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3
앞장서 달리는 말위에 세자와 수현, 그리고 조세춘과 소연이 있고, 그 뒤로 어영위의 병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말들을 재촉하여 달려온 이들은, 이윽고 어느 커다란 대궐집 앞에 이르렀다.
말이 멈춰 서자마자 일제히 내려 집안으로 들어가려 대문으로 향하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세자와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십시오."
그들 중 수장인 듯 한 이가 막아서며 말하니, 세자의 뒤에 있던 수현이 나서 버럭 소리쳤다.
"네 이놈! 세자 저하시다. 예를 갖추거라."
그러자 집앞을 지키던 수장과 수하들이 일제히 놀란 표정으로 고개 숙여 예를 갖추었다.
"비켜라, 안영군을 만나야겠다."
세자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수장이 다시 막아서며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하, 아니되옵니다. 대군 마마께서 어느 누구도 들이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네 이놈! 나는 이 나라의 국본이다. 네놈이 감히 지금 나를 막아선 것이냐?"
수장은 세자의 말에 당혹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수현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하명하십시오, 한놈도 남겨두지 않고, 참할 것입니다."
수현이 검집에서 검을 살짝 빼내자, 검의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장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얼른 물러서며 말했다.
"모두 물러서라."
그러자 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좌우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었다.
세자는 서둘러 대문으로 걸어가 직접 문을 양손으로 밀어 활짝 열었다.
그리고 들어섬과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안영군!"
마침 마당 한가운데, 연희를 앉혀두고 그녀 앞에 서 있던 안영군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막 들어선 세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세자의 눈에, 앉아있는 연희 뒷모습이 들어왔다.
"네 이노옴!"
세자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며, 안영군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손에 있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오며, 폭발하듯 살기를 뿜어냈다.
안영군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 체 멍하니 서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눈에 세자의 칼이 높게 치켜 올라갔다가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칼날이 거침없이 안영군을 향해 내려쳐지는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마당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세자의 칼은 안영군의 지척 앞에서 멈춰 섰다.
세자의 앞에, 재빨리 달려든 수현이, 간신히 세자의 칼을 막아선 것이다.
"저하!'
수현이 세자를 만류하듯 소리치자, 세자가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부릅뜨고 안영군을 노려보고 있었고, 안영군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 앉았다.
이어 세자가 고개를 돌려 연희를 보았다.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니 세자의 마음이 아려왔다.
"당장 풀어라!"
세자의 말에 어영위 병사들이 달려와서, 칼로 연희를 묶은 밧줄을 잘라냈다.
"저하..."
연희의 울먹거리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세자가 무너지듯 연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연희는 세자의 품에 안기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면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 뒤에 있던 소연의 눈에 안영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전에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겁에 질린 안영군 모습을 보니 의아했다가,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저.... 저건..., 어찌 저 물건을..."
소연의 당황스런 목소리에, 그제야 어느정도 마음이 진정된 연희가 얼른 세자에게 말했다.
"제... 제 칼이 안영군 마마에게 있습니다."
"칼?"
세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고는 주저앉은 안영군을 돌아보았다.
이어 그의 손에 들린 짧은 단검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그 사이 바닥에 떨어진 검집을 소연이 집어 들었다.
"그것은 연희의 물건 이렸다?"
세자가 엄중한 목소리로 안영군을 다그치자, 안영군이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예, 그, 그렇습니다."
"이리 내놓거라."
세자가 손을 내밀자, 안영군이 얼른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공손히 세자의 손위에 단검을 올려놓았다.
단검이 손위에 올려지자, 세자는 그 단검에게서 차디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의아한 느낌에 단검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으니, 소연이 곁으로 다가와 검집을 내밀었다.
"저하, 이것이 그 검의 검집이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집을 받아 검을 넣으려 하자, 소연이 만류하듯 말했다.
"저하. 잠시 기다리십시오."
어찌그러냐는듯 묻는 눈빛으로 바라보니, 소연이 말을 이었다.
"이곳을 나갈 때까지만, 잠시 그대로 두셔 주십시오."
세자는 사유를 되물으려다 주위를 의식하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칼을 손에 꼭 쥐었다.
"네가 벌린 일에 대해 이실직고를 해야 할 것이다."
세자의 차가운 눈빛과 싸늘한 목소리에 안영군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예, 저하.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다시 예전 겁 많은 안영군의 모습을 보이니, 세자는 오히려 의아해졌다.
이에 세자가 고개를 돌려 소연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물으니, 이를 알아본 소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세자의 손에 들린 단검에 눈길을 주었고, 세자는 자신의 손에 들린 단검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세자가 안영군을 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네놈의 잘못을 시인하는 증서를 쓰고 뉘우친다면, 내 오늘 일은 더 묻지 않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내 지금 당장 이 칼로 단죄할 것이다."
서슬 퍼런 세자의 말에 안영군이 얼굴도 들지못하고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수하들이 재빨리 종이와 먹, 붓을 가져다주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종이에 글을 쓴 뒤, 세자에게 올리니, 이를 받아 든 세자가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네가 그렇듯 네 죄를 인정하니, 이번만은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갈 것이나, 다시 이일을 거론하거나, 또다시 이와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저하..."
세자는 주위를 한번 살핀 뒤, 연희를 데리고 먼저 밖으로 향했고, 그 뒤를 소연과 수현, 조세춘이 수하들과 함께 뒤따랐다.
밖으로 나오며 세자가 검을 검집 안에 넣자, 소연이 서둘러 말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세자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연희와 함께 말위에 올랐다.
"가자!"
세자가 먼저 출발하자 남은 일행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모두 떠나 고요함도 잠시 대문이 거칠게 열리며 안영군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미 세자 일행이 떠나가고 난 뒤임을 안 안영군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젠장!"
크게 소리치던 안영군은 씩씩 거리고 있었다.
"이런 병신 같은 것들을 봤나, 세자를 그냥 보냈단 말이냐?"
그가 문 앞을 지키는 병사들을 보며 소리치니, 다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영군이 그들 중 수장인 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네놈은 대체 무얼 한 것이냐?"
안영군의 물음에 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하, 하오나... 세자 저하를 어찌..."
체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안영군은 그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잡아 빼 들었다.
"어, 어찌..."
그는 자신의 칼을 안영군이 빼들자 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미처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안영군은 사정없이 그를 베어버렸다.
"컥...."
수장은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져 꿈틀거리다가, 이내 숨이 멎은 듯 멈춰 버렸고, 이 모습을 본 병사들은 모두 겁에 질려 고개를 숙였다.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제 밥값 못하는 녀석들은 모두 내 손으로 쳐 죽일 것이니..."
이어 안영군은 피 묻은 칼을 툭 던져 버리고는 세자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필코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한편, 궁궐에 당도한 세자 일행은 곧바로 동궁전으로 향했고, 동궁전 앞에 멈춰 선 세자가 연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수현이 걱정스러운 듯 나서 말했다.
"저하, 연희는 다시 의금부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하가 데리고 계시면 안됩니다."
세자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재촉하지 말거라."
이어 세자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연희를 바라보았다. 연희는 오히려 세자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도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는 고개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지켜 주셨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지 않습니까?"
세자는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데리고 있을 명분이 아직 없었다.
"이 칼은 무엇이냐?"
세자가 수중에 있는 파사신검을 들어 보이며 묻자, 소연이 나서며 말했다.
"그것은 파사신검이라는 물건으로, 주술에 대해 강한 억제력을 가진 스승님의 신물입니다."
그러자 세자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런데 어찌 이것을 연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냐?"
세자의 물음에 소연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하려는 찰나, 연희가 얼른 나서 대답했다.
"일전에 제게 주며 말하기를, 저를 지켜줄 것이라 했습니다."
연희의 대답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소연을 보며 말했다.
"고맙구나. 네가 그렇게 신경 써주고 있었구나. 오늘... 안영군의 태도는, 이 칼 때문인 것이냐?"
연희의 대답에 잠시 망설이던 소연이 대답했다.
"예, 파사신검의 기운이 너무 강맹하여, 안영군을 물들인 언령들이 잠시 떨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검의 검집은 파사신검의 기운을 봉인하는 결계 주술이 걸려 있습니다. 검을 검집 안에 넣거나, 혹은 그 장소에서 멀어지게 되면, 언령들이 다시 달라붙을 것이기에... 잠시 기다리시라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연희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더욱이..."
세자가 품 안에 있던 안영군의 증서를 꺼내 들었다.
"이것까지 내 손안에 있으니, 이 문제로 안영군이 성급하게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자 옆에 조용히 서있던 조세춘이 말했다.
"저들이 상식적인 행동으로 우리와 맞선다면 이리 힘들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들을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조세춘의 말에 세자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긴 하지."
이어 연희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현에게 말했다.
"연희를 잠시나마, 이곳에서 쉬게한 뒤 보내겠다"
연희가 고개를 들어 세자를 쳐다보자,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수현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허먼, 물러갔다가 한 시진 뒤에 연희를 데리러 오겠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모두 조용히 인사를 올린 뒤 그둘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갔다.
말들을 재촉하여 달려온 이들은, 이윽고 어느 커다란 대궐집 앞에 이르렀다.
말이 멈춰 서자마자 일제히 내려 집안으로 들어가려 대문으로 향하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세자와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십시오."
그들 중 수장인 듯 한 이가 막아서며 말하니, 세자의 뒤에 있던 수현이 나서 버럭 소리쳤다.
"네 이놈! 세자 저하시다. 예를 갖추거라."
그러자 집앞을 지키던 수장과 수하들이 일제히 놀란 표정으로 고개 숙여 예를 갖추었다.
"비켜라, 안영군을 만나야겠다."
세자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수장이 다시 막아서며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하, 아니되옵니다. 대군 마마께서 어느 누구도 들이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네 이놈! 나는 이 나라의 국본이다. 네놈이 감히 지금 나를 막아선 것이냐?"
수장은 세자의 말에 당혹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수현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하명하십시오, 한놈도 남겨두지 않고, 참할 것입니다."
수현이 검집에서 검을 살짝 빼내자, 검의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장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얼른 물러서며 말했다.
"모두 물러서라."
그러자 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좌우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었다.
세자는 서둘러 대문으로 걸어가 직접 문을 양손으로 밀어 활짝 열었다.
그리고 들어섬과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안영군!"
마침 마당 한가운데, 연희를 앉혀두고 그녀 앞에 서 있던 안영군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막 들어선 세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세자의 눈에, 앉아있는 연희 뒷모습이 들어왔다.
"네 이노옴!"
세자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며, 안영군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손에 있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오며, 폭발하듯 살기를 뿜어냈다.
안영군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 체 멍하니 서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눈에 세자의 칼이 높게 치켜 올라갔다가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칼날이 거침없이 안영군을 향해 내려쳐지는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마당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세자의 칼은 안영군의 지척 앞에서 멈춰 섰다.
세자의 앞에, 재빨리 달려든 수현이, 간신히 세자의 칼을 막아선 것이다.
"저하!'
수현이 세자를 만류하듯 소리치자, 세자가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부릅뜨고 안영군을 노려보고 있었고, 안영군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 앉았다.
이어 세자가 고개를 돌려 연희를 보았다.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니 세자의 마음이 아려왔다.
"당장 풀어라!"
세자의 말에 어영위 병사들이 달려와서, 칼로 연희를 묶은 밧줄을 잘라냈다.
"저하..."
연희의 울먹거리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세자가 무너지듯 연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연희는 세자의 품에 안기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면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 뒤에 있던 소연의 눈에 안영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전에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겁에 질린 안영군 모습을 보니 의아했다가,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저.... 저건..., 어찌 저 물건을..."
소연의 당황스런 목소리에, 그제야 어느정도 마음이 진정된 연희가 얼른 세자에게 말했다.
"제... 제 칼이 안영군 마마에게 있습니다."
"칼?"
세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고는 주저앉은 안영군을 돌아보았다.
이어 그의 손에 들린 짧은 단검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그 사이 바닥에 떨어진 검집을 소연이 집어 들었다.
"그것은 연희의 물건 이렸다?"
세자가 엄중한 목소리로 안영군을 다그치자, 안영군이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예, 그, 그렇습니다."
"이리 내놓거라."
세자가 손을 내밀자, 안영군이 얼른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공손히 세자의 손위에 단검을 올려놓았다.
단검이 손위에 올려지자, 세자는 그 단검에게서 차디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의아한 느낌에 단검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으니, 소연이 곁으로 다가와 검집을 내밀었다.
"저하, 이것이 그 검의 검집이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집을 받아 검을 넣으려 하자, 소연이 만류하듯 말했다.
"저하. 잠시 기다리십시오."
어찌그러냐는듯 묻는 눈빛으로 바라보니, 소연이 말을 이었다.
"이곳을 나갈 때까지만, 잠시 그대로 두셔 주십시오."
세자는 사유를 되물으려다 주위를 의식하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칼을 손에 꼭 쥐었다.
"네가 벌린 일에 대해 이실직고를 해야 할 것이다."
세자의 차가운 눈빛과 싸늘한 목소리에 안영군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예, 저하.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다시 예전 겁 많은 안영군의 모습을 보이니, 세자는 오히려 의아해졌다.
이에 세자가 고개를 돌려 소연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물으니, 이를 알아본 소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세자의 손에 들린 단검에 눈길을 주었고, 세자는 자신의 손에 들린 단검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세자가 안영군을 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네놈의 잘못을 시인하는 증서를 쓰고 뉘우친다면, 내 오늘 일은 더 묻지 않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내 지금 당장 이 칼로 단죄할 것이다."
서슬 퍼런 세자의 말에 안영군이 얼굴도 들지못하고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수하들이 재빨리 종이와 먹, 붓을 가져다주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종이에 글을 쓴 뒤, 세자에게 올리니, 이를 받아 든 세자가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네가 그렇듯 네 죄를 인정하니, 이번만은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갈 것이나, 다시 이일을 거론하거나, 또다시 이와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저하..."
세자는 주위를 한번 살핀 뒤, 연희를 데리고 먼저 밖으로 향했고, 그 뒤를 소연과 수현, 조세춘이 수하들과 함께 뒤따랐다.
밖으로 나오며 세자가 검을 검집 안에 넣자, 소연이 서둘러 말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세자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연희와 함께 말위에 올랐다.
"가자!"
세자가 먼저 출발하자 남은 일행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모두 떠나 고요함도 잠시 대문이 거칠게 열리며 안영군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미 세자 일행이 떠나가고 난 뒤임을 안 안영군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젠장!"
크게 소리치던 안영군은 씩씩 거리고 있었다.
"이런 병신 같은 것들을 봤나, 세자를 그냥 보냈단 말이냐?"
그가 문 앞을 지키는 병사들을 보며 소리치니, 다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영군이 그들 중 수장인 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네놈은 대체 무얼 한 것이냐?"
안영군의 물음에 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하, 하오나... 세자 저하를 어찌..."
체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안영군은 그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잡아 빼 들었다.
"어, 어찌..."
그는 자신의 칼을 안영군이 빼들자 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미처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안영군은 사정없이 그를 베어버렸다.
"컥...."
수장은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져 꿈틀거리다가, 이내 숨이 멎은 듯 멈춰 버렸고, 이 모습을 본 병사들은 모두 겁에 질려 고개를 숙였다.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제 밥값 못하는 녀석들은 모두 내 손으로 쳐 죽일 것이니..."
이어 안영군은 피 묻은 칼을 툭 던져 버리고는 세자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필코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한편, 궁궐에 당도한 세자 일행은 곧바로 동궁전으로 향했고, 동궁전 앞에 멈춰 선 세자가 연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수현이 걱정스러운 듯 나서 말했다.
"저하, 연희는 다시 의금부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하가 데리고 계시면 안됩니다."
세자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재촉하지 말거라."
이어 세자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연희를 바라보았다. 연희는 오히려 세자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도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는 고개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지켜 주셨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지 않습니까?"
세자는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데리고 있을 명분이 아직 없었다.
"이 칼은 무엇이냐?"
세자가 수중에 있는 파사신검을 들어 보이며 묻자, 소연이 나서며 말했다.
"그것은 파사신검이라는 물건으로, 주술에 대해 강한 억제력을 가진 스승님의 신물입니다."
그러자 세자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런데 어찌 이것을 연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냐?"
세자의 물음에 소연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하려는 찰나, 연희가 얼른 나서 대답했다.
"일전에 제게 주며 말하기를, 저를 지켜줄 것이라 했습니다."
연희의 대답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소연을 보며 말했다.
"고맙구나. 네가 그렇게 신경 써주고 있었구나. 오늘... 안영군의 태도는, 이 칼 때문인 것이냐?"
연희의 대답에 잠시 망설이던 소연이 대답했다.
"예, 파사신검의 기운이 너무 강맹하여, 안영군을 물들인 언령들이 잠시 떨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검의 검집은 파사신검의 기운을 봉인하는 결계 주술이 걸려 있습니다. 검을 검집 안에 넣거나, 혹은 그 장소에서 멀어지게 되면, 언령들이 다시 달라붙을 것이기에... 잠시 기다리시라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연희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더욱이..."
세자가 품 안에 있던 안영군의 증서를 꺼내 들었다.
"이것까지 내 손안에 있으니, 이 문제로 안영군이 성급하게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자 옆에 조용히 서있던 조세춘이 말했다.
"저들이 상식적인 행동으로 우리와 맞선다면 이리 힘들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들을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조세춘의 말에 세자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긴 하지."
이어 연희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현에게 말했다.
"연희를 잠시나마, 이곳에서 쉬게한 뒤 보내겠다"
연희가 고개를 들어 세자를 쳐다보자,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수현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허먼, 물러갔다가 한 시진 뒤에 연희를 데리러 오겠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모두 조용히 인사를 올린 뒤 그둘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갔다.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