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22
그의 꿈에 방문한 여왕은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둘째의 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두컴컴하고 침울한 공간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내 그녀의 눈에,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둘째가 보였다.
둘째의 꿈속 공간이 어째서 이토록 우울한 것인지, 여왕은 왠지 가슴이 아프도록 두근거렸다.
조심스럽게 둘째에게 다가간 여왕은 조금 기대에 찬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현우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둘째가 움찔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얼굴 한가득 놀란 표정을 한 체, 여왕을 보고 놀라 물었다.
"엄마?"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왕에게 다가왔다.
여왕은 그런 현우를 보며 웃음 지었지만, 현우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놀라서 묻는 현우를 보며 엄마가 다독이듯 대답했다.
"꿈이야."
꿈이란 말에 현우는 멈칫하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어쩐지... 엄마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어."
"왜? 엄마라서 실망했어?"
여왕이 농담처럼 건네는 말에, 현우는 피식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내고는 대답했다.
"아니.. 소리가 들려서 놀란 거야. 얼마 만에 듣는 소리인지 모르겠네."
여왕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소리가 들려서 놀랐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엄마는 몰랐지. 실은... 나 소리가 안 들려."
별일 아니란 듯, 태연하게 말하는 현우를 보며 여왕은 가슴이 철렁했다.
"소, 소리가 안 들린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현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그게... 한 6살 때였나? 그때 오른쪽 귀였던가, 안들리더라고, 왼쪽 귀도 뭔가 먹먹한 게 답답하게 들렸었어."
너무 놀란 여왕은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손으로 가슴을 눌러 뛰는 가슴을 진정시켜 보았다.
"왜... 왜 말 안 했어?"
여왕의 물음에 현우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엄마 아빠 맨날 싸우고, 이혼하니 마니 할 때였잖아. 그런 말을 어떻게 해..."
어느새 웃음기가 가신 현우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말 하면... 정말로 엄마 아빠가 이혼할까 봐 무서웠었어. 안 그러길 바랬거든."
"그래서? 그래서 소리가 안 들리는 걸 말 안 했다고? 너... 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현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나름대로는 필사적이었어. 어떻게든 티 안 내려고... 그때부터 사람들 입술 보고 말하는 걸 유추했었던 거 같아. 거의 본능적이었지. 처음부터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어서, 완전히 안 들리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알아들으려 노력했어. 그 덕에 그냥 귀가 어두운 애, 혀 짧은 애 정도로만 알고들 있지."
여왕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죽는 날까지도 현우에게 청각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우의 말대로 가끔 현우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도 그저 무뚝뚝한 성격 때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전화를 잘 안 받는 것도 그저 무신경한 거라고 생각했고,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건 공부를 하지 않아서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건 말을 했어야지. 말을.... 그럼 그때 왜 아빠를 따라간 거야?"
여왕의 물음에 현우는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왜긴... 그때 아빠가 나를 불렀어. 그래서 얼른 따라간 거지."
"엄마도 불렀잖아."
"엄마도 불렀어?"
"엄마도..."
여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빠를 따라가, 아빠의 손을 잡았던 현우를, 그녀는 뒤에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우가 뒤돌아 봤을 때, 여왕은 그저 울고만 있었다.
여왕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럼 너... 전화를 안 받은 것도... 학교에서 가는 전화도, 엄마가 하는 전화도 다 못 받았던 게..."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부분 전화가 오는지도 몰랐고, 안다 하더라도 받을 수가 없었어."
이상했다. 아빠가 연락을 안 받는 것도 그렇지만, 집에 있었을 현우까지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그날 이후에도 가끔 이해가 안 됐던 적이 있었다.
그저, 자신을 미워해 받지 않았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순간, 여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억이 떠올랐다.
눈을 부릅뜨고 언성을 높이며, 현우를 집에서 쫓아내듯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여왕의 눈에서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 그럼... 네 색시도, 그래서..."
현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어 조금 원망스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땐... 솔직히 엄마가 너무 미웠어."
현우의 대답에 여왕은 가슴을 칼로 베는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현우가 결혼할 여자라고 데려온 여자는 청각장애를 가진 여인이었다.
현우와는 달리 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녀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오로지 현우와 수화로만 대화를 했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여왕은 집에 인사 온 그녀를 내쫓았었다.
네가 뭐가 모자라, 저런 병신을 집에 들이냐며 모진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정작 자기 자식이 청각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체.
"그날... 엄마한테 말하려고 했어. 나도... 안 들린다고... 근데... 엄마가 그럴 기회를 주지 않더라고."
여왕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발밑으로 뚝뚝 흘러 떨어졌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 결혼을 하고, 여왕과는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결혼식 사진을 집에 걸어둔 것도, 두 사람이 외로운 결혼식을 올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서야 받을 수 있었다.
"미안하다..."
여왕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여왕 앞에 서 있던 현우는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정말 꿈 맞지? 어쩐지... 너무 사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소리가 들리는 건... 좀 생소하지만..."
여왕이 현우를 바라보니, 현우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래도...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반갑다. 7살인가? 소리를 완전히 못 듣게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여왕은 불쑥 현우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현우야, 미안해, 엄마가 몰라서 너무 미안해."
울며 말하는 여왕을, 오히려 현우가 다독이듯 그녀의 등을 토닥 거렸다.
"괜찮아.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했어. 아무도 모르게. 담임 선생님도, 친구도 몰랐는 걸. 가끔 보는 엄마가 어떻게 알았겠어? 또 엄마는 장사하느라고 바빴잖아."
"내 새끼가... 내 새끼가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애미가 돼서, 지 새끼 아픈 줄도 모르고..."
여왕이 흐느끼며 울자, 현우는 그런 여왕 연신 달래며 토닥거렸다.
"괜찮다니까... 엄마 우리 셋 키우느라 힘들었잖아. 나까지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여왕은 너무 속이 상했다.
자신의 마음에 차는 며느리를 데려오지 않았단 이유로, 그녀는 결혼하는 현우에게 단 한 푼도 보태주지도 않았고,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나중에서야 힘겹게 사는 현우에게 일부의 돈을 보태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탐탁지 않은 것은 여전했다.
"죽는 날까지... 죽는 날까지 말하지 않았어, 왜?"
"미안... 내가 속이 좁았었나 봐. 아내가 엄마를 무서워한다는 핑계로, 나도 안 찾아봤어. 미안해, 엄마."
"아냐... 아냐,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다."
문득 여왕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 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소리는?"
"소리?"
현우가 되물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우리가 왜 소리 이름을 소리로 지었겠어? 소리는 괜찮아. 소리는 잘 들린데."
소리는 현우의 딸 이름이었다.
여왕은 울며 현우의 손을 붙잡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천만다행이야."
"소리도 제법 컸어. 벌써 4학년이야. 아내 덕에 수화도 능숙해."
"미안하다, 애미가 돼서... 찾아도 보고, 손녀 용돈도 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안 찾아간 건데... 미안해 엄마. 엄마가 그렇게..."
현우도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간신히 이어 말했다.
"그렇게... 혼자 외롭게 계시다 갈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나 아니어도, 형도 있고, 현준이도 있고... 내가 아니어도 엄마는 하나도 아쉽지 않을 거라고...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나 봐. 엄마가 그렇게 가고 나서야 알았어. 우리 셋 다 자기 앞가림만 하고 살았다는 걸... 정말 미안해, 엄마."
"왜 안 아쉬워, 왜? 너만 그렇게 아빠한테 보냈다가, 그렇게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시켜서, 엄마가 평생 너한테 미안한 마음 가지고 살았는데, 왜 안 아쉬워, 왜..."
울며 하소연하듯 말하는 여왕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우는 다가와 여왕을 품에 안았다.
"괜찮다니까...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꿈에 까지 와서 하소연하세요. 이제 다 괜찮아. 나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 토끼 같은 마누라에 딸까지 있는데? 나 행복하게 살고 있어. 걱정하지 마."
현우가 습관처럼 여왕의 등을 토닥토닥거리자, 여왕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내가 걱정돼서 죽은 다음에도 이렇게 찾아온 거라면, 걱정도 시킬 만하네?"
현우가 농담처럼 말하니, 여왕이 속상한 듯 그런 현우의 등을 툭하고 쳤다. 그러자 현우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가끔 와요, 올 수 있으면... 가끔 오면... 너무 반가울 것 같은데... 목소리도 들을 수 있고..."
"직장 생활하는 건 힘들지 않아?"
여왕이 몸을 떨어뜨리며 묻는 말에, 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안 힘들겠어? 그런데 어째? 남들보다 조금 더 힘들다고 주저앉을 순 없잖아.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지."
여왕은 너무 속이 상했다.
해준 것도 없이, 현우가 그렇게 고생하며 살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멀쩡한 사람들도 힘들게 살아.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어떻게 사회생활하면서 안 힘들 수 있겠어. 그래도 견딜 만 해, 견딜만하니까 이렇게 사는 거고. 우리 소리 크는 거 보는 재미도 있고.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
현우가 씩씩하고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이어 말했다.
"나 잘하고 있어, 잘할 자신도 있으니까. 믿어. 나 열심히 살게."
여왕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런 여왕을 현우는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울보셨나?"
그 꿈속에서 여왕은, 남은 시간 동안, 그저 울고 또 울었다.
정말 둘째의 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두컴컴하고 침울한 공간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내 그녀의 눈에,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둘째가 보였다.
둘째의 꿈속 공간이 어째서 이토록 우울한 것인지, 여왕은 왠지 가슴이 아프도록 두근거렸다.
조심스럽게 둘째에게 다가간 여왕은 조금 기대에 찬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현우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둘째가 움찔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얼굴 한가득 놀란 표정을 한 체, 여왕을 보고 놀라 물었다.
"엄마?"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왕에게 다가왔다.
여왕은 그런 현우를 보며 웃음 지었지만, 현우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놀라서 묻는 현우를 보며 엄마가 다독이듯 대답했다.
"꿈이야."
꿈이란 말에 현우는 멈칫하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어쩐지... 엄마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어."
"왜? 엄마라서 실망했어?"
여왕이 농담처럼 건네는 말에, 현우는 피식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내고는 대답했다.
"아니.. 소리가 들려서 놀란 거야. 얼마 만에 듣는 소리인지 모르겠네."
여왕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소리가 들려서 놀랐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엄마는 몰랐지. 실은... 나 소리가 안 들려."
별일 아니란 듯, 태연하게 말하는 현우를 보며 여왕은 가슴이 철렁했다.
"소, 소리가 안 들린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현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그게... 한 6살 때였나? 그때 오른쪽 귀였던가, 안들리더라고, 왼쪽 귀도 뭔가 먹먹한 게 답답하게 들렸었어."
너무 놀란 여왕은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손으로 가슴을 눌러 뛰는 가슴을 진정시켜 보았다.
"왜... 왜 말 안 했어?"
여왕의 물음에 현우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엄마 아빠 맨날 싸우고, 이혼하니 마니 할 때였잖아. 그런 말을 어떻게 해..."
어느새 웃음기가 가신 현우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말 하면... 정말로 엄마 아빠가 이혼할까 봐 무서웠었어. 안 그러길 바랬거든."
"그래서? 그래서 소리가 안 들리는 걸 말 안 했다고? 너... 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현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나름대로는 필사적이었어. 어떻게든 티 안 내려고... 그때부터 사람들 입술 보고 말하는 걸 유추했었던 거 같아. 거의 본능적이었지. 처음부터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어서, 완전히 안 들리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알아들으려 노력했어. 그 덕에 그냥 귀가 어두운 애, 혀 짧은 애 정도로만 알고들 있지."
여왕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죽는 날까지도 현우에게 청각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우의 말대로 가끔 현우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도 그저 무뚝뚝한 성격 때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전화를 잘 안 받는 것도 그저 무신경한 거라고 생각했고,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건 공부를 하지 않아서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건 말을 했어야지. 말을.... 그럼 그때 왜 아빠를 따라간 거야?"
여왕의 물음에 현우는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왜긴... 그때 아빠가 나를 불렀어. 그래서 얼른 따라간 거지."
"엄마도 불렀잖아."
"엄마도 불렀어?"
"엄마도..."
여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빠를 따라가, 아빠의 손을 잡았던 현우를, 그녀는 뒤에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우가 뒤돌아 봤을 때, 여왕은 그저 울고만 있었다.
여왕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럼 너... 전화를 안 받은 것도... 학교에서 가는 전화도, 엄마가 하는 전화도 다 못 받았던 게..."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부분 전화가 오는지도 몰랐고, 안다 하더라도 받을 수가 없었어."
이상했다. 아빠가 연락을 안 받는 것도 그렇지만, 집에 있었을 현우까지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그날 이후에도 가끔 이해가 안 됐던 적이 있었다.
그저, 자신을 미워해 받지 않았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순간, 여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억이 떠올랐다.
눈을 부릅뜨고 언성을 높이며, 현우를 집에서 쫓아내듯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여왕의 눈에서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 그럼... 네 색시도, 그래서..."
현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어 조금 원망스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땐... 솔직히 엄마가 너무 미웠어."
현우의 대답에 여왕은 가슴을 칼로 베는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현우가 결혼할 여자라고 데려온 여자는 청각장애를 가진 여인이었다.
현우와는 달리 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녀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오로지 현우와 수화로만 대화를 했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여왕은 집에 인사 온 그녀를 내쫓았었다.
네가 뭐가 모자라, 저런 병신을 집에 들이냐며 모진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정작 자기 자식이 청각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체.
"그날... 엄마한테 말하려고 했어. 나도... 안 들린다고... 근데... 엄마가 그럴 기회를 주지 않더라고."
여왕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발밑으로 뚝뚝 흘러 떨어졌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 결혼을 하고, 여왕과는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결혼식 사진을 집에 걸어둔 것도, 두 사람이 외로운 결혼식을 올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서야 받을 수 있었다.
"미안하다..."
여왕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여왕 앞에 서 있던 현우는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정말 꿈 맞지? 어쩐지... 너무 사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소리가 들리는 건... 좀 생소하지만..."
여왕이 현우를 바라보니, 현우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래도...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반갑다. 7살인가? 소리를 완전히 못 듣게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여왕은 불쑥 현우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현우야, 미안해, 엄마가 몰라서 너무 미안해."
울며 말하는 여왕을, 오히려 현우가 다독이듯 그녀의 등을 토닥 거렸다.
"괜찮아.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했어. 아무도 모르게. 담임 선생님도, 친구도 몰랐는 걸. 가끔 보는 엄마가 어떻게 알았겠어? 또 엄마는 장사하느라고 바빴잖아."
"내 새끼가... 내 새끼가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애미가 돼서, 지 새끼 아픈 줄도 모르고..."
여왕이 흐느끼며 울자, 현우는 그런 여왕 연신 달래며 토닥거렸다.
"괜찮다니까... 엄마 우리 셋 키우느라 힘들었잖아. 나까지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여왕은 너무 속이 상했다.
자신의 마음에 차는 며느리를 데려오지 않았단 이유로, 그녀는 결혼하는 현우에게 단 한 푼도 보태주지도 않았고,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나중에서야 힘겹게 사는 현우에게 일부의 돈을 보태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탐탁지 않은 것은 여전했다.
"죽는 날까지... 죽는 날까지 말하지 않았어, 왜?"
"미안... 내가 속이 좁았었나 봐. 아내가 엄마를 무서워한다는 핑계로, 나도 안 찾아봤어. 미안해, 엄마."
"아냐... 아냐,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다."
문득 여왕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 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소리는?"
"소리?"
현우가 되물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우리가 왜 소리 이름을 소리로 지었겠어? 소리는 괜찮아. 소리는 잘 들린데."
소리는 현우의 딸 이름이었다.
여왕은 울며 현우의 손을 붙잡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천만다행이야."
"소리도 제법 컸어. 벌써 4학년이야. 아내 덕에 수화도 능숙해."
"미안하다, 애미가 돼서... 찾아도 보고, 손녀 용돈도 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안 찾아간 건데... 미안해 엄마. 엄마가 그렇게..."
현우도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간신히 이어 말했다.
"그렇게... 혼자 외롭게 계시다 갈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나 아니어도, 형도 있고, 현준이도 있고... 내가 아니어도 엄마는 하나도 아쉽지 않을 거라고...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나 봐. 엄마가 그렇게 가고 나서야 알았어. 우리 셋 다 자기 앞가림만 하고 살았다는 걸... 정말 미안해, 엄마."
"왜 안 아쉬워, 왜? 너만 그렇게 아빠한테 보냈다가, 그렇게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시켜서, 엄마가 평생 너한테 미안한 마음 가지고 살았는데, 왜 안 아쉬워, 왜..."
울며 하소연하듯 말하는 여왕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우는 다가와 여왕을 품에 안았다.
"괜찮다니까...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꿈에 까지 와서 하소연하세요. 이제 다 괜찮아. 나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 토끼 같은 마누라에 딸까지 있는데? 나 행복하게 살고 있어. 걱정하지 마."
현우가 습관처럼 여왕의 등을 토닥토닥거리자, 여왕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내가 걱정돼서 죽은 다음에도 이렇게 찾아온 거라면, 걱정도 시킬 만하네?"
현우가 농담처럼 말하니, 여왕이 속상한 듯 그런 현우의 등을 툭하고 쳤다. 그러자 현우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가끔 와요, 올 수 있으면... 가끔 오면... 너무 반가울 것 같은데... 목소리도 들을 수 있고..."
"직장 생활하는 건 힘들지 않아?"
여왕이 몸을 떨어뜨리며 묻는 말에, 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안 힘들겠어? 그런데 어째? 남들보다 조금 더 힘들다고 주저앉을 순 없잖아.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지."
여왕은 너무 속이 상했다.
해준 것도 없이, 현우가 그렇게 고생하며 살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멀쩡한 사람들도 힘들게 살아.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어떻게 사회생활하면서 안 힘들 수 있겠어. 그래도 견딜 만 해, 견딜만하니까 이렇게 사는 거고. 우리 소리 크는 거 보는 재미도 있고.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
현우가 씩씩하고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이어 말했다.
"나 잘하고 있어, 잘할 자신도 있으니까. 믿어. 나 열심히 살게."
여왕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런 여왕을 현우는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울보셨나?"
그 꿈속에서 여왕은, 남은 시간 동안, 그저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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