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26
저승전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나래는 커다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꽤나 거만한 표정을 하고 있고, 산만한 덩치를 가진 남자였는데, 다가오는 나래와 일행을 보더니 대뜸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산 사람이 예까지는 무슨 일이냐? 더군다나, 요괴놈들이 겁도 없이 따라오다니..."
나래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저는 총명부인의 서찰을 가지고 대별왕님을 뵈러 왔습니다. 대별왕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문지기 남자는 나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총명부인?"
"그렇습니다. 제게 총명부인께서 주신 서찰이 있습니다. 부디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문지기는 나래의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흥, 총명부인이든 천계금왕이든 난 모른다. 인정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다."
나래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인정...이요?"
그러자 품에 있던 아토가 나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망자의 혼이 저승으로 들어갈 때 저승사자에게 길을 인도해주는 대가로 주는 돈을 인정이라 한다."
나래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돈이라구요? 제가 지금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나래의 표정을 본 아토가 고개를 들어 문지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봐, 적당히 하자고. 그건 망자들이 내는 돈 아냐? 이 아이는 엄연히 살아있다고."
그러자 문지기가 아토를 노려보았다.
"오호라, 요괴놈들이 지 분수를 모르고 나서는 게로구나.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감히..."
문지기가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꽉 쥐어 보이자, 순간 아토의 몸이 스르륵 작아졌다.
이내 아기 고양이가 되어버린 아토는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고, 나래 역시 놀라 당황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뒤이어 이번에는 초코가 주르륵 작아지더니 노란 병아리가 되어버렸다.
다음으로 나래의 어깨에 앉아 반딧불 모습을 하고 있던 솔이는, 스르륵 커지더니 자그마한 강아지가 되어 버렸다.
"네놈들의 힘을 모두 봉인하였다. 어디 한번 재주를 부려볼 테면 부려 보거라."
문지기가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자 당황한 나래는 어깨에서 떨어질 것 같은 강아지가 된 솔이를 얼른 품에 안고, 바닥에 있던 병아리 초코까지 끌어안았다.
어느새 나래의 품에는 새끼 강아지, 새끼 고양이, 병아리까지 셋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어서 돌려놔 주십시오."
나래의 말에 솔이가 나서 말했다.
"아씨,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면 문지기의 힘이 절로 풀릴 것이어요."
솔이의 말에 나래는 솔이를 내려다보았다.
"아, 그래? 그래, 그럼 알았어."
그때 아토가 걱정스레 물었다.
"무리하지 마. 우린 지금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나래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아요. 해낼 수 있어요."
이어 자기 밑에 있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돈이 필요해. 넌 저곳을 지나갈 수 있잖아. 돈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봐."
잠시 그대로 서 있는데, 느닷없이 그림자가 대답을 했다.
- 나 더러 저 무서운 곳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할 곳이야."
- 난 싫어. 그걸 왜 내가 해야 돼?
"니 도움이 필요해. 날 도와줘."
- 싫어, 무서워.
"부탁이야. 나래야."
- ...
나래가 간곡하게 말하자, 잠시 말이 없던 그림자가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쪽에 서 있던 문지기는 나래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모습에 의아해 했지만, 나래의 희미한 그림자가 어둠을 뚫고 문을 지나가는 것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잠시 뒤 다시 돌아온 그림자는 나래의 발밑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말했다.
- 저 문지기 오른쪽 벽 뒤에 보따리가 있는데, 거기에 망자들로부터 받은 돈이 잔뜩 있어.
"어디쯤이야?"
- 보여줄게.
그러자 나래의 머릿속에 그림자가 보고 온 돈 봇따리가 문 너머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이 비쳤다.
"오... 너 이런 능력도 있구나."
- 나는 너야, 너는 나고.
"고마워."
나래가 방긋이 웃더니, 품 안에 셋을 한쪽 손으로 옮기고, 허리춤에 있는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돈 나와라, 뚝딱!"
나래가 땅바닥을 도깨비방망이로 내려치자, 그곳에 엽전같이 생긴 돈이 우르르 생겨났다.
"아이고, 너무 많다."
나래가 허겁지겁 돈을 챙겨들자, 아토가 말했다.
"저승 문은 열두 개야, 넉넉히 필요해."
"아, 그래요?"
나래는 돈들을 모두 갈무리한 뒤, 그중 엽전 두 개를 문지기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있어요. 인정."
문지기는 놀란 표정으로 엽전 두 개를 받아 들고는, 이내 히죽 거리듯 웃으며 말했다.
"사람 치고는 제법 재주가 있구나."
그러더니, 문지기가 거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드디어 저승전의 첫 문이 열리고, 그 안의 풍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저 너머에 보이는 또 다른 커다란 문이 두 번째 관문일 것이다.
그 앞은 마찬가지로 문지기가 지키고 서 있었다. 나래는 그녀를 바라보며 힘껏 발을 내디뎠다.
이제 인정은 충분할 만큼 있으니, 열두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래가 열두 개의 저승문을 모두 통과하고 났을 때, 그녀의 수중에는 고작 엽전 세 개만 남아 있었다.
"휴... 다행히 부족하진 않았네요."
나래는 남은 세 개의 엽전을 주머니에 넣고, 아토와 초코, 솔이를 품에 꼭 안은 체 저승전의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큼지막한 원형의 광장 너머에 검게 장식된 큼지막한 의자가 있고, 거기에는 꽤나 젊고 준수해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색에 금빛 휘장으로 장식된 옷이었으나,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검소해 보였다.
온통 검은색 투성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온화한 미소를 지닌 체 걸어 들어오는 나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래는 다가가 그에게 인사를 해 보였다.
언듯 느껴지는 그의 기품에서, 필시 그가 대별왕일 거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대별왕 전하. 저는..."
나래가 말을 하려는데, 그 젊은 남자, 대별왕이 답했다.
"총명 부인께서 보내온 것이냐?"
나래는 대별왕이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는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예, 맞습니다."
"홍저왕에게 곤란을 겪은 모양이더구나."
"예... 맞습니다. 제발... 백하도령님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대별왕은 인자한 표정으로 나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내게 혹 전해줄 것이 있지 않느냐?"
나래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이 "아!" 하더니 품 안에서 총명부인이 준 서찰을 꺼내었다.
"이것은... 총명부인께서 전해달라 하신 것이옵니다."
그때 누군가 나래에게 다가왔다.
붉은색 곤룡포를 입고 서슬 퍼런 눈을 가져, 살짝만 봐도 왠지 무서운 이였다.
그는 머리에는 왕관 같은 것을 쓰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를 처음 보았다면, 그가 대별왕인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나래의 손에 든 서찰을 받아 들고는 대별왕에게 다가가 전해주었다.
대별왕은 서찰을 받아 들고 그것을 펴 보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겠다."
대별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 옆에 놓여있는 작은 종을 집어 들어 왕관을 쓴 이에게 내밀었다.
"염라, 이 종을 저 아이에게 주거라."
염라는 대별왕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주저했다.
"과한 보답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다. 괜찮으니 이것을 주거라."
염라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대별왕이 내민 종을 받든 후에, 나래에게 다가와 내밀었다.
나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건네는 자그마한 종을 받아 들자, 대별왕이 말했다.
"그것은 내 힘이 담긴 종이다. 가서 홍저왕 앞에서 그 종을 흔들면, 홍저왕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래는 그 말에 기쁜 표정이 되어 황급히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나래 앞에 있는 염라가 경고하듯 말했다.
"홍저왕 뿐이 아니라, 지상에 모든 요괴와 도깨비들이 그 종의 소리를 들으면 두려워 벌벌 떨 것이니, 각별히 주의하여 사용하고, 다 쓰고 나면 백하도령에게 주도록 하거라."
"예, 꼭 그러겠습니다."
나래는 잠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 있자, 염라가 다시 물었다.
"뭘 그러고 서 있는 것이냐? 볼일을 다 보았으면 서둘러 갈 것이지."
염라의 핀잔에, 나래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금 대별왕과 염라에게 인사를 했다.
"그,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래는 인사를 하고 막 돌아서려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염라를 보며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 이분들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 주시면 안 될까요?"
나래가 품 안의 아토와 초코, 솔이를 내밀며 말하자, 염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안된다. 그들은 이곳 저승 땅을 나가면 자연스레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니. 감히 요괴인 주제에 저승전까지 들어온 것만으로도 큰 벌을 받아 마땅하나, 특별히 봐주는 것이다, 어서 돌아가거라."
냉담한 염라의 대답에, 나래는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나래는 벌써부터 저승전 다리 너머에 그슨대와 망령 무리가 걱정이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저승전의 첫 입구로 나오게 되었다.
예의 문지기는 여전히 거만한 표정으로 떠나가는 자신을 보고 있었고, 나래는 그런 문지기를 힐끔 돌아보고는 왔던 길로 돌아갔다.
저승전 앞 강물은 여전히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너머에는 그슨대들이 수도 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길 어떻게 지나가지?"
나래는 걱정스레 그 풍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갔다가는 네 영혼이 산산이 찢겨 나갈 게야."
아토가 걱정스레 하는 말에, 나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대체 이곳을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총명부인의 신발과 도깨비방망이가 있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총명부인이 줬던 주머니 세 개가 생각난 나래는, 그걸 써볼까 하는 생각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그때 나래의 귀에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꽤나 거만한 표정을 하고 있고, 산만한 덩치를 가진 남자였는데, 다가오는 나래와 일행을 보더니 대뜸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산 사람이 예까지는 무슨 일이냐? 더군다나, 요괴놈들이 겁도 없이 따라오다니..."
나래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저는 총명부인의 서찰을 가지고 대별왕님을 뵈러 왔습니다. 대별왕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문지기 남자는 나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총명부인?"
"그렇습니다. 제게 총명부인께서 주신 서찰이 있습니다. 부디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문지기는 나래의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흥, 총명부인이든 천계금왕이든 난 모른다. 인정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다."
나래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인정...이요?"
그러자 품에 있던 아토가 나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망자의 혼이 저승으로 들어갈 때 저승사자에게 길을 인도해주는 대가로 주는 돈을 인정이라 한다."
나래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돈이라구요? 제가 지금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나래의 표정을 본 아토가 고개를 들어 문지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봐, 적당히 하자고. 그건 망자들이 내는 돈 아냐? 이 아이는 엄연히 살아있다고."
그러자 문지기가 아토를 노려보았다.
"오호라, 요괴놈들이 지 분수를 모르고 나서는 게로구나.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감히..."
문지기가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꽉 쥐어 보이자, 순간 아토의 몸이 스르륵 작아졌다.
이내 아기 고양이가 되어버린 아토는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고, 나래 역시 놀라 당황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뒤이어 이번에는 초코가 주르륵 작아지더니 노란 병아리가 되어버렸다.
다음으로 나래의 어깨에 앉아 반딧불 모습을 하고 있던 솔이는, 스르륵 커지더니 자그마한 강아지가 되어 버렸다.
"네놈들의 힘을 모두 봉인하였다. 어디 한번 재주를 부려볼 테면 부려 보거라."
문지기가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자 당황한 나래는 어깨에서 떨어질 것 같은 강아지가 된 솔이를 얼른 품에 안고, 바닥에 있던 병아리 초코까지 끌어안았다.
어느새 나래의 품에는 새끼 강아지, 새끼 고양이, 병아리까지 셋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어서 돌려놔 주십시오."
나래의 말에 솔이가 나서 말했다.
"아씨,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면 문지기의 힘이 절로 풀릴 것이어요."
솔이의 말에 나래는 솔이를 내려다보았다.
"아, 그래? 그래, 그럼 알았어."
그때 아토가 걱정스레 물었다.
"무리하지 마. 우린 지금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나래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아요. 해낼 수 있어요."
이어 자기 밑에 있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돈이 필요해. 넌 저곳을 지나갈 수 있잖아. 돈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봐."
잠시 그대로 서 있는데, 느닷없이 그림자가 대답을 했다.
- 나 더러 저 무서운 곳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할 곳이야."
- 난 싫어. 그걸 왜 내가 해야 돼?
"니 도움이 필요해. 날 도와줘."
- 싫어, 무서워.
"부탁이야. 나래야."
- ...
나래가 간곡하게 말하자, 잠시 말이 없던 그림자가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쪽에 서 있던 문지기는 나래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모습에 의아해 했지만, 나래의 희미한 그림자가 어둠을 뚫고 문을 지나가는 것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잠시 뒤 다시 돌아온 그림자는 나래의 발밑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말했다.
- 저 문지기 오른쪽 벽 뒤에 보따리가 있는데, 거기에 망자들로부터 받은 돈이 잔뜩 있어.
"어디쯤이야?"
- 보여줄게.
그러자 나래의 머릿속에 그림자가 보고 온 돈 봇따리가 문 너머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이 비쳤다.
"오... 너 이런 능력도 있구나."
- 나는 너야, 너는 나고.
"고마워."
나래가 방긋이 웃더니, 품 안에 셋을 한쪽 손으로 옮기고, 허리춤에 있는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돈 나와라, 뚝딱!"
나래가 땅바닥을 도깨비방망이로 내려치자, 그곳에 엽전같이 생긴 돈이 우르르 생겨났다.
"아이고, 너무 많다."
나래가 허겁지겁 돈을 챙겨들자, 아토가 말했다.
"저승 문은 열두 개야, 넉넉히 필요해."
"아, 그래요?"
나래는 돈들을 모두 갈무리한 뒤, 그중 엽전 두 개를 문지기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있어요. 인정."
문지기는 놀란 표정으로 엽전 두 개를 받아 들고는, 이내 히죽 거리듯 웃으며 말했다.
"사람 치고는 제법 재주가 있구나."
그러더니, 문지기가 거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드디어 저승전의 첫 문이 열리고, 그 안의 풍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저 너머에 보이는 또 다른 커다란 문이 두 번째 관문일 것이다.
그 앞은 마찬가지로 문지기가 지키고 서 있었다. 나래는 그녀를 바라보며 힘껏 발을 내디뎠다.
이제 인정은 충분할 만큼 있으니, 열두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래가 열두 개의 저승문을 모두 통과하고 났을 때, 그녀의 수중에는 고작 엽전 세 개만 남아 있었다.
"휴... 다행히 부족하진 않았네요."
나래는 남은 세 개의 엽전을 주머니에 넣고, 아토와 초코, 솔이를 품에 꼭 안은 체 저승전의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큼지막한 원형의 광장 너머에 검게 장식된 큼지막한 의자가 있고, 거기에는 꽤나 젊고 준수해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색에 금빛 휘장으로 장식된 옷이었으나,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검소해 보였다.
온통 검은색 투성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온화한 미소를 지닌 체 걸어 들어오는 나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래는 다가가 그에게 인사를 해 보였다.
언듯 느껴지는 그의 기품에서, 필시 그가 대별왕일 거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대별왕 전하. 저는..."
나래가 말을 하려는데, 그 젊은 남자, 대별왕이 답했다.
"총명 부인께서 보내온 것이냐?"
나래는 대별왕이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는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예, 맞습니다."
"홍저왕에게 곤란을 겪은 모양이더구나."
"예... 맞습니다. 제발... 백하도령님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대별왕은 인자한 표정으로 나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내게 혹 전해줄 것이 있지 않느냐?"
나래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이 "아!" 하더니 품 안에서 총명부인이 준 서찰을 꺼내었다.
"이것은... 총명부인께서 전해달라 하신 것이옵니다."
그때 누군가 나래에게 다가왔다.
붉은색 곤룡포를 입고 서슬 퍼런 눈을 가져, 살짝만 봐도 왠지 무서운 이였다.
그는 머리에는 왕관 같은 것을 쓰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를 처음 보았다면, 그가 대별왕인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나래의 손에 든 서찰을 받아 들고는 대별왕에게 다가가 전해주었다.
대별왕은 서찰을 받아 들고 그것을 펴 보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겠다."
대별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 옆에 놓여있는 작은 종을 집어 들어 왕관을 쓴 이에게 내밀었다.
"염라, 이 종을 저 아이에게 주거라."
염라는 대별왕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주저했다.
"과한 보답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다. 괜찮으니 이것을 주거라."
염라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대별왕이 내민 종을 받든 후에, 나래에게 다가와 내밀었다.
나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건네는 자그마한 종을 받아 들자, 대별왕이 말했다.
"그것은 내 힘이 담긴 종이다. 가서 홍저왕 앞에서 그 종을 흔들면, 홍저왕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래는 그 말에 기쁜 표정이 되어 황급히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나래 앞에 있는 염라가 경고하듯 말했다.
"홍저왕 뿐이 아니라, 지상에 모든 요괴와 도깨비들이 그 종의 소리를 들으면 두려워 벌벌 떨 것이니, 각별히 주의하여 사용하고, 다 쓰고 나면 백하도령에게 주도록 하거라."
"예, 꼭 그러겠습니다."
나래는 잠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 있자, 염라가 다시 물었다.
"뭘 그러고 서 있는 것이냐? 볼일을 다 보았으면 서둘러 갈 것이지."
염라의 핀잔에, 나래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금 대별왕과 염라에게 인사를 했다.
"그,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래는 인사를 하고 막 돌아서려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염라를 보며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 이분들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 주시면 안 될까요?"
나래가 품 안의 아토와 초코, 솔이를 내밀며 말하자, 염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안된다. 그들은 이곳 저승 땅을 나가면 자연스레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니. 감히 요괴인 주제에 저승전까지 들어온 것만으로도 큰 벌을 받아 마땅하나, 특별히 봐주는 것이다, 어서 돌아가거라."
냉담한 염라의 대답에, 나래는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나래는 벌써부터 저승전 다리 너머에 그슨대와 망령 무리가 걱정이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저승전의 첫 입구로 나오게 되었다.
예의 문지기는 여전히 거만한 표정으로 떠나가는 자신을 보고 있었고, 나래는 그런 문지기를 힐끔 돌아보고는 왔던 길로 돌아갔다.
저승전 앞 강물은 여전히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너머에는 그슨대들이 수도 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길 어떻게 지나가지?"
나래는 걱정스레 그 풍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갔다가는 네 영혼이 산산이 찢겨 나갈 게야."
아토가 걱정스레 하는 말에, 나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대체 이곳을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총명부인의 신발과 도깨비방망이가 있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총명부인이 줬던 주머니 세 개가 생각난 나래는, 그걸 써볼까 하는 생각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그때 나래의 귀에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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