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12
안개 낀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 백하와 나래 뒤로 솔이와 초코, 아토가 뒤따랐다.
지릅고개길은 한쪽은 산세가 벽처럼 가파르고, 반대쪽은 낭떠러지처럼 아찔하였으나, 길의 폭이 꽤 넓어서 그 자체로 무섭거나 위태롭지는 않았다.
다만 안개가 짙게 끼어서 시야가 짧은 것이 흠이었다.
원래의 나래라면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에 산행 초입부터 지칠 법도 한데, 세오녀의 꽃신을 신어서 그런지 걷는 걸음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 힘겨운 줄 모를 정도였다.
조금 걷다 보니 큰 길이 셋으로 나뉘며 길폭이 한층 좁아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겠느냐?"
백하가 뒤따라오는 솔이를 돌아보며 물으니, 솔이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운데 길로 가면 되옵니다. 나리."
백하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고는 가운데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걸어가는 동안 안개는 더욱 짙어져서, 이제는 거의 한 치 앞도 분별하기 어려워졌다.
"이러다가 길을 잃겠어요."
나래가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가, 뭔가에 툭 걸려 휘청였다.
"어?"
깜짝 놀란 나래의 입에서 순간 당황스런 소리가 나자, 앞서 걷던 백하가 얼른 돌아왔다.
"왜 그러느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온 백하를 보며 나래는 실소를 머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뭇가지에 걸렸나 봐요."
보아하니 나래 허리 정도밖에 안 오는 작은 나뭇가지에 나래의 치마 끄트머리가 걸린 것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신중히 나아가야겠구나."
백하는 말하며 다시 앞으로 나섰고, 나래는 그런 백하의 뒤를 바짝 쫓아 걸었다.
"혹시 모르니까, 솔아, 내 손을 잡아."
나래의 말에 솔이가 얼른 나래의 손을 붙잡았다.
나래는 백하를 놓치지 않으려 짙은 안갯속을 헤집고 나아갔다.
분명 조금전까지 바로 앞에서 희끄무레하게 나아가고 있던 백하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나래는 소리치듯 외쳤다.
"백하도령님, 안 보여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백하도령님?"
그때 솔이가 나래의 손을 잡아당겼고, 나래가 멈춰서 솔이를 돌아보았다.
"아토와 초코도 안 보여요."
나래는 뭔가 이상했다.
"아토님~ 초코님~ 백하도령님~"
나래가 큰소리로 불러보지만, 어디에서도 돌아오는 소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무래도 길을 잃은 거 같아요."
나래는 솔이를 보며 물었다.
"이전에도 두 번 와보았다며? 그때도 이렇게 안개가 짙었어?"
솔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렇게 안개 낀 건 처음 봐요. 푸실 마을을 거쳤다가 와서 그런 걸까요?"
"그럼 이전에는 푸실 마을을 안 들렸니?"
"네. 딱히 들릴 이유가 없었거든요. 거길 괜히 들려서 오공의 노여움을 받은 걸까요?"
솔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서워하자, 나래가 그런 솔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런 거 아닐 거야. 걱정하지 마. 백하도령이 있잖아. 얼른 도령을 찾아보자."
나래는 행여나 솔이를 잃어버릴까, 솔이 손을 꼭 잡고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백하도령님, 아토님, 초코님~"
같은 시간, 아토와 초코 역시 안갯속을 헤매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들 간 거야?"
아토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앞서 걷고 있는데, 뒤따르던 초코가 "꼬?" 하며 멈춰 섰다.
"뭐야? 왜 안 따라와?"
초코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자, 아토가 돌아서서 초코에게 다가갔다.
"왜? 뭐가 있어?"
초코가 자그마한 나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아토도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이내 아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거 아까 나래가 걸렸던 그 나무잖아? 그 나무는 지나오지 않았어?"
"지났어."
아토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법(陣法)이구만. 필경 오공 놈이 펼친 것일 텐데... 나래가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초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땅바닥을 콕콕 집어 대기 시작했다.
"뭐해?"
아토가 퉁명스럽게 묻자, 초코가 입에 뭔가를 물고 고개를 들어 보였다.
초코의 입에는 흰색 실이 물려 있었다.
"어? 이건...."
아토는 그 실이 나래의 치맛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리며 풀린 것임을 알아보았다.
풀린 실을 쫓아 시선을 옮기니, 실은 안갯속 저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쫓아가자!"
아토가 먼저 실을 따라 달리자, 실을 입에 문 초코가 그 뒤를 재빨리 뒤쫓았다.
둘이 나래의 치맛실을 따라 달리는 사이, 나래는 자기 치마에서 실이 풀리는 줄도 모른 체, 솔이 손을 붙잡고 나아가고 있었다.
"백하도령님~ 초코님~ 아토님~"
나래가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데, 갑자기 솔이가 나래의 손을 꽉 잡아당겼다.
"어, 어? 왜?"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자, 솔이는 대답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고, 나래는 솔이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조금 옅어져서 희뿌연 무언가가 보이는 곳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처음 그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엔, 가슴이 철컥 내려앉는 거 같아서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지만, 가만히 보니 여리여리하고 작은 체격이었다.
"누구.... 세요?"
나래가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 그림자가 움직이며 한걸음 자신들을 향해 다가섰다.
"너희야 말로 누구니?"
당돌한 목소리로 묻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금의 나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아니 나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기도 하고, 눈매가 날카롭고 피부가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였다.
"우린... 천태산으로 가는 길인데... 누구세요?"
나래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자, 그 여자아이의 시선이 솔이에게로 향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아해 도깨비가 새끼 여우랑 같이 다니는 거지?"
'아해 도깨비?'
나래는 솔이를 힐끔 보았다가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누구냐니까?"
나래는 짐작되는 바가 있으면서도 용기 내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공이다."
대답과 동시에, 여자아이의 뒤로 흩어져 있던 안개에서 커다란 지네의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래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하자, 솔이를 붙잡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째서, 사람들을 해치는 거지?"
나래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오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이곳은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거늘. 어디 사람이 있다는 것이냐?"
나래는 아차 싶은 생각에 솔이 눈치를 한번 봤다가, 얼른 소리쳤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푸실 마을 도깨비들 말이다."
"푸실 마을은 진작에 버려진 마을이다. 이제 그곳에는 도깨비들이 살지 않는다."
오공의 대답에 나래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거짓말. 네가 할머니의 가족들을 모두 잡아먹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게 나쁜 짓만 벌이다니, 분명 천벌을 받을 거야."
그 순간, 여자아이의 몸이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온몸이 지네의 몸으로 변하였으나, 여자아이의 상체만 그대로 남은 체 나래의 코앞으로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죽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구나! 오냐, 네놈들을 모두 산체로 씹어먹어 주마."
어느새 사람의 얼굴이라고 볼 수 있는 기괴한 얼굴로 변한 오공을 보며, 나래는 저도 모르게 솔이를 껴안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꼬?"
그때 들려오는 소리에 나래가 뒤쪽을 돌아보자, 아토와 초코가 풀린 실을 따라 나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토님! 초코님! 조심하세요, 여기 오공이 있어요!"
나래가 고개를 돌려 오공 쪽을 쳐다보니, 어느새 오공이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오공은 뭔가에 꽤나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야? 괜찮은 거야?"
아토가 얼른 나래 곁으로 달려와 물었다. 나래도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다행히... 그런데..."
나래의 눈에 오공의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 기괴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잡아먹을 듯 굴더니, 어쩐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물러나 있었다.
"꼬?"
초코가 곁으로 다가오자, 오공은 한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나래는 초코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더니, 초코에게 말했다.
"오공이 초코님을 무서워하는 거 같아요."
그 말에 아토는 "엥?" 하는 소리를 내고, 초코는 오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갑자기 오공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꼬꼬꼬~"
닭 소리를 내며 달려가자, 오공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으아아악, 뭐하는 짓이야!"
이내 오공은 안갯속으로 도망쳐 버렸고, 뒤쫓아 가지 못한 초코가 고개를 까딱 거리며 오공이 있던 자리에 서 있는 사이, 안개는 빠른 속도로 걷히기 시작했다.
"됐다. 시전자가 나가는 바람에 진법이 풀렸어."
아토의 말에 나래가 아토를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랐어? 진법이었어. 그래서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맨 거라고."
"아, 그랬어요?"
나래는 진법이 정확하게 뭔지는 몰랐지만, 그게 주술이나 마법 같은 거라고만 이해했다.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져 갔지만, 이상하게 백하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래는 백하가 걱정되었다.
천인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걸 눈으로 본적 없는 나래 입장에서는 저 커다란 지네가 훨씬 더 무섭고 위협적이어서, 행여나 백하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백하도령님~"
나래가 큰 소리로 불러보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저기 보세요."
솔이가 언덕 아래쪽 길을 가리키니, 나래와 아토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주위에 안개가 걷힌 것과는 달리, 저 아래쪽에는 아직도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아마도 백하도령은 저 안에 있는 모양이구만. 그래서 우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야."
아토의 짐작에, 나래는 결심한 듯 그 안개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이봐! 기다려! 그냥 갔다가는 우리도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뿐이야!"
아토가 뒤따르며 소리치자, 나래가 발걸음을 멈춰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백하도령을 구해야죠."
"그렇다고 무턱대고 달려가면 어떡해? 구하기는커녕 네가 잘못되는 수가 있어. 방금 안 봤어? 오공이란 놈이 어떤 놈인지?"
나래는 걱정이 한아름 담긴 눈으로 짙은 안개 쪽을 바라보았다.
"일단 안개 안으로 들어가면 도움이 안 될 거야. 안개를 끼고 바깥을 돌자. 분명 진법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아토의 말에 나래는 조급한 마음을 부여잡고, 아토의 말대로 안개 바깥쪽으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백하도령님, 제발 무사히 계세요.'
지릅고개길은 한쪽은 산세가 벽처럼 가파르고, 반대쪽은 낭떠러지처럼 아찔하였으나, 길의 폭이 꽤 넓어서 그 자체로 무섭거나 위태롭지는 않았다.
다만 안개가 짙게 끼어서 시야가 짧은 것이 흠이었다.
원래의 나래라면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에 산행 초입부터 지칠 법도 한데, 세오녀의 꽃신을 신어서 그런지 걷는 걸음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 힘겨운 줄 모를 정도였다.
조금 걷다 보니 큰 길이 셋으로 나뉘며 길폭이 한층 좁아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겠느냐?"
백하가 뒤따라오는 솔이를 돌아보며 물으니, 솔이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운데 길로 가면 되옵니다. 나리."
백하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고는 가운데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걸어가는 동안 안개는 더욱 짙어져서, 이제는 거의 한 치 앞도 분별하기 어려워졌다.
"이러다가 길을 잃겠어요."
나래가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가, 뭔가에 툭 걸려 휘청였다.
"어?"
깜짝 놀란 나래의 입에서 순간 당황스런 소리가 나자, 앞서 걷던 백하가 얼른 돌아왔다.
"왜 그러느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온 백하를 보며 나래는 실소를 머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뭇가지에 걸렸나 봐요."
보아하니 나래 허리 정도밖에 안 오는 작은 나뭇가지에 나래의 치마 끄트머리가 걸린 것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신중히 나아가야겠구나."
백하는 말하며 다시 앞으로 나섰고, 나래는 그런 백하의 뒤를 바짝 쫓아 걸었다.
"혹시 모르니까, 솔아, 내 손을 잡아."
나래의 말에 솔이가 얼른 나래의 손을 붙잡았다.
나래는 백하를 놓치지 않으려 짙은 안갯속을 헤집고 나아갔다.
분명 조금전까지 바로 앞에서 희끄무레하게 나아가고 있던 백하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나래는 소리치듯 외쳤다.
"백하도령님, 안 보여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백하도령님?"
그때 솔이가 나래의 손을 잡아당겼고, 나래가 멈춰서 솔이를 돌아보았다.
"아토와 초코도 안 보여요."
나래는 뭔가 이상했다.
"아토님~ 초코님~ 백하도령님~"
나래가 큰소리로 불러보지만, 어디에서도 돌아오는 소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무래도 길을 잃은 거 같아요."
나래는 솔이를 보며 물었다.
"이전에도 두 번 와보았다며? 그때도 이렇게 안개가 짙었어?"
솔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렇게 안개 낀 건 처음 봐요. 푸실 마을을 거쳤다가 와서 그런 걸까요?"
"그럼 이전에는 푸실 마을을 안 들렸니?"
"네. 딱히 들릴 이유가 없었거든요. 거길 괜히 들려서 오공의 노여움을 받은 걸까요?"
솔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서워하자, 나래가 그런 솔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런 거 아닐 거야. 걱정하지 마. 백하도령이 있잖아. 얼른 도령을 찾아보자."
나래는 행여나 솔이를 잃어버릴까, 솔이 손을 꼭 잡고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백하도령님, 아토님, 초코님~"
같은 시간, 아토와 초코 역시 안갯속을 헤매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들 간 거야?"
아토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앞서 걷고 있는데, 뒤따르던 초코가 "꼬?" 하며 멈춰 섰다.
"뭐야? 왜 안 따라와?"
초코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자, 아토가 돌아서서 초코에게 다가갔다.
"왜? 뭐가 있어?"
초코가 자그마한 나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아토도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이내 아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거 아까 나래가 걸렸던 그 나무잖아? 그 나무는 지나오지 않았어?"
"지났어."
아토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법(陣法)이구만. 필경 오공 놈이 펼친 것일 텐데... 나래가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초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땅바닥을 콕콕 집어 대기 시작했다.
"뭐해?"
아토가 퉁명스럽게 묻자, 초코가 입에 뭔가를 물고 고개를 들어 보였다.
초코의 입에는 흰색 실이 물려 있었다.
"어? 이건...."
아토는 그 실이 나래의 치맛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리며 풀린 것임을 알아보았다.
풀린 실을 쫓아 시선을 옮기니, 실은 안갯속 저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쫓아가자!"
아토가 먼저 실을 따라 달리자, 실을 입에 문 초코가 그 뒤를 재빨리 뒤쫓았다.
둘이 나래의 치맛실을 따라 달리는 사이, 나래는 자기 치마에서 실이 풀리는 줄도 모른 체, 솔이 손을 붙잡고 나아가고 있었다.
"백하도령님~ 초코님~ 아토님~"
나래가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데, 갑자기 솔이가 나래의 손을 꽉 잡아당겼다.
"어, 어? 왜?"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자, 솔이는 대답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고, 나래는 솔이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조금 옅어져서 희뿌연 무언가가 보이는 곳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처음 그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엔, 가슴이 철컥 내려앉는 거 같아서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지만, 가만히 보니 여리여리하고 작은 체격이었다.
"누구.... 세요?"
나래가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 그림자가 움직이며 한걸음 자신들을 향해 다가섰다.
"너희야 말로 누구니?"
당돌한 목소리로 묻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금의 나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아니 나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기도 하고, 눈매가 날카롭고 피부가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였다.
"우린... 천태산으로 가는 길인데... 누구세요?"
나래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자, 그 여자아이의 시선이 솔이에게로 향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아해 도깨비가 새끼 여우랑 같이 다니는 거지?"
'아해 도깨비?'
나래는 솔이를 힐끔 보았다가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누구냐니까?"
나래는 짐작되는 바가 있으면서도 용기 내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공이다."
대답과 동시에, 여자아이의 뒤로 흩어져 있던 안개에서 커다란 지네의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래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하자, 솔이를 붙잡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째서, 사람들을 해치는 거지?"
나래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오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이곳은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거늘. 어디 사람이 있다는 것이냐?"
나래는 아차 싶은 생각에 솔이 눈치를 한번 봤다가, 얼른 소리쳤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푸실 마을 도깨비들 말이다."
"푸실 마을은 진작에 버려진 마을이다. 이제 그곳에는 도깨비들이 살지 않는다."
오공의 대답에 나래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거짓말. 네가 할머니의 가족들을 모두 잡아먹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게 나쁜 짓만 벌이다니, 분명 천벌을 받을 거야."
그 순간, 여자아이의 몸이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온몸이 지네의 몸으로 변하였으나, 여자아이의 상체만 그대로 남은 체 나래의 코앞으로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죽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구나! 오냐, 네놈들을 모두 산체로 씹어먹어 주마."
어느새 사람의 얼굴이라고 볼 수 있는 기괴한 얼굴로 변한 오공을 보며, 나래는 저도 모르게 솔이를 껴안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꼬?"
그때 들려오는 소리에 나래가 뒤쪽을 돌아보자, 아토와 초코가 풀린 실을 따라 나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토님! 초코님! 조심하세요, 여기 오공이 있어요!"
나래가 고개를 돌려 오공 쪽을 쳐다보니, 어느새 오공이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오공은 뭔가에 꽤나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야? 괜찮은 거야?"
아토가 얼른 나래 곁으로 달려와 물었다. 나래도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다행히... 그런데..."
나래의 눈에 오공의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 기괴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잡아먹을 듯 굴더니, 어쩐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물러나 있었다.
"꼬?"
초코가 곁으로 다가오자, 오공은 한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나래는 초코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더니, 초코에게 말했다.
"오공이 초코님을 무서워하는 거 같아요."
그 말에 아토는 "엥?" 하는 소리를 내고, 초코는 오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갑자기 오공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꼬꼬꼬~"
닭 소리를 내며 달려가자, 오공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으아아악, 뭐하는 짓이야!"
이내 오공은 안갯속으로 도망쳐 버렸고, 뒤쫓아 가지 못한 초코가 고개를 까딱 거리며 오공이 있던 자리에 서 있는 사이, 안개는 빠른 속도로 걷히기 시작했다.
"됐다. 시전자가 나가는 바람에 진법이 풀렸어."
아토의 말에 나래가 아토를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랐어? 진법이었어. 그래서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맨 거라고."
"아, 그랬어요?"
나래는 진법이 정확하게 뭔지는 몰랐지만, 그게 주술이나 마법 같은 거라고만 이해했다.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져 갔지만, 이상하게 백하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래는 백하가 걱정되었다.
천인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걸 눈으로 본적 없는 나래 입장에서는 저 커다란 지네가 훨씬 더 무섭고 위협적이어서, 행여나 백하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백하도령님~"
나래가 큰 소리로 불러보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저기 보세요."
솔이가 언덕 아래쪽 길을 가리키니, 나래와 아토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주위에 안개가 걷힌 것과는 달리, 저 아래쪽에는 아직도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아마도 백하도령은 저 안에 있는 모양이구만. 그래서 우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야."
아토의 짐작에, 나래는 결심한 듯 그 안개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이봐! 기다려! 그냥 갔다가는 우리도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뿐이야!"
아토가 뒤따르며 소리치자, 나래가 발걸음을 멈춰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백하도령을 구해야죠."
"그렇다고 무턱대고 달려가면 어떡해? 구하기는커녕 네가 잘못되는 수가 있어. 방금 안 봤어? 오공이란 놈이 어떤 놈인지?"
나래는 걱정이 한아름 담긴 눈으로 짙은 안개 쪽을 바라보았다.
"일단 안개 안으로 들어가면 도움이 안 될 거야. 안개를 끼고 바깥을 돌자. 분명 진법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아토의 말에 나래는 조급한 마음을 부여잡고, 아토의 말대로 안개 바깥쪽으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백하도령님, 제발 무사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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