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3
라마는 송이개와 함께 걸으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를 통해 라마는 무림이란 곳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한 배를 채우기 위해 어느 주객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마주 앉은 라마가 송이개에게 물었다.
"헌데, 개방에는 고수도 많다 들었는데, 어찌 이개님은 무공을 전혀 못하십니까?"
그러자 송이개가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개방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죠. 죄다 거지지만. 그들 중에는 제법 잘 사는데도 거지 행세를 하는 자들도 있고, 무림에 고수가 되고 싶어서 거지가 되는 이도 있지만, 원래 거지였거나, 거지 같은 생활이 좋아서 거지가 된 이들도 있죠. 많은 사람이 있을 뿐, 그들 모두가 무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지 같은 생활이 좋아서 거지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까?"
라마와 송이개는 거의 동시에 같이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게... 설명하기 좀 그런데... 뭐랄까... 자유로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런 삶을, 일종에 신선 같은 삶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 뭐, 많지는 않지만."
"재밌군요. 신선 같은 거지라..."
"뭐 어쨌든 개방에 들어오면, 거지들 사이에서는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라마가 놀라 되물었다.
"아니 그럼, 개방이 아닌 거지도 있습니까?"
"허허... 참...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거지라고 아무나 개방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개방은 수많은 조직들 위에 있는 상위 조직이고, 그 밑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조직이 분파라는 이름으로 있지요. 그 분파 밑에는 또 그보다 작은 조직이, 그 조직 밑에는 또 그 조직보다 더 작은 조직이 있는 구조입니다.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죠. 거지가 되었지만, 개방의 고수는 평생 가도 못 만나보는 그런 거지들도 널리고 널렸다 이 말입니다."
"거지도 계급이 있다 이건가?"
"뭐... 계급까지는 아니지만, 끕. 끕이 다른건 사실이죠."
"에라이... 치사하고 드러워서 거지도 못해먹겠네."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껄껄 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 함부로 하면 큰 일납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만, 거지는 하루 종일 듣습니다."
"잘됐네요. 그 덕에 개방의 고수를 만나게 될지 어찌 압니까?"
둘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같이 웃었다.
주객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사람들이 즐비한 시장 골목을 걸으며 물건들을 구경하던 라마의 귀에 소란스러운 시비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구경은 싸움구경이 제맛!
라마의 관심이 소란스러운 곳으로 향하니, 송이개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구경 가실까요?"
"그러죠."
두 사람은 희희낙락한 표정이 되어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으로 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덩치 큰 사내 두 명이 능구렁이처럼 생긴 사내 하나를 앞에 두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이 사기꾼 새끼가 감히 누구 앞에서 헛소리를 하고 있어?"
말과 동시에 그의, 사람 얼굴만 한 주먹이 뺀질뺀질한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어허허, 이이... 이 사람들 많은 곳에서 무슨 행패요? 이 바로 앞이 무림맹의 분파요, 내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나마 무림맹에 몸담았던 몸! 그들이 가만있을 성싶소?"
뺀질하게 생긴 사내가 기죽지 않고 소리쳐 말하니, 멱살을 쥔 사내의 표정이 살짝 곤란해졌다.
"이이... 너 또 사기 치는 거지?"
"아, 사람들한테 물어보시오. 바로 앞이 무림맹의 분파요."
거친 사내의 눈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구경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두들겨 패고 싶은데, 무림맹이란 말에 선뜻 손이 나서지 않았다.
"아하, 이제 보니, 녹림(綠林)사람인 모양인데? 이거 이거... 이렇게 무림맹 앞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단 얘기를 그들이 듣는다면... 이이... 보통 일이 아니오!"
그의 말에 거친 사내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고, 그의 뒤에 말없이 서 있던 사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됐다. 그만 가자. 똥 밟았다 생각해라."
그의 말에도 멱살을 잡은 사내는 분한 듯이 말했다.
"아, 이놈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아오.... 야이 시키야, 너 오늘 운 좋았다. 길에서 조심해라. 내 눈에 띄면, 쉽게 죽이진 않는다."
그러나 뺀질한 사내는 여유로웠다.
"내 그런 말 많~이 듣수. 그런 사람 치고 다시 본 적이 없수다."
거친 사내가 멱살을 놓아주더니, 바닥에 침 탁 뱉고는, 뒤에 있던 사내와 함께 마지못한 듯 발걸음을 떼었다.
"에에... 고작 말싸움이야?"
구경하던 라마가 재미없다는 듯 툴툴거리자, 옆에 있던 송이개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게 열에 아홉은 말싸움이죠. 몸담은 세력이 다른데, 성급하게 싸움 났다가는 세력 간에 전쟁으로 번질 수 있으니, 쉬이 싸우지 못하는 겁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멱살을 잡혔던 사내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다가,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라마와 눈이 마주쳤다.
"뭐 나한테 볼일 있으시오?"
그가 퉁명스레 물어오는 말에 라마는, 잠시 더 그를 바라보다 궁금한 듯 물었다.
"그들이 어찌 녹림패 사람인지 아셨소?"
라마의 물음에 그가 피식 웃음을 짓더니, 능글맞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팔에 묶은 붉은 띠에, 검은색 글자로 두경(斗京)이라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두경표국(斗京鏢局)의 사람일 것이고, 표국이라 함은, 열에 아홉은 녹림과 연이 있을 터이니, 녹림패에 속했다 하더라도 반박하지 못할 것 아니오?"
라마가 "표국?"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송이개가 말했다.
"돈을 받고 물건을 날라주는 이들을 말합니다. 산적 같은 도적떼나 강도들한테 뺏길 수 있는 물건을 지켜주고 돈을 받는 사업을 하는 자들이죠."
라마가 "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헌데 어찌 표국 사람들이 녹림과 관련이 있는 것이오?"
"답답한 사람하고는... 대부분의 산적이나 도적떼, 강도가 녹림에 속해 있는 마당에, 번번이 물건 지킨다고 그들하고 싸워봐야, 녹림이나 표국이나 득 될게 뭐겠소? 그러니 암묵적으로 녹림에 돈을 좀 쥐어주고, 표국이 물건을 호송해 주면, 서로 피해도 안 보고 꾸준한 수입이 들어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소?"
그의 말에 라마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가 손을 내밀어 보였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고, 수업료는 일문이요."
그의 뻔뻔한 행동에 라마는 피식 웃더니, 주머니 속에서 엽전 하나를 꺼내 손으로 튕기자, 그가 얼른 그 허공에 뜬 엽전을 잡아챘다.
"거 시원시원하신 양반이구만."
그가 만족해하며, 엽전을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서유림이라 하오. 존함이 어찌 되시오?"
"라마요."
"라마? 별난 이름이 구료. 옆에 계신 분께서는... 보아하니 개방에 계신 분 같으신데..."
송이개가 씨익 웃어 보였다.
"송이개라 하오."
송이개의 인사에, 유림은 뺀질한 표정과 눈빛으로 송이개를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대답했다.
"오의(汚衣)쪽이시구만."
송이개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머쓱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라마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마는 송이개를 보고 물었으나, 유림이 답답한 듯 대답했다.
"아하... 이 친구 아는 게 없네. 개방이라고 단일 조직인 것 같수? 그 큰 조직이? 어림도 없지. 그 안에 세가 나뉘는데... 딱 보아하니 오의쪽이야. 진짜 거지 같거든."
라마가 유림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체 물었다.
"그럼... 개방에 가짜 거지도 있소?"
"있지. 정의(淨衣). 그것들은 실제로는 돈이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그냥 거지 행세를 하고 다녀. 그래서 딱 보면 알지. 옷을 비루하게 입으면 뭐하나, 어찌나 잘 먹었는지 얼굴에 포동포동 살이 쩌서는 윤기가 줄줄 흐르는데, 그런 놈들이 거지랍시고 거지 행세를 하고 다니니..."
말을 잇던 유림은 송이개와 눈이 마주쳤고, 표정이 굳은 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송이개를 보자 얼른 말끝을 흐렸다.
"뭐... 그렇다고 내가 개방을 비난할 생각은 없고. 그럼, 난 이만."
유림은 얼른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피해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고, 그런 유림을 보며 라마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개방이 대단하긴 한가 보군요. 저렇게 겁먹고 내빼는 거 보니까."
"아무렴, 저런 떨거지들이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죠."
라마와 송이개 역시 터벅터벅한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신선 같은 거지에, 부유한 거지, 그리고 진짜 거지까지. 거 개방이란 곳이 참 신기한 곳이군요."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그런데 그게 비단 개방만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예. 협객인 척하는 강도, 날강도 같은 관료, 협자인 듯한 사기꾼들까지,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른 이들로 꽉 차있죠."
뭔가 의미심장한 말에 라마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두 사람이 그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수풀 속에서 험상궂게 생긴 이들이 양쪽으로 나타나 길을 가로막아 서자, 라마는 귀찮은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아니 도대체 이 세상은 시작부터 끝까지 강도질이야?"
라마가 투덜거리지만, 송이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체 험상궂은 표정으로 강도들에게 말했다.
"이 써글놈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가 험상궂은 강도 무리 뒤쪽에서 유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 뭐, 거지 중에 상거지, 오의파 거지 아니쇼?"
유림이 강도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라마와 송이개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이해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라마는 그런 유림에게 물었다.
"어찌 이러는 게요?"
라마의 물음에 유림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 뻔히 아는 걸 또 물으시네. 아까 보니까 돈이 두둑 하더이다? 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정보를 제공해주고, 제공된 정보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거지요. 좋은 정보를 알았으니, 얼른 팔은 것 아니겠습니까?"
라마가 천천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자, 유림이 안타까운 듯 이야기했다.
"그깟 돈이야 없으면 또 벌면 되는 것을... 굳이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겠소? 돈만 주면 조용히 갈 사람들인데..."
라마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거야 대봐야 아는 거고."
퉁명스러운 라마의 대답에 강도중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뒤져봐야 정신 차리겠구만. 얘들아, 저 새끼 팔다리 다 잘라 버려라."
"예."
사내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동시에 라마를 향해 공격해 왔다.
그를 통해 라마는 무림이란 곳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한 배를 채우기 위해 어느 주객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마주 앉은 라마가 송이개에게 물었다.
"헌데, 개방에는 고수도 많다 들었는데, 어찌 이개님은 무공을 전혀 못하십니까?"
그러자 송이개가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개방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죠. 죄다 거지지만. 그들 중에는 제법 잘 사는데도 거지 행세를 하는 자들도 있고, 무림에 고수가 되고 싶어서 거지가 되는 이도 있지만, 원래 거지였거나, 거지 같은 생활이 좋아서 거지가 된 이들도 있죠. 많은 사람이 있을 뿐, 그들 모두가 무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지 같은 생활이 좋아서 거지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까?"
라마와 송이개는 거의 동시에 같이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게... 설명하기 좀 그런데... 뭐랄까... 자유로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런 삶을, 일종에 신선 같은 삶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 뭐, 많지는 않지만."
"재밌군요. 신선 같은 거지라..."
"뭐 어쨌든 개방에 들어오면, 거지들 사이에서는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라마가 놀라 되물었다.
"아니 그럼, 개방이 아닌 거지도 있습니까?"
"허허... 참...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거지라고 아무나 개방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개방은 수많은 조직들 위에 있는 상위 조직이고, 그 밑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조직이 분파라는 이름으로 있지요. 그 분파 밑에는 또 그보다 작은 조직이, 그 조직 밑에는 또 그 조직보다 더 작은 조직이 있는 구조입니다.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죠. 거지가 되었지만, 개방의 고수는 평생 가도 못 만나보는 그런 거지들도 널리고 널렸다 이 말입니다."
"거지도 계급이 있다 이건가?"
"뭐... 계급까지는 아니지만, 끕. 끕이 다른건 사실이죠."
"에라이... 치사하고 드러워서 거지도 못해먹겠네."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껄껄 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 함부로 하면 큰 일납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만, 거지는 하루 종일 듣습니다."
"잘됐네요. 그 덕에 개방의 고수를 만나게 될지 어찌 압니까?"
둘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같이 웃었다.
주객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사람들이 즐비한 시장 골목을 걸으며 물건들을 구경하던 라마의 귀에 소란스러운 시비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구경은 싸움구경이 제맛!
라마의 관심이 소란스러운 곳으로 향하니, 송이개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구경 가실까요?"
"그러죠."
두 사람은 희희낙락한 표정이 되어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으로 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덩치 큰 사내 두 명이 능구렁이처럼 생긴 사내 하나를 앞에 두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이 사기꾼 새끼가 감히 누구 앞에서 헛소리를 하고 있어?"
말과 동시에 그의, 사람 얼굴만 한 주먹이 뺀질뺀질한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어허허, 이이... 이 사람들 많은 곳에서 무슨 행패요? 이 바로 앞이 무림맹의 분파요, 내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나마 무림맹에 몸담았던 몸! 그들이 가만있을 성싶소?"
뺀질하게 생긴 사내가 기죽지 않고 소리쳐 말하니, 멱살을 쥔 사내의 표정이 살짝 곤란해졌다.
"이이... 너 또 사기 치는 거지?"
"아, 사람들한테 물어보시오. 바로 앞이 무림맹의 분파요."
거친 사내의 눈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구경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두들겨 패고 싶은데, 무림맹이란 말에 선뜻 손이 나서지 않았다.
"아하, 이제 보니, 녹림(綠林)사람인 모양인데? 이거 이거... 이렇게 무림맹 앞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단 얘기를 그들이 듣는다면... 이이... 보통 일이 아니오!"
그의 말에 거친 사내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고, 그의 뒤에 말없이 서 있던 사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됐다. 그만 가자. 똥 밟았다 생각해라."
그의 말에도 멱살을 잡은 사내는 분한 듯이 말했다.
"아, 이놈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아오.... 야이 시키야, 너 오늘 운 좋았다. 길에서 조심해라. 내 눈에 띄면, 쉽게 죽이진 않는다."
그러나 뺀질한 사내는 여유로웠다.
"내 그런 말 많~이 듣수. 그런 사람 치고 다시 본 적이 없수다."
거친 사내가 멱살을 놓아주더니, 바닥에 침 탁 뱉고는, 뒤에 있던 사내와 함께 마지못한 듯 발걸음을 떼었다.
"에에... 고작 말싸움이야?"
구경하던 라마가 재미없다는 듯 툴툴거리자, 옆에 있던 송이개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게 열에 아홉은 말싸움이죠. 몸담은 세력이 다른데, 성급하게 싸움 났다가는 세력 간에 전쟁으로 번질 수 있으니, 쉬이 싸우지 못하는 겁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멱살을 잡혔던 사내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다가,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라마와 눈이 마주쳤다.
"뭐 나한테 볼일 있으시오?"
그가 퉁명스레 물어오는 말에 라마는, 잠시 더 그를 바라보다 궁금한 듯 물었다.
"그들이 어찌 녹림패 사람인지 아셨소?"
라마의 물음에 그가 피식 웃음을 짓더니, 능글맞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팔에 묶은 붉은 띠에, 검은색 글자로 두경(斗京)이라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두경표국(斗京鏢局)의 사람일 것이고, 표국이라 함은, 열에 아홉은 녹림과 연이 있을 터이니, 녹림패에 속했다 하더라도 반박하지 못할 것 아니오?"
라마가 "표국?"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송이개가 말했다.
"돈을 받고 물건을 날라주는 이들을 말합니다. 산적 같은 도적떼나 강도들한테 뺏길 수 있는 물건을 지켜주고 돈을 받는 사업을 하는 자들이죠."
라마가 "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헌데 어찌 표국 사람들이 녹림과 관련이 있는 것이오?"
"답답한 사람하고는... 대부분의 산적이나 도적떼, 강도가 녹림에 속해 있는 마당에, 번번이 물건 지킨다고 그들하고 싸워봐야, 녹림이나 표국이나 득 될게 뭐겠소? 그러니 암묵적으로 녹림에 돈을 좀 쥐어주고, 표국이 물건을 호송해 주면, 서로 피해도 안 보고 꾸준한 수입이 들어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소?"
그의 말에 라마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가 손을 내밀어 보였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고, 수업료는 일문이요."
그의 뻔뻔한 행동에 라마는 피식 웃더니, 주머니 속에서 엽전 하나를 꺼내 손으로 튕기자, 그가 얼른 그 허공에 뜬 엽전을 잡아챘다.
"거 시원시원하신 양반이구만."
그가 만족해하며, 엽전을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서유림이라 하오. 존함이 어찌 되시오?"
"라마요."
"라마? 별난 이름이 구료. 옆에 계신 분께서는... 보아하니 개방에 계신 분 같으신데..."
송이개가 씨익 웃어 보였다.
"송이개라 하오."
송이개의 인사에, 유림은 뺀질한 표정과 눈빛으로 송이개를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대답했다.
"오의(汚衣)쪽이시구만."
송이개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머쓱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라마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마는 송이개를 보고 물었으나, 유림이 답답한 듯 대답했다.
"아하... 이 친구 아는 게 없네. 개방이라고 단일 조직인 것 같수? 그 큰 조직이? 어림도 없지. 그 안에 세가 나뉘는데... 딱 보아하니 오의쪽이야. 진짜 거지 같거든."
라마가 유림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체 물었다.
"그럼... 개방에 가짜 거지도 있소?"
"있지. 정의(淨衣). 그것들은 실제로는 돈이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그냥 거지 행세를 하고 다녀. 그래서 딱 보면 알지. 옷을 비루하게 입으면 뭐하나, 어찌나 잘 먹었는지 얼굴에 포동포동 살이 쩌서는 윤기가 줄줄 흐르는데, 그런 놈들이 거지랍시고 거지 행세를 하고 다니니..."
말을 잇던 유림은 송이개와 눈이 마주쳤고, 표정이 굳은 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송이개를 보자 얼른 말끝을 흐렸다.
"뭐... 그렇다고 내가 개방을 비난할 생각은 없고. 그럼, 난 이만."
유림은 얼른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피해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고, 그런 유림을 보며 라마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개방이 대단하긴 한가 보군요. 저렇게 겁먹고 내빼는 거 보니까."
"아무렴, 저런 떨거지들이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죠."
라마와 송이개 역시 터벅터벅한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신선 같은 거지에, 부유한 거지, 그리고 진짜 거지까지. 거 개방이란 곳이 참 신기한 곳이군요."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그런데 그게 비단 개방만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예. 협객인 척하는 강도, 날강도 같은 관료, 협자인 듯한 사기꾼들까지,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른 이들로 꽉 차있죠."
뭔가 의미심장한 말에 라마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두 사람이 그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수풀 속에서 험상궂게 생긴 이들이 양쪽으로 나타나 길을 가로막아 서자, 라마는 귀찮은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아니 도대체 이 세상은 시작부터 끝까지 강도질이야?"
라마가 투덜거리지만, 송이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체 험상궂은 표정으로 강도들에게 말했다.
"이 써글놈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가 험상궂은 강도 무리 뒤쪽에서 유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 뭐, 거지 중에 상거지, 오의파 거지 아니쇼?"
유림이 강도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라마와 송이개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이해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라마는 그런 유림에게 물었다.
"어찌 이러는 게요?"
라마의 물음에 유림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 뻔히 아는 걸 또 물으시네. 아까 보니까 돈이 두둑 하더이다? 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정보를 제공해주고, 제공된 정보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거지요. 좋은 정보를 알았으니, 얼른 팔은 것 아니겠습니까?"
라마가 천천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자, 유림이 안타까운 듯 이야기했다.
"그깟 돈이야 없으면 또 벌면 되는 것을... 굳이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겠소? 돈만 주면 조용히 갈 사람들인데..."
라마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거야 대봐야 아는 거고."
퉁명스러운 라마의 대답에 강도중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뒤져봐야 정신 차리겠구만. 얘들아, 저 새끼 팔다리 다 잘라 버려라."
"예."
사내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동시에 라마를 향해 공격해 왔다.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