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2
객잔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가지 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는데, 어느 한 사람 평범해 보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모두 특색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호랑이의 가죽을 뒤집어쓴 듯이 입고 있는 거한들부터 시작해서, 얼굴에 상처 투성이의 험악한 이들까지, 평범함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 사이에, 라마가 서 있었다.
그는 양손에 쟁반을 들고 그들 사이를 비껴 다니며 어렵사리 주문한 음식들을 내가고 있었다.
어찌 된 것일까?
돈도 없고, 갈아입을 옷도 없고, 아무리 내공이 있다 해도 마냥 굶을 수는 없었던 라마는, 자신이 발을 디딘 첫 번째로 큰 마을에서 일손부터 구했다.
기왕이면 멋들어지게 호위무사를 한다든가 하고 싶었지만, 그놈에 연줄이 뭔지.
아무것도 없는 라마는 어쩔 수 없이 객잔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고, 입에 풀칠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애 좀 먹었지만,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내공으로 단련된 신체는 이러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은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것인지, 십 년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리라.
"아따, 고놈 쉐이가... 조심 안 할래?"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아버린 라마는 협박에 가까운 목소리를 듣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헌데 자신을 보는 상대의 눈빛이 어쩐지 묘하게 느껴졌다.
서둘러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 라마를, 그는 끈질기게 응시하고 있었고, 그런 그의 옆에 다른 사내가 그를 보며 물었다.
"왜 그래? 아는 놈이야?"
그러자 그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 근데 저 새끼... 내공이 있네?"
"내공? 객잔 점소이 따위가 무공을 익히고 있단 말이야?"
"원체 신분을 숨기는 무림이니, 알 수 없네만. 철근공(鐵劤功)으로 단련된 내 발의 공력을 가볍게 흘리더군."
사실 그는 자신의 발을 밟는 찰나의 순간, 점소이를 골탕 먹일 생각이었다.
아주 가벼운 공력으로 점소이를 허공에서 빙글 돌려버릴 생각이었으나, 라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지나가 버렸다.
물론 라마는 의식한 행동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자신도 모르게 발밑에서 솟구치는 힘을 흘려보냈을 뿐이었다.
마치 본능처럼.
"아휴, 대체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라마가 빈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서며 투덜거리자, 덩치가 산만하고 배가 볼록하게 나온 남자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뭐긴 뭐야, 풍림양가(風林楊家)의 혼례 때문에 몰려든 사람들이지."
쟁반을 내려놓은 라마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아니 그 사람들 혼례를 찾아온 사람 치고는 죄다 험악한 사람밖에 없는데요?"
"이 사람 하고는. 풍림양가의 현 가주인 양위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현 사파 무림의 기둥이라 불리는 흑사십위(黑師十威)의 한 사람이라고. 근래에 의천맹과 무림맹이 자주 부딪히니, 사파의 내놓라 하는 고수들이 하나같이 흑사십위에게 사파가 나아갈 방향을 묻고 있는 이 중차대한 시기가 아닌가? 단순한 혼례가 아니라고."
"그럼... 그런 중차대한 의논을, 남의 잔치인 혼례식에 찾아가 묻는단 말입니까? 거 참 경우 없는 사람들이네."
배 나온 사내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거 뭐 그런 거 아니면, 언제 사람들이 대거 몰릴 기회가 있나? 혼례를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와서 할 얘기를 하려는 게지."
라마가 질색을 하며 투덜거리듯 이야기했다.
"으~ 생각만 해도 싫다. 나라면 도망치고 싶겠네."
"어찌 안 그러겠어? 높은 자리라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지. 이봐, 뭐해? 얼른 주문 나가지 않고?"
"예예~"
라마가 다시 음식을 쟁반 위에 올려서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배 나온 사내는 피식 웃으며 큼지막한 주걱을 손에 쥐었다.
다시 음식을 나르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큰 고성이 들려와, 절로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아니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이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덩치가 산만한 거한의 사내가 벌떡 일어나 맞은편 사람을 보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진 푸른 날의 도끼는 당장이라도 상대의 목을 잘라버릴 것만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목 주변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도 물러남이 없었다.
짧은 민소매 옷으로 근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는 멋들어진 콧수염을 그리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짧은 단도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 죽고 싶은 게 소원이면 어디 덤벼 보시지."
그는 꽤나 여유로운 말투로 상대에게 도발하고 있었고, 거한의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허참, 이 악투해(岳鬪亥) 앞에서 도발을 다하는 놈이 있구만."
악투해란 말에 주위 사람들이 저마다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아~ 장강 인근에 멧돼지 하나가 사람 행세를 한다더니, 그게 네놈인가 보구나."
상대의 연이은 도발에 눈이 뒤집힌 악투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죽어!"
상대는 악투해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그가 공격을 피하니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의 모가지가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놈이!"
모가지가 날아간 이의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 눈을 부라리며 저마다 칼을 뽑아들자, 악투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얼마든지 덤벼 보거라, 이 올챙이 녀석들아!"
그 순간, 아까의 콧수염 사내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들어 빙글빙글 돌리더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돼지 한 마리 잡는데, 여럿이 필요할까?"
악투해가 다시금 눈을 부라리며 도끼를 휘둘렀고, 사람들은 휘말리지 않으려고 저마다 뒷걸음질 치다가 부딪히기 일쑤였다.
콧수염의 사내는 여유롭게 악투해의 공격을 피한 뒤,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뭣?"
악투해는 갑자기 상대가 자기 코앞으로 다가오자, 놀라 해 하며 주춤 물러섰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콧수염 사내의 단도가 쉴 새 없이 악투해의 가슴팍을 연이어 파고들었다.
"크헉!"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십 수 번의 칼을 맞고 쓰러진 악투해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고통스러워 하던 악투해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금세 숨을 거두었고 그런 악투해를 내려다보며 콧수염 사내가 조롱 거리듯 말했다.
"어째 그냥 집돼지였나 보구만. 멧돼지는 좀 더 질기던데."
그의 말에 근처에 있던 사내들이 낄낄 거리며 웃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마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이런 일에 익숙한 사내들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여놓고 농을 하고 낄낄거리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봐!"
콧수염의 사내가 라마를 보며 손짓을 하자, 라마는 순간 움찔했다.
"예?"
"이리 와봐."
콧수염 사내가 부르자, 잠시 망설이던 라마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냄새나니까 이 돼지 새끼 좀 치워."
콧수염 사내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헝겊을 꺼내 자신의 단도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라마 역시 무심한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을 한 뒤, 쓰러져 있는 악투해에게 다가갔다.
그는 악투해의 팔 하나를 잡고 객잔 밖으로 질질 끌어서 가지고 나갔다.
대충 객잔 옆에 놓아둔 뒤, 안쪽이 정리되면 그때 관아에 가서 신고하자 생각하고 다시 들어오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라마에게로 향해 있었다.
"....왜....?"
라마가 이상해 하자, 콧수염의 사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너 보통 점소이가 아니구나. 그 거구의 악투해를 한 손으로 그처럼 가볍게 끌어낼 줄이야."
라마는 속으로 '아차!'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뭐... 피가 좀 빠져서 그런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던데요. 잔뜩 먹었으면 모를까, 며칠 굶은 모양입니다."
그 말에 콧수염 사내가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며칠 굶어? 그 돼지가? 으하하하, 이놈 말하는 게 마음에 드는데?"
콧수염 사내가 라마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일하면 돈 얼마 받냐?"
"뭐... 대충 먹고 자는 거 해결하고, 닷냥 정도 받습니다."
"닷냥? 날 따라오너라. 큰돈을 벌게 해 주마."
"무슨... 일을 합니까?"
"무슨 일은? 너는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묻는 게냐?"
"예, 모릅니다."
콧수염 남자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멀뚱멀뚱 라마를 쳐다보다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놈 참 재밌는 놈일세. 우리는 흑암사(黑暗社)라 한다. 암술과 비검으로는 감히 우리와 맞상대를 할 자가 많지 않지."
"아... 그럼 저도 그런 일을 하는 겁니까?"
"물론이지. 물론 네놈이 우리 훈련을 견뎌낸다면 말이다."
라마는 잠시 생각했다.
아 이것이 바로 마법학교에서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간다는 바로 그 스카웃이 아닌가?
이 세계로 넘어와서 스카웃도 경험해보고, 기분 좋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오는데, 그 덩치도 덩치고 근육질에 머리가 남들보다 세 개는 더 있을 것 같은 데다가, 꽤나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 친구는 내가 먼저 찜해놨는데?"
그의 등장에 콧수염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흰 뭐야?"
시건방진 그의 말투에, 덩치 큰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 보잘것없는 철무방(鐵武榜)에 속해 있네만."
철무방이란 말에 콧수염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친구가 아까 내 발을 밟은 빚이 있어서... 내가 그 빚을 좀 받아야겠거든."
그의 말에 라마는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줄 알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건 아까 사과드렸는데... 다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라마가 꾸벅 인사를 하자, 철무방 사내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됐다. 네놈 내력이 보통이 아니란 걸 그때 알았다. 나와 함께 철무방으로 가자. 네놈을 쓸만한 인재로 키워주마."
그러자 콧수염 사내가 불평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거 그런 식으로 새치기를 해서야 철무방주 은사월 체면이 말이 아니잖소?"
갑자기 방주의 이름을 들먹이자, 철무방 사내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내 아무리 철무방에 이름 없는 계주일 뿐이지만, 감히 흑암사따위가 철무방의 방주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구나."
어느덧 덩치 큰 사내의 손에는 두껍고 묵직해 보이는 망치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 망치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콧수염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내 실수였소. 죄송하게 되었소. 흑암사는 결코 철무방을 적으로 둘 생각이 없소."
콧수염 사내의 대답에 철무방 사내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현명한 판단이긴 하지만,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한낱 흑암사의 졸개 따위가 철무방주를 모멸했단 소식이 들리는 날엔, 흑암사가 무림 역사에서 지워져 버릴 테니까."
이어 라마에게로 시선을 돌린 사내가 라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어떠냐? 한번 같이 가보겠느냐?"
라마가 잠시 망설이며 고개를 돌려보니, 주방 안에 아저씨가 나와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라마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 보였다.
"예. 그러죠 뭐."
라마의 대답에 사내가 씩 웃어 보였다.
"시원해서 좋구나. 따라오너라."
사내가 라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그를 따라 몇몇 사내가 뒤따라 나왔다.
가지 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는데, 어느 한 사람 평범해 보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모두 특색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호랑이의 가죽을 뒤집어쓴 듯이 입고 있는 거한들부터 시작해서, 얼굴에 상처 투성이의 험악한 이들까지, 평범함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 사이에, 라마가 서 있었다.
그는 양손에 쟁반을 들고 그들 사이를 비껴 다니며 어렵사리 주문한 음식들을 내가고 있었다.
어찌 된 것일까?
돈도 없고, 갈아입을 옷도 없고, 아무리 내공이 있다 해도 마냥 굶을 수는 없었던 라마는, 자신이 발을 디딘 첫 번째로 큰 마을에서 일손부터 구했다.
기왕이면 멋들어지게 호위무사를 한다든가 하고 싶었지만, 그놈에 연줄이 뭔지.
아무것도 없는 라마는 어쩔 수 없이 객잔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고, 입에 풀칠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애 좀 먹었지만,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내공으로 단련된 신체는 이러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은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것인지, 십 년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리라.
"아따, 고놈 쉐이가... 조심 안 할래?"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아버린 라마는 협박에 가까운 목소리를 듣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헌데 자신을 보는 상대의 눈빛이 어쩐지 묘하게 느껴졌다.
서둘러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 라마를, 그는 끈질기게 응시하고 있었고, 그런 그의 옆에 다른 사내가 그를 보며 물었다.
"왜 그래? 아는 놈이야?"
그러자 그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 근데 저 새끼... 내공이 있네?"
"내공? 객잔 점소이 따위가 무공을 익히고 있단 말이야?"
"원체 신분을 숨기는 무림이니, 알 수 없네만. 철근공(鐵劤功)으로 단련된 내 발의 공력을 가볍게 흘리더군."
사실 그는 자신의 발을 밟는 찰나의 순간, 점소이를 골탕 먹일 생각이었다.
아주 가벼운 공력으로 점소이를 허공에서 빙글 돌려버릴 생각이었으나, 라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지나가 버렸다.
물론 라마는 의식한 행동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자신도 모르게 발밑에서 솟구치는 힘을 흘려보냈을 뿐이었다.
마치 본능처럼.
"아휴, 대체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라마가 빈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서며 투덜거리자, 덩치가 산만하고 배가 볼록하게 나온 남자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뭐긴 뭐야, 풍림양가(風林楊家)의 혼례 때문에 몰려든 사람들이지."
쟁반을 내려놓은 라마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아니 그 사람들 혼례를 찾아온 사람 치고는 죄다 험악한 사람밖에 없는데요?"
"이 사람 하고는. 풍림양가의 현 가주인 양위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현 사파 무림의 기둥이라 불리는 흑사십위(黑師十威)의 한 사람이라고. 근래에 의천맹과 무림맹이 자주 부딪히니, 사파의 내놓라 하는 고수들이 하나같이 흑사십위에게 사파가 나아갈 방향을 묻고 있는 이 중차대한 시기가 아닌가? 단순한 혼례가 아니라고."
"그럼... 그런 중차대한 의논을, 남의 잔치인 혼례식에 찾아가 묻는단 말입니까? 거 참 경우 없는 사람들이네."
배 나온 사내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거 뭐 그런 거 아니면, 언제 사람들이 대거 몰릴 기회가 있나? 혼례를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와서 할 얘기를 하려는 게지."
라마가 질색을 하며 투덜거리듯 이야기했다.
"으~ 생각만 해도 싫다. 나라면 도망치고 싶겠네."
"어찌 안 그러겠어? 높은 자리라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지. 이봐, 뭐해? 얼른 주문 나가지 않고?"
"예예~"
라마가 다시 음식을 쟁반 위에 올려서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배 나온 사내는 피식 웃으며 큼지막한 주걱을 손에 쥐었다.
다시 음식을 나르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큰 고성이 들려와, 절로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아니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이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덩치가 산만한 거한의 사내가 벌떡 일어나 맞은편 사람을 보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진 푸른 날의 도끼는 당장이라도 상대의 목을 잘라버릴 것만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목 주변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도 물러남이 없었다.
짧은 민소매 옷으로 근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는 멋들어진 콧수염을 그리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짧은 단도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 죽고 싶은 게 소원이면 어디 덤벼 보시지."
그는 꽤나 여유로운 말투로 상대에게 도발하고 있었고, 거한의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허참, 이 악투해(岳鬪亥) 앞에서 도발을 다하는 놈이 있구만."
악투해란 말에 주위 사람들이 저마다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아~ 장강 인근에 멧돼지 하나가 사람 행세를 한다더니, 그게 네놈인가 보구나."
상대의 연이은 도발에 눈이 뒤집힌 악투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죽어!"
상대는 악투해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그가 공격을 피하니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의 모가지가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놈이!"
모가지가 날아간 이의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 눈을 부라리며 저마다 칼을 뽑아들자, 악투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얼마든지 덤벼 보거라, 이 올챙이 녀석들아!"
그 순간, 아까의 콧수염 사내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들어 빙글빙글 돌리더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돼지 한 마리 잡는데, 여럿이 필요할까?"
악투해가 다시금 눈을 부라리며 도끼를 휘둘렀고, 사람들은 휘말리지 않으려고 저마다 뒷걸음질 치다가 부딪히기 일쑤였다.
콧수염의 사내는 여유롭게 악투해의 공격을 피한 뒤,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뭣?"
악투해는 갑자기 상대가 자기 코앞으로 다가오자, 놀라 해 하며 주춤 물러섰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콧수염 사내의 단도가 쉴 새 없이 악투해의 가슴팍을 연이어 파고들었다.
"크헉!"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십 수 번의 칼을 맞고 쓰러진 악투해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고통스러워 하던 악투해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금세 숨을 거두었고 그런 악투해를 내려다보며 콧수염 사내가 조롱 거리듯 말했다.
"어째 그냥 집돼지였나 보구만. 멧돼지는 좀 더 질기던데."
그의 말에 근처에 있던 사내들이 낄낄 거리며 웃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마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이런 일에 익숙한 사내들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여놓고 농을 하고 낄낄거리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봐!"
콧수염의 사내가 라마를 보며 손짓을 하자, 라마는 순간 움찔했다.
"예?"
"이리 와봐."
콧수염 사내가 부르자, 잠시 망설이던 라마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냄새나니까 이 돼지 새끼 좀 치워."
콧수염 사내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헝겊을 꺼내 자신의 단도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라마 역시 무심한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을 한 뒤, 쓰러져 있는 악투해에게 다가갔다.
그는 악투해의 팔 하나를 잡고 객잔 밖으로 질질 끌어서 가지고 나갔다.
대충 객잔 옆에 놓아둔 뒤, 안쪽이 정리되면 그때 관아에 가서 신고하자 생각하고 다시 들어오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라마에게로 향해 있었다.
"....왜....?"
라마가 이상해 하자, 콧수염의 사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너 보통 점소이가 아니구나. 그 거구의 악투해를 한 손으로 그처럼 가볍게 끌어낼 줄이야."
라마는 속으로 '아차!'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뭐... 피가 좀 빠져서 그런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던데요. 잔뜩 먹었으면 모를까, 며칠 굶은 모양입니다."
그 말에 콧수염 사내가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며칠 굶어? 그 돼지가? 으하하하, 이놈 말하는 게 마음에 드는데?"
콧수염 사내가 라마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일하면 돈 얼마 받냐?"
"뭐... 대충 먹고 자는 거 해결하고, 닷냥 정도 받습니다."
"닷냥? 날 따라오너라. 큰돈을 벌게 해 주마."
"무슨... 일을 합니까?"
"무슨 일은? 너는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묻는 게냐?"
"예, 모릅니다."
콧수염 남자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멀뚱멀뚱 라마를 쳐다보다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놈 참 재밌는 놈일세. 우리는 흑암사(黑暗社)라 한다. 암술과 비검으로는 감히 우리와 맞상대를 할 자가 많지 않지."
"아... 그럼 저도 그런 일을 하는 겁니까?"
"물론이지. 물론 네놈이 우리 훈련을 견뎌낸다면 말이다."
라마는 잠시 생각했다.
아 이것이 바로 마법학교에서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간다는 바로 그 스카웃이 아닌가?
이 세계로 넘어와서 스카웃도 경험해보고, 기분 좋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오는데, 그 덩치도 덩치고 근육질에 머리가 남들보다 세 개는 더 있을 것 같은 데다가, 꽤나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 친구는 내가 먼저 찜해놨는데?"
그의 등장에 콧수염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흰 뭐야?"
시건방진 그의 말투에, 덩치 큰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 보잘것없는 철무방(鐵武榜)에 속해 있네만."
철무방이란 말에 콧수염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친구가 아까 내 발을 밟은 빚이 있어서... 내가 그 빚을 좀 받아야겠거든."
그의 말에 라마는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줄 알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건 아까 사과드렸는데... 다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라마가 꾸벅 인사를 하자, 철무방 사내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됐다. 네놈 내력이 보통이 아니란 걸 그때 알았다. 나와 함께 철무방으로 가자. 네놈을 쓸만한 인재로 키워주마."
그러자 콧수염 사내가 불평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거 그런 식으로 새치기를 해서야 철무방주 은사월 체면이 말이 아니잖소?"
갑자기 방주의 이름을 들먹이자, 철무방 사내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내 아무리 철무방에 이름 없는 계주일 뿐이지만, 감히 흑암사따위가 철무방의 방주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구나."
어느덧 덩치 큰 사내의 손에는 두껍고 묵직해 보이는 망치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 망치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콧수염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내 실수였소. 죄송하게 되었소. 흑암사는 결코 철무방을 적으로 둘 생각이 없소."
콧수염 사내의 대답에 철무방 사내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현명한 판단이긴 하지만,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한낱 흑암사의 졸개 따위가 철무방주를 모멸했단 소식이 들리는 날엔, 흑암사가 무림 역사에서 지워져 버릴 테니까."
이어 라마에게로 시선을 돌린 사내가 라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어떠냐? 한번 같이 가보겠느냐?"
라마가 잠시 망설이며 고개를 돌려보니, 주방 안에 아저씨가 나와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라마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 보였다.
"예. 그러죠 뭐."
라마의 대답에 사내가 씩 웃어 보였다.
"시원해서 좋구나. 따라오너라."
사내가 라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그를 따라 몇몇 사내가 뒤따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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