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 #1
어수룩한 차림의 사내 대여섯 명이 좌포청 관아에 잡혀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보며 여학수가 입을 열었다.
"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백의 시간이 찾아왔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는 고통 없이 평안한 시간을 보낼 것이나, 그렇지 못한 자는 쓰라린 고통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약간 장난기 어린 여학수의 말에 그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근래 들어 어떤 개 쓰레기 같은 종자가, 감히 문서에 필체를 위조하는 짓거리를 하였다."
그들은 서로서로 수군거리며 이야기했으나, 그중 한 사람만이 표정이 굳어진 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학수는 그를 의미심장하게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종자 때문에 너희들이 잡혀온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놈 때문에 너희들이 옥살이를 하거나, 문초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너희는 그놈을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서로 눈치만 볼뿐 어느 누구도 나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놈의 처벌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그놈이거나, 적어도 그놈이 누군지 아는 공범이거나..."
여학수의 말이 체 다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나서 말했다.
"고, 곤장을 한 200대는 쳐얍지요. 아주 때려죽일 놈입니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나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거세를 해버리십시오. 거세."
"양손을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 사람,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점점 표정이 굳어져 가는 이가 있었다.
여학수는 빙그레 웃으며 계속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들 이야기하는 거 보니, 다들 선량한 백성이로구나. 여봐라, 이들을 모두 풀어주거라."
여학수의 말에 그들은 금세 표정이 밝아지며 굽신 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으리."
"감사합니다."
말을 바꿀세라 그들이 발걸음을 재촉하여 관아 밖으로 나갈때, 표정이 굳어졌던 이는 잠시 움찔하며 서 있다가, 느지막이 뒤따라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여학수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쉽게 발길이 안 떨어지지?"
"예?"
그가 긴장된 표정으로 되물으니 여학수가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평소에 숨어서 죄짓는 놈들의 특징이 뭔 줄 알아? 우리 같은 사람들 앞에서 몸이 굳는다는 거야. 지레 겁먹는 거지."
금새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이실직고를 하면 평안한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제 그만 마감할까? 진실의 시간을 가져볼까? 형틀 위에서 우리 즐거운 시간을 함께 가져보면 뭔가 생각나지 않겠어?"
그는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나, 나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 그저 돈을 하도 많이 주길래.... 돈에 눈이 멀어 그랬습니다요."
그가 울먹거리며 사정을 하자, 여학수가 씨익 웃어 보였다.
"네놈이 바로 그 우사인가 뭔가 하는 놈이냐?"
"예, 그렇습니다요. 필사 일을 하려면 필사장이 별명이 필요하다 해서, 우사라 불렀습니다요."
"그래그래, 지은 죄에 대한 죗값을 받기는 하겠으나, 내 이실직고한 너를 갸륵히 여겨, 최대한 편안하게 죗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마."
"가, 감사합니다요, 나리."
여학수가 무릎을 꿇고 우사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귓속말 하듯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너의 협조가 아주 아주 많이 필요할 것이다. 아~주 많이 말이지."
굳어진 우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학수를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해가자? 응? 그래, 누가 너한테 필사를 시키더냐? 세자마마의 필체는 어찌 알고 필사한 것이냐?"
***
원래는 으리으리한 고택이었으리라.
사람이 살지 않아 관리가 되지 않은 흔적들이 역력했지만, 주동환은 개의치 않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의 발걸음은 몇몇 편문들을 지나 사랑채에 이르렀고, 사랑채 마당에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천태호가 뒷짐을 쥔 체 서 있었다.
그는 들어서는 주동환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몸은 이제 괜찮냐?"
천태호의 물음에 주동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예, 이제 괜찮습니다."
천태호가 꽤나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확인해 줘야 할 게 좀 있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인지, 선화가 오지 않았고, 필사장이 우사가 좌포청에 잡혀갔다."
이야기를 듣던 주동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혹, 선화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천태호가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주동환을 쳐다보았다.
"너도 알잖아? 기생령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죽음이 아니란 것을."
"고통이죠."
"제년이 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건 알지만, 그렇다 해도 고문을 당하기 시작하면 뭔 말인들 못하겠어?"
"그럼, 당장 소환해 버리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냥 소환해 버려서는 저들에게 기생령의 존재만 확인시켜줄 뿐이야."
"그럼 제가 어찌하길 바라십니까?"
"가서 확인해 줘야겠어. 우사를 어떻게 알고 잡아갔는지, 선화를 포함하여 저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말이야."
"우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어찌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까?"
"일단 선화에게 물어봐. 무슨 말을 했고, 저들이 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죽여. 소환 이후에 본령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안돼."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저들도 기생령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굳이 감출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태호가 주동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동환아, 아니 영호야. 의혹과 확신은 다른 것이다. 의혹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지만, 확신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지. 저들이 기생령의 존재를 알았다 한들, 그것에 대한 조치를 미적거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바로 확신이 없기 때문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주동환이 대답했다.
"확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지 간에, 저들에게 확신을 심어줄만한 행동은 최대한 자제해."
"일단 확인은 해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결과가 딱히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동환의 말에 천태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결론은 이미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사를 잡았다는 것은 저들이 맹약서가 위조되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고, 이는 맹약서의 내용을 확인했다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우사를 알고 잡았다는 것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였든지 간에 제신녀인 선화가 불었을 것입니다. 실수였든, 고문을 했든, 혹은..."
잠시 뜸을 들이던 주동환이 느지막이 말을 이었다.
"선화를 속였든. 또한 이는 선화가 잡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선화가 잡혔다는 것은 저들이 기생령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동환의 말을 들은 천태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천태호를 보며 주동환이 느릿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확신하지 못한 것은, 저들이 아니라, 방주님이십니다."
천태호는 주동환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썩을 놈. 잘난 척은...."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 역시도 의혹만 있을 뿐 확신할 수 없었기에 주동환에게 확인해 달라한 것이었기에.
"그래도, 확인해 볼까요?"
주동환이 재차 묻는 말에 천태호가 돌아서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됐어, 썩을 놈아. 그냥 소환할 테니까, 선화가 들어갈만한 몸이나 구해와."
"예."
주동환이 물러가고, 천태호는 멀어지는 주동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새끼, 똑똑한 척은..."
궁시렁거리던 천태호는 사랑채 안으로 느릿하게 걸어 들어갔다.
***
좌포청 병사들에 둘러싸인 체, 연희는 궁궐안을 걸어가고 있었다.
압송되는 것처럼 보여야 할 텐데, 어쩐지 대놓고 호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언제나처럼 궐내각사 쪽에서 세자가 빠르게 걸어나오며 그녀를 반겨주었다.
"괜찮으냐? 많이 불편하지?"
그야말로 안타까운 표정의 절정을 보여주는 세자를 보니, 연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찌 웃는 것이냐?"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디 있느냐? 뭣 때문에 그러냐?"
연희가 세자의 두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기뻐서 그렇습니다. 저하께서 이렇게 반겨주시지 않습니까?"
연희의 말에 세자도 너털웃음을 지었다.
"암, 반갑지."
그러다 연희의 얼굴을 세세히 살피며 말했다.
"많이 힘든가 보구나. 하루빨리 그곳에서 나와야 할 터인데...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저는 괜찮습니다. 딱히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제대로 먹지를 못해 많이 야위었다."
이어 고개를 돌려 뒤편에 서 있는 수현에게 이야기했다.
"가서 먹을 것을 가져오라 일러라. 넉넉히 가져와야 할 것이다. 최대한..."
잠시 말끝을 흐린 세자가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맛있는 것으로."
수현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가 애써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예, 저하."
연희는 그런 세자를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하,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니다, 아니야. 일단 뭐라도 좀 먹어야 기운이 날 것 아니냐? 일국의 세자라는 내가, 너 한 사람 지켜주기가 이리도 힘들어서야..."
자신을 걱정하는 세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켠에서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저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웃음을 희미하게 지워가고 있었다.
그런 연희의 마음을 알리 없는 세자는 살짝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 염려치 말거라. 이제 곧 나오게 될 것이다. 준비가 거의 끝나가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자신감에 차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세자에게 연희는 애써 웃음 지어 보였다.
"기쁩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이냐?"
"저를 위해 이리도 애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쁩니다."
"당연한 것 아니냐, 그럼 내가 너를 그리 놔두기라도 할 줄 알았느냐?"
연희는 다시금 그저 고요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그런 연희를 보며 세자 역시 애정어린 웃음을 지었고, 늦은 밤 적막한 방안에 두 사람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조용히 퍼져나갔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보며 여학수가 입을 열었다.
"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백의 시간이 찾아왔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는 고통 없이 평안한 시간을 보낼 것이나, 그렇지 못한 자는 쓰라린 고통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약간 장난기 어린 여학수의 말에 그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근래 들어 어떤 개 쓰레기 같은 종자가, 감히 문서에 필체를 위조하는 짓거리를 하였다."
그들은 서로서로 수군거리며 이야기했으나, 그중 한 사람만이 표정이 굳어진 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학수는 그를 의미심장하게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종자 때문에 너희들이 잡혀온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놈 때문에 너희들이 옥살이를 하거나, 문초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너희는 그놈을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서로 눈치만 볼뿐 어느 누구도 나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놈의 처벌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그놈이거나, 적어도 그놈이 누군지 아는 공범이거나..."
여학수의 말이 체 다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나서 말했다.
"고, 곤장을 한 200대는 쳐얍지요. 아주 때려죽일 놈입니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나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거세를 해버리십시오. 거세."
"양손을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 사람,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점점 표정이 굳어져 가는 이가 있었다.
여학수는 빙그레 웃으며 계속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들 이야기하는 거 보니, 다들 선량한 백성이로구나. 여봐라, 이들을 모두 풀어주거라."
여학수의 말에 그들은 금세 표정이 밝아지며 굽신 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으리."
"감사합니다."
말을 바꿀세라 그들이 발걸음을 재촉하여 관아 밖으로 나갈때, 표정이 굳어졌던 이는 잠시 움찔하며 서 있다가, 느지막이 뒤따라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여학수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쉽게 발길이 안 떨어지지?"
"예?"
그가 긴장된 표정으로 되물으니 여학수가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평소에 숨어서 죄짓는 놈들의 특징이 뭔 줄 알아? 우리 같은 사람들 앞에서 몸이 굳는다는 거야. 지레 겁먹는 거지."
금새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이실직고를 하면 평안한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제 그만 마감할까? 진실의 시간을 가져볼까? 형틀 위에서 우리 즐거운 시간을 함께 가져보면 뭔가 생각나지 않겠어?"
그는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나, 나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 그저 돈을 하도 많이 주길래.... 돈에 눈이 멀어 그랬습니다요."
그가 울먹거리며 사정을 하자, 여학수가 씨익 웃어 보였다.
"네놈이 바로 그 우사인가 뭔가 하는 놈이냐?"
"예, 그렇습니다요. 필사 일을 하려면 필사장이 별명이 필요하다 해서, 우사라 불렀습니다요."
"그래그래, 지은 죄에 대한 죗값을 받기는 하겠으나, 내 이실직고한 너를 갸륵히 여겨, 최대한 편안하게 죗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마."
"가, 감사합니다요, 나리."
여학수가 무릎을 꿇고 우사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귓속말 하듯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너의 협조가 아주 아주 많이 필요할 것이다. 아~주 많이 말이지."
굳어진 우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학수를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해가자? 응? 그래, 누가 너한테 필사를 시키더냐? 세자마마의 필체는 어찌 알고 필사한 것이냐?"
***
원래는 으리으리한 고택이었으리라.
사람이 살지 않아 관리가 되지 않은 흔적들이 역력했지만, 주동환은 개의치 않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의 발걸음은 몇몇 편문들을 지나 사랑채에 이르렀고, 사랑채 마당에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천태호가 뒷짐을 쥔 체 서 있었다.
그는 들어서는 주동환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몸은 이제 괜찮냐?"
천태호의 물음에 주동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예, 이제 괜찮습니다."
천태호가 꽤나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확인해 줘야 할 게 좀 있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인지, 선화가 오지 않았고, 필사장이 우사가 좌포청에 잡혀갔다."
이야기를 듣던 주동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혹, 선화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천태호가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주동환을 쳐다보았다.
"너도 알잖아? 기생령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죽음이 아니란 것을."
"고통이죠."
"제년이 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건 알지만, 그렇다 해도 고문을 당하기 시작하면 뭔 말인들 못하겠어?"
"그럼, 당장 소환해 버리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냥 소환해 버려서는 저들에게 기생령의 존재만 확인시켜줄 뿐이야."
"그럼 제가 어찌하길 바라십니까?"
"가서 확인해 줘야겠어. 우사를 어떻게 알고 잡아갔는지, 선화를 포함하여 저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말이야."
"우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어찌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까?"
"일단 선화에게 물어봐. 무슨 말을 했고, 저들이 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죽여. 소환 이후에 본령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안돼."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저들도 기생령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굳이 감출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태호가 주동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동환아, 아니 영호야. 의혹과 확신은 다른 것이다. 의혹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지만, 확신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지. 저들이 기생령의 존재를 알았다 한들, 그것에 대한 조치를 미적거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바로 확신이 없기 때문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주동환이 대답했다.
"확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지 간에, 저들에게 확신을 심어줄만한 행동은 최대한 자제해."
"일단 확인은 해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결과가 딱히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동환의 말에 천태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결론은 이미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사를 잡았다는 것은 저들이 맹약서가 위조되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고, 이는 맹약서의 내용을 확인했다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우사를 알고 잡았다는 것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였든지 간에 제신녀인 선화가 불었을 것입니다. 실수였든, 고문을 했든, 혹은..."
잠시 뜸을 들이던 주동환이 느지막이 말을 이었다.
"선화를 속였든. 또한 이는 선화가 잡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선화가 잡혔다는 것은 저들이 기생령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동환의 말을 들은 천태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천태호를 보며 주동환이 느릿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확신하지 못한 것은, 저들이 아니라, 방주님이십니다."
천태호는 주동환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썩을 놈. 잘난 척은...."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 역시도 의혹만 있을 뿐 확신할 수 없었기에 주동환에게 확인해 달라한 것이었기에.
"그래도, 확인해 볼까요?"
주동환이 재차 묻는 말에 천태호가 돌아서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됐어, 썩을 놈아. 그냥 소환할 테니까, 선화가 들어갈만한 몸이나 구해와."
"예."
주동환이 물러가고, 천태호는 멀어지는 주동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새끼, 똑똑한 척은..."
궁시렁거리던 천태호는 사랑채 안으로 느릿하게 걸어 들어갔다.
***
좌포청 병사들에 둘러싸인 체, 연희는 궁궐안을 걸어가고 있었다.
압송되는 것처럼 보여야 할 텐데, 어쩐지 대놓고 호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언제나처럼 궐내각사 쪽에서 세자가 빠르게 걸어나오며 그녀를 반겨주었다.
"괜찮으냐? 많이 불편하지?"
그야말로 안타까운 표정의 절정을 보여주는 세자를 보니, 연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찌 웃는 것이냐?"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디 있느냐? 뭣 때문에 그러냐?"
연희가 세자의 두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기뻐서 그렇습니다. 저하께서 이렇게 반겨주시지 않습니까?"
연희의 말에 세자도 너털웃음을 지었다.
"암, 반갑지."
그러다 연희의 얼굴을 세세히 살피며 말했다.
"많이 힘든가 보구나. 하루빨리 그곳에서 나와야 할 터인데...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저는 괜찮습니다. 딱히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제대로 먹지를 못해 많이 야위었다."
이어 고개를 돌려 뒤편에 서 있는 수현에게 이야기했다.
"가서 먹을 것을 가져오라 일러라. 넉넉히 가져와야 할 것이다. 최대한..."
잠시 말끝을 흐린 세자가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맛있는 것으로."
수현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가 애써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예, 저하."
연희는 그런 세자를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하,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니다, 아니야. 일단 뭐라도 좀 먹어야 기운이 날 것 아니냐? 일국의 세자라는 내가, 너 한 사람 지켜주기가 이리도 힘들어서야..."
자신을 걱정하는 세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켠에서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저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웃음을 희미하게 지워가고 있었다.
그런 연희의 마음을 알리 없는 세자는 살짝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 염려치 말거라. 이제 곧 나오게 될 것이다. 준비가 거의 끝나가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자신감에 차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세자에게 연희는 애써 웃음 지어 보였다.
"기쁩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이냐?"
"저를 위해 이리도 애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쁩니다."
"당연한 것 아니냐, 그럼 내가 너를 그리 놔두기라도 할 줄 알았느냐?"
연희는 다시금 그저 고요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그런 연희를 보며 세자 역시 애정어린 웃음을 지었고, 늦은 밤 적막한 방안에 두 사람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조용히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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