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1부 에필로그
두루미 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허름한 절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두루미에서 내려선 백하와 나래, 그리고 나래 어깨에 있던 솔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옆으로 초코와 아토가 내려섰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백하가 앞장서서 절 안으로 들어서니, 허름한 절안 풍경이 보였다.
나래가 품 안에서 초공연화를 꺼내자, 백하도령이 받아서 초공연화를 불상 뒤편 원래의 자리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돌아나와 나래를 보며 말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를 떠올려 보거라. 돌아가는 것도 필시 같은 방법일 것이다."
나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밖으로 나가려는 백하도령을 나래가 얼른 붙잡으며 말했다.
"이거..."
백하도령이 발걸음을 멈춰 나래를 돌아보니, 나래가 말을 이었다.
"총명 부인께 이걸 전해주세요, 그리고 감사했다는 말도 같이 전해주세요."
나래가 내민 것은 총명 부인의 호리병이었다.
백하도령이 호리병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나래는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나래의 인사를 받은 백하도령이 빙그레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가 나래를 돌아보았다.
그 옆으로 아토와 초코가 섰고, 반대쪽에 솔이가 섰다.
나래는 그런 솔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솔이가 다가가자, 나래는 그녀에게 도깨비방망이를 내주었다.
"이거 잘 가지고 있어."
솔이는 도깨비방망이를 받아 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오나, 아씨... 제가 어찌 이런 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냐, 넌 자격이 있어. 너처럼 착한 아이가 가지고 있어야 해."
나래가 환하게 웃어 보이며 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솔이가 그런 나래를 보며 눈물 고인 눈으로 말했다.
"아씨를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솔이의 말에 나래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
솔이의 의미심장한 말에 나래는 의아했지만, 솔이는 나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백하도령 옆에 섰다.
나래는 아토와 초코를 보며 말했다.
"아토님, 초코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초코가 먼저 "잘가"라고 짧게 답했고, 아토는 뭔가 아쉬운 듯 퉁명스레 말했다.
"감사는... 잘 돌아가."
이어 나래는 백하도령을 보며 말했다.
"청의동자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간 감사했다구요."
"그래, 그리 전하마.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백하도령은 인사를 마치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비로소 허름한 절 안에 나래 혼자 남게 되자, 나래는 눈앞의 불상을 바라보며 양손을 꼭 잡고 두 눈을 감았다.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나래는 간절하게 빌고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조금 달라진 듯한 불상의 상태와 건너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도깨비 마을 풍경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됐다!"
나래는 얼른 돌아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노스님의 텃밭이었다.
"허허, 이놈의 강아지가 오늘따라 어딜 간겐지 보이질 않는구료."
노스님이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건네는 말에, 나래는 활짝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나래는 후다닥 달려 나가다 말고 멈춰 서더니, 노스님 쪽으로 돌아서서 꾸벅 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계세요. 감사했습니다."
나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달려갔다.
"최대리!"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사찰을 나와 서성이고 있던 이대리였다.
"어디 갔었어?"
나래는 얼른 이대리쪽으로 다가갔다.
"아, 화장실 갔다가 바람 좀 쐰다는 게... 길을 잃어버렸어요."
나래의 대답에 이대리는 얼른 나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최대리 없어서 얼마나 심심했다고, 산책을 갈 거면 얘기하지. 같이 가게."
나래는 이대리의 말에 빙그레 웃어 보이며 그녀와 함께 걸었다.
문득 고개를 돌린 나래의 눈에 멀어져 가는 초공연화의 절간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나래는 이대리와 함께 그들 사이에 합류했다.
"어머, 나래씨, 그 신발 뭐야? 이쁘다."
누군가 나래의 신발을 보고 묻는 말에, 나래가 고개를 숙여 보니, 놀랍게도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은 온데간데없고, 총명 부인이 줬던 세오녀의 꽃신을 신고 있었다.
"이게 왜..."
나래는 놀란 표정으로 꽃신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대리가 말했다.
"이야, 템플스테이 한다고 맞춰서 코디하는 센스 좀 봐. 이런 꽃신은 어디서 사는 거야? 어머, 너무 이쁘다."
이대리가 신기해하며 묻는 말에, 나래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핸드폰에서 알람음이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나래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고 알람음을 껐다.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래는 얼른 보일러에 온수 버튼을 눌렀다.
씻고 기초화장을 마친 나래는 먼저 어제 미리 물을 받아놓은 분무기를 들어 화분에 물을 주었다.
물을 받는 화분의 화초들은 생기가 돌아 초록빛으로 반짝거렸다.
마저 화장을 마치고 필요한 것들을 챙긴 후 문 앞에 서서 식탁 위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네모난 각진 테두리의 시계대신 둥글고 귀여운 형태의 시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평소 출근하던 시간에 비하면 아직은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나래는 살짝 웃어보이고는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나서는 나래 뒤로 보이는 신발장에는 세오녀의 꽃신이 다른 신발 옆에 곱게 놓여져 있었다.
조금 이르게 나서니 왠일인지 마을버스가 제때 맞춰서 나타났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여유롭게 앉아 갈 수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는 대신, 지나다니는 세상 모든 소리를 귀로 들었다.
모든 소리가 왠지 새롭게 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에 가는 지하철도, 이른 시간인 덕에 한참 여유로웠다.
회사 인근에 도착한 나래는 언제나처럼 커피숍으로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른 아침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와 간식의 달콤함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자 즐거움이었다.
나래는 기쁜 마음으로 커피를 즐기고는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항상 늦게 나오던 이대리가 어쩐 일인지 먼저 나와있었다.
"안녕하세요"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나래를 보며 이대리가 반색을 했다.
"최대리 왔어~"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나래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는 이대리였다.
"뭐야 요즘? 연애해? 얼굴이 엄청 밝아진 거 같아."
이대리 말에 나래가 피식 웃음 지었다.
"아뇨. 아무 일도 없는데요?"
장난스럽게 웃는 나래를 보며 이대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그래요?"
나래는 태연히 대답하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출근 체크를 했다.
그때 출근한 양과장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다 말고, 나래 쪽으로 돌아서서 오더니 나래에게 말했다.
"나래 씨, 지난주 목요일에 온 팩스 중에 정우건설에서 온 거 있었죠?"
"글쎄요, 팩스함 찾아보시겠어요?"
나래가 태연히 대답하자, 양과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바빠서 그렇지. 그것 좀 찾아서 갔다 줄래요?"
"저도 바쁜데요. 팩스함에 서류 몇 개 없던데, 직접 찾으셔도 금방 찾으실 거예요."
나래의 당돌한 대답에 양과장 표정이 멍해졌다.
옆에서 이대리가 살짝 눈치를 살피는 사이, 양과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 그래. 알았어."
양과장은 빈정이 상한 듯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 쪽으로 향했고, 나래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태평했다.
"오~ 최대리~ 웬일이야? 거절을 다하고?"
옆에서 이대리가 귓속말을 건네자 나래가 씨익 웃어 보였다.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해야죠."
나래는 양과장이 기분 나빠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양과장의 기분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템플스테이 갔다 오더니 마음 가짐이 달라졌네?"
이대리의 말에 나래는 웃어 보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거래처에서 온 이메일 중 답변이 시급한 메일을 우선적으로 정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사이 사장님이 출근했다.
언제나처럼 우렁찬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가는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커피 한잔을 주문하자, 어느 누구도 선 듯 나서지 않고 눈치를 살피며, 으레 그렇듯 나래를 힐끔 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래는 그중에 가장 늦게 입사한 남자 직원을 보며 말했다.
"종철 씨."
뭔가를 바쁘게 하는 척하던 종철이란 남자 직원이 흠칫 놀라며 나래를 보았다.
"예, 최대리 님."
"사장님 커피 한잔 타다 드릴래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나래가 갑자기 그런 부탁을 하자, 종철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가 얼른 대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는 서둘러 커피를 타 사장님에게 갖다 주었고, 바뀐 나래의 태도에 직원들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대리?"
고개를 돌려보니 회사 내에서 마녀라고 악명 높은 김실장이 서 있었다.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래를 바라보더니, 짧게 한마디 했다.
"이제 좀 대리 답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자기 자리로 향했다.
나래는 왠지 풋하고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늦은 저녁까지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한 나래는, 퇴근 러시가 한참 지나버린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비록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서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서 꺼내보니 엄마였다.
"어, 엄마."
핸드폰 너머로 망설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알았어.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냐, 괜찮다니까. 주말에 잠깐 들를게."
나래는 한결 온화해진 목소리로 통화를 마치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에 이렇게 대할걸, 왜 그 오랜 시간 엄마에게 상처를 줬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로 별빛 대신 가로등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 가운데, 차로 위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돌아온 세상은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꿈만 같았던 도깨비 마을에서의 여행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혼자만의 비밀이 되었고, 신기했던 경험이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구름에 가려 달도 보이지 않는 그런 하늘을 무심히 올려다본 나래는 제법 큰 별 하나가 반짝 거리는 것을 보았다.
"와, 구름도 많은데 저 별은 엄청 크게 잘 보이네."
그런데 별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어?"
나래가 놀라 정류장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보니, 그것은 별이 아니라 두루미였다.
거대한 두루미가 나래가 있는 버스정류장 앞으로 내려서더니, 그 위에서 백하도령이 훌쩍 내려섰다.
"어.... 어떻게?"
나래가 너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보고 있자, 백하도령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만나니 반갑구나."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백하도령은 누가 봐도 소년의 모습이었고, 나래는 36살의 성인이었다.
"그...그렇긴 한데..."
나래가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보고만 보고 있으니, 백하도령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틈의 세계에 문제가 생겼다. 아무래도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
백하도령이 손을 내밀어 보이니, 나래는 잠시 망설이다가 백하도령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나래의 모습이 다시 16살 무렵의 소녀로 변하였다.
백하도령과 함께 두루미 위에 올라탄 나래가 걱정스레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총명 부인의 신발이..."
그러자 백하도령이 예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디 있는지 알면, 도깨비방망이가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으냐?"
"아..."
그리고 두루미가 하늘 위로 높게 솟구쳐 올랐다.
어두운 서울의 저녁 하늘 위로, 하얀색 두루미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다.
두루미에서 내려선 백하와 나래, 그리고 나래 어깨에 있던 솔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옆으로 초코와 아토가 내려섰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백하가 앞장서서 절 안으로 들어서니, 허름한 절안 풍경이 보였다.
나래가 품 안에서 초공연화를 꺼내자, 백하도령이 받아서 초공연화를 불상 뒤편 원래의 자리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돌아나와 나래를 보며 말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를 떠올려 보거라. 돌아가는 것도 필시 같은 방법일 것이다."
나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밖으로 나가려는 백하도령을 나래가 얼른 붙잡으며 말했다.
"이거..."
백하도령이 발걸음을 멈춰 나래를 돌아보니, 나래가 말을 이었다.
"총명 부인께 이걸 전해주세요, 그리고 감사했다는 말도 같이 전해주세요."
나래가 내민 것은 총명 부인의 호리병이었다.
백하도령이 호리병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나래는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나래의 인사를 받은 백하도령이 빙그레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가 나래를 돌아보았다.
그 옆으로 아토와 초코가 섰고, 반대쪽에 솔이가 섰다.
나래는 그런 솔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솔이가 다가가자, 나래는 그녀에게 도깨비방망이를 내주었다.
"이거 잘 가지고 있어."
솔이는 도깨비방망이를 받아 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오나, 아씨... 제가 어찌 이런 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냐, 넌 자격이 있어. 너처럼 착한 아이가 가지고 있어야 해."
나래가 환하게 웃어 보이며 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솔이가 그런 나래를 보며 눈물 고인 눈으로 말했다.
"아씨를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솔이의 말에 나래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
솔이의 의미심장한 말에 나래는 의아했지만, 솔이는 나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백하도령 옆에 섰다.
나래는 아토와 초코를 보며 말했다.
"아토님, 초코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초코가 먼저 "잘가"라고 짧게 답했고, 아토는 뭔가 아쉬운 듯 퉁명스레 말했다.
"감사는... 잘 돌아가."
이어 나래는 백하도령을 보며 말했다.
"청의동자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간 감사했다구요."
"그래, 그리 전하마.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백하도령은 인사를 마치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비로소 허름한 절 안에 나래 혼자 남게 되자, 나래는 눈앞의 불상을 바라보며 양손을 꼭 잡고 두 눈을 감았다.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나래는 간절하게 빌고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조금 달라진 듯한 불상의 상태와 건너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도깨비 마을 풍경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됐다!"
나래는 얼른 돌아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노스님의 텃밭이었다.
"허허, 이놈의 강아지가 오늘따라 어딜 간겐지 보이질 않는구료."
노스님이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건네는 말에, 나래는 활짝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나래는 후다닥 달려 나가다 말고 멈춰 서더니, 노스님 쪽으로 돌아서서 꾸벅 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계세요. 감사했습니다."
나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달려갔다.
"최대리!"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사찰을 나와 서성이고 있던 이대리였다.
"어디 갔었어?"
나래는 얼른 이대리쪽으로 다가갔다.
"아, 화장실 갔다가 바람 좀 쐰다는 게... 길을 잃어버렸어요."
나래의 대답에 이대리는 얼른 나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최대리 없어서 얼마나 심심했다고, 산책을 갈 거면 얘기하지. 같이 가게."
나래는 이대리의 말에 빙그레 웃어 보이며 그녀와 함께 걸었다.
문득 고개를 돌린 나래의 눈에 멀어져 가는 초공연화의 절간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나래는 이대리와 함께 그들 사이에 합류했다.
"어머, 나래씨, 그 신발 뭐야? 이쁘다."
누군가 나래의 신발을 보고 묻는 말에, 나래가 고개를 숙여 보니, 놀랍게도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은 온데간데없고, 총명 부인이 줬던 세오녀의 꽃신을 신고 있었다.
"이게 왜..."
나래는 놀란 표정으로 꽃신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대리가 말했다.
"이야, 템플스테이 한다고 맞춰서 코디하는 센스 좀 봐. 이런 꽃신은 어디서 사는 거야? 어머, 너무 이쁘다."
이대리가 신기해하며 묻는 말에, 나래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핸드폰에서 알람음이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나래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고 알람음을 껐다.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래는 얼른 보일러에 온수 버튼을 눌렀다.
씻고 기초화장을 마친 나래는 먼저 어제 미리 물을 받아놓은 분무기를 들어 화분에 물을 주었다.
물을 받는 화분의 화초들은 생기가 돌아 초록빛으로 반짝거렸다.
마저 화장을 마치고 필요한 것들을 챙긴 후 문 앞에 서서 식탁 위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네모난 각진 테두리의 시계대신 둥글고 귀여운 형태의 시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평소 출근하던 시간에 비하면 아직은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나래는 살짝 웃어보이고는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나서는 나래 뒤로 보이는 신발장에는 세오녀의 꽃신이 다른 신발 옆에 곱게 놓여져 있었다.
조금 이르게 나서니 왠일인지 마을버스가 제때 맞춰서 나타났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여유롭게 앉아 갈 수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는 대신, 지나다니는 세상 모든 소리를 귀로 들었다.
모든 소리가 왠지 새롭게 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에 가는 지하철도, 이른 시간인 덕에 한참 여유로웠다.
회사 인근에 도착한 나래는 언제나처럼 커피숍으로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른 아침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와 간식의 달콤함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자 즐거움이었다.
나래는 기쁜 마음으로 커피를 즐기고는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항상 늦게 나오던 이대리가 어쩐 일인지 먼저 나와있었다.
"안녕하세요"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나래를 보며 이대리가 반색을 했다.
"최대리 왔어~"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나래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는 이대리였다.
"뭐야 요즘? 연애해? 얼굴이 엄청 밝아진 거 같아."
이대리 말에 나래가 피식 웃음 지었다.
"아뇨. 아무 일도 없는데요?"
장난스럽게 웃는 나래를 보며 이대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그래요?"
나래는 태연히 대답하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출근 체크를 했다.
그때 출근한 양과장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다 말고, 나래 쪽으로 돌아서서 오더니 나래에게 말했다.
"나래 씨, 지난주 목요일에 온 팩스 중에 정우건설에서 온 거 있었죠?"
"글쎄요, 팩스함 찾아보시겠어요?"
나래가 태연히 대답하자, 양과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바빠서 그렇지. 그것 좀 찾아서 갔다 줄래요?"
"저도 바쁜데요. 팩스함에 서류 몇 개 없던데, 직접 찾으셔도 금방 찾으실 거예요."
나래의 당돌한 대답에 양과장 표정이 멍해졌다.
옆에서 이대리가 살짝 눈치를 살피는 사이, 양과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 그래. 알았어."
양과장은 빈정이 상한 듯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 쪽으로 향했고, 나래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태평했다.
"오~ 최대리~ 웬일이야? 거절을 다하고?"
옆에서 이대리가 귓속말을 건네자 나래가 씨익 웃어 보였다.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해야죠."
나래는 양과장이 기분 나빠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양과장의 기분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템플스테이 갔다 오더니 마음 가짐이 달라졌네?"
이대리의 말에 나래는 웃어 보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거래처에서 온 이메일 중 답변이 시급한 메일을 우선적으로 정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사이 사장님이 출근했다.
언제나처럼 우렁찬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가는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커피 한잔을 주문하자, 어느 누구도 선 듯 나서지 않고 눈치를 살피며, 으레 그렇듯 나래를 힐끔 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래는 그중에 가장 늦게 입사한 남자 직원을 보며 말했다.
"종철 씨."
뭔가를 바쁘게 하는 척하던 종철이란 남자 직원이 흠칫 놀라며 나래를 보았다.
"예, 최대리 님."
"사장님 커피 한잔 타다 드릴래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나래가 갑자기 그런 부탁을 하자, 종철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가 얼른 대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는 서둘러 커피를 타 사장님에게 갖다 주었고, 바뀐 나래의 태도에 직원들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대리?"
고개를 돌려보니 회사 내에서 마녀라고 악명 높은 김실장이 서 있었다.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래를 바라보더니, 짧게 한마디 했다.
"이제 좀 대리 답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자기 자리로 향했다.
나래는 왠지 풋하고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늦은 저녁까지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한 나래는, 퇴근 러시가 한참 지나버린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비록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서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서 꺼내보니 엄마였다.
"어, 엄마."
핸드폰 너머로 망설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알았어.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냐, 괜찮다니까. 주말에 잠깐 들를게."
나래는 한결 온화해진 목소리로 통화를 마치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에 이렇게 대할걸, 왜 그 오랜 시간 엄마에게 상처를 줬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로 별빛 대신 가로등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 가운데, 차로 위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돌아온 세상은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꿈만 같았던 도깨비 마을에서의 여행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혼자만의 비밀이 되었고, 신기했던 경험이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구름에 가려 달도 보이지 않는 그런 하늘을 무심히 올려다본 나래는 제법 큰 별 하나가 반짝 거리는 것을 보았다.
"와, 구름도 많은데 저 별은 엄청 크게 잘 보이네."
그런데 별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어?"
나래가 놀라 정류장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보니, 그것은 별이 아니라 두루미였다.
거대한 두루미가 나래가 있는 버스정류장 앞으로 내려서더니, 그 위에서 백하도령이 훌쩍 내려섰다.
"어.... 어떻게?"
나래가 너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보고 있자, 백하도령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만나니 반갑구나."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백하도령은 누가 봐도 소년의 모습이었고, 나래는 36살의 성인이었다.
"그...그렇긴 한데..."
나래가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보고만 보고 있으니, 백하도령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틈의 세계에 문제가 생겼다. 아무래도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
백하도령이 손을 내밀어 보이니, 나래는 잠시 망설이다가 백하도령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나래의 모습이 다시 16살 무렵의 소녀로 변하였다.
백하도령과 함께 두루미 위에 올라탄 나래가 걱정스레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총명 부인의 신발이..."
그러자 백하도령이 예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디 있는지 알면, 도깨비방망이가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으냐?"
"아..."
그리고 두루미가 하늘 위로 높게 솟구쳐 올랐다.
어두운 서울의 저녁 하늘 위로, 하얀색 두루미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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