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1
라마는 온통 시커먼 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그의 등 뒤에는 철(鐵)자가 흰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 같이 생긴 녀석이 같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백무보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와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이쪽은 심영, 우리 묵추랑의 막내다. 일단 네놈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 이 녀석과 대련을 통해 알아보마."
라마는 순간 속으로 철렁했다.
"저... 혹시 칼이나 검을 써도 되나요?"
"목검을 주마."
"아, 아니... 진검 쓰면 안 될까요?"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목숨을 건 승부가 아니라, 단지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함이다."
라마는 속으로 난처하니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아 사내가 태어났으면, 뭘 할 때 목숨을 걸고 해야지 말이야. 이렇게 물렁 물렁해서야 원..."
백무보는 물론 심영의 눈빛까지 살기로 번득거리자, 라마는 속이 뜨끔했다.
"어디 네놈 재주가 어디까지인지 일단 한번 보자."
백무보의 말에 심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목검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냥 설렁설렁해주려고 했는데.... 너 오늘 좀 맞아야겠다."
라마가 마지못한 듯 목검을 집어 들기 무섭게, 심영의 목검이 라마에게 날아들었다.
라마가 얼른 목검을 들어 막으려 하는 순간, 눈앞에 목검이 사라졌다.
'딱!'
맑고 청아한..., 아니 그보다는 조금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의 동시에 "아!" 하는 소리에 라마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라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자, 심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머리가 구멍 났다."
아니 이런 치사한 쉐끼를 봤나...
라마가 발끈하여 검을 들어 심영의 중심부를 파고들었다.
심영은 라마의 공격을 가볍게 흘리며 옆에서 라마의 측면을 파고들었지만, 라마 역시 심영의 공격을 흘리며 반대로 심영의 측면을 파고들고 있었다.
"어쭈?"
심영은 생각지도 않게 라마의 보법이 빠르게 변화하자, 얼른 거리를 두며 뒤로 물러섰다.
"제법이구나?"
이번에는 심영이 검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는데, 목검이 하나가 아니고 십여 개로 보였다.
"뭐?"
라마가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려 했으나, 그럴 겨를 없이 그의 머리와 온몸에 목검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둔탁한 타격음이 줄줄이 들려오고, 라마의 입에서는 연이은 고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야, 아야야, 아야야!"
라마의 엄살에 지켜보던 백무보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수하도 실소를 머금었다.
"너 진검이었으면 지금 사지가 찢겨 나갔어, 목검인걸 다행으로 여겨라."
라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한 상태였다.
'목검인걸 다행으로 여겨라.'
라마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목검이야 맞으면 좀 아프고 그만이란 생각에 꾀를 내 보았다.
갑자리 라마가 허점을 보이며 치고 들어오자, 심영이 공격을 살짝 흘리며 말했다.
"뻔하다 뻔해"
그러면서 라마의 중심부를 노리며 찔러 들어오는데, 뜻밖에도 라마가 피하기는커녕 되려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어?"
그리고 그 찰나, 심영의 목검은 라마의 몸에 부딪혀 튕겨나가고, 라마의 무지막지한 목검이 전력을 다해 심영의 머리를 공격했다.
'딱!' "악!"
본인은 몰라도 라마는 제법 내력이 센 편이다.
방금 그 공격도 딴엔 힘껏 친다고 쳤지만, 마음 약한 라마는 마지막에 힘을 살짝 뺀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심영은 기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통이 깨졌을 것이다.
어쨌든 "악"하는 비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심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혼절해 버렸다.
"뭐야?"
놀란 백무보 뒤에 수하가 후다닥 달려가 심영의 상태를 살폈다.
"영아?"
그가 심영을 흔들어 깨우자 정신을 차린 심영이 초점 풀린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아... 여긴 어디..."
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심영이 머리의 통증을 느끼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으으으... 이 치사한 자식..."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라마를 노려보지만, 라마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으하하하, 됐다. 됐어."
이를 본 백무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목검의 특징을 파악하고 한 공격이니, 잘못이라 말할 수 없구나. 허나, 진검이었다면 결과는 정 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네놈 내력이 보통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강기(强氣)로 목검을 튕겨낼 줄은 몰랐구나."
백무보의 말에 라마는 표정이 의아해졌다.
"강기? 그게 뭐죠?"
라마는 그냥 내력을 이용해 몸을 단단히 만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 라마를 보며 백무보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놈 이거 자질은 좋은데, 머릿속에 든 게 없구만."
심영이 뿔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계장님, 다시 겨루게 해 주십시오. 이 시건방진 놈을 단단히 혼내놓겠습니다."
그러자 백무보가 심영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말했지 않느냐, 승부가 중요하지 않다. 됐으니 그만 물러가 보거라."
심영이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다른 수하를 따라 걸어가고, 그런 심영을 고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라마 곁으로 백무보가 다가와 말했다.
"내력으로만 따진다면, 백부장(百剖將)정도는 되겠으나, 아는 것만 놓고 보면, 무림인이 아니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구나."
뭐 사실이지. 무림이란 곳에 온 게 얼마 전이니까...
라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백무보는 말을 이어나갔다.
"철무방은 기본적으로 내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종(器種)을 다루는 문파다. 철무방의 근간인 철근공은 강력한 내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무공이니, 지금의 너에게 딱 좋은 수련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다른 수하 한 명이 부랴부랴 달려왔다.
"계장님."
"무슨 일이냐?"
"섭위장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백무보의 표정이 굳어지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섭위장? 본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찾아와?"
"그것이... 웬 계집 하나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순간, 라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았다. 내 금방 갈 테니 잠시 기다리거라."
"예."
그가 물러가고 백무보는 다시 라마를 보며 말했다.
"기본적인 내력 운용 방법을 알려줄 터이니, 좌정을 하고 앉아 보거라."
라마는 마음이 심란한 가운데, 좌정을 하고 앉았고, 그 뒤에 백무보가 앉아서 양손을 라마의 등 뒤에 데며 말했다.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해보거라."
그러자 라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운기조식이 뭡니까?"
"허참..."
백무보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가, 이내 다시 말했다.
"기를 운용해 보거라. 네 몸안에서 기가 돌아 기력을 회복하게 만들어 보란 말이다."
"아~ 그거요."
라마가 운기조식을 시작하자, 백무보는 잠시 어이없는 쓴웃음을 지었다가 다시 라마의 등 뒤에 손을 데고 집중했다.
백무보의 말을 들으며 그의 말대로 기를 운용하여, 철근공의 기초를 수련하는 것이었다.
라마는 이때 알지 못했지만, 운기조식을 할 때나, 다른 사람의 운기조식을 도울 때, 말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내력과 더불어 뛰어난 기의 운용 능력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이었다.
대략 일다경 정도가 지났을 무렵, 백무보는 온몸에 땀을 흘리며 라마의 등에서 손을 떼었다.
라마 역시 땀을 흘리며 운기조식을 마쳤으나, 몸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상태였다.
"대단하구나. 이 정도 내력일 줄이야."
백무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는 말에, 라마는 그를 보며 따라 일어났다.
"제가... 강한 것입니까?"
"물론이고 말고. 내력의 양으로만 따진다면, 오히려 나보다도 크고 강하다."
라마는 속으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며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법학교 다닐 때는 맨날 뭘 못한다는 소리만 들었는데, 여기서는 제법 칭찬도 들으니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일단 오늘 가르쳐 준 것을 되뇌며 수련해 보거라. 나는 급히 가볼 곳이 있다."
백무보가 돌아서서 가려하자, 라마가 얼른 뒤따르며 말했다.
"잠시..."
라마가 붙잡듯이 말을 건네 오자, 백무보가 발걸음을 멈추고 라마를 돌아보았다.
"잠시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이곳의 지리도 익히고 할 겸..."
라마의 말에 백무보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거라."
백무보가 성큼성큼 걸어가니, 라마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백무보는 수련장을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커다란 마당이 딸린 건물 앞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과연 라마의 예상대로 일전에 보았던 의천맹 복장의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상석으로 보이는 곳에 놓인 의자에는 그때 보았던 수장인 듯한 자가 앉아 있었고, 백무보는 그를 보자 얼른 인사를 올렸다.
"아, 왔는가? 내 이 계집년을 잡아왔네."
그자, 섭위장의 앞에는 한 여인이 붙잡혀와 밧줄에 묶인 체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라마가 뒤에서 얼핏 보기에도 틀림없는 모용연이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몸과 마음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싶네만. 이년한테 죽은 수하가 한둘이 아니라서, 쉬이 죽일 수 도 없고. 듣자 하니, 모용가의 막내 따님인 모양인데, 겁탈을 하고 벌거벗은 시체를 모용가에 건네줄까 하네만."
섭위장의 말에 백무보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모용가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설 것이고, 무림맹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섭위장의 뻔뻔한 대답에 백무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림맹과 싸우기 위해서는 의천맹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이 어린 여인을 겁탈하여 시신을 돌려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 의천맹 내에서도 분열이 생길 것입니다."
섭위장은 백무보의 대답을 들으며 핀잔을 주듯 이야기했다.
"그러니 내 이리 와서 자네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아닌가? 저들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하게 만들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규합될만한 명분, 그게 뭘 것 같은가 말일세."
그 순간, 백무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옆에 서있는 경계병의 칼을 빼앗아, 단칼에 여인의 목을 베었다.
힘없이 떨어진 모용연의 머리가 굴러가고, 뜻밖의 상황에 섭위장은 물론 라마까지 놀랐다.
"이제 이 수급을 보내십시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섭위장는 눈살을 찌푸렸다. 적당히 재미 좀 볼 생각이었는데, 이토록 쉽게 죽여 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섭위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 라마가 경계병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뺏어 들었다.
"엇? 뭐야?"
안 그래도 칼을 뺏겨 당황해하고 있던 찰나, 이젠 허리춤에 단검까지 뺏기니 흥분한 경계병이 라마의 손에서 다시 단검을 빼앗으려 들었지만, 라마는 재빨리 물러서며 말했다.
"아 비켜봐!"
이건 아니다. 그녀를 이렇게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라마는 그대로 자신의 머리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쟤 뭐야?"
황당해하는 섭위장의 표정을 끝으로 라마는 의식이 멀어졌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 같이 생긴 녀석이 같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백무보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와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이쪽은 심영, 우리 묵추랑의 막내다. 일단 네놈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 이 녀석과 대련을 통해 알아보마."
라마는 순간 속으로 철렁했다.
"저... 혹시 칼이나 검을 써도 되나요?"
"목검을 주마."
"아, 아니... 진검 쓰면 안 될까요?"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목숨을 건 승부가 아니라, 단지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함이다."
라마는 속으로 난처하니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아 사내가 태어났으면, 뭘 할 때 목숨을 걸고 해야지 말이야. 이렇게 물렁 물렁해서야 원..."
백무보는 물론 심영의 눈빛까지 살기로 번득거리자, 라마는 속이 뜨끔했다.
"어디 네놈 재주가 어디까지인지 일단 한번 보자."
백무보의 말에 심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목검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냥 설렁설렁해주려고 했는데.... 너 오늘 좀 맞아야겠다."
라마가 마지못한 듯 목검을 집어 들기 무섭게, 심영의 목검이 라마에게 날아들었다.
라마가 얼른 목검을 들어 막으려 하는 순간, 눈앞에 목검이 사라졌다.
'딱!'
맑고 청아한..., 아니 그보다는 조금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의 동시에 "아!" 하는 소리에 라마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라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자, 심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머리가 구멍 났다."
아니 이런 치사한 쉐끼를 봤나...
라마가 발끈하여 검을 들어 심영의 중심부를 파고들었다.
심영은 라마의 공격을 가볍게 흘리며 옆에서 라마의 측면을 파고들었지만, 라마 역시 심영의 공격을 흘리며 반대로 심영의 측면을 파고들고 있었다.
"어쭈?"
심영은 생각지도 않게 라마의 보법이 빠르게 변화하자, 얼른 거리를 두며 뒤로 물러섰다.
"제법이구나?"
이번에는 심영이 검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는데, 목검이 하나가 아니고 십여 개로 보였다.
"뭐?"
라마가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려 했으나, 그럴 겨를 없이 그의 머리와 온몸에 목검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둔탁한 타격음이 줄줄이 들려오고, 라마의 입에서는 연이은 고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야, 아야야, 아야야!"
라마의 엄살에 지켜보던 백무보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수하도 실소를 머금었다.
"너 진검이었으면 지금 사지가 찢겨 나갔어, 목검인걸 다행으로 여겨라."
라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한 상태였다.
'목검인걸 다행으로 여겨라.'
라마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목검이야 맞으면 좀 아프고 그만이란 생각에 꾀를 내 보았다.
갑자리 라마가 허점을 보이며 치고 들어오자, 심영이 공격을 살짝 흘리며 말했다.
"뻔하다 뻔해"
그러면서 라마의 중심부를 노리며 찔러 들어오는데, 뜻밖에도 라마가 피하기는커녕 되려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어?"
그리고 그 찰나, 심영의 목검은 라마의 몸에 부딪혀 튕겨나가고, 라마의 무지막지한 목검이 전력을 다해 심영의 머리를 공격했다.
'딱!' "악!"
본인은 몰라도 라마는 제법 내력이 센 편이다.
방금 그 공격도 딴엔 힘껏 친다고 쳤지만, 마음 약한 라마는 마지막에 힘을 살짝 뺀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심영은 기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통이 깨졌을 것이다.
어쨌든 "악"하는 비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심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혼절해 버렸다.
"뭐야?"
놀란 백무보 뒤에 수하가 후다닥 달려가 심영의 상태를 살폈다.
"영아?"
그가 심영을 흔들어 깨우자 정신을 차린 심영이 초점 풀린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아... 여긴 어디..."
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심영이 머리의 통증을 느끼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으으으... 이 치사한 자식..."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라마를 노려보지만, 라마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으하하하, 됐다. 됐어."
이를 본 백무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목검의 특징을 파악하고 한 공격이니, 잘못이라 말할 수 없구나. 허나, 진검이었다면 결과는 정 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네놈 내력이 보통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강기(强氣)로 목검을 튕겨낼 줄은 몰랐구나."
백무보의 말에 라마는 표정이 의아해졌다.
"강기? 그게 뭐죠?"
라마는 그냥 내력을 이용해 몸을 단단히 만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 라마를 보며 백무보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놈 이거 자질은 좋은데, 머릿속에 든 게 없구만."
심영이 뿔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계장님, 다시 겨루게 해 주십시오. 이 시건방진 놈을 단단히 혼내놓겠습니다."
그러자 백무보가 심영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말했지 않느냐, 승부가 중요하지 않다. 됐으니 그만 물러가 보거라."
심영이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다른 수하를 따라 걸어가고, 그런 심영을 고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라마 곁으로 백무보가 다가와 말했다.
"내력으로만 따진다면, 백부장(百剖將)정도는 되겠으나, 아는 것만 놓고 보면, 무림인이 아니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구나."
뭐 사실이지. 무림이란 곳에 온 게 얼마 전이니까...
라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백무보는 말을 이어나갔다.
"철무방은 기본적으로 내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종(器種)을 다루는 문파다. 철무방의 근간인 철근공은 강력한 내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무공이니, 지금의 너에게 딱 좋은 수련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다른 수하 한 명이 부랴부랴 달려왔다.
"계장님."
"무슨 일이냐?"
"섭위장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백무보의 표정이 굳어지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섭위장? 본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찾아와?"
"그것이... 웬 계집 하나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순간, 라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았다. 내 금방 갈 테니 잠시 기다리거라."
"예."
그가 물러가고 백무보는 다시 라마를 보며 말했다.
"기본적인 내력 운용 방법을 알려줄 터이니, 좌정을 하고 앉아 보거라."
라마는 마음이 심란한 가운데, 좌정을 하고 앉았고, 그 뒤에 백무보가 앉아서 양손을 라마의 등 뒤에 데며 말했다.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해보거라."
그러자 라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운기조식이 뭡니까?"
"허참..."
백무보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가, 이내 다시 말했다.
"기를 운용해 보거라. 네 몸안에서 기가 돌아 기력을 회복하게 만들어 보란 말이다."
"아~ 그거요."
라마가 운기조식을 시작하자, 백무보는 잠시 어이없는 쓴웃음을 지었다가 다시 라마의 등 뒤에 손을 데고 집중했다.
백무보의 말을 들으며 그의 말대로 기를 운용하여, 철근공의 기초를 수련하는 것이었다.
라마는 이때 알지 못했지만, 운기조식을 할 때나, 다른 사람의 운기조식을 도울 때, 말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내력과 더불어 뛰어난 기의 운용 능력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이었다.
대략 일다경 정도가 지났을 무렵, 백무보는 온몸에 땀을 흘리며 라마의 등에서 손을 떼었다.
라마 역시 땀을 흘리며 운기조식을 마쳤으나, 몸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상태였다.
"대단하구나. 이 정도 내력일 줄이야."
백무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는 말에, 라마는 그를 보며 따라 일어났다.
"제가... 강한 것입니까?"
"물론이고 말고. 내력의 양으로만 따진다면, 오히려 나보다도 크고 강하다."
라마는 속으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며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법학교 다닐 때는 맨날 뭘 못한다는 소리만 들었는데, 여기서는 제법 칭찬도 들으니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일단 오늘 가르쳐 준 것을 되뇌며 수련해 보거라. 나는 급히 가볼 곳이 있다."
백무보가 돌아서서 가려하자, 라마가 얼른 뒤따르며 말했다.
"잠시..."
라마가 붙잡듯이 말을 건네 오자, 백무보가 발걸음을 멈추고 라마를 돌아보았다.
"잠시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이곳의 지리도 익히고 할 겸..."
라마의 말에 백무보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거라."
백무보가 성큼성큼 걸어가니, 라마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백무보는 수련장을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커다란 마당이 딸린 건물 앞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과연 라마의 예상대로 일전에 보았던 의천맹 복장의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상석으로 보이는 곳에 놓인 의자에는 그때 보았던 수장인 듯한 자가 앉아 있었고, 백무보는 그를 보자 얼른 인사를 올렸다.
"아, 왔는가? 내 이 계집년을 잡아왔네."
그자, 섭위장의 앞에는 한 여인이 붙잡혀와 밧줄에 묶인 체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라마가 뒤에서 얼핏 보기에도 틀림없는 모용연이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몸과 마음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싶네만. 이년한테 죽은 수하가 한둘이 아니라서, 쉬이 죽일 수 도 없고. 듣자 하니, 모용가의 막내 따님인 모양인데, 겁탈을 하고 벌거벗은 시체를 모용가에 건네줄까 하네만."
섭위장의 말에 백무보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모용가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설 것이고, 무림맹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섭위장의 뻔뻔한 대답에 백무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림맹과 싸우기 위해서는 의천맹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이 어린 여인을 겁탈하여 시신을 돌려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 의천맹 내에서도 분열이 생길 것입니다."
섭위장은 백무보의 대답을 들으며 핀잔을 주듯 이야기했다.
"그러니 내 이리 와서 자네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아닌가? 저들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하게 만들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규합될만한 명분, 그게 뭘 것 같은가 말일세."
그 순간, 백무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옆에 서있는 경계병의 칼을 빼앗아, 단칼에 여인의 목을 베었다.
힘없이 떨어진 모용연의 머리가 굴러가고, 뜻밖의 상황에 섭위장은 물론 라마까지 놀랐다.
"이제 이 수급을 보내십시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섭위장는 눈살을 찌푸렸다. 적당히 재미 좀 볼 생각이었는데, 이토록 쉽게 죽여 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섭위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 라마가 경계병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뺏어 들었다.
"엇? 뭐야?"
안 그래도 칼을 뺏겨 당황해하고 있던 찰나, 이젠 허리춤에 단검까지 뺏기니 흥분한 경계병이 라마의 손에서 다시 단검을 빼앗으려 들었지만, 라마는 재빨리 물러서며 말했다.
"아 비켜봐!"
이건 아니다. 그녀를 이렇게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라마는 그대로 자신의 머리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쟤 뭐야?"
황당해하는 섭위장의 표정을 끝으로 라마는 의식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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