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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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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17분

55화 - #2


굳은 얼굴로 들어선 수현이 인사를 건넨 뒤 다가오자, 세자가 그를 보며 말했다.

"앉게."

세자의 곁에는 먼저 와있던 조세춘이 앉아 있었고, 수현은 세자에게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일이 흘러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조세춘이 궁금한 듯 서둘러 물어보았다.

"그래, 뭐라 하든가? 자백했다 하든가?"

수현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니, 그보다... 의금부에서 박지언의 자택을 수색하였는데, 사교도의 맹약서가 나왔다 합니다."

세자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맹약서? 그런 것이 어찌 박지언의 집에서 나왔단 말인가?"

"저도 알 수 없으나, 그 일로 박지언이 매우 불리해진 것 같습니다."

조세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저 사교도 무리들이 자신들을 압박해온 박지언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몰래 그의 자택에 가져다 놨을 수 있습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그런데,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조세춘이 세자와 수현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오직 박지언이 유죄여야만 하는 것이지."

세자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유죄여야 한다?"

"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지언을 유죄로 만들고자, 없는 증거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세자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럴 수 있다. 허면...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어 수현을 보며 말했다.

"소연은? 입궐하라 했느냐?"

수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기별해 두었으니, 조만간 입궐할 것입니다."

"그래, 소연이 오는 대로, 그 상궁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이어 조세춘을 보며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해서든, 저들이 가지고 있다는 증좌의 내용을 확인해 보게."

조세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맹약서... 말입니까?"

"그렇네.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아야 하네. 저들이 그것을 증거로 박지언의 유죄를 받아낸다면,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곧 진실이 되네.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상황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네."

난처한 표정의 조세춘이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



동궁전으로 향하던 세자는 문득 저만치에서 걸어오고 있는 혜령옹주를 보았다.

"잠시 물러나 있거라."

주위를 물린 세자가 혜령옹주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혜령옹주의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혜령옹주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안영군, 요즘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순간 세자는, 재빨리 벽에 붙어 몸을 숨겼다.

잠시 숨을 고르고 살짝 고개를 내밀어 살피니, 안영군이 혜령옹주 앞으로 다가서며 묻고있었다.

"저하를 뵈러 가시는 길이신가 봅니다."

"갔다가 계시지 않으시기에 돌아가는 길입니다."

"예, 항상 바쁘신 분이시지요. 권력에 눈이 멀면 소중한 사람도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안영군의 말에 혜령옹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그리 이야기하십니까? 저하께옵서 그런 사람이 아님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혜령옹주의 말에 안영군이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도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믿고 계십니까? 뭐... 어쩌면 옹주마마께는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겠지요. 옹주마마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있을 테니깐요."

혜령옹주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안영군은 어떻습니까?"

"예?"

혜령옹주의 물음에 안영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혜령옹주가 말을 이었다.

"안영군은 제게 진실되게 이야기하고 계십니까? 다른 모든 이에게 같은 모습을 보이십니까? 제가 보기엔, 세자마마도 안영군도, 그리고 이 궁궐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각자 자기만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면을 쓰고 안쓰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혜령옹주의 말을 듣던 안영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역시 옹주마마께서도 세자저하의 편에 서 계시군요."

안영군의 말에 혜령옹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찌 사람을 그리 쉽게 니편 내편으로 나누려 하십니까? 제게는 저하도, 안영군도, 소중한 가족입니다."

순간, 안영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족 같은 것은 없습니다. 내편이 아니면! 그저 모두가 적일 뿐이지요. 아직도 그걸 모르십니까?"

안영군의 살벌한 기세에 혜령옹주의 표정은 창백해졌다.

"오늘밤, 세자 저하께서 그리 아끼신다는 그 사교도 계집을 데려다가 문초를 낼 생각입니다. 그 계집이 실토를 하기 시작하면, 과연 세자의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을 수 있을까요?"

안영군의 말에 혜령옹주가 놀라 눈빛이 흔들렸다.

"안영군, 그건..."

그러나 혜령옹주가 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안영군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제가 한 가지를 알려드리지요. 살고 싶다면, 제 쪽에 서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하의 편에 서 계시다가는 결국 목이 달아나게 될 테니 말입니다."

안영군은 그 말을 남기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혜령옹주의 곁을 지나 빠르게 걸어갔다.

혜령옹주는 안영군이 떠나가고 난 뒤에도 한참을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런 혜령옹주를 보며 세자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세자는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며 혜령옹주에게 향했다.

혜령옹주의 뒤쪽에 서 있던 상궁과 내관들이 먼저 세자를 발견하고 인사를 올리자, 넋을 놓고 서 있던 혜령옹주는 그제야 세자를 발견하고 서둘러 인사하였다.

세자는 혜령옹주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네가 나 때문에 고심이 크구나."

세자의 말에 혜령옹주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좀... 무섭습니다. 유약하다 생각했었는데... 언제 저리 변한 것입니까?"

혜령옹주의 말에 세자는 안영군이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대답했다.

"그래, 나도 좀 놀랍구나. 나 역시 안영군은 유약하고 어리숙하여, 나에게 대적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었다. 내가 그를 과소평가했구나."

혜령옹주는 조금 진정이 된 듯, 안정감을 되찾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세자를 보며 예의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언제부터 계셨던 것입니까?"

"나도 방금 왔다. 네게 인사나 할까 하였다가..."

"거 보십시오. 그 아이로 인해, 결국 이리된 것 아닙니까? 그 아이가 사교도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까?"

세자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혜령옹주를 보고 대답했다.

"글세... 나도 모르겠는데?"

그의 대답에 혜령옹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하? 아니 어찌..."

그러자 세자가 돌연 껄껄 거리며 웃어댔다.

"아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 아이는 결코 사교도가 아니다."

그제야 세자가 자신을 놀렸음을 안 혜령옹주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 와중에도 장난을 치십니까? 정말 저하도 짓궂습니다."

"하하, 네가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랬다. 미안하구나. 너무 염려치 말거라. 그리 호락호락당하진 않을 것이니..."

"허나, 그 아이가 허튼소리라도 하면... 저하가 많이 곤란해지실 것입니다."

"알고 있다. 허나 그 아이는 허튼소리를 할 아이가 아니다. 더욱이 저들의 말마따나 사교도라 한들, 증좌도 없는 사교도의 말 한마디에 자리에서 물어나야 할 만큼, 세자라는 자리가 녹록한 자리가 아니다."

세자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이니, 혜령옹주는 조금 안심이 되는 듯 따라 웃음 지었다.

"너무 걱정 말거라. 나는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겠구나."

세자는 혜령옹주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동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늦은 시간, 갑작스레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연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일련의 사람들이 들어왔고, 그중에는 낯익은 사람도 있었다.

"종사관 나리?"

그는 바로 여학수였고, 그를 알아본 연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학수를 쳐다보았다.

여학수는 흔들림 없는 근엄한 표정으로 연희를 응시하며 말했다.

"좌포청에서 수사를 위해 너를 심문할 것이다."

"예?"

연희가 놀라 휘둥그런 눈으로 바라보니, 곧 나졸들이 달려와 문을 열었다.

"죄인을 끌어내라."

여학수의 명령에, 그를 따라온 좌포청 병사들이 들어가 연희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았다.

"나, 나리... 어찌 이러시는 것이옵니까?"

병사들에게 이끌려 나오면서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연희는 옥사 밖으로 나서는 여학수를 쳐다보며 호소했다.

"나리, 나리는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사교도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연희는 여학수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답답한 듯 연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여학수는 돌아보지 않은 체,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들은 연희를 데리고, 궐내각사(闕內各司)로 향하였다.

안으로 들어선 병사들은 연희를 중앙 바닥으로 떠밀어 무릎을 꿇리고는, 서둘러 문을 닫았다.

앞에서 누군가 의자에 좌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 연희는 두려운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문을 닫았느냐?"

근엄한 목소리지만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였다.

"예, 저하."

연희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의자에는 세자가 앉아 있었고, 문이 닫혔음을 확인한 세자는 부랴부랴 걸어와 연희를 향해 몸을 굽혔다.

"괜찮으냐?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세자를 본 연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 어찌 그러느냐? 어디 다친 것이냐?"

눈물을 흘리는 연희를 보고, 세자가 놀라 당황해하니, 연희가 투정 부리듯 이야기했다.

"무서웠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어찌 그러셨습니까?"

"그... 그야, 적당히 모양새도 갖추고, 안영군보다 먼저 너를 데려와 보호하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너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연희는 세자의 말에, 마치 아이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세자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연희가 아이처럼 울으니,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 지었다.

이어 세자는 연희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다독거렸다.

"미안하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있었기에, 이렇게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연희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합니다."

울음에 잠겨버린 목소리였지만, 세자는 그 목소리를 듣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잠시나마 편히 쉬거라. 내가 곁에 있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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