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5
20년은 훌쩍 넘어버렸을 것 같은 검은색 세단 차량의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희뿌연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가뜩이나 작은 눈으로 실눈을 뜬 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그는, 담뱃재가 한가득 매달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담배를 들고 있었다.
서 있는 차량 앞의 시멘트 벽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듯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는 기장이 맞지 않는 바지와 자그마한 키, 그리고 꽤 험난한 삶이 기록된 듯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머리를 한 그 남자는, 이미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차량으로 다가와 잠깐 서서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누가 볼세라 얼른 차량 보조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가 문을 닫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이는 담배를 차량 잿덜이에 지저 끄며 물었다.
"가져왔어?"
보조석 남자가 품 안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무심한 듯 운전석 남자의 무릎 위로 툭 내던졌다.
"아따~ 거, 하나부터 열까지 비리 투성이인 놈들이, 또 지들끼리는 의리가 아주 으리으리해."
보조석 남자의 호들갑에 운전석 남자의 잇새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어 서류봉투를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약한데?"
서류 내용을 확인한 운전석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자, 보조석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그것도 간신히 구한 거야. 더 파고들었다가는 내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어."
"스케줄은 확인했어?"
"뭐 별게 있어야지? 아침 일찍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신문사 기자들이랑 아침식사, 식사 후에 골프, 점심은 같은 당 의원들이랑..."
"특별한 스케줄은 없어?"
"어떤 거? 뭐 매주 무당 찾아가서 점보는 거?"
"무당?"
운전석 남자가 실눈을 뜬 체 더 말해보라는 눈짓으로 보조석 남자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무당 점 보면서, 교회는 뭐하러 다니는지 몰라."
"비즈니스지. 표밭이니까. 그 점집은 어디 있는데?"
"그것까지 알아내야 돼?"
"의심스러운 건 다 알아봐야지."
"거 뭐 점보는 거야... 뭐..의심이랄 게 있나?"
"알아보라면 알아봐."
"아~ 거 진짜... 섭섭하게 만드네. 정보원 생활만 10년이야. 이쯤 되면 뭐 동료애나 전우애, 뭐 그런 거 좀 발휘돼야 하는 거 아닌가?"
보조석 남자의 투덜거림에, 운전석 남자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네네, 유 팀장님, 죄송합니다."
보조석 남자는 불호령이 떨어질까 서둘러 차문을 열고 내려섰다.
"내일까지!"
유팀장이 소리치자, 애먼 보조석 문에 화풀이하듯 쾅 닫아버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유팀장이 핸드폰을 집어 들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화면에 '오중석'이란 이름이 뜨고 잠시 후, 시멘트 벽 너머로 막 사라지기 직전의 보조석 남자가 멈춰 서서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차량을 돌아보았다.
유팀장은 받으란 듯한 시늉을 해 보였고,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아, 왜?"
그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고, 유팀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일 오전까지."
"아이씨..."
중석은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탁 끊고는 시멘트 벽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유팀장은 씨익 웃어 보이고는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막 출발하려는 그의 차량 사이드미러 너머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팀장은 그 두 사람중 한 남자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차문을 열고 내려섰다.
어느새 유팀장 앞으로 다가온 두 사람 중, 유팀장이 유심히 쳐다본 젊은 남자가 나서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외삼촌..."
그는 수호였다.
***
어느 외진 동네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카페, 아니 카페라기보다는 다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낡은 인테리어의 그 가게 안에,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섰다.
유팀장과 수호, 그리고 세희는 한쪽 테이블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테이블 위에는 이곳과 어울리는 낡은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세희가 메뉴판을 집어 들자, 유팀장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냥 커피 마셔, 뭘 골라."
"커피도 종류가 있죠."
세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메뉴판을 펼쳐 보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정말 "커피"라는 메뉴가 단 하나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고?"
유팀장의 질문에, 수호가 미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세희가 나섰다.
"범인 잡는 거 도와드릴게요."
"범인? 무슨 범인?"
"지금 쫓고 계신 범인이요."
유팀장이 잠시 말이 없더니 수호 쪽으로 시선이 옮겨왔다. 마치 얘는 뭐냐? 라는 눈빛으로..
그의 의아스러운 눈빛을 마주한 수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바싹 말라가는 입에 침을 발라가며 말했다.
"아... 얘가 좀 믿도 끝도 없는 애라서 그래요. 제가 설명드릴게요."
"그래, 네가 얘기 좀 해봐라."
유팀장의 말에 수호는 세희를 힐끔 보았다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유팀장을 쳐다보았다.
"뭐, 이 친구를... 딱히 잘 아는 건 아니고, 저한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어요. 엄마...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유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어 싸늘하다 못해 섬뜩할 정도의 눈빛으로 세희를 응시했지만, 세희는 그런 살벌한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마주 보았다.
"뭘, 알고 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죠."
세희는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다.
"증거 있어?"
세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증거는 직접 찾으셔야죠."
세희의 대답에 유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 주문을 받으려고 오던 가게 사장인 듯한 아주머니는 흠칫 놀라며 오던 걸음을 멈췄다.
"그럼 됐어. 가봐."
"들어보셔야 할 텐데요?"
세희의 당돌한 질문에 유팀장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누가 범인인지는 나도 알고 있어. 증거가 필요할 뿐."
돌아서 나가려는 유팀장에게 세희가 소리치듯 말했다.
"왜, 증거가 없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나가던 유팀장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춰 섰고, 고개만 살짝 돌려 그들이 앉은 테이블 쪽을 응시했다.
"증거가 없는 이유가 있거든요."
이윽고 유팀장이 완전히 몸을 돌려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세희를 쳐다보자, 세희는 생글거리는 미소로 아주머니를 향해 주문했다.
"여기 커피 3잔 주세요."
아주머니는 잠시 눈치를 보며 서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서둘러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잠시 말없이 서서 세희를 가늠하듯 바라보던 유팀장은 결국 돌아와 원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너 뭐하는 애야?"
유팀장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세희는 방긋이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무당이요."
"무당?"
"네. 무당. 아니 정확하게는 신녀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기는 해요. 근데 신녀라고 하면..."
"됐어."
유팀장이 말을 잘라버리자, 세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너 공무집행 방해가 뭔지 알지?"
유팀장이 싸늘하고 말라비틀어진 듯한 목소리에, 세희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 신중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유팀장의 경고에 세희는 다시금 당찬 끄덕거림을 보여주었다.
"말해."
짧은 한마디와 동시에 유팀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잔뜩 기대었다.
"그전에 먼저... 제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는 상태여야죠."
세희의 당돌한 말에 유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믿을 수 있는 상태라니?"
세희가 수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여드려요."
세희의 말에 수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품 안에서 타로카드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를 꺼내 든 수호가 타로 카드를 응시하자, 그의 눈빛이 푸른빛과 초록빛을 오가며 변하다가 이내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외삼촌... 놀라지 마세요."
수호는 그 한마디를 하고는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수호가 그 돌을 힘껏 움켜쥐자, 순간 '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뭉개지며 가루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푸스스 흘러내렸다.
그런데 의외로 유팀장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도리어 마치 지루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외삼촌?"
수호의 부름에 그는 수호의 두 눈을 응시하더니 물었다.
"다한 거야? 어디서 놀라면 돼? 차력쇼?"
당황한 수호는 안놀라는데?라는 눈빛으로 세희를 돌아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 세희는 더 강한거요~라는 눈짓을 했다.
"확실하게 보여드려요."
수호는 당황했던 표정을 지우고 짐짓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손바닥 위에 남아있는 바스러진 돌가루 잔해를 응시했다.
손끝에 기를 집중하기 시작하자, 잠시 꿈틀거리던 돌가루들이 서서히 허공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유팀장의 표정에 놀라움이 차츰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돌가루들이 수호의 손바닥 위에서 마치 춤을 추듯 덩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로소 세희는 자신만만한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호 씨는 영환사예요. 다른 영혼이 가진 능력을 차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죠.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능력은 무공(武功)이에요. 수호 씨 삼촌이 가진 능력이죠."
삼촌이란 말에 유팀장이 되물었다.
"삼촌? 누구? 준호형?"
수호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유팀장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준호형이... 무공을 쓴다고? 무협지에 나오는 그거?"
수호는 슬쩍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살짝 차이가 있긴 한데... 비슷... 해요."
유팀장이 평소 같으면 당장 일어나 차로 돌아갔겠지만, 눈앞에서 본 이상 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 뭐야?"
유팀장이 세희를 보며 묻자, 세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최의원 쪽 사람 중에도 수호 씨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뿐이 아니에요. 저와 같은 무당도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이러한 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이상,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아요."
유팀장 표정은 이내 원래의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난 경찰이야. 법을 수호하지. 법대로 하려면, 증거가 필요해. 증거가 없으면, 범인이 아니야."
짧은 그의 대답에 세희가 되물었다.
"경찰이 수호하는 게 법이 다가 아니잖아요? 정의는요?"
유팀장이 피식 웃어 보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정의? 그딴 걸 누가 지켜?"
그러자 이번엔 수호가 나섰다.
"정의 그딴 거 저도 몰라요. 돈 안되면 안 하는 게 내 인생 철칙이고. 그런데 하나 예외가 있어요."
유팀장이 깊은 눈으로 수호를 바라보자, 수호도 진지한 표정으로 유팀장을 바라보았다.
"복수. 당한 건 갚아줘야죠."
어이없어하던 유팀장 표정이, 그 한순간 싸늘하게 굳어졌다.
운전석에 앉아, 가뜩이나 작은 눈으로 실눈을 뜬 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그는, 담뱃재가 한가득 매달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담배를 들고 있었다.
서 있는 차량 앞의 시멘트 벽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듯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는 기장이 맞지 않는 바지와 자그마한 키, 그리고 꽤 험난한 삶이 기록된 듯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머리를 한 그 남자는, 이미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차량으로 다가와 잠깐 서서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누가 볼세라 얼른 차량 보조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가 문을 닫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이는 담배를 차량 잿덜이에 지저 끄며 물었다.
"가져왔어?"
보조석 남자가 품 안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무심한 듯 운전석 남자의 무릎 위로 툭 내던졌다.
"아따~ 거, 하나부터 열까지 비리 투성이인 놈들이, 또 지들끼리는 의리가 아주 으리으리해."
보조석 남자의 호들갑에 운전석 남자의 잇새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어 서류봉투를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약한데?"
서류 내용을 확인한 운전석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자, 보조석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그것도 간신히 구한 거야. 더 파고들었다가는 내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어."
"스케줄은 확인했어?"
"뭐 별게 있어야지? 아침 일찍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신문사 기자들이랑 아침식사, 식사 후에 골프, 점심은 같은 당 의원들이랑..."
"특별한 스케줄은 없어?"
"어떤 거? 뭐 매주 무당 찾아가서 점보는 거?"
"무당?"
운전석 남자가 실눈을 뜬 체 더 말해보라는 눈짓으로 보조석 남자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무당 점 보면서, 교회는 뭐하러 다니는지 몰라."
"비즈니스지. 표밭이니까. 그 점집은 어디 있는데?"
"그것까지 알아내야 돼?"
"의심스러운 건 다 알아봐야지."
"거 뭐 점보는 거야... 뭐..의심이랄 게 있나?"
"알아보라면 알아봐."
"아~ 거 진짜... 섭섭하게 만드네. 정보원 생활만 10년이야. 이쯤 되면 뭐 동료애나 전우애, 뭐 그런 거 좀 발휘돼야 하는 거 아닌가?"
보조석 남자의 투덜거림에, 운전석 남자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네네, 유 팀장님, 죄송합니다."
보조석 남자는 불호령이 떨어질까 서둘러 차문을 열고 내려섰다.
"내일까지!"
유팀장이 소리치자, 애먼 보조석 문에 화풀이하듯 쾅 닫아버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유팀장이 핸드폰을 집어 들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화면에 '오중석'이란 이름이 뜨고 잠시 후, 시멘트 벽 너머로 막 사라지기 직전의 보조석 남자가 멈춰 서서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차량을 돌아보았다.
유팀장은 받으란 듯한 시늉을 해 보였고,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아, 왜?"
그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고, 유팀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일 오전까지."
"아이씨..."
중석은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탁 끊고는 시멘트 벽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유팀장은 씨익 웃어 보이고는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막 출발하려는 그의 차량 사이드미러 너머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팀장은 그 두 사람중 한 남자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차문을 열고 내려섰다.
어느새 유팀장 앞으로 다가온 두 사람 중, 유팀장이 유심히 쳐다본 젊은 남자가 나서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외삼촌..."
그는 수호였다.
***
어느 외진 동네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카페, 아니 카페라기보다는 다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낡은 인테리어의 그 가게 안에,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섰다.
유팀장과 수호, 그리고 세희는 한쪽 테이블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테이블 위에는 이곳과 어울리는 낡은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세희가 메뉴판을 집어 들자, 유팀장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냥 커피 마셔, 뭘 골라."
"커피도 종류가 있죠."
세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메뉴판을 펼쳐 보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정말 "커피"라는 메뉴가 단 하나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고?"
유팀장의 질문에, 수호가 미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세희가 나섰다.
"범인 잡는 거 도와드릴게요."
"범인? 무슨 범인?"
"지금 쫓고 계신 범인이요."
유팀장이 잠시 말이 없더니 수호 쪽으로 시선이 옮겨왔다. 마치 얘는 뭐냐? 라는 눈빛으로..
그의 의아스러운 눈빛을 마주한 수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바싹 말라가는 입에 침을 발라가며 말했다.
"아... 얘가 좀 믿도 끝도 없는 애라서 그래요. 제가 설명드릴게요."
"그래, 네가 얘기 좀 해봐라."
유팀장의 말에 수호는 세희를 힐끔 보았다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유팀장을 쳐다보았다.
"뭐, 이 친구를... 딱히 잘 아는 건 아니고, 저한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어요. 엄마...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유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어 싸늘하다 못해 섬뜩할 정도의 눈빛으로 세희를 응시했지만, 세희는 그런 살벌한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마주 보았다.
"뭘, 알고 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죠."
세희는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다.
"증거 있어?"
세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증거는 직접 찾으셔야죠."
세희의 대답에 유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 주문을 받으려고 오던 가게 사장인 듯한 아주머니는 흠칫 놀라며 오던 걸음을 멈췄다.
"그럼 됐어. 가봐."
"들어보셔야 할 텐데요?"
세희의 당돌한 질문에 유팀장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누가 범인인지는 나도 알고 있어. 증거가 필요할 뿐."
돌아서 나가려는 유팀장에게 세희가 소리치듯 말했다.
"왜, 증거가 없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나가던 유팀장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춰 섰고, 고개만 살짝 돌려 그들이 앉은 테이블 쪽을 응시했다.
"증거가 없는 이유가 있거든요."
이윽고 유팀장이 완전히 몸을 돌려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세희를 쳐다보자, 세희는 생글거리는 미소로 아주머니를 향해 주문했다.
"여기 커피 3잔 주세요."
아주머니는 잠시 눈치를 보며 서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서둘러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잠시 말없이 서서 세희를 가늠하듯 바라보던 유팀장은 결국 돌아와 원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너 뭐하는 애야?"
유팀장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세희는 방긋이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무당이요."
"무당?"
"네. 무당. 아니 정확하게는 신녀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기는 해요. 근데 신녀라고 하면..."
"됐어."
유팀장이 말을 잘라버리자, 세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너 공무집행 방해가 뭔지 알지?"
유팀장이 싸늘하고 말라비틀어진 듯한 목소리에, 세희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 신중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유팀장의 경고에 세희는 다시금 당찬 끄덕거림을 보여주었다.
"말해."
짧은 한마디와 동시에 유팀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잔뜩 기대었다.
"그전에 먼저... 제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는 상태여야죠."
세희의 당돌한 말에 유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믿을 수 있는 상태라니?"
세희가 수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여드려요."
세희의 말에 수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품 안에서 타로카드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를 꺼내 든 수호가 타로 카드를 응시하자, 그의 눈빛이 푸른빛과 초록빛을 오가며 변하다가 이내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외삼촌... 놀라지 마세요."
수호는 그 한마디를 하고는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수호가 그 돌을 힘껏 움켜쥐자, 순간 '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뭉개지며 가루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푸스스 흘러내렸다.
그런데 의외로 유팀장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도리어 마치 지루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외삼촌?"
수호의 부름에 그는 수호의 두 눈을 응시하더니 물었다.
"다한 거야? 어디서 놀라면 돼? 차력쇼?"
당황한 수호는 안놀라는데?라는 눈빛으로 세희를 돌아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 세희는 더 강한거요~라는 눈짓을 했다.
"확실하게 보여드려요."
수호는 당황했던 표정을 지우고 짐짓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손바닥 위에 남아있는 바스러진 돌가루 잔해를 응시했다.
손끝에 기를 집중하기 시작하자, 잠시 꿈틀거리던 돌가루들이 서서히 허공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유팀장의 표정에 놀라움이 차츰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돌가루들이 수호의 손바닥 위에서 마치 춤을 추듯 덩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로소 세희는 자신만만한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호 씨는 영환사예요. 다른 영혼이 가진 능력을 차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죠.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능력은 무공(武功)이에요. 수호 씨 삼촌이 가진 능력이죠."
삼촌이란 말에 유팀장이 되물었다.
"삼촌? 누구? 준호형?"
수호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유팀장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준호형이... 무공을 쓴다고? 무협지에 나오는 그거?"
수호는 슬쩍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살짝 차이가 있긴 한데... 비슷... 해요."
유팀장이 평소 같으면 당장 일어나 차로 돌아갔겠지만, 눈앞에서 본 이상 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 뭐야?"
유팀장이 세희를 보며 묻자, 세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최의원 쪽 사람 중에도 수호 씨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뿐이 아니에요. 저와 같은 무당도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이러한 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이상,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아요."
유팀장 표정은 이내 원래의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난 경찰이야. 법을 수호하지. 법대로 하려면, 증거가 필요해. 증거가 없으면, 범인이 아니야."
짧은 그의 대답에 세희가 되물었다.
"경찰이 수호하는 게 법이 다가 아니잖아요? 정의는요?"
유팀장이 피식 웃어 보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정의? 그딴 걸 누가 지켜?"
그러자 이번엔 수호가 나섰다.
"정의 그딴 거 저도 몰라요. 돈 안되면 안 하는 게 내 인생 철칙이고. 그런데 하나 예외가 있어요."
유팀장이 깊은 눈으로 수호를 바라보자, 수호도 진지한 표정으로 유팀장을 바라보았다.
"복수. 당한 건 갚아줘야죠."
어이없어하던 유팀장 표정이, 그 한순간 싸늘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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