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TokTok v0.1 beta
챕터 배너

잠입

author
·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2.16분

23화 - #2


무복 차림의 세자는 궁궐을 빠져나와 수현과 수하들을 이끌고 함께 어딘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사람이 한적한 곳에 이르러 행렬의 속도를 줄인 수현이 주위를 살피며 세자 곁으로 바짝 붙었다.

"아직 시간이 이릅니다. 수하들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정오 무렵에 회동이 있다 했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기왕 밖에 나온 것이니, 이 참에 연희를 살펴볼까 하는 것이다."

수현은 세자의 말에 당황하여 되물었다.

"예? 연희에게 들리신단 말입니까?"

"어찌 그러느냐?"

퉁명스럽게 되묻는 세자를 보며 수현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아닙니다. 다만, 저하... 오늘 중한 일이 있음을 잊지 마시옵소서."

"그저 잠깐 들려 잘 지내는지 보기만 하려는 것이다."

세자가 타박하듯 말하고는 혀를 끌끌 차니, 수현은 여전히 겸연쩍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무렵 연희는 일찍 일어나 마당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마당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당 한자리에서 빙빙돌았다.

힐끗 담장너머 바깥을 바라보자, 여전히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보여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에효...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이네."

연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또다시 마음속으로 세자마마에게 짐이 되지 말자 다짐했다.

"으악!"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에 연희는 바닥을 내려다보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연이어 비명소리가 들려오더니,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뭐... 뭐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겁이 확 났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대문입구에서 드디어 누군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없이 온화한 미소를지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동환임을 알아본 연희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자신을 해칠 사람은 아니란 생각에서였다.

"밖에 있는 분들을 모두 해치신 겁니까?"

연희가 쏘아보며 묻는 말에, 주동환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냐~ 그냥 잠깐 눈 좀 붙이라고 했지. 밤새 지켰으니 얼마나 졸리겠어?"

그의 장난스러운 넉살에도 연희는 마주 웃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직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찌 또 오셨습니까?"

주동환은 그녀의 물음에 빙그레 웃으며 능글맞게 대답했다.

"보고 싶어서."

연희는 난감했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짠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

주동환의 물음에 연희는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순간, 주동환의 손이 어느새 연희의 이마를 짚고 있었다.

분명 저만치 서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연희 앞에 다가와 서 있었다.

놀란 연희가 한걸음 뒤로 물러나자, 주동환이 상관없다는듯 예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열은 없네."

연희는 눈쌀을 찌푸렸다.

"뭐하는 짓입니까?"

그러자 주동환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인해야 하거든. 혹시나 몸에 이상은 없는지... 어디 아프진 않은지... 그리고..."

어느새 부드러운 눈빛으로 변한 주동환이 연희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넌 마음이 약해서 쉽게 상처 받잖아. 혼자서 끙끙 앓고... 내가 이렇게 머리를 짚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었는데..."

연희는 왠지 가슴이 아팠다.

문득 연희는 일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라 물었다.

"사교도들과 함께 계신 겁니까?"

그러자 주동환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교도? 그래... 뭐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지. 우리는 율교라고 불러."

그 말에 순간 연희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율교.... 율제.... 그렇다면....'

연희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 물었다.

"제가... 거기 있었나요?"

그 말에 주동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세... 거기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네. 나와 함께 그들과 있기는 했었지."

연희는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이었죠? 전... 누구죠?"

그러자 주동환이 연희를 보며 빙긋이 웃으며 은밀한듯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내 정인....."

연희의 표정이 굳어지자, 주동환이 갑자기 깔깔 거리며 웃었다.

"농담이야. 하지만, 너와 내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이어 주동환이 손을 내밀었다.

"가자. 나와 함께... 알려줄게. 네가 누구였는지."

그런 주동환을 연희는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마침, 세자의 무리가 인근에 다다랐다.

"내가 가서 먼저 잠시 살펴보고 있을테니, 천천히 따르거라."

세자는 홀연히 말을 남기고, 말을 부랴부랴 몰아서 달려나갔다.

"저, 저하...."

뒤따르던 수현이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그 사이 내달린 세자의 말이 어느새 대문앞에 다다랐다.

말을 멈춰 세우고 날렵한 몸짓으로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세자의 눈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이 들어왔다.

"뭐야?"

놀란 세자가 얼른 담벽에 붙어 주위를 살피더니, 조심조심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 너머 동향을 살폈다.

세자의 시야에 연희와 마주 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연희를 보는 순간, 당장 달려 나가려다, 때마침 연희가 손을 내미는 모습에 흠칫 멈추어 지켜보았다.

연희가 내민 손을 낯선 남자, 주동환이 마주 잡았다.

"잘 생각했다. 나와 함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자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연희가 어떤 대답을 할지 듣고싶지않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연희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요."

드디어 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연희가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생각에 뛰어 들어가려던 몸을 지금 나서면 연희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이성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눌러내렸다.

"그래. 잘 생각했다."

이어 그자가 손을 마주 잡고 돌아서려던 순간, 세자는 뒤쪽으로 물러나 몸을 숨겼다.

조금 더 물러서서 어둠에 몸을 숨긴 세자를 뒤로 하고, 대문을 나선 두 사람은 입구에 놓여있던 말 위에 올라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세자는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보았다.

때마침 도착한 수현이 주위를 살피더니 놀라 달려왔다.

"저하! 저하! 괜찮으십니까?"

걱정하는 수현에게 손사래를 치며, 세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는 누구와 함께 간 것이냐?'

세자는 말없이 연희가 사라진 길을 재차 바라보았다.

"저하, 무슨 일입니까? 연희는요?"

수현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으나, 연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도로 튀어나왔다.

"연희가 납치된 모양입니다."

세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다."

"예?"

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으니, 세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 발로 걸어가더구나."

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신 겁니까? 방금 갔습니까? 그럼 당장 쫓아야..."

"아니다. 그냥 두거라. 보아하니, 기억을 잃기 전에 알던 사람인 듯하였다."

"그럼...."

"..."

잠시 말없이 서있던 세자가, 이내 돌아서며 말했다.

"가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느냐."

"저하, 그럼... 연희는..."

"연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하구나."

세자는 주위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을 보며 말 위에 올랐다.

"연희는 상당한 실력의 고수가 곁을 지켜주고 있는것 같으니... 다친 병사들을 챙기고, 약속된 장소로 오너라. 먼저 가 있으마."

이어 세자가 말을 마치고, "이랴"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수현은 다시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소리쳤다.

"저하!"

이어 서둘러 말 위에 오르며 부관에게 명했다.

"너는 좌포청에 가서 사람을 데려와 다친 병사들을 살펴보거라.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라."

"예."

수현이 일갈하며 달리니, 그 뒤를 나머지 부하들이 일사천리 뒤따랐고, 부관 한 사람은 좌포청 쪽으로 말을 돌렸다.

세자가 약속된 장소인, 나루터 인근에 도착했을 때엔, 약속시간인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인근에서 망을 보며 기다리고 있던 수하들은, 세자가 도착하자 놀라 황급히 인사를 하였고, 세자는 그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평민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일반적으로 세자의 얼굴을 아는 이가 드무니, 평민복을 입으면 세자임을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얼굴에 타고난 귀티는 쉬이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자는 일부러 양 뺨에 검불 같은 것을 묻혔고, 그 무렵 수현이 수하들과 함께 도착했다.

수현은 말에서 내려 세자 곁으로 다가오며 타박하듯 말했다.

"저하, 이렇게 자꾸 저를 두고 가시면 제가 어찌 저하를 보필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좀 먼저 가지 마시옵소서."

그러자 세자가 심드렁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은 어리둥절했다. 언제나 따박따박 반박하던 세자였기에, 이런 반응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세자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차마 연희의 이름을 거론하기에는 때도 분위기도 아니라 물을 수 없었다.

수현의 생각을 읽은듯 세자가 수현에게 낮게 일갈하듯 말했다.

"서두르거라. 이미 저들의 모임이 시작된 것 같다."

"아... 예."

수현은 서너 명의 수하들과 함께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들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세자의 물음에 수현이 은밀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대답했다.

"모여든 이들이 적지 않으니, 바로 눈에 띄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나, 눈치가 빠른 놈들이라 그리 오래 머물긴 힘들 듯합니다. 대략 두식경(1시간) 정도 뒤에 좌포청 병사들이 사교도들을 잡으러 올 것입니다. 그때 맞춰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래, 알았다."

세자와 수현, 그리고 수하 세명이 함께 조심스럽게 수풀을 헤치고 나가, 모여드는 이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여기저기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행색이 초라하고 앙상한 것이, 비루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 걷노라니, 사이사이에 이들에게 전도하는 이가 섞여 있었다.

"자자, 어서 갑시다. 율제당립 천하대길(律帝當立 天下大吉)이라, 율제를 따르면 모든 일이 무사평안이요, 배부르게 살 수 있습니다. 죽어서도 극락왕생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한 말들이 세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혹세무민 하니,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수가 없구나."

세자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이야기하니, 곁에 선 수현이 대답했다.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근래 들어 이러한 사교도 무리가 판을 친다 하니... 어지간히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좌상은 이들을 이용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요?"

"이제 그걸 알아내야지."

어느덧 넓은 공터에 당도하였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심에 누군가가 그럴싸한 제단을 만들어 그앞에 서 있었다.

그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기괴한 복장을 하고, 손에는 어느 동물의 머리인지 모를 머리뼈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쓰윽 한번 둘러보고는, 양손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왔는가, 새로운 세상의 백성들이여, 율제의 자식들이여~"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며 기도하듯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세자와 수현 역시 그들을 따라 몸을 숙이며 날캄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저자가 율제인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 세자의 물음에 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글세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가 싶긴 한데...확신할 순 없습니다."

그때였다. 한쪽에서 큰 북소리가 나며 몇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중에 투박하게 만든 거가(車駕) 같은 것을 타고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딱 봐도 그가 율제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휘양 찬란한 장식들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 뒤로 연희가 따라오고 있었다.

"헛,,,연희가?"

수현이 연희를 알아보고 헛숨을 들이키며 놀라는 순간, 세자의 눈에도 연희가 들어왔다.

고운 한복을 입고 고개를 살짝 숙인 체, 거가 뒤편에서 거가를 따라오는 행렬의 무리속에 섞여 있었다.

세자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희를 응시했다. 세자의 마음속은 복잡해져 갔다.
현재 조회: 5
댓글
0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저작권 보호: 무단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