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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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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95분

6화 - #6


오래된 현관문 특유의 마찰음으로 귀신경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유재현이 들어섰다.

그 뒤로 수호와 세희가 따라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들어선 세희가 문을 닫자 육중한 무게의 둔탁한 마찰음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

어두컴컴한 거실을 지나 재현이 거실 불을 켜보지만, 이제 곧 꺼질 듯 수명이 다한 불빛은 그리 환하지 못했다.

부족한 불빛을 채우려, 재현이 거실 커튼을 치자, 그나마 환한 햇살이 방안에 쏟아져 내렸다.

청소는 언제 한 걸까? 살림살이라고 할만한 게 그다지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휑한 방구석 이곳 저것에 굴러다니는 빈병과 종이조각,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흡사 이사 가고 남은 빈집 같은 풍경이었다.

"이쪽으로 와."

재현이 방문 하나를 가리키며 고개짓을 했다. 방문을 열고 불을 켜자 거실과는 달리 형광등 불빛이 내부를 꽤 환하게 비추며 보여주었다.

서재방인듯 책상과 책장이 놓여 있고, 수많은 사진이 벽과 책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책상 반대쪽 벽에 붙어있는 화이트보드에는 많은 것들이 메모되어 있었고, 화이트보드 구석에는 누군가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희끄무레한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인상의 안경 쓴, 네모난 얼굴형의 노년의 남자 사진과, 그 아래로 수호의 눈에 익숙한 사진이 하나 보였다.

수호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수줍은 듯 살짝 지어진 미소, 갸름한 계란형 얼굴에 자상함이 가득한 눈빛, 그리고 금빛으로 염색된 머릿결까지.

매일같이 보고 또 보는 바로 그 사진, 바로 수호의 엄마였다.

수호는 잠시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그 위에 같이 붙어있는 노년의 남자를 보았다.

"이 사람이에요?"

수호가 묻는 말에, 책상 위에서 뭔가를 뒤적 거리던 재현이 고개를 돌려 사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최성길 국회의원."

수호가 재현을 돌아보았다.

"수사 종료된 거 아니었어요? 아직도 수사하고 계신 거였어요?"

재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푸념하듯 말했다.

"증거를 못 찾았지."

"그런데 왜?"

"몰라."

재현은 짧게 답하고는 잠시 아무말이 없다가 뒤이어 말을 이었다.

"그냥. 내 직감이 그래. 저 새끼다. 저 새끼가 범인이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렇더라고."

재현의 입맛이 쓴 듯 눈살을 찌푸렸다.

수호가 고개를 돌려 세희를 쳐다봤다. 세희는 그것봐~내말이 맞지? 라는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외에도 사건 현장을 찍었던 사진들, 수많은 서류들을 보면서, 수호는 재현이 지금까지도 놓지않고 계속 사건을 조사해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쪽에 놓인 검은색 서류철 위 노란색 라벨지에 써있는 '피해자 감식 결과'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수호가 손을 뻗어 집으려 하자, 재현이 턱-하고 수호의 손목을 잡았다.

"보지 마라."

움찔한 수호가 재현을 돌아보자 손목을 놓아준 재현은 수호를 보지도 않은 체 화이트보드를 응시하며 말했다.

"보는 순간, 평생 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야. 나처럼."

수호는 잠시 망설였다. 재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어요."

수호가 다시 손을 뻗자, 재현이 돌연 손을 뻗어 서류철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수호는 재현의 두 눈을 응시했다.

재현도 수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재현을 바라보던 수호는 마치 깊은 심해와 같이 어둡고 음울한 재현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저도 시체 많이 봤어요. 아는 사람이 의사라. 다리 잘린 거, 팔 잘린 거, 이것저것 못볼꼴 많이 본놈이예요."

"그 거하곤 달라."

"어떻게 다른데요?"

"어쨌든 달라."

"그래도 보고 싶어요. 내가 자식인데... 그래도..알아야 하잖아요?"

"자식이니까 몰라도 돼. 자식이라서 안된다는 거야."

"왜요?"

재현의 눈빛에, 처음으로 측은한 마음을 품은 따뜻한 시선이 담겼다.

"네 엄마가 바랄 테니까."

수호는 마지못한 듯 서류철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재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말리셔도. 결국 언젠가는 보게 될 겁니다."

재현은 무심한 듯 그런 수호의 말을 받아쳤다.

"네 마음속에서 니 엄마를 지워버릴 수 있거들랑, 그때 봐라."

"전 너무 어릴 때라,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그래서 상상으로 만들었겠지. 엄마에 대한 이미지를. 그게 더 안 좋아."

수호의 잇새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어쩐지 맥 빠지는 웃음이었다.

"엄마를 상상한 죄인 건가요?"

"죄라고는 안 했어. 그게 더 안 좋다고 했을 뿐."

"전 눈앞에서 아빠가 죽는 걸 봤어요."

재현은 대답하지 않고 수호를 지긋이 응시했다.

"그러니까 됐잖아. 상처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아빠도.... 그 새끼였어요."

"김주환?"

수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재현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고 있어. 이미 말했잖아."

"그래서 뭐가 달라졌죠?"

"아무것도."

"왜죠?"

"자신이 범인이라며 한 사람이 자수를 했어. 증거도 있고."

"왜 저를 증인대에 세우지 않은 거죠?"

"넌 너무 어렸어. 그리고..."

재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때 난... 너라도 지키고 싶었다. 그들이 너의 존재를 알게 되면... 내가 널 지킬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어."

"삼촌은요?"

"그 양반 성질머리야... 나도 모르는 거 아니지. 복수한다고 무턱대고 찾아갔다가 죽을 고비 넘긴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어요."

"그게 무공인지는 몰랐어도, 평범한 사람은 아닐꺼라는 건, 짐작 하고 있었다."

"삼촌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몰라. 살아있는지조차..."

"살아 계세요."

수호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을 하자, 재현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살아계시지 않으면... 능력을 빌려 쓸 수 없거든요."

재현은 의심스럽다는듯 가늘게 실눈을 뜨며 물었다.

"대체 그건... 어떻게 가능한 거야?"

재현의 물음에,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만있던 세희도 옆으로 바짝 다가서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수호를 바라보았다.

"저도 그게 궁금해요. 조건이 뭐죠?"

재현과 수호의 시선이 동시에 세희에게로 향했다.

수호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능력 자체는 타고나야 돼요."

"그건 알죠."

으...저 또라이를 한번만이라도 이기고 싶다.. 내가..어디가서 꿀리는 말빨은 아닌데... 쩝..

어쩐지 받아치는 세희가 얄밉게 느껴진 수호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능력을 빌리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첫번째 내가 그 사람을 알고, 신체적인 접촉을 해야 돼요."

"아하! 신체적인 접촉!"

세희가 놀랍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자, 수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보았다.

"쫌!"

조용히 하라는 수호의 눈치에, 세희가 배시시 웃으며 손으로 입을 꼬매는 시늉을 해 보였다.

"두 번째 그 사람의 본명을 알아야 해요. 별명이나 가명일 경우에는 효과가 없어요."

말을 이으며 수호는 재현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마지막 세 번째, 매개체가 필요해요. 내가 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했던 부위를 매개체에 닿게 해서, 그 기운을 기록해 두는 거죠. 단 매개체에 기록을 할 땐, 반드시 고유한 의미가 부여돼야 해요. 그리고 하나의 의미에는 오직 한 사람의 능력만 기록할 수 있죠. 하나의 의미에는 두 개 이상을 기록할 수 없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세희가 알았다는 듯 손바닥을 가볍게 마주쳤다.

"아하! 그러면 수호 씨는 22장의 타로카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22명의 능력을 기록해 둘 수 있는 거군요."

수호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능력을 빌리는 사람이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고, 능력의 발전 정도는 빌리는 순간에 따라 달라져요. 즉, 그 사람이 혹여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빌려도 쓸 수 없게 되는 거죠."

재현은 심각한 얼굴로 수호를 쳐다봤다.

"저들 중에...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

재현이 묻는 말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김주환. 아빠를 죽인 범인이에요. 물론...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아빠를 죽이라고 명령했죠."

"직접 죽인 건?"

"누군지는 몰라요. 다만 일본 사람이었어요."

"일본?"

재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왜 말을 안 한 거야?"

수호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땐... 무서웠어요."

재현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점은?"

수호가 재현을 빤히 쳐다보자, 재현이 당연한거 아니냐는 눈빛으로 물었다.

"니 약점을 네가 알 거 아냐? 같은 능력이면 약점도... 같은 거 아냐?"

수호가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아요. 빌린 능력은... 최대 1시간 동안만 유지돼요. 또, 한 번 빌리면, 좋든 싫든 1시간을 유지해야 해요. 그 말인즉, 일단 어떤 능력을 빌리면, 1시간 안에는 다른 능력을 쓸 수 없어요."

수호의 말에 이번엔 세희가 물었다.

"만약 능력을 빌린 지 1시간이 안됐는데, 능력을 빌려준 주체가 죽으면요?"

"그럼 능력이 사라지겠지."

"그럼 다시 빌릴 수 있어요?"

수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 시간 동안은 그냥 평범한 나로 있게 되는 거지."

재현이 다시 물었다.

"빌려 쓸 수 있는 능력의 종류는? 무공이라든지, 신체적인 능력에 한한 건가?"

"아뇨. 경험적인 지식도 가능해요. 디자인이라든지, 프로그래밍 능력, 또는 법학 지식이나 의학 등, 상대가 가진 능력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빌려올 수 있어요."

오~~ 멋있어~~라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세희가 다시 물었다.

"지식을 빌려온다는 건 언뜻 체감되지 않네요? 의사 능력을 빌리면, 갑자기 의학 지식이 많아져서 수술도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건가요?"

수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슷해. 그냥 마치 내가 원래 의사였던 것 같은 기분이랄까."

"1시간이 지나면?"

"마치 애초에 의사였던 적이 없었던것처럼 의학적 지식도 기술도 사라진 그냥 평범한 나로 돌아오는거지."

이번에는 다시 재현이 물었다.

"거리는?"

"상관없어요. 지구 반대편에 있다 해도 빌릴 수 있어요. 살아만 있다면."

"그 자식도 타로카드를 가지고 있나?"

"아뇨. 매개체는 자기가 정하기 나름이지만, 한번 정한 매개체는 쉽게 바꿀 수 없어요."

"그럼 일단 상대의 매개체가 뭔지를 알아야겠네?"

수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마도요."

세희는 자신이 마치 추리하는 탐정이 된것처럼 과장된 표정과 손짓으로 말을 했다.

"아마도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물건이겠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을만한 것으로."

수호와 재현이 동시에 세희를 쳐다보았다가, 재현이 수호를 보며 물었다.

"얘는 아직도 필요해?"

수호는 깊~이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대답했다.

"이제 필요 없을 것 같긴 해요."

세희가 두 사람을 서운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톡 쏘았다.

"와, 이 치사한 인간들. 가족 내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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