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1
이삼일 머물까 싶었으나, 모용담 때문에 단단히 심술이 난 라마는 일찌감치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세안을 하고 채비를 서두르니, 송이개와 유림이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소협, 벌써 떠나시렵니까?"
송이개가 먼저 물으니, 라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 더 있어서 뭐합니까? 후딱후딱 갈길 가야지."
유림이 다가와 궁금한 듯 물었다.
"대체 어딜 가시는 길인데 그리시오?"
라마는 유림을 쌀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유림은 기가 죽은 표정이 되어 조용히 송이개 뒤로 몸을 피했다.
"어디로 가든 상관 말고 댁은 댁 갈길 가쇼잉?"
라마의 말에, 유림이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확 씨... 어제 일 생각하면 그냥...."
라마가 궁시렁 거리듯 말하고는 검자루를 허리춤에 차자, 송이개가 물었다.
"소협, 실은 소인도 궁금합니다. 어디로 가시고자 하는 겁니까?"
송이개의 물음에, 라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라마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막막한 그의 시선이 바깥으로 향하는 순간, 한 여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녀는 라마의 눈에 꽤 익숙한 옷을 입고 총총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 저 여자."
라마가 난데없이 그 여인을 가리키며 다급히 말하자, 송이개와 유림이 의아한 표정이 되어, 라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 여자, 어서!"
라마가 말을 하며 달리기 시작하자, 송이개와 유림은 놀란 표정으로 뒤따라 달렸다.
"소, 소협? 무슨 일이십니까?"
송이개가 뒤에서 따라오며 묻지만, 라마는 대답도 없이 그 여인이 간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가서, 뒤에서 그 여인의 어깨를 잡는 순간, 그 여인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꺅!"
"아아, 지, 진정하시오."
그 비명소리에 라마도 놀라 주춤 물러섰다가, 여인을 진정시키듯 말하니, 여인이 놀란 표정으로 보며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아니... 이 집, 그러니까..."
라마가 무어라 딱 말을 못 하고 있는 찰나, 송이개와 유림이 곁으로 다가왔고, 유림이 여인을 보며 말했다.
"태수님의 초대를 받고 왔네."
유림의 말에, 여인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히 인사하였다.
"미처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라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아, 괜찮소. 그보다..."
라마가 그 여인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을 하는 분이시오?"
"예?"
라마의 물음에 여인이 이해 못한 듯 되물으니, 송이개가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무슨 일이라뇨? 무녀 아닙니까?"
이어 무녀를 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무녀신가?"
"예, 태수 나리께서 무림인이며 무속인이며 두루 친분을 쌓길 좋아하십니다."
"그래, 주로 무슨 일을 하시는가?"
"태수 나리의 가족과 친지분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사옵니다."
송이개가 라마를 바라보자, 라마가 알았다는 듯이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하하... 예, 그럼 일 보시지요."
"예."
여인이 황급히 물러가고, 라마가 돌아서자 송이개와 유림이 곁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어찌 그러셨습니까?"
송이개가 묻는 말에, 라마는 대답도 하지 않고 되물었다.
"무녀라고요? 공주와 무녀가 함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어디입니까?"
되묻는 라마의 질문에 송이개가 갸우뚱하자, 유림이 얼른 나서 대답했다.
"공주가 있는 곳이면,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황궁이지요."
"황궁?"
"예, 황궁에는 황제폐하와 황족을 모시는 전속 무녀가 따로 있으니, 공주와 무녀가 함께 있는 것도 가능하지요."
라마는 결심한 듯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황궁에 가봐야겠소."
라마의 말에 송이개와 유림이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 황궁을 가신다구요?"
송이개가 걱정스러운 듯 되묻고, 유림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섣부른 행동하지 마십시오. 황궁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개죽음 당할 겝니다."
라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왜냐구요? 황궁이 뭐 동네 객점이니까? 개나 소나 가고 싶으면 가게? 황궁 안의 누군가에 초대를 받지 않는 이상, 공주 만나겠다고 쳐들어 갔다가는 모가지가 성하지 못할 겁니다."
"죽는 건 상관없는데, 만나지 못한다면 문제지."
"반대로 얘기하신 거 아닌가요?"
유림이 의아해 하지만, 라마는 무심한 표정으로 송이개에게 물었다.
"황궁 안에 공주를 만나고 싶은데, 아니... 공주가 안되면 무녀라도 만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소?"
송이개가 눈을 몇번 껌뻑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뭐...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오나...."
"무엇이오? 말씀해 보시오."
난처한 표정이 된 송이개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그게... 뭐, 무림 내에서 아주 아주 유명한 명망 높은 인사가 되시거나, 아니면..."
집안 풍경을 휘이 둘러본 송이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조철웅 태수의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할 수 도 있겠지요."
"태수의 도움이라... 그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어찌해야겠소?"
그러자 옆에서 유림이 거들었다.
"듣자 하니 조 태수는 조왕야 못지않게 무공이 출중한 사람이라 들었소. 무림에 명망 있는 인물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비무(比武)를 아주 좋아한다 들었소."
송이개가 맞장구치듯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이따금 무림에 명사들을 황궁으로 초청해, 황제폐하 앞에서 비무를 보여기도 한다 들었습니다."
라마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비장한 각오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년... 잡히기만 해 봐라..."
송이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설마... 공주를...?"
라마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 아니 오해하지 마시오. 그런 건 아니고.... 아주아주 개인적인 일인데... 먼저 무녀부터 요절...아니 따질 것을 따지려는 것뿐이오."
유림이 경고하듯 이야기했다.
"행여라도 황족을 건드릴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게요. 그랬다가는 전 황국은 둘째 치고, 전 무림을 적으로 돌리게 될 터이니."
유림의 말에 라마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이미 조여령이 위협을 받아 도와준 마당에, 뭐 다를 거 있나?"
"아, 그거야 치사한 사파 새끼..."
순간 눈빛이 흔들린 유림이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사파분들께서 오해가 있으신 듯 합니다."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치사하다고 한 거 같은데?"
"잘못 들으셨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
"잘못 들으신 게 확실합니다. 제가 어찌 소협을 앞에 두고, 그런 망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짜?"
"진실로 그러합니다."
"..."
라마의 싸늘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유림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어찌하면 조철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송이개에게 물으니, 송이개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하였다.
"아무래도 소협의 무공이 출중하니, 소협의 무공을 이용해서 비무를 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누구하고 든 비무를 하여 승리하면 청을 하나 들어주십사 하는 것이지요."
"아.... 근데, 만약 지면 어쩌죠?"
"에이 설마... 기껏 해봐야 무림맹의 익주 분파에 있는 사람들이 몇몇 모인 게 고작입니다. 게 중에서 무공이 고강한 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지긋하니, 비무에 내보내기는 어려울 것이고, 비무 상대로 나이와 실력이 비슷한 사람을 뽑을 것이니...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됩니다. 그 몇몇 사람의 실력이 그리 출중하지 않으니 염려하실 것 없으실 겁니다."
라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습니다. 되도록 비무는 오전에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읍시다."
"예?"
"아, 아무것도 아니오."
라마가 손사래를 치고는 훌쩍 관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비무요?"
되묻는 조여령을 보며 라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소. 다만 조건이 하나 있는데, 비무에서 승자의 청을, 조 태수께서 들어주셨으면 하는 것이오."
조여령이 잠깐 생각하더니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가능합니다. 숙부님께서도 비무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문득 그녀가 살짝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혹... 모용담...소협께는..."
"아~ 그거... 무릇 그런 일이란 다 때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 마침 비무도 있고 하니, 비무 이후에 언질을 해놓겠습니다."
조여령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네네, 그럼요, 그럼요. 저는 얼른 숙부님께 소협님의 의사를 전하겠습니다."
조여령이 신이 나서 나가니, 그 뒷모습을 보며 라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모용담은 무슨....젠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라마는 터벅터벅 밖으로 나가다가 멈칫하며 멈춰 섰다.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먼발치에 한 사람이 라마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누구요?"
라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니, 그자는 못 들은 척하며 태연히 몸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어? 이 놈 봐라?"
라마는 눈을 치켜뜨며, 재빨리 그에게 달려갔다.
"이봐! 방금 전까지 날 노려보고 있었잖아! 대체 누구..."
라마가 후다닥 달려가 소리치며 그의 어깨를 붙잡으려는 찰나, 그가 벼락같이 몸을 놀리며 라마의 손을 붙잡았다.
"뭐?"
그리고 순간, 라마의 몸이 빙글 돌더니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우..."
머리를 땅에 밖은 라마가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만지작 거리자, 그가 천천히 몸을 숙이고 이야기했다.
"그래 봤자, 사파에 불과한 것들이구나."
그 비아냥 거림에 울컥 화가 난 라마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너 뭐하는 자식이야?"
손을 내뻗으며 그의 멱살을 붙잡으려 했으나, 이번에도 라마의 손이 오히려 그자에게 잡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바닥에 고꾸라졌다.
"윽!"
라마의 등이 땅에 패대기 쳐지는 순간, 신음소리를 절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라마의 몸 몇 곳을 검지 손가락으로 점혈을 하니, 누운 라마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익주의 분파라고 죄다 어중이떠중이만 모인 줄 아나 본데... 내일 그 비무가 열리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놈 망신을 톡톡히 주마."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누워있는 라마를 놔둔 체 홀연히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다.
라마는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는 자신을 희한하게 생각하며, 분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라마의 몸이 점혈에서 풀린 것은 그로부터 일다경 정도가 지나서였다.
세안을 하고 채비를 서두르니, 송이개와 유림이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소협, 벌써 떠나시렵니까?"
송이개가 먼저 물으니, 라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 더 있어서 뭐합니까? 후딱후딱 갈길 가야지."
유림이 다가와 궁금한 듯 물었다.
"대체 어딜 가시는 길인데 그리시오?"
라마는 유림을 쌀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유림은 기가 죽은 표정이 되어 조용히 송이개 뒤로 몸을 피했다.
"어디로 가든 상관 말고 댁은 댁 갈길 가쇼잉?"
라마의 말에, 유림이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확 씨... 어제 일 생각하면 그냥...."
라마가 궁시렁 거리듯 말하고는 검자루를 허리춤에 차자, 송이개가 물었다.
"소협, 실은 소인도 궁금합니다. 어디로 가시고자 하는 겁니까?"
송이개의 물음에, 라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라마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막막한 그의 시선이 바깥으로 향하는 순간, 한 여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녀는 라마의 눈에 꽤 익숙한 옷을 입고 총총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 저 여자."
라마가 난데없이 그 여인을 가리키며 다급히 말하자, 송이개와 유림이 의아한 표정이 되어, 라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 여자, 어서!"
라마가 말을 하며 달리기 시작하자, 송이개와 유림은 놀란 표정으로 뒤따라 달렸다.
"소, 소협? 무슨 일이십니까?"
송이개가 뒤에서 따라오며 묻지만, 라마는 대답도 없이 그 여인이 간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가서, 뒤에서 그 여인의 어깨를 잡는 순간, 그 여인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꺅!"
"아아, 지, 진정하시오."
그 비명소리에 라마도 놀라 주춤 물러섰다가, 여인을 진정시키듯 말하니, 여인이 놀란 표정으로 보며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아니... 이 집, 그러니까..."
라마가 무어라 딱 말을 못 하고 있는 찰나, 송이개와 유림이 곁으로 다가왔고, 유림이 여인을 보며 말했다.
"태수님의 초대를 받고 왔네."
유림의 말에, 여인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히 인사하였다.
"미처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라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아, 괜찮소. 그보다..."
라마가 그 여인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을 하는 분이시오?"
"예?"
라마의 물음에 여인이 이해 못한 듯 되물으니, 송이개가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무슨 일이라뇨? 무녀 아닙니까?"
이어 무녀를 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무녀신가?"
"예, 태수 나리께서 무림인이며 무속인이며 두루 친분을 쌓길 좋아하십니다."
"그래, 주로 무슨 일을 하시는가?"
"태수 나리의 가족과 친지분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사옵니다."
송이개가 라마를 바라보자, 라마가 알았다는 듯이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하하... 예, 그럼 일 보시지요."
"예."
여인이 황급히 물러가고, 라마가 돌아서자 송이개와 유림이 곁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어찌 그러셨습니까?"
송이개가 묻는 말에, 라마는 대답도 하지 않고 되물었다.
"무녀라고요? 공주와 무녀가 함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어디입니까?"
되묻는 라마의 질문에 송이개가 갸우뚱하자, 유림이 얼른 나서 대답했다.
"공주가 있는 곳이면,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황궁이지요."
"황궁?"
"예, 황궁에는 황제폐하와 황족을 모시는 전속 무녀가 따로 있으니, 공주와 무녀가 함께 있는 것도 가능하지요."
라마는 결심한 듯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황궁에 가봐야겠소."
라마의 말에 송이개와 유림이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 황궁을 가신다구요?"
송이개가 걱정스러운 듯 되묻고, 유림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섣부른 행동하지 마십시오. 황궁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개죽음 당할 겝니다."
라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왜냐구요? 황궁이 뭐 동네 객점이니까? 개나 소나 가고 싶으면 가게? 황궁 안의 누군가에 초대를 받지 않는 이상, 공주 만나겠다고 쳐들어 갔다가는 모가지가 성하지 못할 겁니다."
"죽는 건 상관없는데, 만나지 못한다면 문제지."
"반대로 얘기하신 거 아닌가요?"
유림이 의아해 하지만, 라마는 무심한 표정으로 송이개에게 물었다.
"황궁 안에 공주를 만나고 싶은데, 아니... 공주가 안되면 무녀라도 만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소?"
송이개가 눈을 몇번 껌뻑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뭐...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오나...."
"무엇이오? 말씀해 보시오."
난처한 표정이 된 송이개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그게... 뭐, 무림 내에서 아주 아주 유명한 명망 높은 인사가 되시거나, 아니면..."
집안 풍경을 휘이 둘러본 송이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조철웅 태수의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할 수 도 있겠지요."
"태수의 도움이라... 그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어찌해야겠소?"
그러자 옆에서 유림이 거들었다.
"듣자 하니 조 태수는 조왕야 못지않게 무공이 출중한 사람이라 들었소. 무림에 명망 있는 인물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비무(比武)를 아주 좋아한다 들었소."
송이개가 맞장구치듯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이따금 무림에 명사들을 황궁으로 초청해, 황제폐하 앞에서 비무를 보여기도 한다 들었습니다."
라마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비장한 각오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년... 잡히기만 해 봐라..."
송이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설마... 공주를...?"
라마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 아니 오해하지 마시오. 그런 건 아니고.... 아주아주 개인적인 일인데... 먼저 무녀부터 요절...아니 따질 것을 따지려는 것뿐이오."
유림이 경고하듯 이야기했다.
"행여라도 황족을 건드릴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게요. 그랬다가는 전 황국은 둘째 치고, 전 무림을 적으로 돌리게 될 터이니."
유림의 말에 라마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이미 조여령이 위협을 받아 도와준 마당에, 뭐 다를 거 있나?"
"아, 그거야 치사한 사파 새끼..."
순간 눈빛이 흔들린 유림이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사파분들께서 오해가 있으신 듯 합니다."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치사하다고 한 거 같은데?"
"잘못 들으셨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
"잘못 들으신 게 확실합니다. 제가 어찌 소협을 앞에 두고, 그런 망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짜?"
"진실로 그러합니다."
"..."
라마의 싸늘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유림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어찌하면 조철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송이개에게 물으니, 송이개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하였다.
"아무래도 소협의 무공이 출중하니, 소협의 무공을 이용해서 비무를 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누구하고 든 비무를 하여 승리하면 청을 하나 들어주십사 하는 것이지요."
"아.... 근데, 만약 지면 어쩌죠?"
"에이 설마... 기껏 해봐야 무림맹의 익주 분파에 있는 사람들이 몇몇 모인 게 고작입니다. 게 중에서 무공이 고강한 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지긋하니, 비무에 내보내기는 어려울 것이고, 비무 상대로 나이와 실력이 비슷한 사람을 뽑을 것이니...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됩니다. 그 몇몇 사람의 실력이 그리 출중하지 않으니 염려하실 것 없으실 겁니다."
라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습니다. 되도록 비무는 오전에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읍시다."
"예?"
"아, 아무것도 아니오."
라마가 손사래를 치고는 훌쩍 관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비무요?"
되묻는 조여령을 보며 라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소. 다만 조건이 하나 있는데, 비무에서 승자의 청을, 조 태수께서 들어주셨으면 하는 것이오."
조여령이 잠깐 생각하더니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가능합니다. 숙부님께서도 비무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문득 그녀가 살짝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혹... 모용담...소협께는..."
"아~ 그거... 무릇 그런 일이란 다 때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 마침 비무도 있고 하니, 비무 이후에 언질을 해놓겠습니다."
조여령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네네, 그럼요, 그럼요. 저는 얼른 숙부님께 소협님의 의사를 전하겠습니다."
조여령이 신이 나서 나가니, 그 뒷모습을 보며 라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모용담은 무슨....젠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라마는 터벅터벅 밖으로 나가다가 멈칫하며 멈춰 섰다.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먼발치에 한 사람이 라마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누구요?"
라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니, 그자는 못 들은 척하며 태연히 몸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어? 이 놈 봐라?"
라마는 눈을 치켜뜨며, 재빨리 그에게 달려갔다.
"이봐! 방금 전까지 날 노려보고 있었잖아! 대체 누구..."
라마가 후다닥 달려가 소리치며 그의 어깨를 붙잡으려는 찰나, 그가 벼락같이 몸을 놀리며 라마의 손을 붙잡았다.
"뭐?"
그리고 순간, 라마의 몸이 빙글 돌더니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우..."
머리를 땅에 밖은 라마가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만지작 거리자, 그가 천천히 몸을 숙이고 이야기했다.
"그래 봤자, 사파에 불과한 것들이구나."
그 비아냥 거림에 울컥 화가 난 라마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너 뭐하는 자식이야?"
손을 내뻗으며 그의 멱살을 붙잡으려 했으나, 이번에도 라마의 손이 오히려 그자에게 잡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바닥에 고꾸라졌다.
"윽!"
라마의 등이 땅에 패대기 쳐지는 순간, 신음소리를 절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라마의 몸 몇 곳을 검지 손가락으로 점혈을 하니, 누운 라마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익주의 분파라고 죄다 어중이떠중이만 모인 줄 아나 본데... 내일 그 비무가 열리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놈 망신을 톡톡히 주마."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누워있는 라마를 놔둔 체 홀연히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다.
라마는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는 자신을 희한하게 생각하며, 분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라마의 몸이 점혈에서 풀린 것은 그로부터 일다경 정도가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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