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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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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97분

4화 - #4


소파에 앉은 세희,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캠핑용 간이 의자에 몸을 걸친 수호가 있었다.

도도한 표정의 세희를 쳐다보며, 수호가 따지듯이 물었다.

"자, 그럼 이제 제대로 들어 봅시다. 대체 나랑 뭘 어쩌자는 거요?"

세희는 여유롭게 눈썹을 꿈틀 거리며, 생글생글 웃는 승자의 얼굴을 했다.

"뭐... 들을 마음이 생긴 모양인데~ 잘 들어요.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됐고, 빨리 말이나 하쇼."

"말 놓는다더니?"

"하~"

그래..참자! 착한 내가 참는다..수호가 천장한번 쳐다보고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고개를 내려 세희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 놓는다. 왜? 왜 왔어? 왜? 대체 왜? 내가? 뭘? 어쨌다고? 어?"

"영환사가 그리 흔한 종류의 사람은 아니죠."

수호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내가 영환사인건 어떻게 아는 건데?"

"당신은 그냥 그 사람의 능력을 가져다 쓰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거 일종에 혼(魂) 교환이거든요. 나처럼 유능한 무당들이 영환능력이 사용되는 시점에 피대상자와 영환사 사이에 있으면 그 영혼교환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교환되는 혼의 흔적을 쫓아왔죠."

"혼의 흔적?"

"뭐, 나 정도 되는 무당한테는, 영흔술(靈痕術) 정도는, 뭐, 껌이죠~"

태연자약한 세희의 태도가 재수없는 수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관심 없고. 영환사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굳이 왜?"

"음... 딱 한 사람, 더 알고 있긴 하죠. 근데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바로 우리가 상대해야 할 최종 보스랄까?"

수호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 변화를 눈치챈 세희가 몸을 앞쪽으로 숙이며 둘밖에 없는데도 혹시 누가 들을새라 은밀하게 물었다.

"알고 있죠? 누군지?"

수호는 마치 속마음을 들킨 듯,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른 지워내며 도리어 화를 냈다.

"뭐, 뭔 소리야? 내가 누굴 알아?"

"에이~ 알고 있는 눈치인데? 김주환. 최의원 최측근 이죠. 그 사람이 실질적인 배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거 같던데..."

"아~ 됐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같은 영환사끼리 싸움이야 뻔한 거 아냐? 누가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느냐 인데?"

갑자기 수호가 인상을 팍 쓰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인간관계가 협소해. 그냥 밥이나 먹고살자, 그런 주의라..."

"뭐, 그래 보여요."

"뭐?"

수호가 눈을 부릅뜨자, 세희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인다구요."

수호는 자신이 한 말이라 차마 뭐라 반박은 못한 체, 답답한 한숨에 삭힌 분을 태워 내보냈다.

"아오, 진짜... 이렇게 사람 때리고 싶기는 또 처음이네."

세희는 배시시 웃으며 배짱을 부렸다.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살아있는 게 기적이구만."

"어머~ 그래도 폭력은 안되죠."

"야차는 괜찮고?"

세희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손사래 치며 말했다.

"제가 다~ 세밀하게 조정하죠. 안 다치게. 살살. 그냥 깜짝 놀라게만."

"아~ 세밀한 컨트롤을 하신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세희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수호는 더욱 기가 찬 표정으로 세희를 허망하게 쳐다봤다.

"아니~ 그 사람은 국회의원 아냐? 국회의원이면... 그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내가 상대가 되나?"

"아니 지금 뭐, 결투해요? 뭐 일대일로 싸워서, 이겨야 하는 강박증 같은 거 있어요?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꾸미는 걸 같이 막자는데, 뭐가 이렇게 조건이 까다로워요?"

세희의 타박에 수호는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가, 이상황이 너무도 억울한 마음에 재빨리 싸늘한 표정으로 세희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왜애~?"

"그러니까, 영환사가 별로 없다니까."

"아니 그러니까, 왜 굳이. 영.환.사.여야 하냐고?"

"뭐... 영환사일 필요는 없죠."

갑자기 돌변한 세희의 말에 순간 수호는 맥이 빠져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낫겠죠."

수호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아.. 저 또라이..

뭔가 이 도도리표 같은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질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 좋아!"

갑자기 수호가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일단 그건 패스. 상대는 국회의원이야 국회의원. 내가, 무슨 수로?"

"이제 그 방법을 찾아야죠."

"내가 굳이? 왜?"

세희가 수호 앞으로 조금 더 다가와 앉으며 속삭였다.

"말했죠? 내가 모시는 신이 큰 신이라고. 그 신이 경고하는 거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수호가 사뭇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그 신한테.... 왜 나냐고 물어봐바."

"아~ 놔~"

세희가 몸을 뒤로 기대며 짜증 내자, 수호 역시 몸을 뒤로 젖혔다.

"거 좀 대국적으로 갑시다."

세희가 짜증을 가득 담아 목소리를 내자, 수호 또한 이에 질세라 반박했다.

"거 좀 내버려 둡시다."

"정의감은 어디 숨겨놓으셨나? 아니면 날 때부터 없었나?"

"정의감이 밥 먹여 주나?"

"밥만 먹고 삽니까?"

"밥 안 먹으면 죽어. 다이(die)"

세희가 입술을 내밀어 후 하고 한숨과 함께 바람을 불어 자신의 앞머리를 공중으로 흩날리며 노려보았다. 이에 질세라 수호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며 마주 응시했다.

"대선까지 1년 남았어요. 최의원이 분명히... 뭔 짓을 해서라도 대통령이 될라고 들 겁니다."

"아~ 여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1야당도 아닌, 국선당의 대선후보가? 대통령 후보군중 9위? 그쯤 되나? 한 0.8%? 그런 사람이 1년 만에 대통령이 될만한 지지기반을 만든다? 내가 아무리 정치를 몰라도, 그건 아닐 거 같은데? 무당한테 굿을 한다고 되나? 영환사가 이 사람 저 사람 능력 끌어다가 부정 투표라도 하나? 부정 투표를 해도 질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걸 알아내야죠. 대체 뭔 꿍꿍이 인지."

"그건 선관위에서 하겠지. 경찰에서 수사하겠지."

"경찰에서 수사해서 잡을 거 같으면 신이 경고도 안 해요."

"그 신은 법을 모르나 보지. 언제 적 신이야? 민주주의를 알아? 투표로 대통령 뽑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

세희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신에 대한 모독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난 모르겠고.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든, 안되든 관심도 없고. 난 정의감 같은 것도 없으니까. 가서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오~?"

수호의 비아냥거림에 세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회할 텐데?"

"뭔 후회?"

"내가 얘기했죠. 내가 그쪽을 눈치챘는데, 이선화가 모를까?"

"누구?"

"이선화. 김주환 곁에 있는 그 무당. 당신도 알잖아."

"내가 뭘 알아?"

"알고 있는 거 다 알아요. 신한테 들었어. 당신과 김주환의 악연."

생각도 못한 말에 수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굳어진 얼굴로 세희의 얼굴을 쳐다만 보고 있자, 세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당신은 그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이 당신을 죽이러 찾아올 거야."

"그들이 왜?"

"또 다른 영환사의 존재를, 김주환이 내버려 둘 거라고 생각해요? 그를 몰라요?"

갑자기 화가 난 표정으로 수호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호의 화난 표정을 쳐다보며 그의 의중을 짐작해보려하는데, 그런 세희를 보며 수호가 물었다.

"지금까지도 별일 없었는데, 왜 이제 와서 날 죽이려 들 거란 거지? 내가 그 사람 주변을 맴돈 게 어제오늘 같아?"

세희는 진중하게 수호 눈을 응시했다.

"그동안은 여물지 않았었으니까."

"뭐?"

"당신이란 존재가... 그다지 여물지 않았었거든요. 위협적이지 않았던 거지. 근데 이제 큰일을 앞두고 있으니, 사소한 위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게 된 거죠."

"여물어? 내가 무슨 과일이야? 쌀 수확하나? 영환 능력이 뭐 레벨업이라도 하는 줄 알아?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남의 능력을 쓰는 요령이 좋아졌죠. 안 그래요?"

세희의 말에 수호는 할 말을 잃었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 능력을 가졌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 능력을 적절히 잘 활용하느냐도 중요한 요소인데, 그게 탁월해진 거죠."

"그래서? 대체 뭘 어쩌자고?"

"같이 방법을 찾자고. 몇 번을 말해? 가만히 있다가 당하느니, 제대로 맞서 싸워보자니까?"

"너는? 넌 대체 왜 그렇게 그 인간들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내가 모시는 신이 경고했다고 말했잖아."

"말이 짧아졌다?"

"요. 요. 요가 이제 나왔네, 요! 마음이 조급해서 그래, 요! 다 하려고 했어, 요!"

수호가 가만히 세희를 노려보다가 자리에 앉자, 세희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수호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

"그래서? 당신 계획이 뭔데?"

"중요하게 만날 사람이 있어요."

"또 누굴 만나서 민폐를 끼치려고?"

세희가 피식 웃어 보였다.

"조력자를 얻었으니까. 이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사람을 찾아야죠. 민주주의 법대로 할 사람."

"수사? 뭐, 경찰?"

"빙고."

"뭐... 아무나 찾아간다고, 경찰이 국회의원을 수사할 거 같아?"

"그 국회의원과 원한이 있는 사람이면 얘기가 다르죠."

"원한?"

"아는 사람일 텐데?"

수호는 순간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외삼촌?"

"유능한 형사죠."

수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날 찾아온 거였어? 결국... 삼촌이 필요해서?"

"두 사람 다 필요했어요. 더할 나위 없잖아요. 원한 관계가 얽히고설킨 입장들이니까."

"난 원한 가진 적 없어."

"거짓말."

"진짜다."

"엄마 이름 걸고?"

수호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 설레 내저었다.

"아주 못된 것만 배웠구나."

"거짓말이 더 나쁜 거 아닌가?"

"그들이 범인이란 증거는 나오지 않았어."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죠. 그러니까 당신과 당신 외삼촌이 적임자인 거죠. 외삼촌은 확신하고 있을걸요."

"이미 종료된 수사야."

"하지만 외삼촌은 계속 조사하고 있을 걸요. 내기할래요?"

"형사 일 잘하는 외삼촌한테 무슨 말을 해서 들쑤셔 놓으려고?"

"범인 잡는 거 도와주겠다는데, 싫어할까요?"

"어. 완전 싫어할 거 같은데?"

"그럼 설득해야죠."

"어떻게?"

"그러게요, 어떻게 설득하실래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 말에 수호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또라이! 진짜...

"와, 너 뻔뻔하다는 소리 많이 듣지?"

"뭐, 그쪽도 한뻔뻔 하시네요. 난 그래도 정의감 운운하면 최소한 양심이라도 움직일 줄 알았지."

"양심에 한 번도 어긋난 삶을 산적이 없네요."

"양심이 밴댕이 소갈딱지 인가 보네요."

"뭐?"

세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가자, 뒤에서 수호가 궁시렁 거렸다.

"야, 너, 그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어?"

"네네~ 고아거든요. 그래도 양심은 있거든요. 정의감도 있고. 누구는 서울대 부속 고아원을 나와서 그런가, 정의감이 정말, 처참하네요."

그 말을 남겨놓고 세희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수호가 황급히 소리쳤다.

"야, 어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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