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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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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1.09분

54화 - #1


중앙 맨 위쪽 옥좌에 왕이 앉아있고, 그 좌우로 문무백관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 병판이 한걸음 나서 말했다.

"전하, 근래에 사교도들이 감히 대역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포도청에서 다 같이 합심한 결과, 간악한 무리들이 형벌에 복종하고 그 죄를 고변하였기에 나라의 운명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옵서는 잡힌 자와 이들을 도운 자들을 모두 참형에 처하여, 나라의 근간을 바로하시옵소서."

병판의 말에 왕이 그를 보며 물었다.

"그들을 도운 이가 누구라 하였는가?"

"송연희라는 계집으로, 일전에 이미 잡혀 왔다가 세자마마의 도움으로 풀려난 적이 있사옵니다. 허나, 은혜를 모르고 또다시 사교도들을 도와 나라를 혼란케 하였으니 마땅히 참형에 처함이 바른 줄로 아뢰옵니다."

왕은 잠시 눈을 감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그녀의 죄를 용인하는 순간, 세자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판 유상옥이 한걸음 나서 이야기했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번 사교도 무리를 도운 일에, 세자마마께옵서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사옵니다. 이래서야 어찌 나라의 근간이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조사하여 털끝만 한 의혹도 남겨놔서는 아니 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이번에는 우의정이 나서 말했다.

"전하, 세자 저하에 대한 의혹은 이미 진작부터 있어왔습니다. 더 이상 방치하지 마옵시고, 사헌부에서 샅샅이 조사하여 모든 의혹을 털어낼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우의정의 말에 모두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쳤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왕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 무게를 측량할 수 없는 마음의 짐이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 하라..."

무겁게 꺼낸 단 한마디. 패배 선언과도 같았다.

마치 그들 앞에 무릎 꿇은 듯한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그토록 세자만은 내어주지 않으려 애써 왔건만, 저들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것을 다 내어준 것만 같았다.

그 사이 병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뿐만 아니라, 우포청에 박지언이 사교도들과 한통속이 되어, 주요 인물들이 도망가는 것을 일부러 도왔다는 고변이 있었사옵니다. 이 또한 그 책임을 물어 엄벌에 처함이 마땅한 줄 아뢰옵니다."

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박지언은 사람됨이 융통성이 없고, 기개가 높은 무인으로 칭송받는 인물이오. 그런 이가 무엇 때문에 사교도들을 돕는단 말이오?"

그러자 이판 유상옥이 다시 나서 이야기했다.

"허나, 그의 도움으로 사교도 무리의 일부가 도망친 것은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무공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사교도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상처만 주고 도망치도록 방치하였음을, 포도청 병사들도 분명히 보았다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본인의 책무를 잊은 명백한 과오임이 분명하옵니다. 이 의혹 또한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왕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리하시오."

모두가 다 같이 대답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묘했다.

불안하고 두려워야 할 순간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렇듯 몸이 묶여, 옥사에 갇힌 체 추국이 예정되어 있는 마당이니, 어느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희는 마음이 차분했다.

마치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 자기로 인해 세자의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더 앞섰다.

또한 자신이 받을 고통보다, 그로 인해 윤세영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이미 귀신이 되어봤기 때문인가..."

연희 스스로도 자신이 느끼는 그런 감정들이 이해되지 않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왔을 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곳에 잡혀 들어왔었다.

연희는 문득 그때를 생각하다, 당시 자신을 구해주던 세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워질 찰나,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내 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하..."

연희가 일어나려 애쓰자, 세자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아니다. 그대로 있거라."

이어 세자가 처연한 표정으로 연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만은 내 지켜주겠다 약속하였는데, 이리되어 너를 볼 낯이 없구나."

"아니옵니다, 저하. 괘념치 마시옵소서."

"알아보니 당장 추국이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추국이 있기 전에 너를 구해낼 방도를 찾을 것이다. 허니, 너무 염려치 말거라."

연희는 자신을 걱정하는 세자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자신보다 오히려 세자가 더 걱정이었다.

"예, 저하. 염려 마시옵소서."

세자는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미안하구나."

"아니옵니다.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세자는 아쉬운 듯 계속 그대로 서 있었다.

미안한 듯 연희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면서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저는 괜찮사옵니다. 저하."

연희는 마치 세자에게, 이제 그만 가도 된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세자는 답답하고 분한 마음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연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어렵사리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현이 들어왔다.

수현은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세자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알아본 것이 있는가?"

세자의 무거운 목소리에, 수현이 연희에게 잠시 눈빛을 보내고는 세자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예, 연희에 대한 조사는 일전에도 같은 조사를 했던 경력 홍석평이 맡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헌데 그보다..."

수현이 말끝을 흐리니, 세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수현을 쳐다보았다.

이내 수현이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박지언 대장이 의금부에 압송되었습니다."

세자의 표정이 휘둥그레졌다.

"박지언이? 어찌하여?"

"듣기로는, 일부러 사교도의 수장을 풀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놀랄 일이구나. 그는 사교도의 토벌에 앞장선 인물인데, 이제 와서 사교도와 한통속이라 의혹을 받다니..."

"연희에 대한 추국 또한 의아합니다. 잡아들이는 것은 당장이라도 문초할 것처럼 잡아들이더니, 정작 가둬놓고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수현의 이야기에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구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아바마마를 만나 뵈어야 할 것 같구나."

"전하께 무슨 말씀을 전하려 하십니까? 단순히 연희를 풀어달라고만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 알고 있다. 그래서는 전하께서도 도와주시기 힘드실 테지."

잠시 말없이 고민하던 세자가 연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연희야, 혹,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내게 해줄 만한 것이 없겠느냐?"

세자의 물음에 연희는 고민에 빠졌다.

기억을 더듬으며 주동환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이야기해줄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세자와 수현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하, 한 가지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궁궐 내에 있는 상궁 한 사람이, 제신녀라고 하여, 천방주를 돕는 측근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저의 시작부터 함께하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녀라면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자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녀를 어찌 찾을 수 있겠느냐?"

세자의 물음에 연희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딱히... 아, 아마도 그녀라면 알아볼 것입니다."

"누구 말이냐?"

"그... 소... 연 인가... 하였던..."

옆에서 듣고 있던 수현이 놀라 되물었다.

"백무의 제자인 소연을 말하는 것이냐?"

"예, 그녀는 저를 보자 금세 기생령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녀와 함께 상궁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듣기로 천방주가 마음만 먹으면 기생령을 언제든지 거두어 들일 수 있다 했습니다. 제신녀가 붙잡혔다는 것을 천방주가 알면 금세 거둬들일 것입니다."

세자와 수현이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구나. 내 기필코 그녀를 잡아서 증좌를 확보 하마. 그리고, 꼭 너를 구해낼 것이다."

세자의 말에 연희는 살며시 웃어 보였다.

"예, 믿겠습니다. 저하."

"그래."

세자는 서두르기 위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몇 번이고 연희를 돌아보며, 그렇게 힘겹게 그 자리를 떠나는 세자를, 연희는 최대한 웃는 얼굴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세자가 떠나가고 난 뒤에 남겨진 그녀는, 어쩐지 알길 없는 쓸쓸함과 함께 비로소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

추국장에서 몇몇 사람들이 문초를 받고 있었고, 그중 체격이 장대한 한 중년 남자가 중앙에 앉아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대사헌 윤일호가 있었으며, 윤일호의 좌우에는 사교도에 대한 수사를 맡은 의금부 동지사이자 윤일호의 막내아들 윤하령이, 그리고 반대쪽에는 경력 홍석평이 있었다.

"네가 정녕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 것이냐?"

윤일호의 말에 중앙에 앉은 중년 남자, 박지언이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평생을 무인으로 살며 한치도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소. 대감은 어찌 이 나를 기만하는 것이오?"

"닥쳐라, 이놈! 네놈의 수하들이 이미 고변하였다. 그날! 네놈이 그들의 수장을 놓아주는 모습을 본 이가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그자가 부상을 당한 것은 사실이나, 부상은 그자만 입은 것이 아니오. 그는 나의 칼에 외상을 입었으나, 나는 그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내상을 입은 상태였소. 도망치는 그자를 잡으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나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을 것이오."

"닥쳐라! 네놈이야 말고 괴상한 말로 국법을 기만하고 있지 않느냐? 당장 저놈의 주리를 틀어라!"

박지언의 옆에 선 두 나졸이 주리를 틀자, 박지언의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으으으... 어찌..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이오?!"

박지언의 외침을 못 들은 체하며, 윤일호가 홍석평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앞으로 나섰다.

"멈춰라."

홍석평의 말에 나졸들이 멈추자, 박지언이 지친 듯 숨을 헐떡거렸다.

"이것을 보시오."

홍석평이 무언가를 내밀어 보이니, 얇은 서책이었다.

박지언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것이 무엇이오?"

박지언이 궁금하다는듯 묻는 말에 홍석평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찌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그대의 집에서 나온 사교도의 문건이다. 이것에는 그대가 사교도들과 맺은 맹약의 글이 적혀 있다."

박지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것이 어찌 내 집에서 나왔다는 것이오? 나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소."

"이미 이렇게 증좌가 나왔는데도 발뺌을 할 셈인가? 당장 주리를 틀어라."

홍석평의 말에 나졸들이 다시 주리를 틀기 시작하자, 박지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니오, 정녕 내 것이 아니오.. 으으으으아아...."

홍석평이 고개를 돌려 윤일호를 바라보자, 윤일호가 보일 듯 말듯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런 윤일호를 보며 홍석평이 차분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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