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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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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1.61분

8화 - #8


뜨거워 보이는 뚝배기 그릇에 양껏 담긴 뼈와 고기를, 세희는 실망감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옆 테이블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귀에 바로 들어와 박힐 것만 같은 떠들썩한 식당의 원형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세희와 수호 앞에는 뼈해장국이 놓여있었다.

반찬은 오직 하나, 먹음직스러운 깍두기뿐이었다.

"뭐해? 뼈해장국 처음 봐?"

수호는 태연히 말하며, 뼈에서 살코기를 정성스럽게 발라내고 있었다.

"아~~ 니, 내가 맛집을 데려다 달라고 한 거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세희가 궁시렁거려도, 눈을 빛내며 뼈를 발라내기에 한창인 수호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입술을 삐죽거리던 세희는 포기하고 마지못한 듯 수저와 젓가락을 들어 뼈해장국을 향해 손을 움직이다 실망스런 한숨이 입술사이로 힘없이 흘러 나와 버렸다.

이어 화가 난 듯 수저와 젓가락을 '탁'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뭐 엄청 대단한 곳에 데려다 달랬나? 그냥 좀 어? 분위기 좋고, 어? 아,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수호가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 집이 얼마나 맛집인데? 인스타 인플루언서 이런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오는 그런 곳이야.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감자탕집이거든."

"아, 네. 아이고, 대단한 집을 몰라 뵈었습니다."

수호의 말에 세희가 빈정거림으로 받아치자, 수호는 세희를 힐끗 흘겨보고는 다시 열심히 뼈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서운함으로 세모꼴을 한 세희의 눈에 뼈통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뼈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골이 아주 수준급이시네요?"

세희의 비아냥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내가 이 집 단골이야."

"아~ 단골~?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호가 "다됐다." 하더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세희가 놀라 물어볼 겨를도 없이, 세희 앞에 있는 그릇을 가져가고 자신의 그릇을 세희 앞에 놔주었다.

"먹어. 다 발렸어."

세희는 생각도 못한 수호의 행동에 놀라 눈을 껌뻑 거리며 수호와 자기 앞에 놓인 그릇을 번갈아 보았다.

세희의 시선에도 수호는 태연히 앞에 있던 그릇을 당겨 뼈를 발라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뭐해? 먹으라니까."

수호가 고개를 들어 힐끔 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해도, 왠지 세희는 이전만큼 이곳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슬며시 피어오르는 간질간질한 기분에 괜히 입술을 삐죽거렸다.

첫술을 떠보니, 입맛을 확 자극하는 것이 과연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싶은 생각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 생각보다 맛있네요."

새침한 세희의 대답에 수호는 뼈를 발리다 말고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둘은 말없이 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점 한쪽 벽으로 큼지막하게 설치된 대형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몇 수저 뜨는 동안 나오는 뉴스 화면이 세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어제 새벽 4시경, 화곡동에 위치한 점집에서 불이나, 박수무당 심 씨 1명이 사망하고, 가족 2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화재원인은 현재...

세희는 뉴스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먹다 말고 세희가 갑자기 뉴스에 집중하자, 수호도 세희의 시선을 따라 TV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왜 같은 무당이 죽었다니까, 신경 쓰여서 그래?"

수호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세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순 화재가 아닌 거 같아요."

"그래? 어떻게 알아? TV 너머로도 영혼 같은 게 보이나?"

여전히 진지함이라고는 1도 없는 수호의 물음에, 세희는 그를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냥 직감."

"오~ 직감. 무당의 직감이라..."

"기왕이면 정확하게 '신녀'라고 불러주셨으면 대~단~히 고마울 것 같은데 말이죠?"

수호가 밥을 먹다 말고, 수저로 세희를 가리키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어투! 그거 참~ 그거... 그동안 어디가서 칼안맞고 살아있는게 용하네.."

"아, 예. 그쪽은 아주 수준 높은 고아원 출신이시라, 저랑은 급이 달라 아주 꽃-같은 어투를 쓰시네요."

"꽃...같은... 어감이 어째 수상한데..."

비아냥대는 세희를 향해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던 수호는 픽하고 웃음을 흘렸다. 화는커녕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난 고아원 안 다녔어."

놀란 표정으로 수호를 쳐다보자, 수호는 아무렇지 않게 밥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아주 잠깐 있었어.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삼촌이 데리러 왔거든."

"삼촌이라면?"

"그래, 내가 빌려 쓴 무공의 소유자. 흔치 않은 사람이지. 나도 놀랐어. 현대시대에 무공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했을 거야."

"외삼촌은요? 외삼촌도 있었잖아요."

"외삼촌은 엄마랑 인연을 끊고 살고 있었거든. 호적도 정리한 상태였고. 정확하게는 엄마가 인연을 끊은 거지만."

"삼촌은 뭐하다가 고아원 들어가고 나서야 나타나신 거래요?"

"삼촌? 뭐... 숨어서 무공 수련을 하고 있었나 봐. 은둔 수련이라고 하나? 친인척이라고는 그 두 사람이 전부인데, 한 명은 연락 안 되고, 한 명은 존재 자체가 확인이 안 됐으니. 고아원으로 보내진 거지."

"무공을 쓸 줄 아는 삼촌 곁에 있었으면... 무공 수련도 받았겠네요?"

"쪼금. 재능이 없다나 봐. 뭐 그리 오래 같이 있지도 않았어. 맨날 뭐 복수를 하니 마니 하면서, 밖으로만 나다녔어. 나중에 좀 커서는, 그냥 차라리 고아원에 놔두지 왜 데리고 나왔나, 원망도 했지."

세희는 뭔가 알 것 같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아!" 하더니 말을 이었다.

"화제를 돌려서 까먹어 버렸잖아요. 저 무당... 그냥 죽은 거 같지 않다니깐요."

"그럼?"

"날 찾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그럼 널 찾으면 되지, 엉뚱한 사람을 왜 죽여?"

"일종에... 경고 같은 거 아닐까요?"

"경고?"

"네. 저한테 보내는 경고요."

수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세희 앞에 놓인 뚝배기를 가리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먹어. 먹고 나서 생각하자."

"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호는 마치 예정된 수순 인양 카페로 향했다.

세희는 수호의 뒤를 따라 아무생각없이 커다란 카페 안에 들어서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멍하게 카페안을 쳐다보았다.

분홍분홍하고 블링블링한 색감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마치 동화속 나라에 있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세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남발했다.

"오~와~"

인테리어 때문인지 역시나 카페안 테이블에는 연인 혹은 수다를 떨고있는 여자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그저그런 커피숍으로 데려갈줄 알았는데.....

수호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것 같아 보이는 곳이라 의외다 싶어 주문대로 향하는 수호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세희 자신은 모르겠지만 설렘 혹은 그 비슷한 무엇을 담아서...

주문대로 향한 수호는 뒤에서 느껴지는 세희의 흥분에 슬며시 눈웃음을 한번 짓고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세희를 향해 물었다.

"뭐 마실래?"

"뭐가 맛있어요?"

"뭐 좋아하는데?"

"저... 전 좀 신거 좋아하는데?"

"여기 패션 후르츠 에이드 두 잔 주세요."

수호가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하는 모습을 흘끗 보고는, 세희는 어떤 음료인지 궁금함에 사진이 포함된 메뉴판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주문한 음료의 사진을 찾아내기도 전에, 계산을 마친 수호가 먼저 빈테이블을 찾아 몸을 돌리자, 마지못한 듯 그의 뒤를 따랐다.

수호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세희가 물었다.

"그... 주문한 음료가 뭐라구요?"

"패션 후르츠 에이드?"

"네네... 그게... 무슨 음료인데요?"

"먹어보면 알아."

세희는 눈을 껌뻑거리다가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단것도 좋아하는데...."

"초지일관. 신거 좋아한다며?"

"신 것도 좋고, 단것도 좋고... 커피도 좋아하고..."

"다 좋다는 거야?"

"뭐... 다 좋다는 건 아니긴 한데..."

"그럼 일단 먹어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언제 가져왔는지, 수호의 손에 들려진 벨이 진동소리를 내며 울리자, 수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희도 따라 일어나려 하자, 수호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있어."

수호가 초록빛 음료 두 잔을 들고 와, 그중 하나를 세희 앞에 놓아주며 물었다.

"무당이라면 죽은 사람이랑 대화도 가능한 거 아닌가?"

수호의 물음에 음료를 향한 기대감어린 세희의 시선이 서 있는 수호에게로 향했다.

"뭐... 가능하죠. 소혼술(召魂術)로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서 대화할 수 있죠."

"그럼 그 죽은 무당을 불러내면 되지 않아? 그래서 누가 혹시 널 죽였냐? 물어보면 되잖아?"

수호가 말을 하며, 커다란 빨대의 비닐 포장을 벗겨내 세희의 컵에 하나 꽂아주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그건 좀... 죽은 사람을 불러내려면, 그 사람 사주도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평소에 지니고 있던 물건이나, 머리카락 같은 게 필요해요. 우린 당장 죽은 무당의 이름도 모르잖아요."

"뭐... 그런 거라면 외삼촌 통해서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능은 해요. 아니면..."

세희가 말끝을 흐리자, 수호는 음료를 한 모금 쭉 빨아 마시고는 세희의 마지막 말을 따라 이었다.

"아니면?"

"아니면... 그 장소에 가면 돼요. 죽은 장소. 대게 살해당한 사람의 혼은 죽은 장소에서 방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수호를 쳐다봤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뭐?"

"그 능력을 빌려 쓰는 거요. 능력을 빌리면, 원래 그 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어떻게 돼요?"

그녀의 질문에 수호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능력을 못써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요?"

"뭐랄까... 효율성이 떨어진달까? 예전에 바로 코앞에 있는 사람의 능력을 빌려 써봤는데, 그 사람의 의욕이 엄청 떨어져서 제대로 일을 못하더라고."

"오~ 그럼 그 삼촌은요?"

"삼촌은 나한테 영환사로써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이야. 영환사의 특징을 잘 알고 있어. 그래서인지 몰라도, 삼촌은 거절하는 법을 알아."

"거절이요?"

"응. 일반적인 사람은 거절하지 못하지만, 삼촌처럼 무공 능력이나 탁월한 영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거절하는 게 가능해. 물론 쉽지는 않지만."

"쉽지 않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딱 능력을 빌리려는 그 순간에, 자신의 능력을 빌리려고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거부하는 거거든. 인지하지 못하면, 못한 체로 그냥 빼앗겨 버리니까."

"오~ 신기하네."

수호는 놀랍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세희의 얼굴을 보면서, 음료 한 모금을 마시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봐서는, 넌 별로 신기해할 것 같지 않은데?"

"신기한데?"

"신기 하안~데에?"

세희가 개구지게 씨익 웃어 보였다.

"요! 하려고 했어, 요!"

"야아~ 은근슬쩍 말 놓는다?"

"아니거든요?"

세희가 바로 반박하자, 수호가 질 수 없다는 듯이 받아쳤다.

"맞거든요?"

"아니거든요? 은근 별거 아닌 거가 지고 까칠하게 나오시네요?"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잖아?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태도와 언행을 요구하는 거지."

사뭇 진지한 수호의 태도에 세희가 감탄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네~ 엄청 교양 바르신 행동이시네요."

"아, 그럼! 언행과 태도야 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

"언제부터 이렇게 바른 인물이 되셨을까요?"

비아냥 거리는 세희의 질문에 수호는 여전히 장난스럽고 과장된 태도로 일관했다.

"날 때부터? 타고나는 거지. 누구랑 다르게."

이씨... 세희는 말없이 눈으로 욕하며 수호를 노려봤다.

사나워지는 세희의 표정에도, 수호는 모른척 얄미운 얼굴로 음료를 쭉쭉 빨며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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