었다.
"어? 어... 그래..."
주동환은 연희가 이끄는 대로, 다시 사람들이 모여있는 제단 쪽으로 향했다.
'부디 몸조심 가십시오.'
연희는 마음속으로 세자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 무렵, 사당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세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제대로 알아낸 것이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저것 챙겨가지고 나왔으니, 살펴보면 의외의 정보가 있을 수 있을것이다. 아직 낙담하기는 이르다."
"네, 이제 곧 좌포청 군사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만 이곳을 떠나시지요."
수현의 말에 세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좌포청? 맞다... 안에 연희가 있는데... 다시 잡히면, 이번에는 여지없이 사교도로 몰릴 것이다."
수현의 표정도 따라서 굳어졌다.
"설마... 아마도 빠져나가지 않겠습니까? 저리 사람이 많으니.. 좌포청이 모두 잡아들일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그땐 어찌 빼낼 것이냐?"
수현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미 우리 얼굴을 아는 자가 둘이나 있지 않습니까?"
세자가 수풀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고 연희를 위험 속에 두고 갈 수는 없다."
단호한 세자의 말에 수현이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허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수하들과 함께 본진으로 복귀하시지요."
"아니다. 내가 직접 무사한지 눈으로 봐야겠다."
"저하! 어찌 이러십니까? 위험한 곳입니다. 제발 소신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무력하게 허개비처럼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란 말인가?"
세자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자, 수현의 표정이 당혹스러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란 것인가? 또? 또 그래야 하는 것이야? 이제는 싫다. 무슨 일이든, 놓치기 싫은 것이 있거든, 내손으로 지켜내겠다. 내가 직접 헤아려 살필 것이다. 이제 그 어떤 것도, 그저 가만히 기다리며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세자가 수풀 속을 나가 사당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수현과 수하들이 마지못한 듯 따라나섰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곁에 따라붙은 수현의 묻는 말에, 세자는 걸어가며 대답했다.
"아직.... 없다."
수현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휘파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이건...."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횃불이 밝혀지고, "와~"하는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좌포청 병사들입니다. 저하, 피하셔야 합니다."
수현의 다급한 요청에도, 세자는 요지부동으로 제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하!"
수현과 수하들은 재빨리 세자의 뒤를 쫓았다.
사방에서 좌포청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 나오자, 이에 놀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고, 연희 역시 닥친 상황에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어찌할줄 모르며 서 있었다.
"가자!"
주동환이 멍하니 서있는 연희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연희의 손을 붙잡아끌며 수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히 뒷길 쪽으로 몸을 숨겼고, 연희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 상황을 우두커니 쳐다보며 그에게 끌려갔다.
"연희야!"
세자는 아비규환 같은 정신없는 무리 속에 파고들며 연희의 이름을 불렀다.
"연희야!"
시끄러운 비명과 함성소리가 어우러져 연희의 귀에 세자의 부르짖는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연희야!"
문득 연희가 고개를 돌렸다.
왠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설마....'
연희는 아닐 거라고 자신이 잘못들은거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다시 한번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희야!"
연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확신이 드는 순간, 연희는 주동환의 손을 뿌리치고 아비규환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연희야?"
주동환은 연희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뿌리치자 놀라 돌아섰지만, 그녀는 이미 사람들 무리 속으로 파고든 뒤였다.
"연희야!"
놀란 주동환이 연희를 찾기위해 그녀 뒤를 따르려 했으나, 뒤에서 수하가 만류하였다.
"두목! 늦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러나 주동환은 이미 수하들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연희야!"
주동환은 연희의 이름을 부르며, 무리 속을 파고들었다.
그 사이, 어지러운 난장판 속에서 연희는 무작정 걸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연희야!"
다시 한번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연희는 안도감과 기쁨이 솟아났다.
너무 기쁜나머지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저하!"
연희는 벅찬마음에 세자를 부르며 그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주위 소리에 비해 턱없이 너무 작았다.
"저하!"
연희는 다시한번 크게 세자를 부르며 세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딪혀 몸이 휘청이면서도, 아비규환 같은 곳에서 자신을 부르며 찾고 있을 세자를 향해 있는 힘껏 나아갔다.
"연희야!"
"저하!"
애타게 연희를 찾던 세자의 귀에 비로소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야!"
세자는 다급히 연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저하!"
연희도 다시 한번 세자를 부르며 나아갔다.
드디어 서로를 찾는 세자의 눈과 연희의 눈이 마주쳤다.
"저하..."
연희가 조금 더 다가가려는 찰나, 뛰어도망가던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혔다.
"악!"
연희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자, 세자는 황급히 사람들을 뿌리치며 나아갔다.
"연희야?"
넘어진 연희가 혹 사람들에게 밟힐까, 세자는 몸을 날려 연희의 위로 자신의 몸을 덮었다.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성소리가 가득한...
그러나 지금 연희와 세자에게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괜찮느냐?"
세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희의 얼굴을 살펴보며 물었다.
"... 예...."
연희가 부끄러운 듯 대답하니, 세자가 연희를 부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하!"
때마침 도착한 수현과 수하들이 세자와 그녀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주동환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세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연희를 보며, 그는 굳어진 얼굴로 망연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세자는 조심스럽게 연희를 놓아주었고, 연희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걸음 물러났다.
"저하... 어찌... 돌아오셨습니까?"
세자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나서 대답했다.
"여기서 좌포청 군사들에게 잡히면... 그땐 사교도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나와 함께 나가자."
연희는 참을 수 없는 애뜻한 감격에 치밀어 오르는 감명의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이 위험 속을 파고들었단 말에 눈물이 날만큼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서두르십시오.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는 연희를 보호하듯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아 이끌며 수현과 수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본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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