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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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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3.42분

11화 - #3


그는 꽤나 불편한 표정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수현은 그자가 왜 그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일은 미안하게 됐소. 규장각 조세춘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오."

수현의 말에 조세춘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얼 확인해 본단 말이오?"

"믿을만한 사람인지."

조세춘은 수현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믿을만 하더이까?"

조세춘의 물음에 수현이 껄껄 거리며 웃었다.

"암, 믿을만하고 말고."

이어 손을 들어 보이며 소리치듯 말했다.

"주모, 여기 술 좀 가져다주시오."

이어 조세춘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작금의 조선 땅에 권력이란 권력은 죄다 가져간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을 견제하려면 아무래도 유능하고 또한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지."

수현의 말에 조세춘은 딴청을 피듯 바깥을 보며 궁시렁 거렸다.

"그거야, 내 알바가 아니오. 그런 얘기를 어찌 내게 하시는 게요. 나는 고작해야 규장각에서 책이나 지키는 교리에 불과할 뿐이오."

조세춘의 말에 수현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품계는 중요하지 않네. 그저 믿을만하고 유능한 사람을 찾고 있을 뿐. 작금에 당상관 중에 좌상의 사람이 아닌 이가 누가 있던가? 기껏해야, 도총관 어른과 나이 지긋하신 영상 대감뿐일세. 그마저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풍전등화 같지."

조세춘은 그런 수현을 보며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믿을만하다 하는 건 그렇다 칩시다. 내가 유능하다는 것은 뭘로 판단하신 게요?"

그 말에 수현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직 판단하지 않았네."

"에?"

"이제 판단하려 하네. 자네가 안목이 있고 유능한 사람인지를... 어떤가, 시험에 응해 보겠는가?"

수현의 말에 조세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실소를 터뜨리며 물었다.

"시험을... 보란 말이오?"

"간단한 시험일세. 금천현(衿川)의 현감에 대해 알아보고 알려주시겠는가?"

조세춘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뒷조사를 하란 말이오?"

"매일 책을 쌓아놓고, 책을 살피는 일을 하니, 그 정도는 별일 아니라 생각되네만. 간단하네, 기록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현 금천현 현감이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해서 현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알아봐 주게."

조세춘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딴청을 피우듯 말했다.

"그걸 알아봐 줘서 내가 얻는 게 뭐요?"

"세자마마의 마음이지."

"거 뭐... 댁이 이야기한 데로, 작금에 권력은 모두 좌상 대감의 손아귀에 있는데, 내가 뭐한다고 세자마마의 마음을 얻는단 말이오?"

"그것이 옳은가?"

난데없는 수현의 질문에 조세춘이 물음의 진의가 무엇이냐는듯 바라보았다.

"뭐요?"

"좌상 대감의 손에 모든 권력이 쥐어져 있는 것이 옳은가 말일세."

"그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요? 그게 옳을 리가 있소?"

"그럼 그 권력이 누구에게 있어야 할 권력인가?"

"아, 당연히 주상전하가 아니오?"

"그렇지. 우리는 그저 옳은 일을 하고자 할 뿐이네. 그리고 우린 자네가 옳은 일에 동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자네는 옳지 않은 일이라 하여, 세자마마의 앞을 막아서지 않았던가?"

조세춘은 할 말을 잃고 수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와주시게. 세자마마께는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하네."

수현의 말에 조세춘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때마침 주모가 술상을 들고 다가와 놓아주니, 수현이 술병을 들며 말했다.

"자자, 일단 오늘은... 술부터 한잔 마시세."

조세춘은 마지못한 듯 술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



창가에 놓여 따사로운 햇빛을 받고있는 난화분에 조심스럽게 물을 주고 있던 최준경 뒤로, 방문이 열리며 막 방에 들어선 이가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최준경은 무심한 듯 쳐다보지도 않고 천을 들어 이제는 난잎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대감마님, 지시하신 일은 잘 처리되었습니다."

들어선 이의 말에도 최준경은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난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했다.

"물론 그 모든 일은 현감이 꾸민 일이겠지?"

최준경의 물음에 그는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모두가 현감이 꾸민 일로 처리될 것입니다. 때마침, 그 현감의 행동을 세자가 눈치챈 것 같은데, 이참에 묶어서 세자까지 치워 버리면 어떻겠습니까?"

그의 말에 최준경이 난을 어루만지다 말고 굳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네놈 따위가 어디라고 망발이냐?"

엄한 최준경의 목소리에 그는 놀란 얼굴로 얼른 몸을 납작업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대감마님..."

"쯧쯧.... 쥐도 새도 모르게 치워지기 싫거들랑, 입조심하거라. 일은 잘 처리했으니, 내 보상은 두둑이 챙겨줄 것이다. 그만 물러가거라."

최준경의 말에 고개를 숙인 체 황급히 방을 도망치듯 나왔다.

문밖 대청마루 아래 댓돌근처에는 언제부터인지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이 보였고 주눅이 든체 그들을 따라 대문으로 향했다.

막 대문을 나서는 그에게, 따라온 하인중 한 명이 무언가를 툭 던졌고, 그는 황급히 그것을 받아 쥐며 놀란듯 그를 쳐다봤다.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옆전꾸러미가 만족스러울만큼 들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되는 주머니였다.

하인은 그를 보며 말했다.

"어이, 태호, 일 좀 잘한다고 대감마님이 이뻐하시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어디 천것이 대감마님한테 헛소리야? 다음에도 그 입 함부로 나불거렸다가는... 내가 직접 네놈 입술을 다 꿰매 버릴라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말을 마친 하인은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멍하니 밖에선 태호라는 남자는, 이내 실소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시벌것들..."

그는 어느새 증오 어린 표정으로 바뀌어 굳게 닫힌 대문을 향해 소리죽인 발길질을 하고는 길을 향해 걸었다.

"날 때부터 잘난 것들이라고, 네놈들을 죄다 씹어 먹어줄라니까... 좀만 기다려라."

그는 분을 삭이며 흐뭇한 손길로 돈주머니를 어루만지고 잃어버릴 새라 속곳안주머니 깊숙히 넣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험악하게 생긴 몇몇 무리가 마주 오고 있었다.

그들은 태호를 보고 불편한 표정이 되어 노려보았고, 그들 중 맨 앞에 선 이가 태호를 보고는 가볍게 목례를 해 보였다.

"다녀오셨습니까?"

그의 인사에 태호는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는, 스치듯 지나가 버렸다.

지나가는 태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일행들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이에게 말했다.

"아, 형님. 대체 왜 저 천 것에게 그리 깍듯하십니까?"

이어 다른 이도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형님. 아무리 형님 명이라지만, 전 좀처럼 이해가 안 됩니다. 아 천하의 주동환이 어찌 저런 천것 나부랭이한테 꼬박꼬박 인사하고 존대를 쓰는 것입니까?"

그들에게 형님이라 불린, 주동환이란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분으로 고하를 구분하는 것은, 저기 잘난 양반네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능력만을 볼 것이다. 그에게는 다른사람에게 없는 출중한 능력이 있으니, 기꺼이 형님으로 모시는 것이다. 두고 보면 알 것이니,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거라."

주동환이 그리 말한 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고, 수하들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내가 알아보라 시킨 것은 어찌되었느냐?"

주동환의 물음에, 뒤따르던 사내 하나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예, 의금부에서 일하는 녀석한테 들은 얘긴데, 연희라는 계집이 있다 합니다. 세자마마의 명으로 각별히 신경 써서 지키고 있다 합디다."

주동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세자가? 세자가 왜?"

대답한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씨... 그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세자가 아주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내가 당연한걸 묻는다며 답답하다는듯 나서 말했다.

"아, 딱 보면 모르겠습니까? 세자가 아주 호색한이구만. 듣자 하니 반반하게 생겼다던데, 지가 어떻게 해볼려고 그러는거 아니겠습니까?"

주동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고, 이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는 그런 위인이 아니다."

그러자 뒤따르던 사내가 어리둥절한 말투로 물었다.

"오잉? 아따 성님이 그걸 워찌 아신데요? 세자마마를 보기라도 하셨소잉?"

주동환은 그의 질문에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냥 주워 들어서 아는 것이다. 어쨌든 세자는 그런 위인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

주동환은 어떻게 연희를 빼내 올지 고심하고 있었다.

"동환아!"

멀리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동환을 따르던 사내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 모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정작 주동환은 듣지 못한 듯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다.

"아따 저 잡것이 이제는 아예 성님 이름을 불러쌌네. 야밤에 확 마 묻어버릴까잉?"

"허~ 와마, 속이 벌렁벌렁한 것이, 오늘 피좀 봐야 쓰것네."

사내들이 하나같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멀찍이서 주동환을 부르는 태호를 노려보았다.

"형님, 형님!"

그들 중 하나가 멍하니 걷는 주동환의 어깨를 살짝 치며 불러 세우자, 그제사 생각에서 깨어난 주동환이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왜?"

"저기...."

사내가 태호를 가리키자, 주동환의 시선이 그제야 태호를 발견했다.

태호는 주동환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손을 들어 이리 와 보라는 듯이 손짓을 해 보였고, 주동환은 그 모습을 보고 그쪽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형님..."

"먼저 가있어."

사내들은 홀로 태호에게 달려가는 주동환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따, 거 진짜... 속에서 열불이 나는 구만."

"언제 형님 모르게 모가지를 따 붑시다. 저 잡것을 그냥..."

사내들은 서로 험악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바닥에 침을 뱉고는 보기 싫은 듯 돌아서서 길을 걸어갔다.

태호 앞으로 주동환이 달려오자, 태호는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고, 주동환은 말없이 그런 태호의 뒤를 따랐다.

인적이 조금 드문 곳에 이르자, 태호가 돌아서서 주동환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일을 좀 서둘러야겠다."

태호의 말에 주동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둘지 않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랬는데.... 저 잡것들이 아주 날 물로 보는구나. 내가 속에서 천불이 나 죽을 판이다."

"서두르다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세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어떨까 싶다."

난데없는 태호의 말에 주동환의 표정이 어리둥절 해졌다.

"예? 아니... 왜 갑자기..."

"왜긴... 차라리 세자가 낫지 않을까 싶은 게다. 세자 정도면... 뭐... 꽤 괜찮지 않겠느냐?"

갑자게 태호는 자기가 세자라도 된 듯, 옷을 털며 으슥해 보였다.

"오히려 움직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 좋지 않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동환의 만류에 태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그건 그렇지."

태호를 보며 주동환이 빙그레 웃었다.

"술 한잔 마시면서, 털어 내시지요. 일은 처음 계획대로 가심이..."

"아니다."

주동환의 말을 끊으며 태호가 말했다.

"서둘든 서두르지 않든, 계획은 바꿔야겠다. 좌상 대감만 밀어줘서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언제까지 저 인간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적당히... 세자에게 힘을 실어줘야겠다. 적당히, 견제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차선책으로라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느냐?"

주동환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면, 어떻게 힘을 실어주실 생각입니까?"

"그걸 고민하고 있다. 어설프게 힘을 실어줘 봐야, 저 약삭빠른 좌상에게 빌미만 제공해줄 뿐이고... 좌상이 나설 명분이 없게끔, 세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세자의 사람이라고 해봐야...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영상뿐 아닌가?"

"차라리, 도총관에게 힘을 실어주시지요."

주동환의 말에 태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도총관? 도총관은 주상의 사람이 아닌가? 주상은 좌상의 말에 감히 토를 달지 못하는 위인이 아닌가?"

"주상이 그리 된 것은, 결국 세자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도총관에게 힘을 실어 주상에게 적당히 권력을 나눠주면, 주상은 반드시 좌상을 견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세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이 되겠지요."

주동환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듯 태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헌데... 도총관에게 어찌 힘을 실어준다는 얘기냐? 작금에 오위도총부라고 해봐야, 고작 궁궐을 지키는 금군을 통솔하는 게 고작이거늘."

"바로 그 점입니다. 다시 예전처럼 수도를 방비할 수 있도록, 어영위를 오위도충부 안에 편제시키십시오. 수도를 방비하는 병력 중 일부가 주상의 손에 들어가면, 주상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영위만으로는 좀 약한데..."

"하지만 그 이상은 좌상이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영위 정도라면, 병판의 결정을 번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태호가 나쁘지 않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좋은 생각이다. 그럼 당장 병판부터 움직여야겠구나. 너는... 적응은 충분히 했겠지?"

"물론입니다."

"때가 되면 다시 기별할 것이다. 그때까지 일전에 내가 얘기한 것들을 시행하고 있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태호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말을 마치자마자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태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동환도, 돌아서서 아까 사내들이 향한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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