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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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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63분

42화 - #11


그녀에겐 3명의 아들이 있었다.

일찍 곁을 떠난 남편의 자리까지 대신하느라,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모두 헌신하여 아들들이 모두 장성하였으니, 주위에서 독하다고 말하거나 시샘하는 눈빛을 보내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첫째 아들이 장가갈 땐, 무언가를 이룬 듯한 기분에 뿌듯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견딜만 했다.

둘째 아들이 장가갈 때,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었나 보다.

그래도 아직 셋째가 있으니까, 버틸 수 있었다.

셋째 아들마저 장가갈 때의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홀로 남은 그녀는, 가슴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공허함을 채우려, 여전히 바쁘게 일해야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주위에서는 혀를 차며 독한 여자라 욕까지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의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엄마, 혼자 있기 심심하지 않아?"

막내아들이 언젠가 그렇게 말하며, 낑낑 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바구니에 담아가지고 왔다.

"에구! 이런 건 뭣하러 가져와? 씻겨줘야지, 챙겨 먹여야지, 똥 싸면 누가 치워? 됐어, 당장 가져가!"

그녀는 질색을 하며 찾아온 막내아들에게 면박을 주었다.

막내아들은 기왕 가져온 거 일주일만 데리고 있어 보라고, 일주일 뒤에도 싫으면 자기가 데려가겠다면서 억지로 강아지를 놓고 갔다.

강아지는 저를 싫어하는 눈치도 모르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며 어디를 가든 그녀를 따라다녔다.

잠시 주방에 가도 따라오고, 거실 소파에 앉으려 해도 따라왔으며, 화장실을 가면 쫓아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왜 자꾸 따라다녀?"

그녀는 괜스레 짜증도 내보았지만, 강아지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며 안겨들 뿐이었다.

"어디 있다 왔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씻어야겠다."

그녀는 강아지를 먼저 목욕시켰다.

물에 젖어 강아지 털이 모두 몸에 바짝 달라붙자, 앙상하고 자그마한 강아지의 몸이 여실히 드러났다.

부들부들 떠는 강아지를 얼른 수건을 닦아주었는데도, 여전히 바들바들거렸다.

그녀는 강아지가 걱정돼서 품에 꼭 안아주었다.

강아지의 체온이 그녀의 가슴에 전해졌다.

비로소, 그녀의 가슴에 비어있던 공허함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강아지에게 "누비"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들들이 모두 떠나가고 비어있던 그녀의 가슴을 채워준 누비는, 어느샌가 그녀에게는 없어선 안될 가족이 되었다.

누비가 불쑥불쑥 커가던 그 어느 날 그녀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주방으로 부랴부랴 달려 나온 그녀는, 주방 한가운데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따금 거실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종종 넋을 놓고 있기를 반복했다.

누비가 그런 그녀를 일깨워주려 열심히 짖기도 하고, 다가가서 몸을 비벼보기도 했지만, 그런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언제였을까, 그녀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음을 누비도 느꼈을 무렵이었으리라.

돌연 그녀는 누비를 보고 놀라 기겁을 했다.

"아이고, 웬 개가 집에 있어?"

그녀는 누비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비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자, 그녀는 비명을 질러댔고, 효자손을 들어 저리 가라며 누비를 때리기도 했다.

누비는 기다렸다. 자신의 주인인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한 누비는 그저 그녀가 다시 자신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누비야."

이따금 그녀는 누비를 알아보곤 했다.

그럴 때면 누비를 품에 꼭 껴안고 종종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을 무렵에서야, 아들들은 그녀의 이상함을 알아챘다.

부랴부랴 치매환자 보호시설을 알아봤지만, 환자 대비 턱없이 부족한 시설에, 언제 입소가 가능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사이 그녀의 증상은 빠른 속도로 악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집안에서 헤매며 보냈고, 누비를 알아보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기겁을 하며 누비를 몰아내려 때리기를 반복했다.

각자의 삶에 바빴던 아들들이, 각자의 이유로 그녀에게 소홀한 사이, 그녀는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실에 선체로 소변을 봐버린 후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상태를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절망감이 그녀를 집어삼켜 버렸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 거라는 공포가, 그녀를 발끝에서부터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꼼짝달싹 할 수 없을 때, 누비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비야...."

불현듯 미안함이 밀려들어왔다.

자기가 떠나고 나면, 홀로 남을 누비를 누가 돌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

누비의 이야기를 들은 나래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치매에 걸려 자기가 키우던 개를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이, 이 세계의 여왕이 되어 있다니.

"그럼... 가끔은 기억이 돌아오기도 하는 거 아닌가요?"

나래가 문득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누비는 시선을 떨군 체 대답했다.

"이곳에 올 때, 그녀의 시간은 멈춰 버렸어. 어린 내 모습만을 기억한 채로 와버렸지."

누비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래까지 괜스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런 건 아니잖아요. 잘못됐다는 걸 알려줘야 해요. 대체 그 도깨비방망이는 어떻게 얻은 거죠?"

나래의 물음에, 머뭇거리던 한울이 대답했다.

"그건...."

나래가 한울을 돌아보자, 한울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내가 준거야."

나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뭐어? 하지만... 여왕은 네가 누군지도 몰랐잖아."

"물론 그렇지. 그걸 줄 때와는... 모습이 다르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명을 해봐."

한울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는... 돌려주고 싶었어."

"돌려줘? 뭘?"

"도깨비들한테... 소중했던 순간들을... 다시 돌려주고 싶었어."

아래로 향했던 한울이 시선을 들어 나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도깨비는 태생적으로 인간을 좋아해. 인간 곁에 머무르며, 그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도깨비들은 행복을 느끼지. 도깨비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건,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살 때야. 인간들이 점점 홀로 사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또한 인간들 곁에 머물기 힘들어졌어."

이어 한울이 주위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 세계는 원래 이런 곳이 아니었어.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상처 받은 이들이 오는 세계가 아니었어. 이곳은 원래... 인간들이 꾸는 꿈을 모방하는 세계였어."

"꿈을 모방해?"

"그래. 꿈토끼들은 인간들이 꾸는 꿈보고 온갖 것들을 모방하여 만들어내는 곳이지. 여왕이 오기 전까지는."

나래는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만났던 토끼들을 떠올렸다.

"나는 우연히 도깨비방망이를 얻었고, 그 도깨비방망이로 세상을 넘나들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어. 그리고 이 세계에 왔지. 내가 만든 통로를 통해, 다른 도깨비들도 넘어올 수 있었어. 비록 인간은 없었지만, 인간들 틈에서 살던 세상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이 세계가 마음에 들었어. 되도록 많은 도깨비들을 불러들이려 했지. 도깨비뿐만 아니라, 인간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이 넘어올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될 줄 알았어."

"여왕은 어쩌다가 만난 거야?"

"그 통로로, 처음으로 인간이 왔어. 믿을 수 없었지. 어떻게 인간이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그건 나도 몰라.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아마도 누비 아저씨 때문인 거 같아."

누비는 한울을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인간이 온 게 너무 반가웠어. 그녀를 시작으로 많은 인간들이 오길 바랬어. 그래서... 이 세상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인간과 어우러져 사는 세계가 되길 바랬어. 그래서 기꺼이 그녀에게 도깨비방망이를 주었어. 이곳에 온 첫 번째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고, 도깨비방망이를 그녀가 가짐으로써, 더 많은 인간들이 오길 바랬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어."

지난 시간을 떠올린 한울이 주먹을 꽉 쥐었다.

"힘을 얻은 그녀는 횡포를 저지르기 시작했어. 이곳의 원주민인 토끼들은 토끼굴 안으로 숨어들었고, 이곳은 인간을 그리워하는 개들로 넘쳐나기 시작했지. 이따금씩 도깨비들도 흘러 들어왔지만, 그녀는 도깨비들을 잡아들여 소로 만들고 노역을 시켰어. 그녀의 힘을 본 다른 이들은 그녀에게 복종하기 시작했고, 이곳은 그녀만의 왕국이 되어버렸어."

나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버림받은 생명들만 이곳에 모여들게 된 거야?"

한울이 그렇게 묻는 나래를 보며 대답했다.

"통로를 만든 건 그녀가 가진 도깨비방망이야, 그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주인의 의지에 따라, 통로로 넘어오는 존재가 달라지는 거야. 내가 가지고 있을 땐, 인간을 그리워하는 존재들을 불러들인 거고, 지금은... 그녀가 인간에게 버림받은 존재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거야. 다만..."

한울이 뭔가 고심하듯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버림받았지만, 여전히 인간을 그리워하는 존재들이 오고 있는 것 같아. 내가 통로를 연 조건이 남아있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그걸 바라는 건지..."

그러자 이번엔 누비가 나서 말했다.

"그녀가 그리워하고 있는 거지."

모두가 누비 쪽을 바라보자, 누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둔 아들들에 대한 원망 너머에는, 그 아들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거겠지."

나래는 한울과 누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렴풋이 나마 그간의 사정을 듣고 상황을 이해한 나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거죠? 최종적으로 어떻게 돼야, 이 문제가 잘 풀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요?"

나래의 물음에 한울과 누비가 나래를 보았다가 서로를 마주 보고는, 바로 답을 내놓지 못한 체 우물 거렸다.

그런 둘을 번갈아 보던 나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럼, 일단 여왕을 만나봅시다. 그녀가 가진 도깨비방망이를 빼앗으면 당장 어떻게 하지 못할 테니까."

누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래를 보며 물었다.

"그녀의 도깨비방망이를 어찌 빼앗을 생각인 게야?"

나래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디 있는지만 알면, 언제든 뺏어올 수 있어요."

이번엔 한울이 나서 물었다.

"하지만 당장 힘을 빼앗는다고 해서, 그녀의 병사들이 그녀의 명령을 거부하진 않을 거야. 그녀가 명령을 내리면 병사들이 몰려들 텐데?"

나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몰려드는 병사들도 문제지만, 설령 몰려들지 않는다 해도, 단순히 도깨비방망이만 뺏는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령님의 도움이 필요하겠는데...'

나래는 틈의 세계에서 보여준 백하도령의 능력을 떠올리며, 어쩌면 그 능력이 여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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