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13
안개를 따라 돌던 나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춤에 꽃아 두었던 절구공이를 손에 잡아 들었다.
여차하면 이걸로 그 어떤 누군가를 때려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용기를 내어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안갯속으로 내리 꽂히며 쩌렁쩌렁한 천둥소리를 터뜨렸다.
순간적인 상황에, 나래는 저도 모르게 놀라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백하가 잘못되었을까 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안개가 옅어지고 있어!"
안개가 옅어지는 것을 알아본 아토가 얼른 소리쳐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래가 안개를 유심히 살피니 조금씩 걷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정말이네요?"
그때 옅어진 안개를 뚫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달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공이다"
나래는 원치 않던 상황을 마주한 거 같아 꺼림칙했지만, 절구공이를 꼭 쥐고 그림자를 향해 한걸음 내디뎠다.
안개를 뚫고 오공이 뛰쳐나오는 순간, 나래는 있는 힘껏 절구공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래의 어설픈 공격에 오공이 순간 놀라 움찔 했지만 재빨리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했다.
나래는 휘청였다가, 오공이 잠시 주춤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얼른 절구공이를 휘둘렀다.
"꼼짝 마!"
악을 쓰듯 외치며 휘두른 절구공이에 오공은 옆구리를 살짝 스치듯 맞자, 인상을 쓰며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멈췄다.
나래는 오공이 막 덤벼들듯한 모습에 뒤로 움츠러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아무 일도 없자 가만히 실눈을 떴다.
바로 코 앞에서 오공이 자신을 향해 뭔가를 하려다 말고 멈춘 그 상태로 눈만 껌뻑이며 서 있었다.
꽤나 불편해 보이는 자세인데도, 오공은 꼼짝도 않고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뭐야? 얘 왜 이래?"
아토가 이상하다며 오공을 위아래로 살피고, 초코도 다가와 오공을 보았다.
오공은 초코가 곁으로 다가오자 눈을 부릅뜨며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왜 그러고 있어?"
나래가 겁먹은 표정으로 물어봤지만, 오공은 대답도 하지 못한 체 눈만 껌뻑거렸다.
그 사이 안개가 완전히 걷히며, 안갯속에서 백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거기 있었구나. 걱정하였다."
백하는 나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훌쩍 다가왔다.
나래는 자신을 걱정했다는 백하를 보며 슬며시 웃어 보였다.
"전 괜찮아요. 도령님은 괜찮으세요?"
"나는 무탈하다. 진법에 빠져 화를 자초하였으니, 네게 면목이 없구나."
이번에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 쳤다.
"아니에요.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보다, 얘는 왜 이런 거죠? 도령께서 뭔가 하신 건가요?"
백하도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나는 진법을 깨기 위해 벼락을 떨어뜨린 것 밖에 없다. 벼락이 떨어지자, 겁을 먹고 도망치더구나."
나래는 아까 떨어진 엄청난 벼락을 떠올리며 놀라 물었다.
"그럼 아까 그 벼락이 도령께서 하신 거예요?"
"그렇다."
백하도령의 대답에 아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백하도령을 쳐다보았다.
"우뢰의 힘은 왕가에만 허락된 힘일텐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아토의 말을 어느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고, 나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공의 상태를 살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백하도령의 물음에 나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제가 이 절구공이로 혼쭐을 내주려다가, 옆구리만 살짝 맞았는데... 그때... 아!"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자신의 손에 들려진 절구공이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나래는 조심스럽게 절구공이로 오공을 톡 치며 말했다.
"말해."
그러자 막바로 오공이 소리쳤다.
"나한테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나래는 너무 놀라 뒤로 한걸음, 흠칫 물러섰다.
"뭐야?"
나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의 손에 들려진 절구공이를 내려다보았고, 이를 본 아토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놀랍네. 네가 가진 그것이 도깨비방망이였어?"
나래가 오히려 더 놀란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도, 도깨비방망이요?"
"그래. 도깨비 왕이 가지고 있었다는 신물인데, 그게 어찌 거기 있었던 거지? 아,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 도깨비 왕이 죽으면서 어느 누구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겨두었다고 했는데... 네가 '도깨비 보물'을 찾아달라고 하니, 천윤도가 도깨비방망이를 가르쳐 준 모양이구나."
나래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손에 들린 절구공이, 아니 도깨비방망이를 보면서 약간은 실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뭐 이렇게 생겼어요? 훨씬 크고, 막 뾰족한 게 튀어나와 있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토의 되물음에 나래는 아토를 보며, "어....글세요." 하고는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오공이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만 떠들고 나 좀 풀어줘. 날 언제까지 이렇게 놔둘 거야?"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오공에게로 향했고, 백하가 오공 앞에 서서 말했다.
"그간 네가 해친 이들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도대체 내가 누굴 해쳤다고 그래?"
오공이 억울한 표정으로 따지듯 되묻는 말에, 나래가 백하 곁에 다가와 서며 말했다.
"마을 도깨비들을 해친 걸 모르고 있을 줄 알아? 할머니한테 다 들었다고."
오공이 나래를 노려보았다.
"난 거짓말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속은 거지. 거긴 할머니 도깨비 따윈 없다고. 너희들을 속여 날 죽이라고 보낸 녀석은 구렁이야. 그 녀석은 모습을 바꿔 사람이나 다른 도깨비들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고."
백하와 나래는 잠시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내 백하가 다시 오공에게 물었다.
"네 말대로라면, 구렁이는 어찌하여 너를 해치려 하는 것이냐?"
"그 녀석 하고 나는 오랜 숙적 사이요, 나도 그놈이 싫어 죽이고자 하지만, 그놈 역시 날 죽이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단 말이오. 천인 나리께서는 모르겠지만, 요괴들 사이에서는 그놈과 내 사이가 워낙 유명하여 모르는 요괴가 없을 정도요."
백하에게 대답하는 오공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공의 시선이 나래에게로 향했다.
"너도 요괴이니 우리 사이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 아니냐?"
오공의 물음에, 나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얘기를 나래가 들어봤을 리 없지만, 어쩐지 이야기의 구도는 꽤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뭐... 들어봤던가..."
나래가 말끝을 흐리자, 오공이 다시 백하를 보며 말했다.
"당장 그 할머니란 녀석을 찾아갑시다. 나를 그놈과 마주하게 해 주면, 진실을 밝히겠소."
백하는 가만히 오공을 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찌 이곳에 진법을 펼쳐놓은 것이냐? 진법으로 우리를 해하려 했단 것도 다 그 구렁이 탓이라고 할 셈이냐?"
"그건..."
오공은 표정이 굳어지며 말끝을 흐렸다.
아토가 백하 옆으로 다가와 오공을 쳐다보며 핀잔을 주었다.
"흥, 할 말이 없는 게로 군."
아토의 말에 오공의 눈빛이 변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백하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다 말하겠소. 나나 구렁이 놈이나,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유가 있소. 우리는 둘이 함께 천년을 살았으나, 아직 요괴로 살고 있소. 둘 다 선인(仙人)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으나, 둘 중 하나만 될 수 있다 하여, 우리는 서로를 이렇듯 잡아먹기 위해 서로를 노리게 되었소. 근래에, 구렁이 백사(白蛇)놈이 자신과 친분이 있다는 홍저왕에게 가서 도움을 청할 거란 얘기를 듣고, 홍저왕에게 가는 길을 막고 기다린 것이오. 믿어주시오."
아토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럴 거면 그 구렁이만 공격하면 되지, 우릴 왜 공격한 거야?"
"백사 놈이 교활하기 그지없어, 수많은 이들에게 나를 모함하여 적대케 하였소.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 생각하여 겁을 주어 쫓아낼 생각이었지, 결코 죽일 생각은 없었소. 하물며 저 아이는 새끼 여우인 듯한데, 구미호 가족의 새끼를 건드렸다가는 내 명줄이 달아날 것인데, 어찌 내가 해할 생각을 하겠소?"
오공의 말에, 일순 모두의 시선이 나래에게로 향했다.
"어... 음... 그, 그렇죠."
나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수긍할 뿐이었다.
그런 나래를 보며 백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오공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홍저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네가 결백하다면 우리를 따라 홍저왕에게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네가 말한 대로 푸실 마을에 할머니를 찾아갈 것이다. 네가 진실되게 말한 것이라면, 내 금왕께 고하여 네가 선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우마."
백하의 말에 오공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오공이 감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백하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허나, 허튼짓을 하거나, 네 말에 일말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선인은 커녕 네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니. 신장(神將)의 칼에 명을 달리하고 싶지 않거들랑, 거짓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오공은 기쁜 표정으로 답하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거짓됨이 있다면 기꺼이 죗값을 받겠습니다."
아토가 걱정되는 듯 백하를 향해 다들리게 속삭였다.
"괜찮을까? 저놈 교활해 보이는데?"
오공이 얼른 정색을 했다.
"내 여태껏 살아오면서, 험하거나 거친 행동을 한적은 있어도, 교활하게 행한 적은 없소."
"꼬?"
초코가 오공 옆으로 고개를 까닥거리며 다가오자, 오공이 질색팔색 하며 손을 내저었다.
"으~ 이... 이 닭 좀... 이 닭 좀 치워주시오. 나는 닭이... 으..."
질겁하는 오공을 보며 나래가 피식 웃고는 백하도령을 보았다.
백하도령은 나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나래 역시 답하듯 고개를 끄덕거리곤 오공에게 다가가 도깨비방망이로 툭 쳤다.
"움직여라."
그러자 오공은 뭔가에 붙잡혀 있다가 풀려난 듯 왈칵 움직이더니, 얼른 나래 뒤로 도망갔다.
"저... 저 닭 좀 치워주시오."
되려 초코를 보고 무서워서 나래 뒤에 숨은 오공이라니, 나래는 그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토가 퉁명스레 말했다.
"닭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모르다니... 한심하구만."
그 순간, 초코의 부리가 아토의 머리를 쪼았다.
"아! 이 닭대가리가 진짜, 오늘 한번 제대로 붙어볼까?"
초코와 아토가 여느 때처럼 티격태격하는 사이, 백하가 앞장서서 천태산으로 향했고, 그 뒤를 나래와 솔이, 그리고 오공까지 다 함께 따랐다.
여차하면 이걸로 그 어떤 누군가를 때려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용기를 내어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안갯속으로 내리 꽂히며 쩌렁쩌렁한 천둥소리를 터뜨렸다.
순간적인 상황에, 나래는 저도 모르게 놀라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백하가 잘못되었을까 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안개가 옅어지고 있어!"
안개가 옅어지는 것을 알아본 아토가 얼른 소리쳐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래가 안개를 유심히 살피니 조금씩 걷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정말이네요?"
그때 옅어진 안개를 뚫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달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공이다"
나래는 원치 않던 상황을 마주한 거 같아 꺼림칙했지만, 절구공이를 꼭 쥐고 그림자를 향해 한걸음 내디뎠다.
안개를 뚫고 오공이 뛰쳐나오는 순간, 나래는 있는 힘껏 절구공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래의 어설픈 공격에 오공이 순간 놀라 움찔 했지만 재빨리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했다.
나래는 휘청였다가, 오공이 잠시 주춤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얼른 절구공이를 휘둘렀다.
"꼼짝 마!"
악을 쓰듯 외치며 휘두른 절구공이에 오공은 옆구리를 살짝 스치듯 맞자, 인상을 쓰며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멈췄다.
나래는 오공이 막 덤벼들듯한 모습에 뒤로 움츠러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아무 일도 없자 가만히 실눈을 떴다.
바로 코 앞에서 오공이 자신을 향해 뭔가를 하려다 말고 멈춘 그 상태로 눈만 껌뻑이며 서 있었다.
꽤나 불편해 보이는 자세인데도, 오공은 꼼짝도 않고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뭐야? 얘 왜 이래?"
아토가 이상하다며 오공을 위아래로 살피고, 초코도 다가와 오공을 보았다.
오공은 초코가 곁으로 다가오자 눈을 부릅뜨며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왜 그러고 있어?"
나래가 겁먹은 표정으로 물어봤지만, 오공은 대답도 하지 못한 체 눈만 껌뻑거렸다.
그 사이 안개가 완전히 걷히며, 안갯속에서 백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거기 있었구나. 걱정하였다."
백하는 나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훌쩍 다가왔다.
나래는 자신을 걱정했다는 백하를 보며 슬며시 웃어 보였다.
"전 괜찮아요. 도령님은 괜찮으세요?"
"나는 무탈하다. 진법에 빠져 화를 자초하였으니, 네게 면목이 없구나."
이번에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 쳤다.
"아니에요.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보다, 얘는 왜 이런 거죠? 도령께서 뭔가 하신 건가요?"
백하도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나는 진법을 깨기 위해 벼락을 떨어뜨린 것 밖에 없다. 벼락이 떨어지자, 겁을 먹고 도망치더구나."
나래는 아까 떨어진 엄청난 벼락을 떠올리며 놀라 물었다.
"그럼 아까 그 벼락이 도령께서 하신 거예요?"
"그렇다."
백하도령의 대답에 아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백하도령을 쳐다보았다.
"우뢰의 힘은 왕가에만 허락된 힘일텐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아토의 말을 어느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고, 나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공의 상태를 살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백하도령의 물음에 나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제가 이 절구공이로 혼쭐을 내주려다가, 옆구리만 살짝 맞았는데... 그때... 아!"
나래는 뭔가 생각난 듯, 자신의 손에 들려진 절구공이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나래는 조심스럽게 절구공이로 오공을 톡 치며 말했다.
"말해."
그러자 막바로 오공이 소리쳤다.
"나한테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나래는 너무 놀라 뒤로 한걸음, 흠칫 물러섰다.
"뭐야?"
나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의 손에 들려진 절구공이를 내려다보았고, 이를 본 아토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놀랍네. 네가 가진 그것이 도깨비방망이였어?"
나래가 오히려 더 놀란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도, 도깨비방망이요?"
"그래. 도깨비 왕이 가지고 있었다는 신물인데, 그게 어찌 거기 있었던 거지? 아,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 도깨비 왕이 죽으면서 어느 누구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겨두었다고 했는데... 네가 '도깨비 보물'을 찾아달라고 하니, 천윤도가 도깨비방망이를 가르쳐 준 모양이구나."
나래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손에 들린 절구공이, 아니 도깨비방망이를 보면서 약간은 실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뭐 이렇게 생겼어요? 훨씬 크고, 막 뾰족한 게 튀어나와 있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토의 되물음에 나래는 아토를 보며, "어....글세요." 하고는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오공이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만 떠들고 나 좀 풀어줘. 날 언제까지 이렇게 놔둘 거야?"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오공에게로 향했고, 백하가 오공 앞에 서서 말했다.
"그간 네가 해친 이들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도대체 내가 누굴 해쳤다고 그래?"
오공이 억울한 표정으로 따지듯 되묻는 말에, 나래가 백하 곁에 다가와 서며 말했다.
"마을 도깨비들을 해친 걸 모르고 있을 줄 알아? 할머니한테 다 들었다고."
오공이 나래를 노려보았다.
"난 거짓말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속은 거지. 거긴 할머니 도깨비 따윈 없다고. 너희들을 속여 날 죽이라고 보낸 녀석은 구렁이야. 그 녀석은 모습을 바꿔 사람이나 다른 도깨비들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고."
백하와 나래는 잠시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내 백하가 다시 오공에게 물었다.
"네 말대로라면, 구렁이는 어찌하여 너를 해치려 하는 것이냐?"
"그 녀석 하고 나는 오랜 숙적 사이요, 나도 그놈이 싫어 죽이고자 하지만, 그놈 역시 날 죽이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단 말이오. 천인 나리께서는 모르겠지만, 요괴들 사이에서는 그놈과 내 사이가 워낙 유명하여 모르는 요괴가 없을 정도요."
백하에게 대답하는 오공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공의 시선이 나래에게로 향했다.
"너도 요괴이니 우리 사이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 아니냐?"
오공의 물음에, 나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얘기를 나래가 들어봤을 리 없지만, 어쩐지 이야기의 구도는 꽤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뭐... 들어봤던가..."
나래가 말끝을 흐리자, 오공이 다시 백하를 보며 말했다.
"당장 그 할머니란 녀석을 찾아갑시다. 나를 그놈과 마주하게 해 주면, 진실을 밝히겠소."
백하는 가만히 오공을 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찌 이곳에 진법을 펼쳐놓은 것이냐? 진법으로 우리를 해하려 했단 것도 다 그 구렁이 탓이라고 할 셈이냐?"
"그건..."
오공은 표정이 굳어지며 말끝을 흐렸다.
아토가 백하 옆으로 다가와 오공을 쳐다보며 핀잔을 주었다.
"흥, 할 말이 없는 게로 군."
아토의 말에 오공의 눈빛이 변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백하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다 말하겠소. 나나 구렁이 놈이나,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유가 있소. 우리는 둘이 함께 천년을 살았으나, 아직 요괴로 살고 있소. 둘 다 선인(仙人)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으나, 둘 중 하나만 될 수 있다 하여, 우리는 서로를 이렇듯 잡아먹기 위해 서로를 노리게 되었소. 근래에, 구렁이 백사(白蛇)놈이 자신과 친분이 있다는 홍저왕에게 가서 도움을 청할 거란 얘기를 듣고, 홍저왕에게 가는 길을 막고 기다린 것이오. 믿어주시오."
아토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럴 거면 그 구렁이만 공격하면 되지, 우릴 왜 공격한 거야?"
"백사 놈이 교활하기 그지없어, 수많은 이들에게 나를 모함하여 적대케 하였소.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 생각하여 겁을 주어 쫓아낼 생각이었지, 결코 죽일 생각은 없었소. 하물며 저 아이는 새끼 여우인 듯한데, 구미호 가족의 새끼를 건드렸다가는 내 명줄이 달아날 것인데, 어찌 내가 해할 생각을 하겠소?"
오공의 말에, 일순 모두의 시선이 나래에게로 향했다.
"어... 음... 그, 그렇죠."
나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수긍할 뿐이었다.
그런 나래를 보며 백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오공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홍저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네가 결백하다면 우리를 따라 홍저왕에게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네가 말한 대로 푸실 마을에 할머니를 찾아갈 것이다. 네가 진실되게 말한 것이라면, 내 금왕께 고하여 네가 선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우마."
백하의 말에 오공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오공이 감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백하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허나, 허튼짓을 하거나, 네 말에 일말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선인은 커녕 네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니. 신장(神將)의 칼에 명을 달리하고 싶지 않거들랑, 거짓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오공은 기쁜 표정으로 답하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거짓됨이 있다면 기꺼이 죗값을 받겠습니다."
아토가 걱정되는 듯 백하를 향해 다들리게 속삭였다.
"괜찮을까? 저놈 교활해 보이는데?"
오공이 얼른 정색을 했다.
"내 여태껏 살아오면서, 험하거나 거친 행동을 한적은 있어도, 교활하게 행한 적은 없소."
"꼬?"
초코가 오공 옆으로 고개를 까닥거리며 다가오자, 오공이 질색팔색 하며 손을 내저었다.
"으~ 이... 이 닭 좀... 이 닭 좀 치워주시오. 나는 닭이... 으..."
질겁하는 오공을 보며 나래가 피식 웃고는 백하도령을 보았다.
백하도령은 나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나래 역시 답하듯 고개를 끄덕거리곤 오공에게 다가가 도깨비방망이로 툭 쳤다.
"움직여라."
그러자 오공은 뭔가에 붙잡혀 있다가 풀려난 듯 왈칵 움직이더니, 얼른 나래 뒤로 도망갔다.
"저... 저 닭 좀 치워주시오."
되려 초코를 보고 무서워서 나래 뒤에 숨은 오공이라니, 나래는 그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토가 퉁명스레 말했다.
"닭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모르다니... 한심하구만."
그 순간, 초코의 부리가 아토의 머리를 쪼았다.
"아! 이 닭대가리가 진짜, 오늘 한번 제대로 붙어볼까?"
초코와 아토가 여느 때처럼 티격태격하는 사이, 백하가 앞장서서 천태산으로 향했고, 그 뒤를 나래와 솔이, 그리고 오공까지 다 함께 따랐다.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