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2
눈을 뜬 라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철무방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 철무방 옷이 놓인 단상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마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가볍게 세안을 하고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가 먼저 삶에서 배운 철근공을 운용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점심 무렵이 되어, 그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주먹밥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식사를 마친 뒤에 누군가가 다가와 그에게 수련장으로 오라는 백무보의 말을 전해주었다.
라마는 익숙한 듯 그의 말대로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서 있었다.
백무보를 중심으로 그 옆으로 심영이 서 있고, 뒤로 이름 모를 백무보의 수하 한 명이 서 있다.
험악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표정은 꽤나 친근감 있게 생긴 사람이었다.
"식사는 잘하였느냐?"
백무보의 말에 라마가 살짝 웃어 보였다.
"예예."
마음은 조급하기 그지없었다. 빨리빨리 해치우고 가서 모용연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쪽으로 서거라."
백무보는 심영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고, 라마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섰다.
백무보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와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이쪽은 심영, 우리 묵추랑의 막내다. 일단 네놈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 이 녀석과 대련을 통해 알아보마."
"예예."
예정된 대로 두 사람 사이에 목검이 놓였다.
라마는 바로 목검을 집어 들고, 준비자세를 취하려는 심영에게 달려들었다.
"뭣?"
심영은 상대가 시작과 동시에 공격해 오자, 잠시 당황해하며 목검을 찔러 넣었다.
'딱!'
이번엔 소리뿐이었다.
자신을 치든 말든 온몸에 힘을 준 상태로 심영의 머리를 가격했다.
이번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체, 심영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심영?!"
역시나 뒤에 있던 사내가 놀란 표정이 되어 심영에게 달려갔다.
"끝. 자, 이제 운기조식인지 뭔지 알려주시죠."
라마가 백무보를 향해 서두르듯 이야기하니, 백무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놈.... 허, 참... 별난 놈이구나. 이쪽에 앉아 보거라."
사내가 심영을 부축해 일으키는 사이, 라마는 좌정을 하고 앉았고, 앉은 라마의 등 뒤로 백무보가 앉아 그의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운기조식을 해보거라. 기의 운용을 도우며 설명하겠다."
"예."
이어 운기조식이 시작되고, 백무보가 기의 흐름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내심 백무보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마치 철근공의 심법을 알고 있는 사람인양, 투박스럽긴 하지만 제법 익숙하게 운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놈 봐라...'
내심 속으로 놀라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은 체 라마의 심법을 잡아주고 있었다.
심법을 운용하는 사이, 한 병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계장님..."
이내 그는 운기조식을 돕고 있는 백무보를 보고 할 말을 잃은 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운기조식을 마친 백무보와 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달려온 병사가 그를 보며 말했다.
"계장님, 섭위장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백무보의 표정이 굳어지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섭위장? 본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찾아와?"
"그것이... 웬 계집 하나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순간, 라마의 눈이 반짝거렸다.
"알았다."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다녀올 테니, 심법을 연습하고 있거라."
그러자 라마가 얼른 나서 대답했다.
"잠시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이곳의 지리도 익히고 할 겸..."
라마의 말에 백무보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거라."
백무보가 성큼성큼 걸어가니, 라마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익숙한 장소에 도착하니, 먼저 왔을 때와는 달리 조금 어수선했다.
그땐 상황이 조금 정리된 다음이었고, 지금은 섭위장이 도착한 직후이기 때문이리라.
섭위장은 의자가 놓이자, 태연히 자리에 앉으며 막 모습을 드러낸 백무보를 바라보았다.
"여, 왔는가?"
백무보가 가볍게 인사를 하는 사이, 포박된 모용연이 끌려와 앉혀졌다.
모용연은 증오 어린 눈으로 섭위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라마와 눈이 마주치자, 어느새 그녀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역시..."
그녀가 저주하듯 노려보는 눈빛을 보면서, 라마는 왠지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여기 온 지 하루 됐다고.'
마음속으로 변명을 해보는 사이, 익숙한 대화가 들려왔다.
"내 이 계집년을 잡아왔네."
이어 섭위장이 모용연을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몸과 마음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싶네만. 이년한테 죽은 수하가 한둘이 아니라서, 쉬이 죽일 수 도 없고. 듣자 하니, 모용가의 막내 따님인 모양인데, 겁탈을 하고 벌거벗은 시체를 모용가에 건네줄까 하네만."
섭위장의 말에 백무보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모용가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설 것이고, 무림맹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섭위장의 뻔뻔한 대답에 백무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림맹과 싸우기 위해서는 의천맹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이 어린 여인을 겁탈하여 시신을 돌려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 의천맹 내에서도 분열이 생길 것입니다."
대충 익숙한 대화를 들으며 슬슬 때가 다가왔음을 느낀 라마가 슬그머니 정신 놓고 있는 경계병 옆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섭위장의 핀잔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내 이리 와서 자네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아닌가? 저들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하게 만들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규합될만한 명분, 그게 뭘 것 같은가 말일세."
백무보가 경계병의 칼을 빼앗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손은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그 찰나의 순간, 라마가 얼른 경계병의 손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경계병은 물론 백무보까지 놀라 휘둥그레졌다.
"뭐하는 짓이냐?"
그런 내막을 알리 없는 경계병은 라마를 보며 험악한 표정으로 핀잔을 주었고, 라마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팔이 아프실까 봐, 제가 대신 들어 드릴까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경계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는 사이, 섭위장이 버럭 소리쳤다.
"이놈들이 미쳤나? 감히 누구 앞에서 떠드는 것이냐?"
섭위장의 일갈에 경계병은 표정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위장 나리."
고개 숙인 경계병이 라마를 노려보자, 라마는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여 보일 뿐이었다.
황당해하던 백무보는 이내 섭위장을 보며 말했다.
"당장 이 여인의 목을 베어 모용가로 보내십시오. 그것으로 족합니다. 불필요한 행위는 의천맹의 결집을 무력화시킬 뿐입니다."
섭위장의 표정이 느긋해졌다.
"그래서야 재미가 없지. 시체야 이미 지부를 파쇄하면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보냈을 것이니, 시체 하나 더 얹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 사이 라마는 슬그머니 몸을 숙여 모용연에게 물었다.
"어디서 잡힌 것이오? 그 거지는 어디 가고?"
모용연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알아서 무엇하려고? 날 능멸하려거든 그냥 죽이거라."
라마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당신을 만났을 때, 난 철무방 소속이 아니었소. 내 여기 온 지 이제 하루밖에 안됐소."
라마의 말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라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체념한 듯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송공은 죽었소. 당신을 만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객점에서 머물다가 잡혔소."
대충 분위기 파악해 보자면, 모용연은 모용세가라는 가문의 딸이었다.
아마도 파쇄되었다는 무림맹의 지부에 어떤 이유로 머물었다가, 의천맹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았을 것이다.
때마침 가까이에 있던 풍림양가의 혼례식에 수많은 의천맹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결국 그들의 눈에 발각된 것이 그녀를 쫓고 있던 섭위장의 귀에 들어갔으리라.
"당장 그년을 가둬두거라."
섭위장의 명령에 병사들이 그녀를 잡아가자,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이만 돌아가자."
"예."
라마는 백무보를 따라 그곳을 떠나 다시 수련장 쪽으로 향했다.
수련장으로 가는 내내 라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떻게 그녀를 구할 것인가?
하지만 이미 이곳에 들어온 이상 그녀를 구해낼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곳에 오기 전에 구해야 한다.'
그런 라마를 보며 백무보가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쉬거라."
"예."
라마는 백무보와 헤어지자마자 자신의 방 쪽으로 향하다가, 한쪽에 놓인 무기들을 보았다.
그중에 단검을 집어 들어, 살필 것도 없이 자신의 옆머리를 향해 깊게 박아 넣었다.
***
다시 아침이 되고, 라마가 눈을 떴다.
모용연을 구해야 한다.
라마는 서둘러 백무보를 찾아갔다.
때마침 수하들과 순찰을 돌고 있던 백무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이른 시간이 무슨 일이냐?"
백무보가 의아한 듯 묻는 말에, 라마가 서둘러 대답했다.
"수련을 하실 거죠? 지금 했으면 합니다."
"지금? 이따 식사를 마치고 나서 할 요량이었다만..."
"지금 하고 싶습니다."
"... 그래 알았다. 열의가 가득한 것이 보기 좋구나."
백무보가 고개를 돌려 옆의 수하에게 말했다.
"가서 심영을 데려오너라."
"예."
백무보가 수련장 쪽을 향해 걸으며 라마에게 물었다.
"어찌... 서두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냐?"
"아, 뭐... 서두른다기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깜빡했지 뭡니까? 얼른 수련을 하고 다녀올까 합니다."
"그래... 그런데 수련이 있을 것이란 것은 어찌 알았느냐?"
"그야 뭐... 이곳에 왔으니, 당연히 수련을 하지 않을까 하였습니다."
"그래? 흠... 묘한 녀석이구나."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수련장에 도착했고, 잠시 후 아까 뒤에 서 있던 수하와 심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쪽으로 와서 서로 마주 보고 서거라."
백무보의 말에 두 사람이 마주 섰다.
백무보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와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이쪽은 심영, 우리 묵추랑의 막내다. 일단 네놈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 이 녀석과 대련을 통해 알아보마."
"예예."
예정된 대로 두 사람 사이에 목검이 놓였다.
라마는 바로 목검을 집어 들고, 준비자세를 취하려는 심영에게 달려들었다.
"뭣?"
심영은 상대가 시작과 동시에 공격해 오자, 잠시 당황해하며 목검을 찔러 넣었다.
'딱!'
이번에도 소리뿐이었다.
심영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심영?!"
역시나 뒤에 있던 사내가 놀란 표정이 되어 심영에게 달려갔다.
"끝. 자, 이제 운기조식인지 뭔지 알려주시죠."
라마가 백무보를 향해 서두르듯 이야기하니, 백무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놈.... 허, 참... 별난 놈이구나. 이쪽에 앉아 보거라."
사내가 심영을 부축해 일으키는 사이, 라마는 좌정을 하고 앉았고, 앉은 라마의 등 뒤로 백무보가 앉아 그의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운기조식을 해보거라. 기의 운용을 도우며 설명하겠다."
"예."
이어 운기조식이 시작되고, 백무보가 기의 흐름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백무보가 놀라거나 말거나, 순식간에 철근공의 운용을 끝마치자, 백무보가 놀라 해 하며 물었다.
"네놈... 혹시 철근공을 아는 것이냐?"
"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럼 약속이 있어서 서둘러 다녀오겠습니다."
놀라 해 하는 백무보를 뒤로 하고 라마는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아마 잡혀서 이쪽으로 오고 있으리라.
라마는 묵추랑의 근거지를 빠져나와, 모용연을 만났던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철무방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 철무방 옷이 놓인 단상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마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가볍게 세안을 하고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가 먼저 삶에서 배운 철근공을 운용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점심 무렵이 되어, 그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주먹밥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식사를 마친 뒤에 누군가가 다가와 그에게 수련장으로 오라는 백무보의 말을 전해주었다.
라마는 익숙한 듯 그의 말대로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서 있었다.
백무보를 중심으로 그 옆으로 심영이 서 있고, 뒤로 이름 모를 백무보의 수하 한 명이 서 있다.
험악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표정은 꽤나 친근감 있게 생긴 사람이었다.
"식사는 잘하였느냐?"
백무보의 말에 라마가 살짝 웃어 보였다.
"예예."
마음은 조급하기 그지없었다. 빨리빨리 해치우고 가서 모용연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쪽으로 서거라."
백무보는 심영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고, 라마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섰다.
백무보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와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이쪽은 심영, 우리 묵추랑의 막내다. 일단 네놈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 이 녀석과 대련을 통해 알아보마."
"예예."
예정된 대로 두 사람 사이에 목검이 놓였다.
라마는 바로 목검을 집어 들고, 준비자세를 취하려는 심영에게 달려들었다.
"뭣?"
심영은 상대가 시작과 동시에 공격해 오자, 잠시 당황해하며 목검을 찔러 넣었다.
'딱!'
이번엔 소리뿐이었다.
자신을 치든 말든 온몸에 힘을 준 상태로 심영의 머리를 가격했다.
이번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체, 심영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심영?!"
역시나 뒤에 있던 사내가 놀란 표정이 되어 심영에게 달려갔다.
"끝. 자, 이제 운기조식인지 뭔지 알려주시죠."
라마가 백무보를 향해 서두르듯 이야기하니, 백무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놈.... 허, 참... 별난 놈이구나. 이쪽에 앉아 보거라."
사내가 심영을 부축해 일으키는 사이, 라마는 좌정을 하고 앉았고, 앉은 라마의 등 뒤로 백무보가 앉아 그의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운기조식을 해보거라. 기의 운용을 도우며 설명하겠다."
"예."
이어 운기조식이 시작되고, 백무보가 기의 흐름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내심 백무보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마치 철근공의 심법을 알고 있는 사람인양, 투박스럽긴 하지만 제법 익숙하게 운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놈 봐라...'
내심 속으로 놀라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은 체 라마의 심법을 잡아주고 있었다.
심법을 운용하는 사이, 한 병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계장님..."
이내 그는 운기조식을 돕고 있는 백무보를 보고 할 말을 잃은 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운기조식을 마친 백무보와 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달려온 병사가 그를 보며 말했다.
"계장님, 섭위장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백무보의 표정이 굳어지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섭위장? 본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찾아와?"
"그것이... 웬 계집 하나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순간, 라마의 눈이 반짝거렸다.
"알았다."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다녀올 테니, 심법을 연습하고 있거라."
그러자 라마가 얼른 나서 대답했다.
"잠시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이곳의 지리도 익히고 할 겸..."
라마의 말에 백무보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거라."
백무보가 성큼성큼 걸어가니, 라마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익숙한 장소에 도착하니, 먼저 왔을 때와는 달리 조금 어수선했다.
그땐 상황이 조금 정리된 다음이었고, 지금은 섭위장이 도착한 직후이기 때문이리라.
섭위장은 의자가 놓이자, 태연히 자리에 앉으며 막 모습을 드러낸 백무보를 바라보았다.
"여, 왔는가?"
백무보가 가볍게 인사를 하는 사이, 포박된 모용연이 끌려와 앉혀졌다.
모용연은 증오 어린 눈으로 섭위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라마와 눈이 마주치자, 어느새 그녀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역시..."
그녀가 저주하듯 노려보는 눈빛을 보면서, 라마는 왠지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여기 온 지 하루 됐다고.'
마음속으로 변명을 해보는 사이, 익숙한 대화가 들려왔다.
"내 이 계집년을 잡아왔네."
이어 섭위장이 모용연을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몸과 마음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싶네만. 이년한테 죽은 수하가 한둘이 아니라서, 쉬이 죽일 수 도 없고. 듣자 하니, 모용가의 막내 따님인 모양인데, 겁탈을 하고 벌거벗은 시체를 모용가에 건네줄까 하네만."
섭위장의 말에 백무보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모용가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설 것이고, 무림맹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섭위장의 뻔뻔한 대답에 백무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림맹과 싸우기 위해서는 의천맹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이 어린 여인을 겁탈하여 시신을 돌려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 의천맹 내에서도 분열이 생길 것입니다."
대충 익숙한 대화를 들으며 슬슬 때가 다가왔음을 느낀 라마가 슬그머니 정신 놓고 있는 경계병 옆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섭위장의 핀잔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내 이리 와서 자네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아닌가? 저들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하게 만들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규합될만한 명분, 그게 뭘 것 같은가 말일세."
백무보가 경계병의 칼을 빼앗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손은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그 찰나의 순간, 라마가 얼른 경계병의 손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경계병은 물론 백무보까지 놀라 휘둥그레졌다.
"뭐하는 짓이냐?"
그런 내막을 알리 없는 경계병은 라마를 보며 험악한 표정으로 핀잔을 주었고, 라마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팔이 아프실까 봐, 제가 대신 들어 드릴까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경계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는 사이, 섭위장이 버럭 소리쳤다.
"이놈들이 미쳤나? 감히 누구 앞에서 떠드는 것이냐?"
섭위장의 일갈에 경계병은 표정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위장 나리."
고개 숙인 경계병이 라마를 노려보자, 라마는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여 보일 뿐이었다.
황당해하던 백무보는 이내 섭위장을 보며 말했다.
"당장 이 여인의 목을 베어 모용가로 보내십시오. 그것으로 족합니다. 불필요한 행위는 의천맹의 결집을 무력화시킬 뿐입니다."
섭위장의 표정이 느긋해졌다.
"그래서야 재미가 없지. 시체야 이미 지부를 파쇄하면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보냈을 것이니, 시체 하나 더 얹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 사이 라마는 슬그머니 몸을 숙여 모용연에게 물었다.
"어디서 잡힌 것이오? 그 거지는 어디 가고?"
모용연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알아서 무엇하려고? 날 능멸하려거든 그냥 죽이거라."
라마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당신을 만났을 때, 난 철무방 소속이 아니었소. 내 여기 온 지 이제 하루밖에 안됐소."
라마의 말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라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체념한 듯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송공은 죽었소. 당신을 만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객점에서 머물다가 잡혔소."
대충 분위기 파악해 보자면, 모용연은 모용세가라는 가문의 딸이었다.
아마도 파쇄되었다는 무림맹의 지부에 어떤 이유로 머물었다가, 의천맹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았을 것이다.
때마침 가까이에 있던 풍림양가의 혼례식에 수많은 의천맹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결국 그들의 눈에 발각된 것이 그녀를 쫓고 있던 섭위장의 귀에 들어갔으리라.
"당장 그년을 가둬두거라."
섭위장의 명령에 병사들이 그녀를 잡아가자,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이만 돌아가자."
"예."
라마는 백무보를 따라 그곳을 떠나 다시 수련장 쪽으로 향했다.
수련장으로 가는 내내 라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떻게 그녀를 구할 것인가?
하지만 이미 이곳에 들어온 이상 그녀를 구해낼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곳에 오기 전에 구해야 한다.'
그런 라마를 보며 백무보가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쉬거라."
"예."
라마는 백무보와 헤어지자마자 자신의 방 쪽으로 향하다가, 한쪽에 놓인 무기들을 보았다.
그중에 단검을 집어 들어, 살필 것도 없이 자신의 옆머리를 향해 깊게 박아 넣었다.
***
다시 아침이 되고, 라마가 눈을 떴다.
모용연을 구해야 한다.
라마는 서둘러 백무보를 찾아갔다.
때마침 수하들과 순찰을 돌고 있던 백무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이른 시간이 무슨 일이냐?"
백무보가 의아한 듯 묻는 말에, 라마가 서둘러 대답했다.
"수련을 하실 거죠? 지금 했으면 합니다."
"지금? 이따 식사를 마치고 나서 할 요량이었다만..."
"지금 하고 싶습니다."
"... 그래 알았다. 열의가 가득한 것이 보기 좋구나."
백무보가 고개를 돌려 옆의 수하에게 말했다.
"가서 심영을 데려오너라."
"예."
백무보가 수련장 쪽을 향해 걸으며 라마에게 물었다.
"어찌... 서두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냐?"
"아, 뭐... 서두른다기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깜빡했지 뭡니까? 얼른 수련을 하고 다녀올까 합니다."
"그래... 그런데 수련이 있을 것이란 것은 어찌 알았느냐?"
"그야 뭐... 이곳에 왔으니, 당연히 수련을 하지 않을까 하였습니다."
"그래? 흠... 묘한 녀석이구나."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수련장에 도착했고, 잠시 후 아까 뒤에 서 있던 수하와 심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쪽으로 와서 서로 마주 보고 서거라."
백무보의 말에 두 사람이 마주 섰다.
백무보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와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이쪽은 심영, 우리 묵추랑의 막내다. 일단 네놈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 이 녀석과 대련을 통해 알아보마."
"예예."
예정된 대로 두 사람 사이에 목검이 놓였다.
라마는 바로 목검을 집어 들고, 준비자세를 취하려는 심영에게 달려들었다.
"뭣?"
심영은 상대가 시작과 동시에 공격해 오자, 잠시 당황해하며 목검을 찔러 넣었다.
'딱!'
이번에도 소리뿐이었다.
심영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심영?!"
역시나 뒤에 있던 사내가 놀란 표정이 되어 심영에게 달려갔다.
"끝. 자, 이제 운기조식인지 뭔지 알려주시죠."
라마가 백무보를 향해 서두르듯 이야기하니, 백무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놈.... 허, 참... 별난 놈이구나. 이쪽에 앉아 보거라."
사내가 심영을 부축해 일으키는 사이, 라마는 좌정을 하고 앉았고, 앉은 라마의 등 뒤로 백무보가 앉아 그의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운기조식을 해보거라. 기의 운용을 도우며 설명하겠다."
"예."
이어 운기조식이 시작되고, 백무보가 기의 흐름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백무보가 놀라거나 말거나, 순식간에 철근공의 운용을 끝마치자, 백무보가 놀라 해 하며 물었다.
"네놈... 혹시 철근공을 아는 것이냐?"
"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럼 약속이 있어서 서둘러 다녀오겠습니다."
놀라 해 하는 백무보를 뒤로 하고 라마는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아마 잡혀서 이쪽으로 오고 있으리라.
라마는 묵추랑의 근거지를 빠져나와, 모용연을 만났던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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