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1
연희는 세자와 처음 사교도들과 함께 잡혔었던 장소로 조사를 나왔다.
여기저기 불탄 흔적과 황급하게 치워진 물건들 사이로,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난잡하게 흩어졌다.
무엇하나 명확하게 딱히 떠오르는 것들이 없으니, 그저 가슴이, 그리고 머리가 답답했다.
그런 답답한 심경을 이해하는 듯, 세자가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너무 애쓰지 말거라. 천천히... 그저 자연스럽게 기억날 때까지 기다리거라."
연희는 부담주지 않으려 애쓰는 세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기억만 되찾는다면, 많은 것들을 순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해, 이렇게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속상해하는 연희를 보며, 세자는 그녀를 뒤에서 가볍게 안아 주었다.
"괜찮다. 괜찮아."
마치 아이를 달래듯 등 뒤에서 나직히 들려오는 세자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너 없이 해오던 일이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족하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거라. 네 자신이 이미 내게 큰 선물이다."
세자의 그런 말이, 연희는 고맙게 느껴졌다.
속상한 감정 반, 고마운 감정 반이 섞인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 맺혀 흘러내렸다.
"저하."
뒤쪽에서 세자를 부르는 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자가 몸을 돌려 쳐다보자, 황급히 세자 곁으로 다가온 수현이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저하,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만나봐야 할 사람? 누구 말인가?"
"소연이란 아입니다. 백무의 제자이옵고, 백무가 죽으며 자신의 일을 맡긴 아이입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디 있는가?"
세자의 다급한 물음에, 수현이 뒤쪽을 바라보았고, 그를 따라온 소연이 한걸음 나서 공손히 인사하였다.
"저하, 소인 장소연이라 하옵니다. 저하께 긴히 아뢸 말이 있어 찾아왔사옵니다."
"말해 보거라."
"예, 저하. 소인은 스승님의 명에 따라 인근 사찰에 모셔진 촛불을 밝히러 갔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촛불이 지난 3년 동안 촛불만 타오르고 초가 녹지 않았다는 것이옵니다."
그녀의 말에 세자는 물론 수현과 연희도 놀라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가 녹지 않았다? 신묘한 일이구나."
"예, 저하. 헌데 최근 며칠 동안은 초가 녹기 시작하여, 초를 꺼트리지 말아 달라는 스승님의 청에 따라 계속 초를 바꿔가며 피워오고 있었다 하옵니다."
"그래?"
"예, 헌데.... 그 초가 녹기 시작한 시점이, 스승님이 돌아가시던 날과 정확히 일치하였습니다. 이는 필시, 그동안 스승님의 능력으로 초가 녹지 않도록 해왔던 것이 분명하옵니다."
세자와 수현이 서로를 마주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스승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능력을 잃고 계셨습니다. 이는 필시 이 초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되었고, 이 초가 처음 피워진 시점과, 누구를 위해 피워졌는지를 보았을 때, 소인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 고개를 살짝 든 소연이 세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는... 세자빈 마마께옵서 쓰러지던 날 피워진 초로써, 그날부터 세자빈 마마의 육신을 지키기 위해 스승님이 피워오신 것이었습니다."
세자빈 이야기가 나오자, 세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자빈의?"
"예, 저하. 그리하여 오랜 세월 누워있었음에도, 육신이 상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헌데 소인이 확인해본바... 예판대감이 직접 찾아와 세자빈 마마의 육신을 지켜줄 것을 청하였다 들었사옵니다. 헌데 그 이전까지 스승님께서는 예판대감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필시 누군가, 세자빈 마마를 핑계로 스승님의 능력을 쇠퇴시키기 위한 술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리 있는 이야깁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백무가 자신의 능력이 이전 같지 않다 하였습니다. 백일 앞도 쉬이 살피던 백무였습니다. 그런데 죽기 직전까지 한치앞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백무가 우릴 돕는다는 것을 알고 오래전부터 그녀의 능력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판이 알고 그리했을 리 없다. 비록 좌상의 편에 서서 주상전하를 능멸한 죄인이나, 이는 모두 자신의 딸을 위해 했던 일... 자기 딸이라면 끔찍이도 아끼던 위인이 아니던가? 난 아직도 예판대감의 세자빈 간택 때 기뻐하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세자의 말에 수현이 나서 대답했다.
"예판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좌상에게 이용당한 게지요. 수하를 통해 은밀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의금부에서 지금 병판과 이판, 그리고 예판의 탄핵을 준비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제 필요 없어지니 쳐내려 하는 것입니다."
세자는 여전히 의혹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좌상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는 백무의 존재를 어찌 알았단 말인가?"
수현도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아마도... 그 천무방이라는 주술 집단과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세자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민에 휩싸였다.
좌상은 치밀한 사람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본인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세자는 아직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이 꼭 좌상대감의 음모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뒤에서 한걸음 나서며 묻는 연희의 말에, 수현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좌상이 아니라면 그 누가 그런 음모를 꾸민단 말이냐? 작금에 좌상 말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이냐?"
수현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그럴 수 있어. 우리가 너무 좌상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예?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생각해보게. 좌상은 치밀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야. 그가 백무의 존재를 알았을 리도, 또 안다 해도 굳이 나서 죽일 이유도 없네. 더더욱이나 3년 전에 세자빈을 이용해 백무의 힘을 빼앗는다? 그런 계획을 좌상이 했을 리 없네. 그 일로 인해, 좌상이 얻는 게 없어."
소연은 고민하고 있는 세자 옆에 서 있는 연희를 쳐다보았다.
소연이 어딘지 모르게 미묘하고, 의혹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음을, 뒤늦게 안 연희는 왠지 어색한 느낌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세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 천무방이란 조직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네. 먼저번 자네를 해친자도 틀림없이 그 천무방 사람일 게야. 조심해서 알아보게."
수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갚아줘야지요."
"자네를 단숨에 베었네. 보통 고수가 아니야."
수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반드시 갚을 것입니다."
세자가 믿는다는 듯이 수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심하게."
"예."
수현이 물러가면서 소연을 불렀다.
"가자."
그러나 소연은 마치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는 듯, 몇 번이고 연희를 돌아보며 굳어진 표정으로 수현을 따라갔다.
연희는 소연이 왜 그러는지 알길 없어, 그저 황망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왜였을까....
***
여러 문서들을 살피고 있던 대사헌 윤일호 곁으로 감찰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래, 그럼 이 일은 이쯤 마무리하고, 지난번 금천현 사건은 어찌 되고 있는가?"
윤일호가 묻자, 감찰 중 한 명이 나서 대답했다.
"예, 일단 조사 중이오나..."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기도전에, 방안으로 좌의정 최준경이 들어섰다.
윤일호는 들어선 이를 알아보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였고, 감찰 두 명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인사하였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는가?"
최준경의 말에 감찰들은 "예." 하는 대답과 함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니... 어찌 이 시간에..."
의아해하는 윤일호를 보며, 최준경이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여태껏 아무런 답도 없는 것인가?"
최준경의 격앙된 목소리에 윤일호는 난색을 표했다.
"무슨 말씀을..."
"무슨 말이긴, 병판과 이판 말일세. 이 사람이 분명 전하였거늘, 왜 그 뒤로 말이 없는가 말일세."
최준경의 말에 윤일호의 표정도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오나, 좌상대감... 어찌 죄가 없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최준경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좌상대감, 이곳은 의금부이옵니다. 그리고 저는 의금부를 맡고 있는 대사헌입니다. 전해주신 내용은 살펴보았으나, 그 정도 일로 정승을 잡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누가 잡아들이라고 했나? 그 일을 공론화시키면, 이 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할 것아닌가."
"그럴 수 없습니다. 좀 더 사실 관계를 살핀 후에..."
"대사헌!"
돌연 최준경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대사헌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정녕 이 사람 뜻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좌상대감... 다만, 제 맡은 소임이 그러하다 보니..."
"되었네. 자네 뜻은 잘 알겠으니... 어험!"
좌상은 기분 나쁜 듯 헛기침을 하며 홱하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밖으로 나와서도 분이 삭히지 않은 듯 씩씩 거리며 걸어가던 좌상은 다시 의금부 쪽을 돌아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자리까지 올려주고 챙겨주었더니, 뭐라? 죄가 없어서 처벌을 못해? 못난 놈..."
화가 가라앉지 않아 분노에 차 다시 걸어가던 좌상의 발걸음이 돌연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의금부를 돌아보았다.
지난 일들을 되짚어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좌상은 뭔가 떠오르는 듯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 간교한 놈이..."
좌상은 괘씸하다는듯 말하고는 어딘가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 불탄 흔적과 황급하게 치워진 물건들 사이로,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난잡하게 흩어졌다.
무엇하나 명확하게 딱히 떠오르는 것들이 없으니, 그저 가슴이, 그리고 머리가 답답했다.
그런 답답한 심경을 이해하는 듯, 세자가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너무 애쓰지 말거라. 천천히... 그저 자연스럽게 기억날 때까지 기다리거라."
연희는 부담주지 않으려 애쓰는 세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기억만 되찾는다면, 많은 것들을 순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해, 이렇게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속상해하는 연희를 보며, 세자는 그녀를 뒤에서 가볍게 안아 주었다.
"괜찮다. 괜찮아."
마치 아이를 달래듯 등 뒤에서 나직히 들려오는 세자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너 없이 해오던 일이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족하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거라. 네 자신이 이미 내게 큰 선물이다."
세자의 그런 말이, 연희는 고맙게 느껴졌다.
속상한 감정 반, 고마운 감정 반이 섞인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 맺혀 흘러내렸다.
"저하."
뒤쪽에서 세자를 부르는 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자가 몸을 돌려 쳐다보자, 황급히 세자 곁으로 다가온 수현이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저하,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만나봐야 할 사람? 누구 말인가?"
"소연이란 아입니다. 백무의 제자이옵고, 백무가 죽으며 자신의 일을 맡긴 아이입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디 있는가?"
세자의 다급한 물음에, 수현이 뒤쪽을 바라보았고, 그를 따라온 소연이 한걸음 나서 공손히 인사하였다.
"저하, 소인 장소연이라 하옵니다. 저하께 긴히 아뢸 말이 있어 찾아왔사옵니다."
"말해 보거라."
"예, 저하. 소인은 스승님의 명에 따라 인근 사찰에 모셔진 촛불을 밝히러 갔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촛불이 지난 3년 동안 촛불만 타오르고 초가 녹지 않았다는 것이옵니다."
그녀의 말에 세자는 물론 수현과 연희도 놀라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가 녹지 않았다? 신묘한 일이구나."
"예, 저하. 헌데 최근 며칠 동안은 초가 녹기 시작하여, 초를 꺼트리지 말아 달라는 스승님의 청에 따라 계속 초를 바꿔가며 피워오고 있었다 하옵니다."
"그래?"
"예, 헌데.... 그 초가 녹기 시작한 시점이, 스승님이 돌아가시던 날과 정확히 일치하였습니다. 이는 필시, 그동안 스승님의 능력으로 초가 녹지 않도록 해왔던 것이 분명하옵니다."
세자와 수현이 서로를 마주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스승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능력을 잃고 계셨습니다. 이는 필시 이 초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되었고, 이 초가 처음 피워진 시점과, 누구를 위해 피워졌는지를 보았을 때, 소인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 고개를 살짝 든 소연이 세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는... 세자빈 마마께옵서 쓰러지던 날 피워진 초로써, 그날부터 세자빈 마마의 육신을 지키기 위해 스승님이 피워오신 것이었습니다."
세자빈 이야기가 나오자, 세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자빈의?"
"예, 저하. 그리하여 오랜 세월 누워있었음에도, 육신이 상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헌데 소인이 확인해본바... 예판대감이 직접 찾아와 세자빈 마마의 육신을 지켜줄 것을 청하였다 들었사옵니다. 헌데 그 이전까지 스승님께서는 예판대감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필시 누군가, 세자빈 마마를 핑계로 스승님의 능력을 쇠퇴시키기 위한 술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리 있는 이야깁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백무가 자신의 능력이 이전 같지 않다 하였습니다. 백일 앞도 쉬이 살피던 백무였습니다. 그런데 죽기 직전까지 한치앞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백무가 우릴 돕는다는 것을 알고 오래전부터 그녀의 능력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판이 알고 그리했을 리 없다. 비록 좌상의 편에 서서 주상전하를 능멸한 죄인이나, 이는 모두 자신의 딸을 위해 했던 일... 자기 딸이라면 끔찍이도 아끼던 위인이 아니던가? 난 아직도 예판대감의 세자빈 간택 때 기뻐하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세자의 말에 수현이 나서 대답했다.
"예판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좌상에게 이용당한 게지요. 수하를 통해 은밀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의금부에서 지금 병판과 이판, 그리고 예판의 탄핵을 준비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제 필요 없어지니 쳐내려 하는 것입니다."
세자는 여전히 의혹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좌상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는 백무의 존재를 어찌 알았단 말인가?"
수현도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아마도... 그 천무방이라는 주술 집단과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세자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민에 휩싸였다.
좌상은 치밀한 사람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본인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세자는 아직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이 꼭 좌상대감의 음모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뒤에서 한걸음 나서며 묻는 연희의 말에, 수현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좌상이 아니라면 그 누가 그런 음모를 꾸민단 말이냐? 작금에 좌상 말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이냐?"
수현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그럴 수 있어. 우리가 너무 좌상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예?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생각해보게. 좌상은 치밀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야. 그가 백무의 존재를 알았을 리도, 또 안다 해도 굳이 나서 죽일 이유도 없네. 더더욱이나 3년 전에 세자빈을 이용해 백무의 힘을 빼앗는다? 그런 계획을 좌상이 했을 리 없네. 그 일로 인해, 좌상이 얻는 게 없어."
소연은 고민하고 있는 세자 옆에 서 있는 연희를 쳐다보았다.
소연이 어딘지 모르게 미묘하고, 의혹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음을, 뒤늦게 안 연희는 왠지 어색한 느낌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세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 천무방이란 조직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네. 먼저번 자네를 해친자도 틀림없이 그 천무방 사람일 게야. 조심해서 알아보게."
수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갚아줘야지요."
"자네를 단숨에 베었네. 보통 고수가 아니야."
수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반드시 갚을 것입니다."
세자가 믿는다는 듯이 수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심하게."
"예."
수현이 물러가면서 소연을 불렀다.
"가자."
그러나 소연은 마치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는 듯, 몇 번이고 연희를 돌아보며 굳어진 표정으로 수현을 따라갔다.
연희는 소연이 왜 그러는지 알길 없어, 그저 황망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왜였을까....
***
여러 문서들을 살피고 있던 대사헌 윤일호 곁으로 감찰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래, 그럼 이 일은 이쯤 마무리하고, 지난번 금천현 사건은 어찌 되고 있는가?"
윤일호가 묻자, 감찰 중 한 명이 나서 대답했다.
"예, 일단 조사 중이오나..."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기도전에, 방안으로 좌의정 최준경이 들어섰다.
윤일호는 들어선 이를 알아보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였고, 감찰 두 명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인사하였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는가?"
최준경의 말에 감찰들은 "예." 하는 대답과 함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니... 어찌 이 시간에..."
의아해하는 윤일호를 보며, 최준경이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여태껏 아무런 답도 없는 것인가?"
최준경의 격앙된 목소리에 윤일호는 난색을 표했다.
"무슨 말씀을..."
"무슨 말이긴, 병판과 이판 말일세. 이 사람이 분명 전하였거늘, 왜 그 뒤로 말이 없는가 말일세."
최준경의 말에 윤일호의 표정도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오나, 좌상대감... 어찌 죄가 없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최준경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좌상대감, 이곳은 의금부이옵니다. 그리고 저는 의금부를 맡고 있는 대사헌입니다. 전해주신 내용은 살펴보았으나, 그 정도 일로 정승을 잡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누가 잡아들이라고 했나? 그 일을 공론화시키면, 이 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할 것아닌가."
"그럴 수 없습니다. 좀 더 사실 관계를 살핀 후에..."
"대사헌!"
돌연 최준경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대사헌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정녕 이 사람 뜻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좌상대감... 다만, 제 맡은 소임이 그러하다 보니..."
"되었네. 자네 뜻은 잘 알겠으니... 어험!"
좌상은 기분 나쁜 듯 헛기침을 하며 홱하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밖으로 나와서도 분이 삭히지 않은 듯 씩씩 거리며 걸어가던 좌상은 다시 의금부 쪽을 돌아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자리까지 올려주고 챙겨주었더니, 뭐라? 죄가 없어서 처벌을 못해? 못난 놈..."
화가 가라앉지 않아 분노에 차 다시 걸어가던 좌상의 발걸음이 돌연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의금부를 돌아보았다.
지난 일들을 되짚어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좌상은 뭔가 떠오르는 듯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 간교한 놈이..."
좌상은 괘씸하다는듯 말하고는 어딘가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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