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3
기가 찼다.
"하, 와~~ 어이가 없네?"
화가 난 수호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세희는 어이없는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수호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방금 전 그건 무공(武功)이죠? 누구의 무공이죠? 어떻게 하면 그 사람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는 거예요? 조건이 뭐죠?"
대답 듣기를 원하기는 하는 건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세희를 째려보던 수호가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 새벽에 지금 남의 집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가택침입으로 감방 가는 게 소원인가 봅니다?"
수호의 물음에 세희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신고해도 초범이라 감방까지는 안 가요. 그리고 내가 들어와서 한 게 없는데? 뭘 했는데요?"
"하, 참~ 뻔뻔도 하셔라. 저 괴물... 저거 저거 야차 맞죠? 야차를 부린 겁니까, 지금?"
"아니 뭐... 하도 믿질 않아서... 쓰지 말라는 능력까지 써가면서..."
"댁 때문에 또 쓰게 만든 건 뭔데?"
세희의 큰 두눈에 눈웃음을 한가득 담고 쳐다보았다.
"이건 재밌었으니까, 예외로 치죠. 덕분에 구경 잘했네. 아니, 근데 진짜... 조건이 뭐예요? 무공을 하는 사람을 알아요?"
수호는 코가 막히고 기가 막힌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할것 같았다.
"아 뭐 저쪽인가 뭔가에 무당도 뭐 능력이 출중하니 어쩌니 할 땐 언제고 진짜..."
"괜찮아요. 들어오기 전에 아파트 주변으로 살짝 결계를 쳐놔서... 내일 아침까지는 뭘 해도 모를 거예요."
태연한 세희의 대답에, 수호는 기가 차 헛-허-하며 어이없는 실소만 연발할 따름이었다.
문득 세희가 하품을 하며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졸리네요. 오늘은 일단 여기서 자죠."
수호가 눈을 부릅 떴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 큰 처자가 어디..."
"다 컸으니까 알아서 하는 거지, 안 잡아먹을 테니까, 자던 잠이나 마저 자요. 나머지 얘긴 내일 합시다. 옆에 방하나 더 있던데, 거기서 자면 돼요?"
"거기 옷방이에요. 잘 공간 없어요."
"알았어요. 그럼 거실 소파에서 자야지."
세희가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나가버리자, 화들짝 놀란 수호가 따라 나왔다.
"아니, 이봐요. 아니 대체 누구 맘대로..."
세희는 들은 체도 안 하고 거실 소파에 가서 풀썩 누워버렸다.
"아~ 피곤하다~"
세희는 마치 수호에게 들으란 듯이 말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니 이봐요! 이 사람이 진짜..."
수호가 옆으로 다가와 분통을 터뜨려도 세희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코 고는 소리까지 냈다.
"아 진짜..."
막무가내인 그녀를 어찌할 수도 없고 어이없고 황당해서 실소만 계속 연이어 나왔다.
"으악~"
수호는 헝클어진 머리를 더욱 흐트러뜨리며 짜증을 내고는, 마지못한 듯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침대에 누워서도 도통 분이 풀리지 않아 궁시렁거리며 화를 삭히려 노력했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사이, 소파에 누워있던 세희가 슬며시 눈을 떴다.
잠시 고개를 들어 안방의 동태를 살피던 그녀는, 이내 다시 누워서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후~~"
어쩐지 꽤나 묵직한 한숨이 잇새를 뚫고 나왔다.
"앞으로 좀 험난하겠네."
앞날이 걱정된 세희는 작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 순간, 안방 문이 벌컥 열리자 세희는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안자는 거 다 알거든요. 다 큰 처자가 대체... 그 뭐, 당신이 모시는 그 신인가 뭔가는 남녀칠세부동석도 모른답니까?"
세희는 눈을 감은 체 뻔뻔하게 맞받아 쳤다.
"네~ 모릅니다. 신들은 그런 거 모릅니다."
수호가 기가 찬 표정으로 문을 다시 닫으려는 찰나,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운 체로 수호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참!"
솔깃한 수호가 문을 닫으려다 말고 멈춰서 세희를 쳐다보자, 세희가 그를 보며 물었다.
"아침에 밥 먹죠?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 반찬 뭐 있어요? 난 국물 없으면 밥 못 먹는데."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는 수호는 '쾅!'소리가 나게 안방 문을 닫아 버렸다.
세희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바로하며 말했다.
"아니 뭐~ 없으면 내가 하면 되고. 된장은 있겠지? 설마.... 뭐 없으면 김치찌개 하면 되고. 김치는 있겠지? 에이, 설마..."
마치 수호에게 들으란 듯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안방 침대에 누워 세희의 말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수호는 분이 풀리지 않아 양팔을 마구 미친듯이 휘둘렀다.
"아~~ 진짜!"
수호는 베개로 양귀를 틀어막고 냅다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저 여자는 뭐냐고!"
***
퀭한 눈으로 세수를 마치고 나온 수호는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세희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세희는 웃는 얼굴로 식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서 와서 앉아요."
분명 집은 수호의 집인데, 식탁에는 수호가 모르는 반찬과 국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수호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묻는 말에, 세희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냉장고에 뭐뭐 별개 다 있네. 남자 혼자 사는 집 맞아요? 재료가 없는 게 없어?"
수호는 세희의 말을 들으며 저 뻔뻔함의 극치...라고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니까... 지금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할 내 식재료들을 아침 한 끼에 다 쓰셨다 그 말인 건가?"
수호의 물음에 세희는 뭔가 깨달은 듯 "아~" 소리를 내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어요? 아니, 난~ 그게 일주일치 식량인지는 몰랐지. 어쩐지 재료가 많더라."
그러다가 다시 특유에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얼른 앉아서 식기 전에 먹어요. 식으면 맛없어."
"아니 도대체 당신은..."
수호가 뭔가 따지려는데, 세희가 밥 한술을 크게 떠서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먹고 얘기합시다, 먹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아니 그러니까 당신이 왜 내 밥을 먹냐고!"
수호가 버럭 소리치자, 세희가 예의 눈웃음 한가득 담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로 수호를 바라보았다.
"베풀면 다~ 다시 본인한테 돌아오는 법입니다."
그러면서 새로 무친 콩나물 무침을 한껏 집어 들어 입에 후루룩 넣으며 "음~음~"하며는 감탄사 난발했다.
수호는 그녀가 먹는 반찬이 아까워 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럴듯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니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래, 어차피 만든 거 일단 먹어야겠다. 안 먹으면 자기 손해다. 으~악 ~ 저 또라이!! 얄미워 죽겠네~!! 속으로 맘껏 욕을하며 자리에 앉아 밥한술 크게 떠 입안 가득 넣었다.
세희는 아무렇지도않게 마치 친한 사람과 대화하듯 물었다.
"밥 잘됐죠. 딱~ 맞아."
아, 밥 먹는데 얹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수호는 수저든 손을 불끈 움켜쥐며 말했다.
"말 걸지 말아 주실래요? 소화가 안되네?"
세희는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이고는 먹성 좋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며칠 굶으셨나 봐요?"
세희의 가증스러운 행동을 보다 못한 수호가 툭 내뱉었다. 세희는 수호의 비아냥을 알고도 모르는척 오버하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굶고 다니고 그러지 않아요.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돼. 햄버거 막 이런 거 먹었더니... 영~"
인상 쓰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세희를 보며 수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수호는 자신의 아까운 반찬과 밥이란 생각에 한술이라도 더 먹으려고 애를 썼다. 식사를 먼저 끝낸 세희가 부른 배를 두드리며 물었다.
"그런데... 진짜 조건이 뭐예요? 어떻게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는 거죠?"
수호는 밥을 한가득 입에 넣고, 불만 가득한 눈으로 세희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내가 그걸 왜 알려줘야 합니까?"
"난 도와주러 온 건데, 꼭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와야 합니까?"
마치 수호의 말투를 따라 하듯 비아냥 거리며 되묻는 세희를 보며 수호는 다시금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습니까? 절 도와주시러 온 겁니까? 아~ 무지하게 고맙네. 일주일치 식량을 한 끼에 다 해결해 주시고. 새벽에 자는 사람한테 야차를 보내서 폭력을 행사하고, 아주 그냥,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라고 하네."
수호의 비아냥에도 세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 네네~ 뭐 그 정도 오해는, 이해합니다~ 사람 인연이란 게 그런 겁디다."
마치 인생 다 산사람처럼 말하는 세희의 어투에, 수호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인생 무지하게 오래 산 사람처럼 얘기하시네요?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장난스럽게 묻는 수호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뭐... 인생을 꼭 오래 살아야만 아는 건가요`"
"아~ 네~ 그러시겠죠. 짧고 굵게 사시는 게 목적이신가 봐요."
"길고 굵은 걸로 합시다. 아직 창창하게 남았으니까?"
"아, 창창하게? 얼마나 창창하게 남았는지 나이나 좀 압시다."
세희가 대답 대신 손가락 4개를 펴 보이자, 수호가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 마흔?"
세희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며, 희번덕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이 얼굴이 어디를 봐서 마흔으로 보입니까?"
"얼굴로만 따지면, 내일모레 팔순잔치하셔도 될 것 같은데?"
세희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아~ 알았어, 알았어. 뭐, 서른넷?"
세희가 두 주먹을 움켜쥐며 싸늘해진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서르은, 넷?"
되묻는 세희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하자, 순간 수호가 이크-하며 장난스럽게 무섭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게... 요즘 30대는 동안들이 많아서..."
잠시 세희의 눈길을 피하던 수호가 항복하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그래. 알았어. 24살? 맞지? 나보다 한참 어리구만! 말 놓는다."
그제야 세희가 눈에서 힘을빼곤 씨익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참 많은 것 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쨌든 그 몇 살 많은 거 인정해주죠. 말 놓으세요."
"하~"
세희의 대답에 아~말세야! 말세..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기가 찬 표정으로 세희를 노려보았다.
"24살이면 성인인데, 성인이 막 이렇게, 외간 남자 집에 막 들어와서 자고 그래도 되는 건가?"
"원래 동료라는 건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겁니다~"
저! 또라이가 뭐래? 동료?
"누구 맘대로 동료야?"
수호가 질색을 하자, 세희는 그런 수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아직도 안 믿네?"
"뭘?"
"필연이라니까."
"필연은..."
수호가 마지막 밥숟가락을 떠서 입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으며 말했다.
"필연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밥 다 먹었으면 집에나 가요. 남에 집에서 이러는 거, 이거...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민폐야 민폐. 사회성이 부족해서 민폐가 뭔지 모르나?"
세희가 눈을 빛내며 음험하게 슬며시 웃으며 물었다.
"글세... 진짜 민폐가 뭔지... 제대로 보여줘 볼까요?"
그녀의 협박 같은 말 한마디에, 수호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저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닐거라는걸 알기에....
"하, 와~~ 어이가 없네?"
화가 난 수호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세희는 어이없는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수호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방금 전 그건 무공(武功)이죠? 누구의 무공이죠? 어떻게 하면 그 사람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는 거예요? 조건이 뭐죠?"
대답 듣기를 원하기는 하는 건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세희를 째려보던 수호가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 새벽에 지금 남의 집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가택침입으로 감방 가는 게 소원인가 봅니다?"
수호의 물음에 세희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신고해도 초범이라 감방까지는 안 가요. 그리고 내가 들어와서 한 게 없는데? 뭘 했는데요?"
"하, 참~ 뻔뻔도 하셔라. 저 괴물... 저거 저거 야차 맞죠? 야차를 부린 겁니까, 지금?"
"아니 뭐... 하도 믿질 않아서... 쓰지 말라는 능력까지 써가면서..."
"댁 때문에 또 쓰게 만든 건 뭔데?"
세희의 큰 두눈에 눈웃음을 한가득 담고 쳐다보았다.
"이건 재밌었으니까, 예외로 치죠. 덕분에 구경 잘했네. 아니, 근데 진짜... 조건이 뭐예요? 무공을 하는 사람을 알아요?"
수호는 코가 막히고 기가 막힌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할것 같았다.
"아 뭐 저쪽인가 뭔가에 무당도 뭐 능력이 출중하니 어쩌니 할 땐 언제고 진짜..."
"괜찮아요. 들어오기 전에 아파트 주변으로 살짝 결계를 쳐놔서... 내일 아침까지는 뭘 해도 모를 거예요."
태연한 세희의 대답에, 수호는 기가 차 헛-허-하며 어이없는 실소만 연발할 따름이었다.
문득 세희가 하품을 하며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졸리네요. 오늘은 일단 여기서 자죠."
수호가 눈을 부릅 떴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 큰 처자가 어디..."
"다 컸으니까 알아서 하는 거지, 안 잡아먹을 테니까, 자던 잠이나 마저 자요. 나머지 얘긴 내일 합시다. 옆에 방하나 더 있던데, 거기서 자면 돼요?"
"거기 옷방이에요. 잘 공간 없어요."
"알았어요. 그럼 거실 소파에서 자야지."
세희가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나가버리자, 화들짝 놀란 수호가 따라 나왔다.
"아니, 이봐요. 아니 대체 누구 맘대로..."
세희는 들은 체도 안 하고 거실 소파에 가서 풀썩 누워버렸다.
"아~ 피곤하다~"
세희는 마치 수호에게 들으란 듯이 말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니 이봐요! 이 사람이 진짜..."
수호가 옆으로 다가와 분통을 터뜨려도 세희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코 고는 소리까지 냈다.
"아 진짜..."
막무가내인 그녀를 어찌할 수도 없고 어이없고 황당해서 실소만 계속 연이어 나왔다.
"으악~"
수호는 헝클어진 머리를 더욱 흐트러뜨리며 짜증을 내고는, 마지못한 듯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침대에 누워서도 도통 분이 풀리지 않아 궁시렁거리며 화를 삭히려 노력했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사이, 소파에 누워있던 세희가 슬며시 눈을 떴다.
잠시 고개를 들어 안방의 동태를 살피던 그녀는, 이내 다시 누워서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후~~"
어쩐지 꽤나 묵직한 한숨이 잇새를 뚫고 나왔다.
"앞으로 좀 험난하겠네."
앞날이 걱정된 세희는 작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 순간, 안방 문이 벌컥 열리자 세희는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안자는 거 다 알거든요. 다 큰 처자가 대체... 그 뭐, 당신이 모시는 그 신인가 뭔가는 남녀칠세부동석도 모른답니까?"
세희는 눈을 감은 체 뻔뻔하게 맞받아 쳤다.
"네~ 모릅니다. 신들은 그런 거 모릅니다."
수호가 기가 찬 표정으로 문을 다시 닫으려는 찰나,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운 체로 수호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참!"
솔깃한 수호가 문을 닫으려다 말고 멈춰서 세희를 쳐다보자, 세희가 그를 보며 물었다.
"아침에 밥 먹죠?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 반찬 뭐 있어요? 난 국물 없으면 밥 못 먹는데."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는 수호는 '쾅!'소리가 나게 안방 문을 닫아 버렸다.
세희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바로하며 말했다.
"아니 뭐~ 없으면 내가 하면 되고. 된장은 있겠지? 설마.... 뭐 없으면 김치찌개 하면 되고. 김치는 있겠지? 에이, 설마..."
마치 수호에게 들으란 듯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안방 침대에 누워 세희의 말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수호는 분이 풀리지 않아 양팔을 마구 미친듯이 휘둘렀다.
"아~~ 진짜!"
수호는 베개로 양귀를 틀어막고 냅다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저 여자는 뭐냐고!"
***
퀭한 눈으로 세수를 마치고 나온 수호는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세희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세희는 웃는 얼굴로 식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서 와서 앉아요."
분명 집은 수호의 집인데, 식탁에는 수호가 모르는 반찬과 국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수호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묻는 말에, 세희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냉장고에 뭐뭐 별개 다 있네. 남자 혼자 사는 집 맞아요? 재료가 없는 게 없어?"
수호는 세희의 말을 들으며 저 뻔뻔함의 극치...라고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니까... 지금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할 내 식재료들을 아침 한 끼에 다 쓰셨다 그 말인 건가?"
수호의 물음에 세희는 뭔가 깨달은 듯 "아~" 소리를 내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어요? 아니, 난~ 그게 일주일치 식량인지는 몰랐지. 어쩐지 재료가 많더라."
그러다가 다시 특유에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얼른 앉아서 식기 전에 먹어요. 식으면 맛없어."
"아니 도대체 당신은..."
수호가 뭔가 따지려는데, 세희가 밥 한술을 크게 떠서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먹고 얘기합시다, 먹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아니 그러니까 당신이 왜 내 밥을 먹냐고!"
수호가 버럭 소리치자, 세희가 예의 눈웃음 한가득 담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로 수호를 바라보았다.
"베풀면 다~ 다시 본인한테 돌아오는 법입니다."
그러면서 새로 무친 콩나물 무침을 한껏 집어 들어 입에 후루룩 넣으며 "음~음~"하며는 감탄사 난발했다.
수호는 그녀가 먹는 반찬이 아까워 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럴듯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니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래, 어차피 만든 거 일단 먹어야겠다. 안 먹으면 자기 손해다. 으~악 ~ 저 또라이!! 얄미워 죽겠네~!! 속으로 맘껏 욕을하며 자리에 앉아 밥한술 크게 떠 입안 가득 넣었다.
세희는 아무렇지도않게 마치 친한 사람과 대화하듯 물었다.
"밥 잘됐죠. 딱~ 맞아."
아, 밥 먹는데 얹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수호는 수저든 손을 불끈 움켜쥐며 말했다.
"말 걸지 말아 주실래요? 소화가 안되네?"
세희는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이고는 먹성 좋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며칠 굶으셨나 봐요?"
세희의 가증스러운 행동을 보다 못한 수호가 툭 내뱉었다. 세희는 수호의 비아냥을 알고도 모르는척 오버하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굶고 다니고 그러지 않아요.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돼. 햄버거 막 이런 거 먹었더니... 영~"
인상 쓰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세희를 보며 수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수호는 자신의 아까운 반찬과 밥이란 생각에 한술이라도 더 먹으려고 애를 썼다. 식사를 먼저 끝낸 세희가 부른 배를 두드리며 물었다.
"그런데... 진짜 조건이 뭐예요? 어떻게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는 거죠?"
수호는 밥을 한가득 입에 넣고, 불만 가득한 눈으로 세희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내가 그걸 왜 알려줘야 합니까?"
"난 도와주러 온 건데, 꼭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와야 합니까?"
마치 수호의 말투를 따라 하듯 비아냥 거리며 되묻는 세희를 보며 수호는 다시금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습니까? 절 도와주시러 온 겁니까? 아~ 무지하게 고맙네. 일주일치 식량을 한 끼에 다 해결해 주시고. 새벽에 자는 사람한테 야차를 보내서 폭력을 행사하고, 아주 그냥,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라고 하네."
수호의 비아냥에도 세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 네네~ 뭐 그 정도 오해는, 이해합니다~ 사람 인연이란 게 그런 겁디다."
마치 인생 다 산사람처럼 말하는 세희의 어투에, 수호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인생 무지하게 오래 산 사람처럼 얘기하시네요?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장난스럽게 묻는 수호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뭐... 인생을 꼭 오래 살아야만 아는 건가요`"
"아~ 네~ 그러시겠죠. 짧고 굵게 사시는 게 목적이신가 봐요."
"길고 굵은 걸로 합시다. 아직 창창하게 남았으니까?"
"아, 창창하게? 얼마나 창창하게 남았는지 나이나 좀 압시다."
세희가 대답 대신 손가락 4개를 펴 보이자, 수호가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 마흔?"
세희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며, 희번덕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이 얼굴이 어디를 봐서 마흔으로 보입니까?"
"얼굴로만 따지면, 내일모레 팔순잔치하셔도 될 것 같은데?"
세희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아~ 알았어, 알았어. 뭐, 서른넷?"
세희가 두 주먹을 움켜쥐며 싸늘해진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서르은, 넷?"
되묻는 세희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하자, 순간 수호가 이크-하며 장난스럽게 무섭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게... 요즘 30대는 동안들이 많아서..."
잠시 세희의 눈길을 피하던 수호가 항복하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그래. 알았어. 24살? 맞지? 나보다 한참 어리구만! 말 놓는다."
그제야 세희가 눈에서 힘을빼곤 씨익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참 많은 것 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쨌든 그 몇 살 많은 거 인정해주죠. 말 놓으세요."
"하~"
세희의 대답에 아~말세야! 말세..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기가 찬 표정으로 세희를 노려보았다.
"24살이면 성인인데, 성인이 막 이렇게, 외간 남자 집에 막 들어와서 자고 그래도 되는 건가?"
"원래 동료라는 건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겁니다~"
저! 또라이가 뭐래? 동료?
"누구 맘대로 동료야?"
수호가 질색을 하자, 세희는 그런 수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아직도 안 믿네?"
"뭘?"
"필연이라니까."
"필연은..."
수호가 마지막 밥숟가락을 떠서 입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으며 말했다.
"필연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밥 다 먹었으면 집에나 가요. 남에 집에서 이러는 거, 이거...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민폐야 민폐. 사회성이 부족해서 민폐가 뭔지 모르나?"
세희가 눈을 빛내며 음험하게 슬며시 웃으며 물었다.
"글세... 진짜 민폐가 뭔지... 제대로 보여줘 볼까요?"
그녀의 협박 같은 말 한마디에, 수호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저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닐거라는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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