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3
라마를 철무방으로 데려온 장본인은 철무방 월랑칠계(月狼七界)중 하나인 묵추랑(墨鎚狼)의 대장인 백무보였다.
평소에는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짓궂은 장난을 곧잘 하곤 하지만, 막상 승부를 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무심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상대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래서 세간의 사람들은 그를 무심랑(無心狼)이라고도 불렀다.
라마가 무심랑 백무보를 따라 혼례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혼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술잔을 나누며 여흥을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화려한 복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있는 부부 외에도, 근엄한 모습으로 흐뭇하게 이들을 바라보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평범하게 앉아있는 모습에서도 그가 가진 기백이 느껴지는 듯하여,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다.
"저자가 풍림양가의 가주인 양위현이다."
그의 말에 라마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중년 나이의 그는 언뜻 보아서는 평범한 남자로 보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중후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죠?"
"어떤 사람? 네놈은 정말 무림에 대해서 아는 게 없구나."
"예... 뭐...."
멋쩍어하는 라마를 보며 백무보가 말을 이었다.
"풍림양가는 풍림사십칠로(風林四十七路)로 대변되는 변검(變劍)과 환검(幻劒)의 명가다. 양위현은 당대 의천맹(義天盟)를 이끄는 흑사십위의 한 사람이며, 대부분 거대 세력을 거느린 흑사십위중 유일하게 가문만으로 흑사십위에 든 인물이지. 또한 인물됨이 호방하여 많은 무림인들이 따를 뿐 아니라, 그런 성격으로 인해 무림맹 녀석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뭐 굳이 얘기하자면, 양쪽으로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중간에 있는 인물이라고 해두지."
라마가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대충 정파 쪽과 얘기를 좀 해야겠는데, 어떻게 얘기할지를 묻고자 하는 거군요."
"정파? 그딴 소리 하지도 말거라. 세상이 우리를 사파라 부르고 무림맹 놈들을 정파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찌 저놈들이 정파란 말이냐? 비열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거늘."
"근데... 왜 그들과 싸우게 된 거죠?"
백무보가 눈살을 찌푸리며 라마를 바라보았다.
"넌 대체 아는 게 뭐야?"
"없죠."
"자랑이구나."
"그러니까 열심히 듣고 있지 않습니까?"
"하... 무술교관이 아니라, 다른 교관을 붙여줘야 할 판이구나."
백무보가 발걸음을 옮겨 양위현 근처로 다가가자, 때마침 누군가가 양위현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양대협, 비굴하기 짝이 없는 저 무림맹 놈들이 툭하면 우리에게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협이 나서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이가 나서서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양대협. 우리가 그저 수수방관만 하는 무림맹 놈들과 다르다는 것을 모든 무림인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의 말에 양위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림맹과의 시시비비는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 서로 뜻이 달라 양립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의천맹은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뻔한 대답에 사람들 표정에 실망의 기색이 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또다시 나서 양위현에게 물었다.
"양대협, 허면 남만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마교의 출몰 소식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는 살생을 저지르고 있다 합니다."
양위현은 무심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그런 작자들의 출몰이 어제오늘 일이 아닐 터, 떠도는 풍문이란 것이 부풀여 지기 마련이지요. 내 어제는 칠보산에 산적 떼 두목이 하늘을 훨훨 난다는 소리도 들었소."
양위현의 말에 몇몇 이들이 낄낄 거리며 웃었고, 문제를 제기했던 이는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 묵직하게 쉰 목소리로 나서 이야기했다.
"보름 전, 의천맹이 무림맹의 지부를 기습 공격하여 지부를 지키던 이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리 조용한 것입니까?"
그의 말에 일순 모두가 침묵했다.
이내 모두의 시선이 말한 이에게 쏠렸고, 날카로운 눈매에 수염을 곱게 기른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온 뉘신지 여쭈어도 되겠소?"
양위현이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그는 양위현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소인 구월당주(九月黨主)님을 모시는 윤지경이라 합니다."
구월당이란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양위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윤지경을 향해 대답했다.
"먼 곳에서 오신 손님이셨군요. 그래, 당주께서는 무고하신 것이오?"
"그러하옵니다."
"구월당주를 뵈온 것도 참으로 오래전 일이오. 아직도 그분에 호방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지금도 여전하시오?"
"요즘은 그저 산과 들을 벗 삼아,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계십니다."
윤지경의 대답에 양위현이 껄껄 거리고 웃었다.
"헌데, 무림맹 지부가 공격받았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것이오?"
"안타깝게도 누구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제 눈으로 목도한 것이옵니다."
그의 대답에 다시금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양위현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다.
"곤란하게 됐군."
백무보의 나지막한 말을 들은 라마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찌 곤란하다 하십니까?"
그러자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모른다고 이야기하자니, 의천맹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속 빈 강정 취급을 당할 것이요, 안다고 이야기하자니 알고도 태평하게 있는 자신을 타박할 것이 두렵겠지."
이야기 중에 양위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내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싶으나, 맹주님과 한 약속이 있어,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그가 주변에 양해를 구하자, 모두의 표정에 의혹이 떠올랐다.
특히 윤지경은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나서 말했다.
"저희 당주께서도 엄연히 흑사십위의 한 사람입니다. 헌데, 어찌 당주께서만 모르는 일이 의천맹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누구의 결정입니까? 맹주입니까?"
따져 묻는 듯한 윤지경의 태도에, 양위현 옆에 있던 한 덩치 큰 사내가 나서 소리쳤다.
"무례하다. 감히 풍림양가 안에서 가주님께 무례를 범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그러자 양위현이 그런 그를 만류하며 윤지경에게 이야기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사전에 계획된 일이 아닌 사고였소. 정황을 살펴 모든 흑사십위 분들께 알릴 일이나, 아직 미처 다 살피지 못하였을 뿐이오. 기다리면 듣고자 하는 답을 듣게 될 것이오."
이어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이 사람의 여식이 혼례를 치르는 자리요. 이제 더는 무림의 일을 묻지 않기를 바라오. 다들 여흥을 즐기다 가시기 바랍니다."
양위현이 그 말을 남기고 총총히 물러나자, 아까 양위현의 곁을 지키던 덩치 큰 사내가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자, 들으셨소? 지금 이 시각부터, 불필요한 물음을 던지는 자는, 목이 성치 못할 것이오."
협박이나 다름없는 그의 말에, 어느 누구도 불평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만 돌아가자."
백무보가 돌아서서 걸어가자, 라마가 서둘러 그 곁을 따라 걸었다.
"헌데 어찌 계주께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십니까?"
그러자 백무보는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묻고자 온 것이 아니다."
"그럼...?"
백무보가 라마를 힐끔 바라보았다.
무심한 듯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싸늘한 눈빛이, 어쩐지 가슴속까지 싸늘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하는 것인지 살피러 온 것이다."
대답을 한 백무보가 다시금 걷기 시작하니, 라마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감시하러 온 거였어?'
잠시 후 백무보의 다른 수하들과 합류하여 풍림양가에서 벗어난 이들이, 근처에 있는 야산 인근에 다다르자, 일련의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 중 수장인 듯한 자는 꽤나 차갑고 냉소적인 표정을 한 인물이었는데, 훤한 이마와 반듯하게 뒤로 묶는 머리가 꽤나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라마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바로 라마가 죽은 사람들에게서 훔쳐 입었던 바로 그 옷과 똑같은 옷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무보가 수장에게 인사를 건네자, 수장은 백무보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무어라 하든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겠지. 찾아온 손님들은 살펴보았는가?"
"예, 구월당의 윤지경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띄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수장은 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구월당? 그 늙은이가 사람을 보냈어?"
"예."
"눈치 빠른 영감 하고는."
"이미 무림맹 측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백무보가 하는 말에 그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래 봐야 확인할 길은 없을 것이야. 풍림양가의 혼례로 이곳에 모여든 이들만 족히 천여 명이 넘는다."
"생존자는.... 없는 것입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백무보의 질문에 수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계집년 하나를 놓쳤는데.... 그리 멀리는 못 갔을 것이다. 그년 활 쏘는 재주가 비상한데... 어쨌든 내 알아서 할터이니, 염려 말고. 방주께 안부나 잘 전해주거라."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마는 자신을 두 번이나 죽인 모용연을 떠올렸다.
'저들이 그녀를 쫓고 있구나.'
꼴에 그것도 인연이라고, 왠지 모르게 그녀가 신경 쓰였다.
'에이, 걱정할 게 없어서, 날 죽인 애를 걱정하냐. 됐다, 신경 끄자.'
라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미련을 떨쳐냈다.
그는 사실 자신도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사내들이란 이쁘면 뭐든 용서가 되는 동물이다.
자신을 두 번이나 죽였던 여인 이건만, 그녀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그는 그녀를 용서하고 있었다.
그녀가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했을 때,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애는 둘만 낳아 키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짓궂은 장난을 곧잘 하곤 하지만, 막상 승부를 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무심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상대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래서 세간의 사람들은 그를 무심랑(無心狼)이라고도 불렀다.
라마가 무심랑 백무보를 따라 혼례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혼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술잔을 나누며 여흥을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화려한 복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있는 부부 외에도, 근엄한 모습으로 흐뭇하게 이들을 바라보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평범하게 앉아있는 모습에서도 그가 가진 기백이 느껴지는 듯하여,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다.
"저자가 풍림양가의 가주인 양위현이다."
그의 말에 라마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중년 나이의 그는 언뜻 보아서는 평범한 남자로 보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중후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죠?"
"어떤 사람? 네놈은 정말 무림에 대해서 아는 게 없구나."
"예... 뭐...."
멋쩍어하는 라마를 보며 백무보가 말을 이었다.
"풍림양가는 풍림사십칠로(風林四十七路)로 대변되는 변검(變劍)과 환검(幻劒)의 명가다. 양위현은 당대 의천맹(義天盟)를 이끄는 흑사십위의 한 사람이며, 대부분 거대 세력을 거느린 흑사십위중 유일하게 가문만으로 흑사십위에 든 인물이지. 또한 인물됨이 호방하여 많은 무림인들이 따를 뿐 아니라, 그런 성격으로 인해 무림맹 녀석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뭐 굳이 얘기하자면, 양쪽으로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중간에 있는 인물이라고 해두지."
라마가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대충 정파 쪽과 얘기를 좀 해야겠는데, 어떻게 얘기할지를 묻고자 하는 거군요."
"정파? 그딴 소리 하지도 말거라. 세상이 우리를 사파라 부르고 무림맹 놈들을 정파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찌 저놈들이 정파란 말이냐? 비열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거늘."
"근데... 왜 그들과 싸우게 된 거죠?"
백무보가 눈살을 찌푸리며 라마를 바라보았다.
"넌 대체 아는 게 뭐야?"
"없죠."
"자랑이구나."
"그러니까 열심히 듣고 있지 않습니까?"
"하... 무술교관이 아니라, 다른 교관을 붙여줘야 할 판이구나."
백무보가 발걸음을 옮겨 양위현 근처로 다가가자, 때마침 누군가가 양위현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양대협, 비굴하기 짝이 없는 저 무림맹 놈들이 툭하면 우리에게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협이 나서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이가 나서서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양대협. 우리가 그저 수수방관만 하는 무림맹 놈들과 다르다는 것을 모든 무림인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의 말에 양위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림맹과의 시시비비는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 서로 뜻이 달라 양립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의천맹은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뻔한 대답에 사람들 표정에 실망의 기색이 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또다시 나서 양위현에게 물었다.
"양대협, 허면 남만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마교의 출몰 소식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는 살생을 저지르고 있다 합니다."
양위현은 무심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그런 작자들의 출몰이 어제오늘 일이 아닐 터, 떠도는 풍문이란 것이 부풀여 지기 마련이지요. 내 어제는 칠보산에 산적 떼 두목이 하늘을 훨훨 난다는 소리도 들었소."
양위현의 말에 몇몇 이들이 낄낄 거리며 웃었고, 문제를 제기했던 이는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 묵직하게 쉰 목소리로 나서 이야기했다.
"보름 전, 의천맹이 무림맹의 지부를 기습 공격하여 지부를 지키던 이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리 조용한 것입니까?"
그의 말에 일순 모두가 침묵했다.
이내 모두의 시선이 말한 이에게 쏠렸고, 날카로운 눈매에 수염을 곱게 기른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온 뉘신지 여쭈어도 되겠소?"
양위현이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그는 양위현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소인 구월당주(九月黨主)님을 모시는 윤지경이라 합니다."
구월당이란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양위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윤지경을 향해 대답했다.
"먼 곳에서 오신 손님이셨군요. 그래, 당주께서는 무고하신 것이오?"
"그러하옵니다."
"구월당주를 뵈온 것도 참으로 오래전 일이오. 아직도 그분에 호방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지금도 여전하시오?"
"요즘은 그저 산과 들을 벗 삼아,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계십니다."
윤지경의 대답에 양위현이 껄껄 거리고 웃었다.
"헌데, 무림맹 지부가 공격받았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것이오?"
"안타깝게도 누구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제 눈으로 목도한 것이옵니다."
그의 대답에 다시금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양위현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다.
"곤란하게 됐군."
백무보의 나지막한 말을 들은 라마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찌 곤란하다 하십니까?"
그러자 백무보가 라마를 보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모른다고 이야기하자니, 의천맹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속 빈 강정 취급을 당할 것이요, 안다고 이야기하자니 알고도 태평하게 있는 자신을 타박할 것이 두렵겠지."
이야기 중에 양위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내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싶으나, 맹주님과 한 약속이 있어,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그가 주변에 양해를 구하자, 모두의 표정에 의혹이 떠올랐다.
특히 윤지경은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나서 말했다.
"저희 당주께서도 엄연히 흑사십위의 한 사람입니다. 헌데, 어찌 당주께서만 모르는 일이 의천맹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누구의 결정입니까? 맹주입니까?"
따져 묻는 듯한 윤지경의 태도에, 양위현 옆에 있던 한 덩치 큰 사내가 나서 소리쳤다.
"무례하다. 감히 풍림양가 안에서 가주님께 무례를 범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그러자 양위현이 그런 그를 만류하며 윤지경에게 이야기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사전에 계획된 일이 아닌 사고였소. 정황을 살펴 모든 흑사십위 분들께 알릴 일이나, 아직 미처 다 살피지 못하였을 뿐이오. 기다리면 듣고자 하는 답을 듣게 될 것이오."
이어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이 사람의 여식이 혼례를 치르는 자리요. 이제 더는 무림의 일을 묻지 않기를 바라오. 다들 여흥을 즐기다 가시기 바랍니다."
양위현이 그 말을 남기고 총총히 물러나자, 아까 양위현의 곁을 지키던 덩치 큰 사내가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자, 들으셨소? 지금 이 시각부터, 불필요한 물음을 던지는 자는, 목이 성치 못할 것이오."
협박이나 다름없는 그의 말에, 어느 누구도 불평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만 돌아가자."
백무보가 돌아서서 걸어가자, 라마가 서둘러 그 곁을 따라 걸었다.
"헌데 어찌 계주께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십니까?"
그러자 백무보는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묻고자 온 것이 아니다."
"그럼...?"
백무보가 라마를 힐끔 바라보았다.
무심한 듯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싸늘한 눈빛이, 어쩐지 가슴속까지 싸늘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하는 것인지 살피러 온 것이다."
대답을 한 백무보가 다시금 걷기 시작하니, 라마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감시하러 온 거였어?'
잠시 후 백무보의 다른 수하들과 합류하여 풍림양가에서 벗어난 이들이, 근처에 있는 야산 인근에 다다르자, 일련의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 중 수장인 듯한 자는 꽤나 차갑고 냉소적인 표정을 한 인물이었는데, 훤한 이마와 반듯하게 뒤로 묶는 머리가 꽤나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라마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바로 라마가 죽은 사람들에게서 훔쳐 입었던 바로 그 옷과 똑같은 옷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무보가 수장에게 인사를 건네자, 수장은 백무보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무어라 하든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겠지. 찾아온 손님들은 살펴보았는가?"
"예, 구월당의 윤지경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띄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수장은 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구월당? 그 늙은이가 사람을 보냈어?"
"예."
"눈치 빠른 영감 하고는."
"이미 무림맹 측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백무보가 하는 말에 그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래 봐야 확인할 길은 없을 것이야. 풍림양가의 혼례로 이곳에 모여든 이들만 족히 천여 명이 넘는다."
"생존자는.... 없는 것입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백무보의 질문에 수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계집년 하나를 놓쳤는데.... 그리 멀리는 못 갔을 것이다. 그년 활 쏘는 재주가 비상한데... 어쨌든 내 알아서 할터이니, 염려 말고. 방주께 안부나 잘 전해주거라."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마는 자신을 두 번이나 죽인 모용연을 떠올렸다.
'저들이 그녀를 쫓고 있구나.'
꼴에 그것도 인연이라고, 왠지 모르게 그녀가 신경 쓰였다.
'에이, 걱정할 게 없어서, 날 죽인 애를 걱정하냐. 됐다, 신경 끄자.'
라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미련을 떨쳐냈다.
그는 사실 자신도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사내들이란 이쁘면 뭐든 용서가 되는 동물이다.
자신을 두 번이나 죽였던 여인 이건만, 그녀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그는 그녀를 용서하고 있었다.
그녀가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했을 때,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애는 둘만 낳아 키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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