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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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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1.98분

20화 - #20


기뻐하는 홍저왕을 보며 속상해하던 나래의 눈에 허리춤에 묶여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들어왔다.

'도깨비방망이... 도깨비방망이는 도깨비 물건이잖아.'

나래는 그 생각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천윤도를 품 안에 도로 넣고,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든 나래는 눈앞에 서 있는 스무 요괴를 바라보고는, 땅바닥에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치며 말했다.

"백하도령 나와라, 뚝딱!"

그러자 요괴 중 하나가 나래의 코앞으로 '펑!' 하며 자리를 옮겼다.

"됐다!"

나래가 기뻐하고, 이 모습을 본 홍저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냐?"

홍저왕이 의아함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사이, 나래는 오공, 솔이, 초코를 차례대로 불러냈다.

"자, 모두 찾아냈습니다. 이들이 모두 제 사람입니다."

나래가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로 외치는 순간, 다시금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백하와 오공, 솔이, 초코가 모두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순간 "우와아아~"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관중석에 요괴와 도깨비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래는 괜스레 으슥한 기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네가 가진 물건이 뭐길래, 이곳에서 쓸 수 있단 말이냐?"

홍저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치는 말에, 나래는 얼른 도깨비방망이를 뒤로 감추었다.

"도깨비 물건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제가 가진 물건을 쓸 수 있다 했으니, 저희가 이긴 겁니다."

이번엔 나래가 의기양양하게 외치자, 홍저왕의 표정이 구겨졌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호락호락 초공연화를 내어줄 것 같으냐?"

홍저왕이 버럭 소리치자, 순간 장내 요괴와 도깨비들의 야유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

홍저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요괴와 도깨비들을 노려보자, 야유소리는 잦아들긴 했지만, 그들의 실망감 어린 표정 혹은 반발심 어린 표정을 보자, 홍저왕도 난처해졌다.

"흥! 그 따위 것, 가져가거라."

홍저왕의 대답에 나래가 두 손을 번쩍 들며 기뻐했다.

"만세!"

너무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나래는 백하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겼어요! 우리가 이겼어요!"

백하도 그런 나래를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잘했다! 아주 잘하였다."

오공과 솔이도 서로 껴안으며 신이 나 춤을 췄다.

그런 이들을 보며 홍저왕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가져가는 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가져가거라. 초공연화는 내 보물창고에 있으니, 가져가 보거라. 찾아주지는 않을 것이니 직접 찾아야 할 것이다."

홍저왕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바깥쪽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일행 앞으로 아까 공을 들고 나타났던 범이가 다가왔고, 솔이는 무서워서 오공 뒤로 얼른 숨었다.

"나를 따라오너라."

범이가 말을 하고는 아까 요괴들이 출입했던 문쪽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백하를 필두로 나래와 일행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범이는 일행을 경기장 바깥에 있는 통로를 이용해 지하로 내려갔고, 거대한 철문으로 잠겨진 곳에 이르렀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요괴 병사 둘이 철문을 열자, 그 안으로 엄청난 크기의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다. 들어가서 초공연화를 찾아가지고 가거라."

범이는 무심한 듯 말하고는 돌아서서 왔던 길을 돌아갔다.

철문 너머로 들어선 백하와 나래는 입이 쩍 벌어져 다물줄을 몰랐다.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창고였다.

말이 창고지, 반대쪽 끝 벽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엄청난 두께의 기둥이 줄을 지어 이어진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는 온갖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보물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그것들은 마치 인간세상의 잡동사니들을 죄다 모아놓은 곳 같았다.

"이게... 보물?"

나래가 물건들에 다가가 살펴보니, 어린아이 장난감부터, 지갑, 책, 식기 등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이를 본 솔이가 다가와 말했다.

"하나같이 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이어요."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

"예... 도깨비가 될 만큼 기운이 어리진 않았지만, 적게라도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을 홍저왕이 모아놓은 것이어요. 도깨비한테는 그만한 보물이 없거든요."

금은보화를 생각했던 나래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너무도 당연히 돈으로만 그 가치를 생각했었는데, 이 세계에서 생각하는 가치는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너무나 어마어마하게 물건들이 쌓여 있어서, 하루 이틀은커녕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려야 찾을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제 어떡하죠? 어떻게 초공연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나래가 걱정스레 푸념하듯 하는 말에, 뒤에 있던 오공도 울상이 되어 말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쉽게 내어준다 했어. 여기서 그걸 어떻게 찾아."

투덜거리는 오공을 뒤로하고, 나래가 한 두 걸음 더 옮기다가 몇개의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이제는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폴라로이드 카메를 들어 살펴보다가 그 밑에 익숙한 물건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건...."

나래가 집어 든 물건은 자그마해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네모난 물건이었다.

나래를 쫓아온 솔이가 그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물었다.

"그게 무엇이어요, 아씨?"

나래가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그 물건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건, 회수권 보관함이야. 여기 있는 이 둥근 롤러를 밀면..."

나래가 롤러를 밀자, 회수권 한 장이 밀려 나왔다.

"이렇게... 회수권이 나와."

회수권을 뽑아서 솔이에게 내밀자, 솔이가 빙그레 웃으며 받아 들었다.

"회수권이 뭐여요?"

"회수권은 버스를 탈 때 돈 대신 쓰는 거야. 옛날에 사촌오빠가 쓰는걸 봤었는데... 오랜만에 보네."

그때 뒤쪽에서 백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이제 찾을 수 있을 것 같구나."

고개를 돌려보니, 백하가 검지와 엄지로 집게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전기가 '치칙' 하며 흘렀다.

"우와?"

나래는 그 모습에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초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힘을 쓰네? 어떻게?"

백하가 초코를 보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토에게 부탁하였다. 이곳을 두르고 있는 결계를 훼손하여 결계의 힘을 약화시켜 달라고. 이제 이 정도 힘을 쓸 수 있으니... 어서 천윤도를 꺼내보거라."

백하의 말에 나래가 활짝 웃는 얼굴로 서둘러 천윤도를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고 양손으로 꼭 부여잡은 체 마음속으로 외쳤다.

'초공연화를 찾아주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바늘이 빙그르르 돌더니, 어딘가를 가리켰고,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바늘과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이에요."

나래가 신이 나서 천윤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가자, 백하와 일행이 모두 그 뒤를 쫓아 달렸다.

달려가면 달려갈수록 천윤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점점 밝아졌고, 이윽고 어느지점에 이르자 천윤도의 빛이 땅 아래쪽을 가리켰다.

수북이 쌓여있는 수많은 잡동사니들 아래를 가리키고 있으니, 백하가 양손을 뻗어 잡동사니를 밀어냈다.

다시 힘을 쓸 수 있게 되어, 엄청난 양의 잡동사니였으나 어렵지 않게 한쪽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바닥에는 따로 만들어진 철문이 하나 있었고, 천윤도는 그 철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안쪽에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잠겨 있는 것 같구나."

오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치사하네."

하지만 나래는 씩씩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이게 있으니깐요."

나래는 도깨비방망이를 들어 보였다.

철문 안에 초공연화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도깨비방망이로 꺼낼 수 있었다.

"초공연화 나와라, 뚝딱!"

나래가 바닥을 치며 외치는 순간, 눈앞에 한 폭의 그림이 '펑!' 하는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나왔다!"

나래는 물론 모두가 기뻐 손뼉을 쳤다. 순간 나래의 표정이 휘둥그레졌다.

초공연화의 그림이 자신이 보았던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 그 풍경이며 사람들 모습이 영락없는 나래가 살던 세상의 모습이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제가 본 초공연화속에는 도깨비랑 도깨비마을이 보였어요."

나래를 보며 백하가 물었다.

"허면, 이 그림 속 세상이 네가 있던 세상이 맞느냐?"

"예, 맞아요. 제가 살던 세상이에요."

"그럼 되었다. 이제 이것을 챙겨가지고 나가자꾸나."

백하는 얼른 초공연화를 들어 둘둘 말아 품 안에 갈무리하고는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래와 일행 모두가 그 뒤를 쫓아 홍저왕의 보물창고를 나섰고, 마을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어딘가에 숨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범이가 서둘러 홍저왕에게로 향했다.

그는 순식간에 홍저왕이 머무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쉬고 있는 홍저왕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

"저들이 초공연화를 찾아서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 말에 홍저왕이 두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그럴 리가!"

"정말입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홍저왕이 일갈하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 길로 자신의 보물창고를 향해 달려간 홍저왕은 초공연화가 보관된 창고로 향했고,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창고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막상 다가가서 보니 열린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는 안도하였다.

"그럼 그렇지. 저들은 가져가지 못했다."

홍저왕이 주문을 외우자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 철문은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다."

당당히 말하며 홍저왕이 안으로 들어섰다. 막상 신기한 물건들이 마구 진열되어 있는 창고안으로 들어선 홍저왕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말도 안 돼."

맞은편 벽에 걸려 있어야 할 초공연화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홍저왕이 버럭 소리 지르더니 바깥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그놈들을 잡아와! 당장 잡아와!"

홍저왕의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범이를 포함하여 무수한 요괴들이 일제히 백하와 나래가 향한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이미 흑석궁 입구에 다다른 백하와 일행은, 입구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청의동자와 아토를 볼 수 있었다.

"아토님!"

나래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기뻐하며 부르자, 아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거만하게 중얼거렸다.

"아아, 이놈의 인기하고는..."

백하와 나래 일행이 비로소 흑석궁 입구를 벗어났지만, 안쪽으로부터 엄청난 땅울림이 느껴졌다.

"쫓아오고 있나 봐요."

오공의 겁먹은 표정에, 백하가 타이르듯 말했다.

"이제 이곳을 벗어날 것이니 염려 말거라."

백하가 청의동자를 바라보자, 청의동자가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더니 순간 모습이 변하였다.

초록빛의 거대한 얼굴로 변하였는데, 그 입이 어마어마하게 컸으며 그 입을 쩍 하고 벌리자, 혓바닥이 마치 길처럼 놓여 있고, 그 안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보였다.

"가자!"

백하가 외치며 청의동자가 변한 거구귀의 입안으로 달려가니,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나래와 일행은 이내 백하를 따라 거구귀의 입안으로 따라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모두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거구귀는 입을 다물었고, 그 모습이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뒤쫓아온 요괴들은 거구귀가 사라지는 모습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귀수산의 산꼭대기 사찰에 거구귀의 입이 드러났고, 그 안에서 백하를 비롯하여 나래와 일행이 모두 걸어 나왔다.

"어, 여긴?"

나래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이, 거구귀의 모습이 다시 청의동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백하가 나래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은 안전하니 염려 놓거라. 이제 초공연화도 찾아왔고, 네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것이다."

나래는 기쁜한편 어쩐지 실망감이 들었다.

왜일까? 어째서인지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 그리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웃어보이며 나래가 시선을 옆에 서 있는 오공에게로 돌렸다.

오공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마치 지금 자신의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래는 어쩐지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 일행들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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