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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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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47분

36화 - #5


신이 난 도깨비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요놈들! 요기 있었구나!"

갑자기 나타난 이는 개와 사람이 반쯤 섞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를 보자마자 도깨비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도깨비불로 변해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개들이 나타나 잠자리채 같은 걸로 도망치는 도깨비불들을 모두 붙잡았다.

"뭐야?"

나래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라 당황했고, 그런 그녀 앞으로 누군가 뒷짐을 쥐고 다가왔다.

나래는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무서운 마음에 절로 움츠러들었다.

"너는 뭐냐?"

그는 다른 개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것이, 아마도 늑대인 듯 날카로운 송곳니와 다른 개들과는 다른 커다란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래 앞으로 코를 내밀어 킁킁거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인간이잖아? 인간이 어떻게 이 세계에 있는 거지?"

인간이란 말에 주위에 있던 개들이 일제히 나래를 쳐다보았다.

"인간?"

"인간이라고?"

그때 누군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자, 하나 둘 따라서 꼬리를 흔들더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게 마뜩지 않았는지, 늑대는 눈살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 질렀다.

"어서 그 꼬맹이 놈들이나 모아놔!"

"예."

개들은 늑대를 무서워하는 듯, 늑대가 시키는 대로 잠자리채의 도깨비불들을 한 군데로 모았다.

"왜 붙잡는 거죠?"

나래가 걱정되어 묻는 말에, 늑대가 나래를 보며 대답했다.

"그들은 나린 왕국에 불법 침입하였을 뿐, 아니라 이 나라의 국법을 어겼다."

"무슨 법을 어긴 거죠?"

"이곳에서는 사적 친분이 금지되어있다."

나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적 친분이요?"

"그렇다. 너는..."

그가 말을 하는 사이, 한 군데로 모인 도깨비불이 일제히 다시 아이들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중 한울이 얼른 나서 소리쳤다.

"그 애는 우리도 오늘 처음 만났어요. 모르는 애라구요."

한울의 말에 늑대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울을 바라보더니 이어 나래를 향해 물었다.

"사실이냐?"

"네... 뭐, 사실이긴 한데..."

그러자 늑대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쓸데없이 아무하고나 친한 척하지 말고,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늑대는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가버렸고, 개들은 도깨비 아이들을 포박하여 늑대 뒤를 쫓았다.

한울이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나래를 돌아보자, 나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떡하지... 이럴 때 도령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속상했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그냥 보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멀어져 가는 늑대와 개 무리를 쫓아갔다.

한참을 뒤따라 가니, 맨 뒤쪽에 있던 개가 나래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따라오는 거냐?"

"그냥... 방향이 같을 뿐인데요?"

나래가 당돌하게 대답하자, 개는 눈을 껌뻑껌뻑 거렸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나래가 묻자 개가 대답했다.

"어디긴, 왕궁으로 가는 거지."

"왕궁에 가면 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재판을 받겠지."

"재판은 누가 하는데요?"

"여왕님이 하겠지."

"어떤 처벌을 받죠?"

개는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계속해서 묻는 나래의 질문에 꼬박꼬박 답해주었다.

"아마도 다른 녀석들처럼 소가 되겠지."

"소요? 움메하는 그 소요?"

"그래. 소가 돼서 일을 시키겠지. 앞으로 영원히 왕국 영토를 개간하는 일을 하게 될 게다."

나래는 '영원히'라는 말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저 아이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왕님은 어떤 분이신데요?"

"어떤 분이라니? 그분을 거슬렀다가는 잡아 먹혀 버릴 것이다. 이 왕국의 가장 강력한 통치자이시지."

잠시 고민하던 나래가 다시 물었다.

"그분은 무얼 좋아하시나요?"

"좋아하는 거?"

"네, 뭘 좋아하시죠?"

나래의 질문에 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세... 딱히 뭘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굉장히 크게 기뻐한 일이 있긴 하셨었지."

"어떤 일로요?"

"경기 시합을 좋아하셔. 시합에서 이겼을 때 크게 기뻐하셨지."

"어떤... 시합이었는데요?"

"매달 각 마을에서 선수들이 모여. 그달 그달 여왕님이 경기 종목을 선택하면, 그 종목으로 경기를 치르지. 경기를 치르고 승자에게는 여왕님이 큰 선물을 내리신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셨지."

나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시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시합을 이용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개는 나래와 이야기를 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넌 이름이 뭐니?"

"아, 전 나래라고 해요."

"나래?"

"네."

"난 토리라고 해."

"토리요?"

나래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응. 토리."

어쩐지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기분에, 나래는 다시 물었다.

"그 이름은 누가 지어준 거죠?"

"그게 아마... 너만 한 아이였을 거야. 날 토리라고 불러줄 때마다 행복했지."

꽤나 행복한 기억을 회상하는 듯,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나래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만한 아이라뇨? 아이가 이름을 지어줬다는 건가요?"

"그래. 너만 한 인간 아이라니까. 그 아이 이름은 소민이었어."

"소민이요? 그럼... 사람이랑 같이 살았었다는 건가요?"

"그래. 사람이랑 같이 살았어.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지."

"그런데 왜 지금은 여기 계세요?"

나래의 물음에 그의 표정에서 행복이 도망가 버렸다.

토리는 쓸쓸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글세... 모르지. 피치 못한 일이 있었는지..."

그러자 여태 같이 걸으면서 한마디 말이 없던 다른 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피치 못한 일은... 그냥 버린 거야. 인간들은 다 그래. 우리가 어리고 귀여울 때만 좋아하다가, 다 크면 버린다고. 인간들은 다 그래."

그의 핀잔에 토리가 버럭 화를 내듯이 말했다.

"소민이는 안 그래! 소민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야! 소민이는... 분명 날 찾았을 거라고."

이번에는 다른 개가 한숨 쉬며 말했다.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거야? 잊어... 그 인간은 이미 널 잊었을 테니."

나래는 슬퍼하는 토리를 보면서, 얼른 나서 말했다.

"지금도 찾고 있을지 몰라요, 분명 그럴 거예요. 토리님을 잃어버리고 슬퍼했을 거예요."

토리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래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그... 그럴까?"

"그럼요. 분명 그럴 거예요."

토리는 나래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럴 거야. 그렇지? 소민이는 착한 아이니까."

"그럼요. 저랑 같이 돌아가요."

토리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같이 돌아가다니?"

"이곳에 어떻게 오셨는데요?"

나래가 다시 묻는 말에, 토리는 지난 기억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게... 소민이를 잃어버린 날... 차에 치었어."

나래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

"차에 치었다고."

"그래... 서요?"

앞에 다른 개가 예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는, 죽었지. 죽었으니까 여기 있는 거고."

"죽으면 이리 오나요?"

그러자 다른 개가 말했다.

"다 이리 오는 건 아니지. 이곳에 오는 개들은 정해져 있어. 유기돼서 죽은 개들. 우린 모두 유기견들이야."

나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기견들이 오는 곳이라고요."

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이 세계는 인간들이 관계를 단절한 생명들이 모이는 곳이야."

나래는 뭔가 가슴에서 짠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개가 토리의 말에 이어 붙이듯 대답했다.

"이 세계에 있다는 거 자체가, 인간에게 버림받았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잊으라고. 찾긴 뭘 찾아. 버린 개를 찾을 거 같아?"

토리는 도로 풀이 죽어 버렸다.

나래는 문득 토끼들이 떠올랐다.

"그럼... 저 앞에 토끼들도..."

토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그들은 이곳에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야. 그 토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간들에 의해 관계가 단절된 생명들이지."

문득 나래의 눈에 저만치 앞서 가는 늑대가 보였다.

"그럼... 저기 저 늑대 분도 그런 건가요?"

나래의 말에 토리가 늑대를 보며 말했다.

"아, 치리 대장 말이구나. 치리 대장은 이곳에 온 지 오래되었다던데... 아마도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늑대였겠지."

나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도깨비들은요? 저 아이들은 어쩌다가..."

"글세. 나도 모르겠지만, 간혹 이곳에 불필요한 존재들이 숨어들기는 해. 근래에는 특히 도깨비들이 자주 숨어들곤 해서, 우리도 골치 아파."

"왜 골치가 아파요?"

"여왕님이 저렇게 숨어든 녀석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하셨거든. 도깨비들은 도망을 잘 쳐. 이 주술망이 없다면, 도깨비를 잡을 방법이 없지."

토리가 잠자리채 같은 그물망을 살짝 들어 보여주자, 나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술이 걸린 채인가 보구나. 그래서 도깨비불이 통과하지 못한 거였어.'

나래는 혼자 생각하며 그 잠자리채 같은 그물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잡아들이는 거죠?"

"이곳은 인간들이 관계를 단절해서 버려진 생명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이곳에서는 사적인 친분을 쌓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어. 그런데 도깨비들은 친분 쌓는 것을 좋아하지. 그래서 잡아들이는 거야."

나래는 따라 걸으면서도, 연신 꼬리를 흔들고 있는 토리를 보면서 괜스레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럼 토리님은 사적 친분을 쌓는 게 싫으세요?"

나래의 물음에 토리가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나? 나야..."

다른 개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사적 친분 따위, 관심 없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살짝 나래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꼬리를 흔들었다.

나래는 어쩐지 그의 속내가 꼬리를 통해 다 드러나는 거 같아,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굳이 금지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모두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니까, 서로 더 보듬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래의 물음에 토리는 대답하지 못하고 다른 개들의 눈치를 살폈지만, 다른 개들도 딱히 어떤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때쯤, 수풀 길이 끝나고 넓은 황야 위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궁궐이 보였다.

"저기야. 나린 왕궁."

토리의 말에 나래는 "우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궁궐을 바라보았다.

웅장한 자태로 황색 빛 모레 위에 자리 잡은 궁궐은 조선시대보다는 약간 인도풍의 건축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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