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TokTok v0.1 beta
챕터 배너

나린왕국

author
·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03분

37화 - #6


황토색 거대하고 두터운 성벽 안으로는, 하나의 완전한 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황색과 회색 질감의 돌들을 쌓아 만든 벽과 계단, 그리고 사이사이에 놓인 꽃과 화분들은 이국적인 느낌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육중한 성문을 지나 널따란 길을 따라 걷고 있으니, 좌우에 늘어선 집집마다 그들을 구경하려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의 모습을 한 이가 있는가 하면, 고양이 모습을 한 이도 있었고, 가족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여우, 오리, 심지어는 쥐와 비슷한 형상을 한 이까지 보였다.

이들이 모두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생명들이란 생각에, 나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나래는 그들을 따라 나린 왕궁의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왕궁 안에 또 다른 궁궐이 있고, 그 앞으로는 거대한 광장이 있었다.

그 광장을 가로질러 궁궐 앞에 이르니, 궁궐 2층으로 붉은 깃발을 든 병사들이 좌우로 도열해 있고, 둥둥 거리는 북소리와 함께, 붉은빛 휘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빛 왕관을 머리에 올리고,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올려 묶은 그녀는,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하고, 치켜뜬 눈으로 잡혀온 도깨비들을 내려다보았다.

"제놈들 세상에서 있을 일이지, 뭐한다고 자꾸 기어 들어오는 것이냐?"

할머니, 아니 이 세계의 여왕이 칼칼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 말했다.

여왕의 말에, 한울이 소리 높여 외쳤다.

"도깨비란 본디 바람 따라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요, 이곳이 이리 삭막한 곳인 줄 알았으면, 우리 또한 오지 않았을 것이요."

한울의 말에 여왕이 한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신하가 쪼르르 곁으로 달려와 여왕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닥거리며 말하자, 여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놈이 바로 그 버르장머리 없는 한울이란 도깨비 놈이렸다? 그간, 네놈을 잡으려고 수차례 병사들을 보냈었는데, 드디어 잡아들였구나. 다른 세계의 도깨비를 끌어들이는 것도 다 네놈 짓이렸다?"

한울은 가만히 여왕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스스로 내키지 않으면 부른다고 올 도깨비가 아니요, 내 이곳에 와 다녀보니, 평화롭기 그지없던 곳이 당신 때문에 삭막해졌다는 것을 알았소. 당신은 여왕이 아니오."

한울의 말을 듣고 있던 여왕이 버럭 소리 질렀다.

"어디서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네놈도 소가 되어 영원히 밭이나 갈게 될 것이다."

여왕이 손을 치켜들자, 그녀의 손에는 붉은빛의 방망이가 들려져 있었다.

야구 방망이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그 방망이로 한울을 가리키는 순간, 한울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소로 변해 버렸다.

"움머~~~"

소가 큰 소리로 울자, 개들이 다가와 소로 변한 한울을 끌고 가기 시작했고, 나래는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떡하지?'

뒤이어 여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도 볼 것 없다. 도깨비들은 모두 소로 만들어라."

여왕이 외치자, 나머지 도깨비 아이들도 모두 소로 변하였다.

개들이 소로 변한 아이들을 끌고 가자, 여왕의 시선이 나래에게로 향했다.

"네놈은 뭔데 소로 변하지 않는 것이냐? 소로 변해라!"

여왕이 방망이로 나래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나래는 흠칫 놀랐지만, 소로 변하지는 않았다.

이에 여왕이 놀라자, 나래가 여왕이 든 방망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거 혹시 도깨비 방망이인가요?"

나래의 물음의 모두 시선이 여왕에게로 향했다. 여왕은 당황하여 소리쳤다.

"무, 무슨 소리냐? 이것은 나의 신력(神力)이다. 너는 무어냐? 어디서 기어 들어온 것이야?"

나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왕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말했다.

"아이들은 죄가 없어요. 왜 아이들을 소로 만드셨나요?"

여왕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도깨비란 것들은 그저 친해지려고만 하지. 이곳에서 친분을 쌓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왜 친분 쌓는 것이 금지인가요?"

"왜냐고?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보아라, 모두 인간들에게 버림받은 생명들이다."

나래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왕님은..."

나래 눈에 보이는 여왕은 어느 동물의 모습도 섞여 있지 않았다.

"사람이신가요?"

나래의 물음에 여왕은 다시금 당황했다.

"뭐?"

"사람이시군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계신 거죠? 이곳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말을 하다 말고 나래가 뭔가 깨달은 듯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여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깟게 뭘 안다고 중얼거리는 것이냐! 당장 저것을 잡아 가두거라!"

여왕의 외침에 개들이 무기를 들고 나래에게 다가오자, 나래는 덜컥 겁이 났다.

"저도... 저도 사람입니다. 여왕님 같은 사람이에요."

나래의 말에 여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들었다.

"잠깐!"

그녀의 외침에 개들은 멈춰 서서 여왕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이라고?"

나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저도 사람입니다."

여왕은 나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너는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모양이구나. 흥, 그렇다고 도깨비 따위랑 어울리다니 부끄러운 줄 알거라. 가거라. 내 너를 불쌍히 여겨 이번은 용서해 줄 것이니, 어느 누구와도 친분을 쌓지 말고, 조용히 머물다 가거라."

여왕은 그 말을 남기고 홱하니 돌아서 버렸다.

개들은 여왕이 가버리자 이내 무기를 낮추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순식간에 드넓은 광장에는 나래 홀로 남았다.

"대체..."

나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 서 있었는데, 그런 그녀 앞으로 다른 개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 개는 털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양쪽 눈이 축 처진 것이, 나이가 꽤나 많아 보이는 개였다.

그 개는 흡사 할아버지들이 그렇듯이 뒷 춤을 쥔 체, 나래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서너 걸음 앞에 멈춰 섰다.

"사람이라 하였는가?"

할아버지 개의 물음에, 나래는 공손히 대답했다.

"예."

"어찌 사람이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인가?"

나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여왕님도..."

"여왕님은 아주 특별한 경우지. 다른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이곳에 온 적이 없어. 올 수도 없거니와 와서도 안 되는 것이지."

"어째서요?"

"이곳은 사람들이 버린 생명들의 터니까. 사람 그 자체가 올 수는 없는 거지."

"여왕님은요?"

"내 말하지 않았던가? 여왕님은 특별한 경우라고."

"저도 그 특별한 경우에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요?"

할아버지 개는 나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지막이 대답했다.

"그랬다면 혼자 일리 없으니까."

"네? 혼자가 아니라구요?"

"그래. 이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날 따라오게."

할아버지 개가 앞장서서 어딘가로 향하자, 나래가 그 뒤를 쫓아 걸었다.

"저... 제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나래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할아버지 개는 돌아보지도 않은 체 대답했다.

"누비. 그게 내 이름일세."

"아... 누비 할아버지? 그렇게 부르면 될까요?"

"그래. 할아버지란 말이 싫지는 않네."

나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가 금세 표정이 굳어지며 물었다.

"아까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요? 그 아이들은..."

나래의 말을 끊고 누비가 대답했다.

"걱정 말게. 당장 일터로 나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니. 당장은 소로 변했다 하여 불편하거나 힘들진 않을 걸세."

누비의 말에 나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비는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는 법칙이 하나 있네. 일을 해야 하지. 일을 하지 않는 자,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자, 그런 자들은 이곳에 머물 수가 없네. 법을 어긴 자는 소가 되어 영원히 일을 하게 될 걸세."

"그럼... 저도 일해야 하나요?"

"이곳에서 머물려면 그래야 하지."

"전... 굳이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걸어가며 누비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나래를 보았다.

"아까 그 도깨비 아이들을 구한다 하지 않았던가?"

"네, 맞아요."

"당장 어떻게 아이들을 구할 텐가? 이곳에 머물면서 아이들을 구할 방도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나?"

"그... 그건 그렇죠."

"그러려면 먼저, 이곳에 머무는 방법을 터득해야겠지."

차근하게 설명하는 누비를 보면서, 나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일을 하겠나? 할 줄 아는 게 무어지?"

누비의 물음에 나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곳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딱히 뭘 할 줄 아는 게 있는 게 아니라... 반찬 몇 가지 정도는 만들 줄 알긴 하는데..."

"반찬? 그렇다면 조찬소에서 일하면 되겠구만."

"조찬소요?"

되묻는 나래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는 일이네. 아침잠이 적다면 일을 일찍 끝마칠 수 있어서, 다른 일을 함께 하기엔 적당한 일이지. 아이들을 어떻게 구할지 알아보는 정도의 일 말일세."

누비의 목소리에는 상당한 배려심이 깃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래는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아침잠이 많긴 하지만, 한번 해볼게요."

어디서 그런 자신감과 용기가 솟아난 것이었을까? 나래는 본인이 그렇게 대답해 놓고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씩씩해서 좋구만."

누비가 말을 하며 너털 웃음을 지었고, 나래는 기분 좋게 따라 웃으며 누비의 뒤를 따랐다.

"누비 할아버지는 가족이 있어요?"

누비는 가만히 말없이 걷다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있었지."

"어디 있는데요?"

누비는 이번에도 느지막하게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한데요?"

"어쩐지... 안타까울 뿐이지."

"왜요?"

누비는 나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래는 누비의 표정에 슬픔이 깃드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없이 걷다가, 문득 입을 연 누비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죽어가는 선(善)보다, 활기 가득한 악(惡)이 나을지도."

나래는 누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둘은 왕궁 끄트머리에 있는 자그마한 집 앞에 이르렀다.
현재 조회: 14
댓글
0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저작권 보호: 무단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