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TokTok v0.1 beta
챕터 배너

잠입

author
·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3.18분

24화 - #3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구태여 찾아 들어서거나 하지 않을만큼 산속 깊고 은밀한 곳에 만들어진 사당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간중간 험악하게 생긴 사내들이 큼지막한 칼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들은 그들보다 어려 보이는 주동환에게 깍듯하게 행동했다.

"세자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문득, 함께 걷고 있던 주동환이 말을 건네 왔다.

"네..."

연희는 짧게 대답했다.

아직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또한 지금 이곳에 온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네가 보기에 세자는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

의외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왕실 사람들을 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 궁금해할 법도 했다.

"좋은 분이십니다.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으나, 밝고 어진 분이십니다."

"상처라... 너는 세자의 상처가 무어라 생각하느냐?"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사당 내부에 있는 널찍한 공터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화려한 거가가 놓여 있고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장식하느라 바빠보였다.

주동환은 거가를 살펴보더니, 이어 말했다.

"네가... 기억을 되찾으면, 세자의 상처가 무언지 알려주마."

주동환의 말에 연희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세자마마의 상처를... 어찌 아십니까?"

주동환은 거가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글세...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세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두 사람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려하게 치장하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어색해 보이는 의복을 차려입고, 보석으로 장식한 변형된 금관을 쓰고 있었다.

"오~ 왔느냐"

그는 연희를 보며 반갑다는 듯 웃고 있지만, 그 웃음소리와 입술의 생김새가 해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동환이 그를 보며 고개를 숙여 공손히 인사하였다.

"오셨습니까, 율제님."

그 말에 연희의 눈에 휘둥그레졌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율제구나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그래, 어디 보자..."

율제라 불린 사람, 천태호는 연희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그녀 코앞에 서서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새 좀 더 이뻐진 것 같기도 하고... 어떠냐? 궁궐안 세자 곁에서 지냈다면서? 아주 제대로 호강하고 왔구나. 기왕이면, 내가 얘기한 것들을 준비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천태호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주동환이 그를 보며 말했다.

"지금 연희는 기억을 잃었습니다."

그 말에 천태호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기억을 잃어?"

연희를 돌아보고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 그럴 수도 있나?"

그는 마치 연희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시죠?"

연희의 물음에 천태호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신기한 일이구나. 어찌 기억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주술이 미처 완성되지 못한 것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구나. 어쨌든 여기까지 잘 왔다. 뭐...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그 예판대감이 쉬이 미련을 못 버릴 모양인 것 같으니... 당분간 예서 지내거라."

알 수 없는 말뿐이었다. 예판이 미련을 못 버린다니? 그것 또 무슨 얘기일까?

연희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가는 가운데, 천태호 옆으로 수하가 다가왔다.

"거가가 준비되었습니다."

천태호가 고개를 돌려 수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래? 흐흐, 좋다. 이제 그럼 슬슬 나가보실까?"

천태호가 휘적휘적 거가 쪽으로 걸어가니, 연희가 주동환 곁으로 다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연희의 물음에 주동환은 피식 한 번 웃더니 답했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다."

"환심을 사다뇨? 무엇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율제님께서 사용하는 주술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절실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연희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제게 걸었다는 주술은 무엇입니까? 제가 깨어나서 처음 들은 이야기가, 제가 어떤 의식에 제물로 받쳐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주동환이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연희를 보았다.

"뭐? 제물? 하하하... 누가 그러더냐? 제물이라고?"

"아... 아닙니까? 제물이라고..."

"뭐 모양새가 그리했으니...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 그것은 기억을 되찾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이니..."

"그럼 이것들은 뭣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까? 밖에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은 왜 이리 모여들게 하시는 겁니까?"

연희의 이어지는 진지한 물음들에, 주동환이 문득 웃음기 가신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로... 네가 궁금해서 묻는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에게 필요할까 싶어 묻는 것이냐?"

연희는 흠칫 놀랐으나,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주동환은 그런 연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웃어주었다.

"그래. 네가 거짓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지.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내 응당 주어야지."

주동환의 의미심장한 말에 연희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새로운 사람들이다."

"새로운 세상... 이라뇨?"

"너도... 나도... 우리는 이 부당한 조선의 법도 아래, 억울한 삶을 살아야 했다. 내 목표는 단 하나다. 이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는 것. 그리고 그 후에, 너와 혼례를 올려 평안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연희는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세상 환한 미소를 지은 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주동환의 얼굴에는, 스스로가 자신의 목표한 것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연희는 망설이며 뭔가 말하려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기괴한 풍악 소리와 함께, 커다란 거가가 사람들에 의해 들려져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시작하는 모양이구나. 함께 가자."

주동환이 연희의 손을 잡고 거가 쪽으로 달려갔다.

연희는 그가 자신의 손을 잡아 놀랐다가, 그의 힘에 의해 끌려가면서도,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자기 손을 붙잡고 달리는 주동환의 뒷모습이, 어쩐지 익숙하고 포근하면서도, 왠지 모르고 애잔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거가는 사당 뒤편에 나있는 길을 통해, 산자락 아래 있는 커다란 공터 한가운데 놓인 제단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모여있었고, 거가를 따라 걷는 연희의 눈에 기도하며 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율제님!"

"율제시여!"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에 광기가 어려 있었다.

율제라는 사람은 어떻게 저들에게서 이런 믿음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하면서도, 그들의 맹목적인 광기에 두려움을 느꼈다.

거가가 공터 한가운데 멈춰서자, 그곳에는 체격이 크고 짐승의 머리뼈로 장식된 지팡이를 든 이가 기괴한 복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율제당립! 천하대길!"

그가 소리치자, 사람들도 일제히 따라서 외치기 시작했다.

"율제당립! 천하대길!"

"율제당립! 천하대길!"

그런 신도들의 외침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율제는 거가에서 내려 사람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자!"

율제가 소리치자, 일순 조용해졌다.

"또다시 때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너희들에게 이 조선을 줄 것이다."

율제의 말에 신도들이 환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환성을 지르는 무리들 속에 숨어든 세자와 수현은, 꽤나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조용히 묻는 수현의 말에 세자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아미를 찌푸렸다.

"이대로 덮치시겠습니까?"

수현이 재차 묻는 말에 세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방에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적지 않으나, 이대로 기습 공격을 한다면 실제로 얻는 것은 얼마 없을 것이다. 알아내야 한다. 저들의 정체와 목적을..."

문득 세자는 율제가 거가를 타고 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들의 본거지로 가야겠다. 그곳에서 저들에 대한 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자는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겨 거가가 나타난 방향 쪽으로 향했다.

"저하..."

놀란 수현이 황급히 그를 따랐고, 함께 온 수하들도 몸을 숙인 체 세자를 따랐다.

세자 일행이 인파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때, 거가가 왔던 사당 쪽으로 향하는 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길 너머에 사당의 모습이 감질나게 보였다.

"저곳이 근거지인 모양이구나."

세자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몇몇 칼을 든 사내들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자연스럽게 들어갈 방법이 없을까?"

세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뭐요?"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를 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것이..."

세자는 뭔가 대답하려는 듯하다가, 갑자기 손을 벼락같이 움직였다.

단 일격에 정신을 잃어 그대로 쓰러지려는 남자를 세자가 서둘러 부축했다.

그러고는 옆쪽에 조금 떨어져 있는 다른 사내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그러자 그가 세자 쪽을 보더니, 이상함을 느끼고 서둘러 달려왔다.

"뭐야?"

"아니... 이분이 갑자기 쓰러진 것 같기에..."

"뭐야? 달구야? 너 왜 이래? 어?"

세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내 아직 미천하나, 의술을 익히는 몸이오. 이 사람 상태를 보아하니,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위급할 수 있소. 이거... 체격이 무거워서 들고 갈 수 있으려나..."

그러더니 세자가 고개를 돌려 수현과 자기 수하들 쪽을 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거 구경만 하지 말고 와서 좀 거드쇼."

그러자 수현과 수하들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부랴부랴 달려와 함께 부축했다.

"일단 도구가 필요하니, 안으로 들어갑시다."

세자의 말에 경계를 서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쓰러진 사내를 옮기기 시작했다.

워낙에 소란스럽고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다 앉았다는 반복하는 통에, 어느 누구도 그들의 움직임을 신경쓰거나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연희만이 사당 쪽으로 향하는 일련의 사람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이었다.

세자와 일행은 사당 안쪽까지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경계를 서던 사내가 앞장서서 가고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일행을 들여보내 주었다.

사당 안쪽으로 들어서자 주위를 서둘러 둘러보던 세자는 부축했던 이를 한쪽에 눕히고는 몸을 일으키며 다른 사내에게 말했다.

"일단 필요한 것들을 챙겨 와야겠소. 쓸만한 물건이 어디 있소?"

사내는 어떤 물건을 말하는지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세... 일단 이리 와보시오."

사내는 사당 안쪽 구석에 있는 방으로 안내하였고, 방문을 열자 진귀한 물건들과 서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안에 혹..."

사내는 말을 하다 말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먼저 사내와 동일하게, 혈자리를 눌러 의식을 잃게 만든 것이었다.

"이제... 좀 둘러볼까."

세자의 말에 수현이 안으로 들어갔고, 수하들은 서둘러 쓰러진 사내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놀랍구나. 먹을 것 하나 없는 백성들을 쥐어짜서 나온 물건이 아니지 않느냐?"

세자는 놀란 표정으로 방안의 물건들을 살폈다.

방안 전체가 금빛으로 반짝 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값지고 귀한 것들이 많았다.

"어느 백성이 집안에 금을 두고 있으며, 서책을 두고 있겠습니까? 이것들은 모두 양반네들에게서 받아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 시간이 없으니 일단, 이들에 대해 알 수 있을 만한 것부터 찾아보거라."

"예."

세자와 수현, 그리고 세명의 수하들은 일제히 뒤적거리며 무언가가 나오기만을 기대하며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뒤적거리며 찾고 있을 무렵, 사당 안쪽에 누워있는 사내 쪽으로 누군가 다가갔다.

"뭐야?"

사내는 의아한 듯 다가서서, 놀란 표정이 되었다.

"달구 아냐? 얌마, 너 왜 그래?"

다가온 사내는 달구라는 사내를 깨워보려는 듯 뺨도 때리고 흔들어 봤지만,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이놈 누가 데려온 거야? 이봐! 이봐!"

사내가 소리치자, 다른 이들이 몇 명 더 다가왔다.

그들 중 덩치가 산만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이가 커다란 도끼를 어깨에 걸처 메고는, 다른 이들을 힘으로 제치며 다가왔다.

"뭐야?"

"아, 허당주 오셨습니까? 여기... 경계를 서던 달구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길래..."

허당주라는 자가 쓰러진 달구를 유심히 보더니, 눈을 부라렸다.

"야 이놈아, 이건 쓰러진 게 아니고 혈이 짚힌 것이다."

그러더니, 허당주가 달구의 몸 몇 군데를 툭툭 치자, 달구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을 부릅떴다.

"히익... 후... 후..."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를 본 허당주가 이를 갈듯이 말했다.

"웬 쥐새끼들이 들어온 모양이구나. 당장 사당 안을 수색하고, 병사들을 불러라!"

"예, 당주!"

수하들이 일제히 움직이고, 자리에서 일어난 허당주가 번득이는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때마침 사당 쪽으로 돌아온 연희가 그 모습을 보았다.
현재 조회: 4
댓글
0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저작권 보호: 무단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