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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마음

author
·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8분

16화 - #2


일찌감치 마중 나와있는 수현을 보고, 연희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었다.

"가마를 준비해 두었다. 가자."

성큼성큼 걸어가는 수현의 뒤를 연희가 말없이 뒤따랐다.

혹시 모를 기대감에 힐끔힐끔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수현을 따라온 수하 한명과 궁녀 한 사람이 전부였다.

어디에도 세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감과 아쉬움, 그리고 씁쓸함이 가슴속에 스멀스멀 고이는 것만 같았다.

재촉하려해도 발걸음은 미련을 담아 절로 느려졌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은 눈길은 자꾸 동궁전을 향했다.

이것이 마지막 이련가.....한번 더 세자의 얼굴을 보고 떠나고 싶었다.

연희는 아쉬움에 가슴이 아려 왔다.

하지만 가야 한다.

이곳에 남아 세자마마의 짐이 되느니, 차라리 나가리라 마음먹지 않았던가.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겼다.

가마에 오른 뒤에도, 바보같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체, 슬며시 작은 창을 열고 동궁전 쪽을 바라보았으나, 그녀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대궐 문을 막 나설 무렵, 일련의 사람들이 포승줄에 묶여 의금부 쪽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연희는 얼마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것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창 너머 끌려가는 사람들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선이 굵은 용모에 강직해 보이는 인상이, 먼 곳임에도 그녀의 눈 안에 쏙 들어왔다.

"나, 나리... 나리... 저분은 누구십니까?"

가마 곁에서 말을 타고 가던 수현은 연희의 말에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쳐다보았다.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저기... 다른 분들과 달리 허리를 꼿꼿이 하신 분 말입니다."

그제야 수현의 눈에도 강직해 보이는 노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저분은...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저분이 바로 네가 꿈에서 들었다는 윤호성 대감이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연희는 다시 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저분이..."

연희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제... 제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 가슴도 진정되지 않습니다. 저분은...어떤 사람입니까..?"

수현은 연희의 상태를 보며 걱정스러운듯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네게는 두려운 상대였던 모양이구나. 서둘러 가자."

수현은 가마의 창문을 닫아주며, 길을 재촉하였고, 가마와 일행은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연희는 닫혔던 창을 다시 살짝 열어 멀어져 가는 윤호성 대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와중에도, 왠지 모르게 그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참을 지나온 후에도 어쩐지 그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과거의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인걸까..?

머리속에 해답이 없는 생각만이 쉼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가운데, 어느덧 집 앞에 이르렀다.

"다 왔다."

가마가 내려지고, 문이 열리자 연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앞으로는 특별한 명을 받은 병사들이 집을 지킬 것이다. 최선을 다해 지켜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연희는 체념한듯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될때까지겠지요?"

연희의 물음에 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제가 필요하니까... 그동안, 지켜주시는 것이겠지요?"

수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후에는 네가 안전히 살 수 있도록 거처를 알아봐 주마.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곳은... 먼 곳이겠죠?"

수현은 연희의 물음에 담긴 뜻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라 대답을 망설였다.

"그곳에 가면... 다시는 세자마마를 뵙지 못하겠지요?"

수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연희의 물음이 드디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이제는 확연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가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냥.... 가까이서... 아주 가까이는 아니더라도... 가끔 뵈올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희는 슬픈 눈으로 수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세자마마께 짐이 되지는 않는 거리에서, 바라보며 살고 싶습니다."

수현은 차마 긍정의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성정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들어가 쉬거라. 필요할 때 기별할 것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다시 뵈올 수 있는 것입니까?"

"기대하지 말거라."

수현이 가차없이 돌아서서 떠나려 하자, 연희는 그를 다급히 부르며 물었다.

"나리, 혹..."

수현은 멈춰 서 돌아보지 않은체 연희의 말을 기다렸다.

"혹... 아까 그분은... 이제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아까 그분이라니... 윤호성 대감 말이냐?"

뜻밖의 물음에 수현은 연희를 향해 몸을 돌려 쳐다봤다.

"예."

"지금쯤이면 이미 처형되었을 것이다."

수현의 말에 연희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예? 처... 처형이라고요? 죽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역모죄에 연루되었으니, 아마도 참수형에..."

말을 하던 수현은 당황해 말을 멈추었다.

마주 선 연희의 눈에서 큼지막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우느냐?"

수현이 놀라 묻는 말에 연희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만졌다.

"제가... 제가 웁니까? 제가 어찌 우는 것입니까?"

연희 역시 자신이 왜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밀려오는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다.

"연희야!"

연희가 휘청거리자, 수현이 놀라 얼른 연희의 팔을 잡아 주었다.

"왜 그러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슬프고, 너무... 너무 가슴이 사무치도록 아프옵니다. 제가 어찌 이러는 겁니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연희는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고통에 의문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뭣들 하느냐?"

수현이 고개를 돌려 소리치자, 따라왔던 나인들이 달려와 연희를 안아 부축하였다.

"일단 들어가 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도록해라. 그리고 필요한것이나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바깥에 있는 내 수하들을 통해 기별하거라."

연희는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이어 힘이 풀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실으며 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는 연희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현은 의아함에 빠졌다.

"어찌 저러는 것인가... 혹, 윤호성 대감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인가? 허나... 이름이 송연희라 하지 않았던가.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수현은 곧 말에 다시 올라, 믿음직한 몇몇 수하들을 남겨둔 체 궁궐로 향했다.



***



한 사람이 주위 신료들과 열심히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그중에 특히 좌의정 최준경이 환한 얼굴로 웃으며 반기었다.

그는 최준경에게 다가와 크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좌상대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준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부탁이야, 내가 해야지. 허허, 어쨌든 축하드리네. 앞으로 잘해봄세."

"예, 대감."

그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인사를 나누다, 문득 먼발치에 양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복색을 보아하니 고관대작 같아 보였기에 의아한 듯 그는 옆에 있는 이에게 물었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그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이가 그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 예판일세. 쯧쯧, 어쩌다 저리 된 건지."

"예? 예판대감께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자네는 지방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잘 모르겠지만... 3년 전 황 대감 일파를 몰아냈을 때만 해도, 예판이 잘 나갔지. 우리 좌상대감의 오른팔이어서, 여식을 세자빈 간택까지 올려놓았는데... 안타깝게도... 혼례를 코앞에 두고 혼절하여 쓰러진 뒤로, 여태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 쯧쯧... 어린 나이에 풍이 웬 말인가."

그들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좌상대감 역시 풀이 죽어 퇴궐하고 있는 예판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운이 이르지 못한 것도 팔자인 게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깨어나길 기다린다는 명분으로 여태 세자빈을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3년이면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이제 그만 세자빈을 다시 간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물론 그래야지요. 그만큼 기다려 주었으면, 예판도 이해할 겁니다."

좌의정이 발걸음을 옮기니, 대소 신료들이 마치 왕을 따르듯, 좌의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반면 홀로 퇴궐하던 예판은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그가 도착한 곳은 기괴한 부적이 잔뜩 붙어 있는 곳으로, 예판이 들어서자 누군가가 예판의 앞을 막아섰다.

"네 이놈! 감히 누굴 막아서는 것이냐?"

예판의 불호령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어 안쪽에 있던 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보더니, 퉁명스러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아야, 지체 높으신 분이시다. 어여 비켜서라."

그제야 앞을 막아선 사내는 마지못한 듯 뒤로 물러섰고, 예판은 불쾌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공 역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더니 예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였다.

"어찌 또 오셨습니까? 한동안 안 오시길래, 이제 안 오시나 했습니다만..."

예판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벌써 3년이 지났네. 정녕... 정녕 이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겐가?"

예판의 말을 들은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수차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미 떠난 영혼입니다. 몸만 살아있을 뿐입죠. 차라리 화장을 하시는 것이..."

"네 이놈!"

예판이 버럭 소리높이자,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직 살아서 숨 쉬고 있는 아이를... 어찌 불에 태워 죽이라 말하느냐? 이.... 안 되겠다. 천방주 어디 있는가? 내 천방주를 만나야겠네."

"방주님이야, 좌상대감께 가 계시겠죠. 방주님을 만나신다 한들, 방주님이 죽은 사람을 되살려 놓지는 못합니다."

예판은 듣기 싫다는 듯 홱하니 돌아 성난 걸음으로 나가려다 말고 한풀 힘이 꺾인 목소리로 다시 돌아서며 말했다.

"분명 자네들이 이야기하지 않았나? 금방 일어나게 해 주겠다고, 어찌 이리 무심한가 말일세."

"그거야, 단순히 풍을 앓았을 때, 이야기 입죠. 지금 애기씨는 풍이 아닙니다. 몸만 살아있을 뿐..."

"됐네."

예판은 듣기 싫다는 듯, 거칠게 소리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놔... 저 늙은이가 진짜..."

그는 이내 바닥에 토하듯 침을 뱉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밖으로 나온 예판은 시름에 빠져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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