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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author
·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2.81분

9화 - #9


방울소리와 북소리 혹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중얼거림등이 한데 뭉쳐 내고 있는 기괴한 소리가 어두컴컴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

방 한가운데에는 빨갛고 파랗고 화려한 색상의 색동 한복같은 무복을 입은 한 여인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홀린 듯 북을 치고 있는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은 이러한 음습한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 앞에서 여인은 광기어린 춤을 추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사람의 귀였고, 귀가 산더미처럼 쌓여 사람의 피부색과 피 얼룩이 뒤엉켜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비릿한 피 냄새는,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바로 구토를 할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춤추던 여인이 돌연 긴장된 표정으로 멈춰 섰다.

그 여인이 멈춰서는 순간, 북소리와 그 옆에 있던 꽹과리 소리도 같이 멈췄다. 일시에 정적이 찾아왔다.

"이게 뭐야?"

여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리번거리더니 홱 돌아서서 화를 냈다.

"이게 대체 뭐야?!"

그러자 뒤쪽에 서있던 몇몇 사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한 명이 앞으로 나서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여인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인만 바라볼 뿐이었다.

"당장... 당장 대표님 모셔와! 어서!"

여인, 이선화의 외침에 사내 한 명이 부랴부랴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제 아무리 큰 신의 개입이라 하더라도, 이건 말이 안 돼... 이건.... 이건 불가능해..."

이선화는 뭔가에 크게 놀란 듯 넋 빠진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휘청거리자, 한 남자가 서둘러 의자 하나를 가져와 옆에 놓아주었고, 이선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에 무너지듯 털썩 걸터앉았다.

"이런 빌어먹을..."

그녀는 욕설을 내뱉으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곳으로 누군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왔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묻고 있는 남자는, 김주환이었다.

이선화는 김주환을 힐끔 돌아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틀렸어요."

"뭐가?"

"의식이.... 거부됐어요."

김주환은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한 듯 눈을 껌뻑거리다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

"의식이 거부됐다구요,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이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우리 일에 크나큰 변화가 생긴 거라구요."

김주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유는? 그 개입했다는 큰 신인가?"

"그거밖에 없어요. 그 이유 말곤 다른 이유를 생각해볼 수 없어요."

"대체 어떤 신이야?"

"아직 몰라요."

"알아내. 무당들은? 얼마나 찾아냈어?"

"큰 신을 담을만한 것들은 모조리 찾아내서 죽이라고 했어요."

김주환이 눈을 가늘게 뜨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선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주일 준다. 알아내. 못 알아내면, 네년을 제물로 받칠라니까."

이선화는 원망스럽게 그를 노려보았다. 허나 김주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 있었다.

"백사장을 만나겠어요!"

뒤에서 들려오는 이선화의 외침에도 김주환은 쳐다보지않고 걸어가며 손만 들어 흔들어 보였다.

***

작업을 하다 잠시 쉴 겸 밖으로 나온 수호는 느릿한 걸음으로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하나를 집어 들었다.

'탁!'하고 맥주 캔 따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한 모금 마시니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에 절로 "캬~!"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세희가 당분간 머무르기로한 작은방의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왠지 모를 호기심에 슬며시 다가가 보니, 안에서 세희가 하얀색 한복을 입고 좌정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집중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명상을 하는듯해 보였다. 왠지 모를 묘한 기운이 그녀를 휘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호는 모른 척 방향을 돌려 다시 안방 쪽으로 가려는데, 돌연 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맑고 또렷한 세희의 목소리였다.

분명 세희의 목소린데, 뭔가 그 목소리 안에서 근엄함과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수호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 가부좌를 하고 앉은 체 자신을 올려다보는 세희가 보였다.

"뭐야? 장난해?"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긴장된 마음에 장난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세희는 그에 맞춰줄 생각이 없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운명의 물줄기가 그대에게 흐르고 있으니, 그에게 대적함은 그대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난데없는 세희의 말에 수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다 했던 얘기잖아? 왜 또해?"

그러나 세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그들이 열두 사도가 이 아이를 노릴 것이니, 그대는 이 아이를 굳건히 지켜주어야 한다."

"열두 사도?"

"열 세번째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 그대와 필연으로 이어진 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대는 선택하게 될 것이니, 의로운 이들의 곁에서 스스로를 죽일 것인지, 타락한 이의 곁에서 의로운 이들을 죽일 것인지, 그대의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수호가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버벅대는 사이, 세희가 눈을 스르륵 감았다.

잠시 후 세희가 눈을 뜨더니,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물었다.

"뭐해?"

뜬금없는 세희의 물음에, 수호는 멀뚱멀뚱 서 있다가 대답했다.

"네가 불렀잖아."

"내가?"

"어, 열두 사도는 뭐야?"

"열두 사도? 계시를 들은 거야?"

"계시?"

"방금 신을 모셨거든. 뭐라고 했는데?"

수호는 뚱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어어? 뭐야? 왜 말을 안 해줘?"

세희가 얼른 일어나 따라오려 하자, 수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냐 아냐, 들어가.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니긴. 계시가 있었구먼. 난 무의식 상태라 몰랐어. 뭐라고 했는데?"

"네가 물어봐!"

수호가 퉁명스럽게 외치고는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왜, 저래? 세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방 앞까지 걸어가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방문을 안쪽에서 잠갔는지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았다.

세희는 방문을 쿵쿵 두드리며 물었다.

"아 뭐야? 얘기해 달라니까?"

"말이 짧다?"

"요! 요! 아, 그놈에 요! 진짜... 좀... 말하라고! 요!"

수호는 대답하지 않은 체 책상 의자에 푹 앉아버렸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의로운 이의 편에 서서 스스로를 죽인다니? 그럼 내가 죽는단 말인가?

수호는 그런 생각에 심정이 복잡해졌다.

"어롸버늬이~~~"

방문 밖에서 섬뜩한 세희의 애교 소리가 들려오자, 수호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서 말씀해 주세요~오~~~"

"야! 닥쳐! 확 진짜 죽여~버린다~~아~"

"아놔, 진짜 대접을 해줄라고 그래도 진짜... 거, 뚜껑 팍팍 열리게 만드네 진짜... 드러워서 안듣는다 드러워서!"

거친 세희의 대답에 수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저 또라이, 저거...참,나 어이가 없네?"

수호의 흥분상태와는 별개로 바깥이 조용했다. 분에 못이긴 수호가 걸어가 방문을 홱하니 열자, 세희가 바로 코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말해주러 올 줄 알았지."

세희의 웃는 얼굴이 얄미워보였다.

"말 안 할 거거든?"

"왜? 왜 말을 안 해주는데? 왜? 내가 모시는 신한테서 나온 계시잖아? 말 안 해줄 이유가 없는 거 아냐?"

"아... 그게..."

수호가 앞으로 고개를 내밀어 세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 복장 터지라고."

그러고는 홱하니 들어가서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이씨..."

세희는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며 소리쳤다.

"진짜 이럴꺼야~아!"

"말이 또 짧다?"

"그래! 짧다! 어쩔래?! 말해줄 때까지 반말할 거야!"

"아까 말한 게 다야! 열두 사도!"

"열두 사도?"

세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열두 사도가 찾아올 거래. 널 지키라고 하더라."

"그래? 그게 다야?"

수호는 잠깐 망설였다.

"어, 그게 다야."

"그게 뭐라고 그렇게 말을 안 해주냐?"

자신의 생각보다 별내용이 없는 계시에 김이 빠져 목소리에 퉁명스러움이 담겼다.

"말이 짧다아~?"

"구요! 구요! 하려구 했다, 구요!"

그러더니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메~"하며, 보지도 않는 수호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혓바닥을 내밀었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 거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사람 진 빠지게 진짜..."

궁시렁거리던 세희가 방문을 탁하고 닫아버리며 정적이 찾아오자, 다시금 심경이 복잡해졌다.

수호는 궁금해졌다.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자기 자신이 죽는 걸 알면서도 과연 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신은 무슨 배짱으로 자신에게 그런 내용을 알려준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수호는 당장 일어나지 않은 일에 애써 미리부터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눈앞에 닥친 일부터 집중해야 했다.

이 작업을 마무리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에 집중하기 위해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키보드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모니터에 시선을 내리 꽂았다.

"셀렉트 박스에 바인딩부터 해야겠네."

셀렉트 박스를 마우스로 클릭하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렇게 선택지가 여러 개면 얼마나 좋아. 죽거나 살거나라니...."

그러다가 두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 뜨렸다.

"아~ 아냐! 왜 그 생각으로 이어져! 일하자, 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다시 마음을 다졌다.

"선택, 선택, 선택을 생각하면 안 돼, 선택... 빨리 바인딩부터 하자."

데이터베이스 툴을 켜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단 Select 쿼리부터...."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아~! 아니라고! 아니라고! 왜! 왜 자꾸 셀렉트야아!"

수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씨... 일해야 되는데.... 집중이 안되네...."

그러더니 마치 하늘을 올려다보듯 고개를 들어 외쳤다.

"아, 왜! 하필! 지금! 이렇게 사람 심난하게 만들어 놓고? 작업 대신 해줘!"

그 말을 하고는 문쪽으로 향했다.

"맥주나 한 캔 더..."

그리고 방문을 여는 순간, 수호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세희가 방문 바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왜? 왜 거깄어? 안 갔어?"

수호가 놀라 해 하자, 세희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죄지었어?"

"아니... 거기 서 있으니까 놀라지. 여태 서 있는 거야?"

"옷 갈아입은 거 안 보여?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말하는 거 하고는... 왜 거기 있는 건데?"

"아니~ 막 노크를 하려고 했지. 노크를 하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네? 그러더니 막 날 보고 비명을 지르네? 이거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뭔가 기분이 막 나빠질라고 하는데?"

"아씨... 여태 나 혼자 살던 집이라고. 누가 있는 거 적응 안돼."

"아~ 적응~ 그러셨구나."

세희의 비아냥에 수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비키라는 고개짓을 했다.

"비켜, 맥주 마실 거야."

"맥주우?"

세희가 살짝 비켜서자 수호가 얼른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그 맥주 나도 좀 마셔 봅시다."

"애들은 자라."

"애 아니거든요."

"나쁜 거 먹으면 키 안 커."

"키 다 큰 거거든요."

수호가 세희를 힐끔 쳐다보더니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한참은 더 커야 할거 같은데... 그게 끝이야?"

"하~ 어이가 없네? 키높이 구두나 깔창이라도 사주고 그런 얘기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수호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내서 '탁~'소리가 나게 뚜껑을 열었다.

"일찍 자면 좀 더 클 수 있어."

그러고는 한 모음 마시는데 세희가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다 컸거든요?"

그러더니 냅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어어? 야, 네 거 마셔!"

"와 치사하게~ 맥주 한 캔 가지고 진짜 이러기예요?"

"아, 그래. 마셔라 마셔."

수호가 귀찮다는 듯 손사래 치며 냉장고 문을 닫자, 세희가 얼른 맥주 뚜껑을 열어젖혔다.

조금이라도 식을 세라 부랴부랴 한 모금 마시더니 "캬아~"소리를 내며 표정이 밝아졌다.

"엄청 시원하네요? 어떻게 한 거예요?"

"어떻게 한 거긴? 김치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조금 전에 냉장고로 옮긴 거야. 그럼 엄청 시원하거든."

"진짜, 완전, 대박! 완전 짱 시원해요."

그러더니 다시 한 모금 들이키는 세희의 모습에 수호는 피식 웃음 지었다.

"와~ 진짜~ 시원하다."

연신 감탄하는 세희를 보며, 수호가 캔을 내밀었다.

세희는 그런 수호를 힐끔 보더니 피식 웃으며 캔을 마주쳤다.

"치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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