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 #3
많은 궁인들이 지나다니는 길목 한쪽에, 은밀히 몸을 숨긴 수현과 소연은 지나가는 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벌써 두 시진째 보고 있사온데, 부정한 기운을 가진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미 눈치를 챈 것 아니겠습니까?"
소연의 물음에, 수현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리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본 후에 돌아가도록 하자."
수현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걸어가고 있는 궁인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지나치는 궁인들 사이로, 이따금 관복 차림의 신료들도 보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소연이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그러느냐?"
수현의 물음에 소연이 아미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것이...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야기하지 그랬느냐?"
"근데 그것이...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미미한 데다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수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예, 지금까지 본 사람만 족히 십여 명은 되는 듯합니다. 뭔가 부정한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 그저 타고난 태생이 부정한 기운을 타고난 사람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습니다. 보통 그렇게 부정한 기운을 타고난 사람은 백에 하나, 아니 천에 한 사람도 쉬이 보기 어려운 법인데, 이상하리만치 자주 보입니다."
"네가 하는 말뜻을 이해하기 어렵구나.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그건... 음... 그저 그 장소 자체가 부정한 기운이 어려서, 기운이 약한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경우가 워낙 다양하여 특정 지을 수가 없습니다."
"연희와는 다른 것이냐?"
수현의 물음에 소연이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연희 같은 기생령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허니, 저들은 기생령은 아닙니다."
수현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숨어서 지켜보던 소연이 누군가를 보고 묻는 말에, 수현이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안영군이었다.
"저분은 안영군이시다. 어찌 그러느냐?"
"기생령만큼 확연한 기운은 아니지만, 아까 사람들보다 좀 더 짙은 부정한 기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좀 더 짙은 부정한 기운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수현의 되물음에 소연이 수현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부정한 기운이 아닙니다. 분명한, 주술의 기운입니다."
수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확신할 수 있겠느냐?"
"분명합니다. 헌데..."
"왜 그러느냐?"
소연이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영군 마마에게서 느껴지는 부정한 기운이, 여태 보았던 다른 이들의 부정한 기운과 매우 유사합니다."
수현은 뭔가 눈치챈 듯 동공이 커지더니,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
"일상적인가 싶어 무심히 그냥 보냈던 그들의 기운 역시, 그저 안영군 마마보다 조금 약할 뿐, 같은 맥락일 수 있습니다."
"주술이란 뜻이냐?"
"예."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궁궐 안에 대소신료들에게 주술이 걸려 있다니... 저것을, 어찌 풀 수 있겠느냐?"
"크게는 궁궐 전체를 하나의 진법으로 가두어 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궁궐 안에서는 저 부정한 기운들이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궁궐을 나가면?"
"다시 영향을 주겠지요."
"아예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냐?"
"그리하려면, 저것이 어떤 종류의 주술인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주술이 걸린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등 세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저하를 만나 뵙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구나. 이제 그만 돌아가자."
"예."
수현과 소연은 그 자리를 벗어나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문득 소연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잠시! 잠시만요."
소연의 다급한 부름에 자리를 피하려던 수현이 멈춰 섰다.
"왜 그러느냐?"
소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했다.
"기생령입니다."
소연의 말에 수현이 소연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으며 소연과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저기 저 사람...."
소연이 가리키는 곳에는 상궁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확신할 수 있느냐?"
"확실합니다. 연희와 같은 기생령입니다."
"저자를 내가 잡으면, 기생령이 도망 못 가게 묶어 둘 수 있겠느냐?"
소연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잡아둔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는 못 잡아 둡니다. 천방주가 눈치를 채고 주술을 걸기 시작하면, 고작해야 한두 시진을 버틸 뿐입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해볼 수밖에 없구나. 누군지 알았으니, 일단 저하에게로 돌아가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수현과 소연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 세자가 있는 동궁전으로 향했다.
동궁전에 당도하여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세자를 보고 서둘러 인사를 한 뒤, 세자 곁으로 다가갔다.
"그래, 찾았느냐?"
세자의 물음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찾았습니다. 헌데,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가 그것만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냐?"
수현이 소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설명해 드리거라."
"예."
소연이 수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세자를 보며 말했다.
"소인이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그래, 어서 말해 보거라."
"금일 궁궐을 오다니는 궁인들과 대소신료들을 살펴보았사옵니다. 그 과정에서 상궁의 몸이 깃든 기생령을 한 사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온데..."
잠시 뜸을 들인 소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서 주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자가 놀라 되물었다.
"주술의 기운? 기생령 말이냐?"
"아니옵니다. 기생령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평이한 기운으로 생각했었으나, 안영군 마마를 뵈옵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안영군?"
"예, 저하. 안영군 마마 역시 비슷하게 부정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기운이 훨씬 강하여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여, 그 이전에 보았던 비슷한 기운의 다른 사람들 역시 주술에 의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세자는 잠시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물었다.
"허면, 그 주술이 어떤 효과를 내는 것이냐?"
"아직...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오나... 오는 길에 생각건대, 아마도..."
말끝을 흐리는 소연을 세자와 수현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서 말해 보거라."
이내 기다리다 못한 세자가 재촉을 하자, 소연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주술사가 평소 사용하는 주술이 기생령과 같은 제혼(制魂)의 술수임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피시술자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술수이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세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빛이 반짝거렸다.
"과연... 분명 그러할 수 있음이다. 안영군이 과격한 행동을 종종 보이긴 하여도, 은근히 겁이 많아 금세 물러서곤 하였는데, 요 며칠 그의 행동은 내가 알던 안영군같지가 않음이야."
수현 역시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박지언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박지언은 평소에 무인으로써 그 수하들에게서 존경받는 위인이자, 무예를 수련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입니다. 그런 수하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박지언에 대한 고변을 늘여놓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것은, 누군가의 생각이나 의지를 조정하는 주술임이 틀림이 없다. 간악하기 그지없구나."
소연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주술사라고는 하나, 사람의 의지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의지를 바꾸기 위해 자신이 가진 힘을 전부 다 쏟는다 해도, 한 사람의 의지조차 바꿀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란 그런 것이지요. 헌데, 이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바꾸다니요...."
소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악신을 불러들이거나,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금기된 술수가 아닌 이상에야, 이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입니다."
소연의 말에 세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무어라 했느냐? 어떻게 하면 가능하다고?"
세자의 되물음에 소연의 표정이 어리둥절 해졌다.
"예? 악신을 불러들이는 것 말입니까?"
"아니 말고, 그다음에 말이다."
"그다음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 말입니까?"
"그래,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저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냐?"
소연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아... 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금기된 주술인 데다가, 한 사람의 의지를 바꾸는데 한 사람의 제물이 필요하다면, 그 많은 제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있지."
세자의 단호한 대답에 소연은 물론 수현의 표정도 어리둥절해졌다.
"예?"
되묻는 소연을 보며 세자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사교도의 토벌이 있지 않았더냐? 그때 죽은 사람들을 마치 제물로 바친 것처럼 바꿀 수 있다면? 그렇다면 가능하냐?"
세자의 말에 소연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소연이 대답하기 전에, 수현이 먼저 나서 물었다.
"하오나, 제물이라면 제단 같은 것을 두고 바치는 의식을 행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수현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수현과 세자가 다시 소연을 바라보니, 그녀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이미 살아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제물로 받쳐질 것을 맹약하였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럼? 그럼 가능하다는 것이냐?"
세자의 물음에 소연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가능합니다. 그들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니... 그러면 가능합니다."
수현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토벌로 죽은 사교도의 수는 족히 아흔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무려 아흔 명의 의지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 됩니다."
세자 역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죽은 자들의 공격이라... 그들의 의지를 바꿔 저들이 하려고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세자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형형한 안광을 내뿜었다.
"벌써 두 시진째 보고 있사온데, 부정한 기운을 가진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미 눈치를 챈 것 아니겠습니까?"
소연의 물음에, 수현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리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본 후에 돌아가도록 하자."
수현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걸어가고 있는 궁인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지나치는 궁인들 사이로, 이따금 관복 차림의 신료들도 보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소연이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그러느냐?"
수현의 물음에 소연이 아미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것이...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야기하지 그랬느냐?"
"근데 그것이...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미미한 데다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수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예, 지금까지 본 사람만 족히 십여 명은 되는 듯합니다. 뭔가 부정한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 그저 타고난 태생이 부정한 기운을 타고난 사람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습니다. 보통 그렇게 부정한 기운을 타고난 사람은 백에 하나, 아니 천에 한 사람도 쉬이 보기 어려운 법인데, 이상하리만치 자주 보입니다."
"네가 하는 말뜻을 이해하기 어렵구나.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그건... 음... 그저 그 장소 자체가 부정한 기운이 어려서, 기운이 약한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경우가 워낙 다양하여 특정 지을 수가 없습니다."
"연희와는 다른 것이냐?"
수현의 물음에 소연이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연희 같은 기생령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허니, 저들은 기생령은 아닙니다."
수현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숨어서 지켜보던 소연이 누군가를 보고 묻는 말에, 수현이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안영군이었다.
"저분은 안영군이시다. 어찌 그러느냐?"
"기생령만큼 확연한 기운은 아니지만, 아까 사람들보다 좀 더 짙은 부정한 기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좀 더 짙은 부정한 기운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수현의 되물음에 소연이 수현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부정한 기운이 아닙니다. 분명한, 주술의 기운입니다."
수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확신할 수 있겠느냐?"
"분명합니다. 헌데..."
"왜 그러느냐?"
소연이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영군 마마에게서 느껴지는 부정한 기운이, 여태 보았던 다른 이들의 부정한 기운과 매우 유사합니다."
수현은 뭔가 눈치챈 듯 동공이 커지더니,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
"일상적인가 싶어 무심히 그냥 보냈던 그들의 기운 역시, 그저 안영군 마마보다 조금 약할 뿐, 같은 맥락일 수 있습니다."
"주술이란 뜻이냐?"
"예."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궁궐 안에 대소신료들에게 주술이 걸려 있다니... 저것을, 어찌 풀 수 있겠느냐?"
"크게는 궁궐 전체를 하나의 진법으로 가두어 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궁궐 안에서는 저 부정한 기운들이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궁궐을 나가면?"
"다시 영향을 주겠지요."
"아예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냐?"
"그리하려면, 저것이 어떤 종류의 주술인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주술이 걸린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등 세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저하를 만나 뵙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구나. 이제 그만 돌아가자."
"예."
수현과 소연은 그 자리를 벗어나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문득 소연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잠시! 잠시만요."
소연의 다급한 부름에 자리를 피하려던 수현이 멈춰 섰다.
"왜 그러느냐?"
소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했다.
"기생령입니다."
소연의 말에 수현이 소연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으며 소연과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저기 저 사람...."
소연이 가리키는 곳에는 상궁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확신할 수 있느냐?"
"확실합니다. 연희와 같은 기생령입니다."
"저자를 내가 잡으면, 기생령이 도망 못 가게 묶어 둘 수 있겠느냐?"
소연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잡아둔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는 못 잡아 둡니다. 천방주가 눈치를 채고 주술을 걸기 시작하면, 고작해야 한두 시진을 버틸 뿐입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해볼 수밖에 없구나. 누군지 알았으니, 일단 저하에게로 돌아가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수현과 소연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 세자가 있는 동궁전으로 향했다.
동궁전에 당도하여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세자를 보고 서둘러 인사를 한 뒤, 세자 곁으로 다가갔다.
"그래, 찾았느냐?"
세자의 물음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찾았습니다. 헌데,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가 그것만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냐?"
수현이 소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설명해 드리거라."
"예."
소연이 수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세자를 보며 말했다.
"소인이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그래, 어서 말해 보거라."
"금일 궁궐을 오다니는 궁인들과 대소신료들을 살펴보았사옵니다. 그 과정에서 상궁의 몸이 깃든 기생령을 한 사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온데..."
잠시 뜸을 들인 소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서 주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자가 놀라 되물었다.
"주술의 기운? 기생령 말이냐?"
"아니옵니다. 기생령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평이한 기운으로 생각했었으나, 안영군 마마를 뵈옵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안영군?"
"예, 저하. 안영군 마마 역시 비슷하게 부정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기운이 훨씬 강하여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여, 그 이전에 보았던 비슷한 기운의 다른 사람들 역시 주술에 의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세자는 잠시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물었다.
"허면, 그 주술이 어떤 효과를 내는 것이냐?"
"아직...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오나... 오는 길에 생각건대, 아마도..."
말끝을 흐리는 소연을 세자와 수현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서 말해 보거라."
이내 기다리다 못한 세자가 재촉을 하자, 소연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주술사가 평소 사용하는 주술이 기생령과 같은 제혼(制魂)의 술수임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피시술자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술수이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세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빛이 반짝거렸다.
"과연... 분명 그러할 수 있음이다. 안영군이 과격한 행동을 종종 보이긴 하여도, 은근히 겁이 많아 금세 물러서곤 하였는데, 요 며칠 그의 행동은 내가 알던 안영군같지가 않음이야."
수현 역시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박지언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박지언은 평소에 무인으로써 그 수하들에게서 존경받는 위인이자, 무예를 수련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입니다. 그런 수하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박지언에 대한 고변을 늘여놓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것은, 누군가의 생각이나 의지를 조정하는 주술임이 틀림이 없다. 간악하기 그지없구나."
소연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주술사라고는 하나, 사람의 의지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의지를 바꾸기 위해 자신이 가진 힘을 전부 다 쏟는다 해도, 한 사람의 의지조차 바꿀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란 그런 것이지요. 헌데, 이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바꾸다니요...."
소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악신을 불러들이거나,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금기된 술수가 아닌 이상에야, 이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입니다."
소연의 말에 세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무어라 했느냐? 어떻게 하면 가능하다고?"
세자의 되물음에 소연의 표정이 어리둥절 해졌다.
"예? 악신을 불러들이는 것 말입니까?"
"아니 말고, 그다음에 말이다."
"그다음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 말입니까?"
"그래,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저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냐?"
소연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아... 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금기된 주술인 데다가, 한 사람의 의지를 바꾸는데 한 사람의 제물이 필요하다면, 그 많은 제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있지."
세자의 단호한 대답에 소연은 물론 수현의 표정도 어리둥절해졌다.
"예?"
되묻는 소연을 보며 세자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사교도의 토벌이 있지 않았더냐? 그때 죽은 사람들을 마치 제물로 바친 것처럼 바꿀 수 있다면? 그렇다면 가능하냐?"
세자의 말에 소연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소연이 대답하기 전에, 수현이 먼저 나서 물었다.
"하오나, 제물이라면 제단 같은 것을 두고 바치는 의식을 행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수현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수현과 세자가 다시 소연을 바라보니, 그녀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이미 살아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제물로 받쳐질 것을 맹약하였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럼? 그럼 가능하다는 것이냐?"
세자의 물음에 소연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가능합니다. 그들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니... 그러면 가능합니다."
수현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토벌로 죽은 사교도의 수는 족히 아흔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무려 아흔 명의 의지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 됩니다."
세자 역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죽은 자들의 공격이라... 그들의 의지를 바꿔 저들이 하려고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세자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형형한 안광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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