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11
다시 주막을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건 다름 아닌 백하와 솔이였다.
"나래 아씨!"
솔이가 나래를 보고는 기뻐 달려 나왔고, 툇마루에 앉아있던 백하는 웃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백하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나래는 왠지 모를 실망감과 더불어 궁금증이 일었다.
"알고... 계셨어요?"
나래는 백하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나래를 보며 백하는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총명 부인께서 얘기해 주셨다. 예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 하시더구나. 때가 되면 올 것이니,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옆에 있던 솔이가 얼른 이어 말했다.
"제가 얼른 구하러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걱정하지 말라면서, 기다리면 올 거라 하셨어요. 근데 정말로 오셨어요. 너무너무 신기해요."
솔이 말에 나래는 살짝이나마 느꼈던 실망감을 걷어낼 수 있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나래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천태산으로 가는 지릅고개는 내일 가자꾸나."
나래는 그 말에 얼른 나서 말했다.
"아뇨. 서둘러 가요. 지릅고개까지는 날아서 갈 수 있으니까..."
백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나래는 차마 까미들이 자신을 찾아올까 걱정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마치 일을 체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망쳐온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좋지 못했다.
불안해하는 나래를 본 솔이가 백하를 보며 말했다.
"지릅고개 들어가기 전에 자그마한 푸실 마을이 하나 있어요. 날아가신다면 그리 멀지 않으니 금방 당도하실 겝니다."
백하는 솔이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러자꾸나."
백하는 먼저 주막 객방 앞으로 가서 툇마루에 은관을 두 개 놓아두고는 다시 돌아왔다.
백하는 손을 내밀어 솔이의 손을 잡고 다시 나래를 보며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거라."
나래는 백하의 손을 잡았고, 백하는 이어 초코와 아토를 보며 물었다.
"따라올 수 있겠느냐? 내 아주 빠를 것이니, 차라리 내 어깨에 올라탐이 어떠하냐?"
초코와 아토는 서로 마주 보았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백하의 양 어깨에 올라탔다.
"그럼. 간다."
말과 동시에 백하의 몸이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질겁을 하거나 겁이 나서 눈을 감았을 텐데, 이상하게 백하의 손을 잡고 날아갈 때면 겁이 나기는커녕 즐겁기까지 했다.
백하는 높이 날아오르기보다는 낮게 날며 길을 따라 날았고, 자연스럽게 수풀이 우거진 숲의 풍경을 그대로 보면서 날았다.
빠르게 날아가는 와중에도 초저녁의 어스름한 어둠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는 빛무리를 볼 수 있었다.
"저건 뭐죠? 반딧불 같지는 않은데?"
나래가 날아가며 궁금함에 묻자, 솔이가 얼른 대답했다.
"수피아 들이에요."
"수피아?"
"네, 숲에 사는 아리아들이랍니다. 낮에는 숨어서 잠을 자다가 밤이 다가오면 깨어나서 돌아다녀요."
나래가 다시 그 빛들을 돌아보니, 빛무리가 마치 쫓아오듯 백하를 따라 날고 있었다.
나래가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솔이가 설명을 이었다.
"수피아들은 호기심이 많아요. 겁도 많아서 앞으로 나서지는 않아도 숨어서 지켜보는 걸 좋아한답니다."
나래는 문득 까미들이 떠올랐다.
"그... 아리아라는 게 도깨비 같은 거라면... 저들도 까미들처럼 무언가에서 태어나게 되는 건가?"
솔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저들은 숲에 놀러 온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돌멩이에 깃든 아리아들이에요."
"돌멩이?"
"네, 아이들이 숲에 와서 돌멩이를 가지고 놀다가 두고 가면, 거기에서 수피아들이 태어나게 돼요."
나래는 솔이의 말에, 자신 역시 어린 시절 집 인근 산자락에서 아이들과 돌멩이를 가지고 놀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낮에는 잠자고 밤이 되면 반짝거리지?"
"아이들이 낮에는 돌멩이를 가지고 놀다가 밤이 다가오면 집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럼 아이들이 놀았던 그 마음이 남아 수피아가 되는 거라서, 수피아들은 아이들이 떠난 시간에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빛을 내는 거랍니다."
나래가 다시 무언가 물어보려 하는 찰나, 백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곳이구나."
말과 동시에 저멀리 앞으로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 보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 마을 입구에 다다라 백하가 멈춰서 내려섰다.
백하가 내려서자마자 양 어깨에 있던 초코와 아토도 얼른 바닥으로 내려섰다.
"네놈 등을 타는 것보다 백배는 편하구나."
아토의 핀잔에 초코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백하는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이내가 내려앉고 있으니, 서둘러 묵을 곳을 찾아봐야겠구나."
그러고는 백하가 먼저 마을로 들어서니, 나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뒤따라 걸었다.
"이내? 이내가 뭐야?"
옆에서 솔이가 방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스름하게 찾아온 저녁을 이내라고 합니다, 아씨."
"아..."
마을이라고 하기엔 고작 여섯 채의 집이 있었고, 집과 집 사이에 수풀이 우거져 있어서 이것을 마을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그중 제법 커 보이는 집으로 걸어간 백하가 때마침 밖으로 나오는 할머니에게 공손이 인사를 하며 물었다.
"지나가는 행인인데, 하룻밤 묵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백하를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어서 오신 분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는 주막이라 할만한 곳이 없습니다요."
이어 나래와 일행을 살펴보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식구들이 떠난 큰집에 홀로 살고 있으니,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묵으시지요."
할머니의 말에 백하가 기쁜 표정으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할머니가 앞장서서 방으로 안내하며, 제법 큼지막한 사랑채 문을 열어주었다.
"이곳에서 묵으시지요."
할머니의 말에, 백하와 나래, 솔이가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할일이 끝난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돌아가려 했다.
"헌데..."
그런 할머니의 발걸음을 붙잡으며 나래가 물었다.
"가족들이 떠났다고 하셨는데, 어디로 떠나신 건가요? 어디 멀리 가신 건가요?"
나래의 물음에 인자했던 할머니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주름진 얼굴에 슬픔이 깃들어 입을 여는것이 퍽 어려워 보였다. 풍파를 다 겪은 노년의 나이에도 목소리가 떨렸다.
"모두 지릅고개길을 지나다가 오공(蜈蚣)에게 잡아 먹혔다오."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자, 나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할머니는 눈물을 떨구며 말을 이었다.
"이 마을이 이리된 것도, 모두 가족을 잃고 이곳을 떠났기 때문이라오. 예전에는 제법 많이들 살았는데... 이젠 몇 안 남았다오."
이야기를 들은 백하가 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날이 밝으면 저희 또한 지릅고개길을 떠나야 하니, 제가 그 길을 지나며 그 오공이란 요괴를 처치하여 가족들의 넋을 위로하겠습니다."
백하의 말에 할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기겁했다.
"아이고, 그 요괴가 얼마나 무서운 요괴인데 그리 말씀하시오? 됐소, 됐으니, 행여나 지릅고개로는 얼씬도 하지 마시구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만류하는 할머니를 향해 솔이가 대답했다.
"할머니, 이분께서는 천인(天人)이십니다. 그 오공이란 요괴를 혼쭐 내어 주실 것이니, 염려치 마셔요."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백하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
"어찌 이러십니까?"
백하가 놀라 절을 하려는 할머니의 팔을 붙잡으니,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말하였다.
"부디, 그 불쌍한 것들의 넋을 위로하여 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예, 필히 그리될 것입니다. 제가 반드시 그 오공이란 요괴를 무찌를 것이니, 염려치 마시지요."
무릎을 땅에 댄 체, 할머니는 그저 말없이 흐느껴 울었고, 곁에서 보고 있던 나래는 속상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백하는 그런 나래를 보며 붙잡았던 할머니의 팔을 살며시 놓아주었다.
나래는 그대로, 할머니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그저 말없이 안아주었다.
***
눈을 뜬 나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부스스한 표정으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서자, 바깥에는 백하가 뒷짐을 쥔 체 저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고, 아토와 초코는 한쪽에서 티격 거리고 있었으며, 솔이는 그런 아토와 초코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일찍들도 일어난다."
나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백하가 새벽의 푸른 기운을 가로질러 따사롭게 비추는 햇살을 등지고 나래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일어났느냐?"
어쩜 저리도 흐트러짐이 없을까? 나래는 부스스하고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서둘러 가다듬으며 인사하였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백하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나래가 툇마루에 걸터앉자 그 앞으로 다가온 백하가 손에 들고있던 그것을 발아래 내려놓았다.
나래는 시선을 내려 그것을 쳐다보았다. 이쁜 꽃문양이 새겨진 꽃신이었다.
"이걸 신어 보거라."
나래가 놀란 표정으로 백하를 올려다보자, 백하가 말을 이었다.
"총명 부인께 얻어온 것이다. 지릅고개를 건너기 위해서는 많이 걸을 것이니, 편한 신을 신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나래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를 일이다.
그 흔한 사탕이나 초콜릿 조차도 언제부터인가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얼른 꽃신에 발을 넣어 보았다. 발 크기보다 꽤 커서 덜커덕거릴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꽃신의 크기가 저절로 발 모양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어머? 저절로 크기가 바뀌었어요."
나래가 신기해 하자, 백하가 활짝 웃어 보였다.
"세오녀께서 직접 지은 신이라 하였다. 세상 만물을 디딜 수 있는 신이라 하였으니, 앞으로도 네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부인을 만나시면 제가 정말 감사하더라고, 꼭 전해주세요."
기뻐하는 나래를 보며 백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내 꼭 전해주도록 하마."
그때 어제의 할머니가 다가왔다.
"진짓상을 차려놓았으니, 와서 드시고들 가시지요."
할머니의 말에 모두가 할머니를 쳐다보았고, 나래는 꽃신을 신고 일어났다.
마치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가볍고 폭신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가자."
백하가 손을 내밀자, 신이 난 나래는 백하의 손을 부끄럼없이 덥석 잡았다.
서로 마주보던 둘은 이내 할머니가 차려놓은 아침을 들기 위해 대청마루로 향했다.
"나래 아씨!"
솔이가 나래를 보고는 기뻐 달려 나왔고, 툇마루에 앉아있던 백하는 웃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백하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나래는 왠지 모를 실망감과 더불어 궁금증이 일었다.
"알고... 계셨어요?"
나래는 백하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나래를 보며 백하는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총명 부인께서 얘기해 주셨다. 예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 하시더구나. 때가 되면 올 것이니,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옆에 있던 솔이가 얼른 이어 말했다.
"제가 얼른 구하러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걱정하지 말라면서, 기다리면 올 거라 하셨어요. 근데 정말로 오셨어요. 너무너무 신기해요."
솔이 말에 나래는 살짝이나마 느꼈던 실망감을 걷어낼 수 있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나래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천태산으로 가는 지릅고개는 내일 가자꾸나."
나래는 그 말에 얼른 나서 말했다.
"아뇨. 서둘러 가요. 지릅고개까지는 날아서 갈 수 있으니까..."
백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나래는 차마 까미들이 자신을 찾아올까 걱정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마치 일을 체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망쳐온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좋지 못했다.
불안해하는 나래를 본 솔이가 백하를 보며 말했다.
"지릅고개 들어가기 전에 자그마한 푸실 마을이 하나 있어요. 날아가신다면 그리 멀지 않으니 금방 당도하실 겝니다."
백하는 솔이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러자꾸나."
백하는 먼저 주막 객방 앞으로 가서 툇마루에 은관을 두 개 놓아두고는 다시 돌아왔다.
백하는 손을 내밀어 솔이의 손을 잡고 다시 나래를 보며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거라."
나래는 백하의 손을 잡았고, 백하는 이어 초코와 아토를 보며 물었다.
"따라올 수 있겠느냐? 내 아주 빠를 것이니, 차라리 내 어깨에 올라탐이 어떠하냐?"
초코와 아토는 서로 마주 보았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백하의 양 어깨에 올라탔다.
"그럼. 간다."
말과 동시에 백하의 몸이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질겁을 하거나 겁이 나서 눈을 감았을 텐데, 이상하게 백하의 손을 잡고 날아갈 때면 겁이 나기는커녕 즐겁기까지 했다.
백하는 높이 날아오르기보다는 낮게 날며 길을 따라 날았고, 자연스럽게 수풀이 우거진 숲의 풍경을 그대로 보면서 날았다.
빠르게 날아가는 와중에도 초저녁의 어스름한 어둠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는 빛무리를 볼 수 있었다.
"저건 뭐죠? 반딧불 같지는 않은데?"
나래가 날아가며 궁금함에 묻자, 솔이가 얼른 대답했다.
"수피아 들이에요."
"수피아?"
"네, 숲에 사는 아리아들이랍니다. 낮에는 숨어서 잠을 자다가 밤이 다가오면 깨어나서 돌아다녀요."
나래가 다시 그 빛들을 돌아보니, 빛무리가 마치 쫓아오듯 백하를 따라 날고 있었다.
나래가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솔이가 설명을 이었다.
"수피아들은 호기심이 많아요. 겁도 많아서 앞으로 나서지는 않아도 숨어서 지켜보는 걸 좋아한답니다."
나래는 문득 까미들이 떠올랐다.
"그... 아리아라는 게 도깨비 같은 거라면... 저들도 까미들처럼 무언가에서 태어나게 되는 건가?"
솔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저들은 숲에 놀러 온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돌멩이에 깃든 아리아들이에요."
"돌멩이?"
"네, 아이들이 숲에 와서 돌멩이를 가지고 놀다가 두고 가면, 거기에서 수피아들이 태어나게 돼요."
나래는 솔이의 말에, 자신 역시 어린 시절 집 인근 산자락에서 아이들과 돌멩이를 가지고 놀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낮에는 잠자고 밤이 되면 반짝거리지?"
"아이들이 낮에는 돌멩이를 가지고 놀다가 밤이 다가오면 집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럼 아이들이 놀았던 그 마음이 남아 수피아가 되는 거라서, 수피아들은 아이들이 떠난 시간에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빛을 내는 거랍니다."
나래가 다시 무언가 물어보려 하는 찰나, 백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곳이구나."
말과 동시에 저멀리 앞으로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 보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 마을 입구에 다다라 백하가 멈춰서 내려섰다.
백하가 내려서자마자 양 어깨에 있던 초코와 아토도 얼른 바닥으로 내려섰다.
"네놈 등을 타는 것보다 백배는 편하구나."
아토의 핀잔에 초코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백하는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이내가 내려앉고 있으니, 서둘러 묵을 곳을 찾아봐야겠구나."
그러고는 백하가 먼저 마을로 들어서니, 나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뒤따라 걸었다.
"이내? 이내가 뭐야?"
옆에서 솔이가 방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스름하게 찾아온 저녁을 이내라고 합니다, 아씨."
"아..."
마을이라고 하기엔 고작 여섯 채의 집이 있었고, 집과 집 사이에 수풀이 우거져 있어서 이것을 마을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그중 제법 커 보이는 집으로 걸어간 백하가 때마침 밖으로 나오는 할머니에게 공손이 인사를 하며 물었다.
"지나가는 행인인데, 하룻밤 묵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백하를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어서 오신 분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는 주막이라 할만한 곳이 없습니다요."
이어 나래와 일행을 살펴보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식구들이 떠난 큰집에 홀로 살고 있으니,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묵으시지요."
할머니의 말에 백하가 기쁜 표정으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할머니가 앞장서서 방으로 안내하며, 제법 큼지막한 사랑채 문을 열어주었다.
"이곳에서 묵으시지요."
할머니의 말에, 백하와 나래, 솔이가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할일이 끝난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돌아가려 했다.
"헌데..."
그런 할머니의 발걸음을 붙잡으며 나래가 물었다.
"가족들이 떠났다고 하셨는데, 어디로 떠나신 건가요? 어디 멀리 가신 건가요?"
나래의 물음에 인자했던 할머니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주름진 얼굴에 슬픔이 깃들어 입을 여는것이 퍽 어려워 보였다. 풍파를 다 겪은 노년의 나이에도 목소리가 떨렸다.
"모두 지릅고개길을 지나다가 오공(蜈蚣)에게 잡아 먹혔다오."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자, 나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할머니는 눈물을 떨구며 말을 이었다.
"이 마을이 이리된 것도, 모두 가족을 잃고 이곳을 떠났기 때문이라오. 예전에는 제법 많이들 살았는데... 이젠 몇 안 남았다오."
이야기를 들은 백하가 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날이 밝으면 저희 또한 지릅고개길을 떠나야 하니, 제가 그 길을 지나며 그 오공이란 요괴를 처치하여 가족들의 넋을 위로하겠습니다."
백하의 말에 할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기겁했다.
"아이고, 그 요괴가 얼마나 무서운 요괴인데 그리 말씀하시오? 됐소, 됐으니, 행여나 지릅고개로는 얼씬도 하지 마시구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만류하는 할머니를 향해 솔이가 대답했다.
"할머니, 이분께서는 천인(天人)이십니다. 그 오공이란 요괴를 혼쭐 내어 주실 것이니, 염려치 마셔요."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백하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
"어찌 이러십니까?"
백하가 놀라 절을 하려는 할머니의 팔을 붙잡으니,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말하였다.
"부디, 그 불쌍한 것들의 넋을 위로하여 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예, 필히 그리될 것입니다. 제가 반드시 그 오공이란 요괴를 무찌를 것이니, 염려치 마시지요."
무릎을 땅에 댄 체, 할머니는 그저 말없이 흐느껴 울었고, 곁에서 보고 있던 나래는 속상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백하는 그런 나래를 보며 붙잡았던 할머니의 팔을 살며시 놓아주었다.
나래는 그대로, 할머니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그저 말없이 안아주었다.
***
눈을 뜬 나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부스스한 표정으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서자, 바깥에는 백하가 뒷짐을 쥔 체 저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고, 아토와 초코는 한쪽에서 티격 거리고 있었으며, 솔이는 그런 아토와 초코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일찍들도 일어난다."
나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백하가 새벽의 푸른 기운을 가로질러 따사롭게 비추는 햇살을 등지고 나래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일어났느냐?"
어쩜 저리도 흐트러짐이 없을까? 나래는 부스스하고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서둘러 가다듬으며 인사하였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백하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나래가 툇마루에 걸터앉자 그 앞으로 다가온 백하가 손에 들고있던 그것을 발아래 내려놓았다.
나래는 시선을 내려 그것을 쳐다보았다. 이쁜 꽃문양이 새겨진 꽃신이었다.
"이걸 신어 보거라."
나래가 놀란 표정으로 백하를 올려다보자, 백하가 말을 이었다.
"총명 부인께 얻어온 것이다. 지릅고개를 건너기 위해서는 많이 걸을 것이니, 편한 신을 신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나래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를 일이다.
그 흔한 사탕이나 초콜릿 조차도 언제부터인가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얼른 꽃신에 발을 넣어 보았다. 발 크기보다 꽤 커서 덜커덕거릴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꽃신의 크기가 저절로 발 모양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어머? 저절로 크기가 바뀌었어요."
나래가 신기해 하자, 백하가 활짝 웃어 보였다.
"세오녀께서 직접 지은 신이라 하였다. 세상 만물을 디딜 수 있는 신이라 하였으니, 앞으로도 네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부인을 만나시면 제가 정말 감사하더라고, 꼭 전해주세요."
기뻐하는 나래를 보며 백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내 꼭 전해주도록 하마."
그때 어제의 할머니가 다가왔다.
"진짓상을 차려놓았으니, 와서 드시고들 가시지요."
할머니의 말에 모두가 할머니를 쳐다보았고, 나래는 꽃신을 신고 일어났다.
마치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가볍고 폭신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가자."
백하가 손을 내밀자, 신이 난 나래는 백하의 손을 부끄럼없이 덥석 잡았다.
서로 마주보던 둘은 이내 할머니가 차려놓은 아침을 들기 위해 대청마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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