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10
희미했던 의식이 돌아오고, 의식만큼이나 흐릿했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져 오면서, 현재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나래는 얼른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손이 뒤쪽으로 돌려진 체 묶여 있고 발도 묶여있어, 몸을 일으켜 앉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어나셨어요?"
뒤쪽에서 들려오는 솔이의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솔이 역시 손과 발이 묶여 누운 체 고개를 들어 나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솔이 너머로 아토와 초코 역시 꽁꽁 싸매듯이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당황스런 상황에 나래가 묻자, 솔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저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깨 보니까... 이렇게..."
나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거지?"
나래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살폈다.
토굴 한쪽 벽을 파고, 트인 곳에 창살을 세워 만든 감옥 같은 곳이었다.
공간 자체가 넓지는 않았지만, 체격이 작은 나래와 솔이가 있기에 부족한 크기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보려고 바둥거리고 있는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드는가?"
소리 난 곳을 보니, 아까 그 노인 난쟁이가 뒷짐을 쥔 체 자신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왜 이러시는 거죠?"
나래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으니, 노인 난쟁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대답했다.
"말했지 않느냐? 천윤도는 신물이라, 제 주인이 아닌 자에게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말에 나래는 얼른 대답했다.
"저도 주인이 아니에요. 주인은 따로 있다고요."
믿지 않는 얼굴로 노인 난쟁이가 옆에 있는 병사를 돌아보자, 그 병사가 창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래에게 다가와 나래 손을 풀어주더니, 나래 앞에 천윤도를 놓고 한걸음 물러섰다.
"천윤도를 들어보거라."
노인 난쟁이의 말에 나래는 바닥에 놓인 천윤도를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내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말해 보거라."
노인 난쟁이의 말에 나래는 천윤도의 뚜껑을 열어 내려놓고는 양손으로 천윤도를 들고 잠시 바라보다가 노인 난쟁이에게 물었다.
"하지만 전.... 할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걸요."
나래의 말에 노인 난쟁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대답했다.
"나는 봉오솔길 까미족의 족장이다."
족장의 말에 나래는 양손으로 천윤도를 꼭 쥐고 이야기했다.
"봉오솔길 까미족, 족장님이 어디 있는지 알려줘."
그러자 천윤도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천윤도의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
신기한 현상에 나래가 놀란 것도 잠시, 어느새 화살표는 족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윤도에서 희미한 빛이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와 족장에 가 닿고 있었다.
이를 본 족장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봐라. 천윤도는 지금 너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자, 이제 우리를 도와 보물을 찾거라."
"보물이요?"
"그래, 보물. 보물 말이다. 우리는 보물을 찾아야 한다."
나래는 당황하여 되물었다.
"어떤 보물이요?"
"모든 보물. 보물이라면 뭐든 상관없다. 땅에 묻혀 있는 세상 모든 보물을 다 찾아낼 것이다."
족장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 마치 광기가 어려있는 것만 같았다.
나래는 난처한 표정으로 족장을 바라보다가 천윤도를 꼭 쥐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후 천윤도의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한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뿜어져 나온 빛이 족장 옆을 지나 어딘가의 벽에 가 닿았다.
다만 그 빛은 방금 전 족장을 가리킬 때보다는 훨씬 희미했다.
"저쪽이다. 저쪽에 보물이 있다. 어서 광부들을 불러라!"
족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자, 뒤에 있던 젊은 까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알려줬으니까 보내주세요."
나래의 요청에, 족장은 흥분이 체 가라앉지 않은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 단지 방향만 안다고 찾을 수 있는 줄 아느냐? 가다 보면 막히기도 하고 돌아서도 가야 한다. 더군다나 천윤도는 빛의 밝기로 거리를 가늠케 해준다. 세상 모든 보물을 다 찾을 때까지 너희는 내 손에 있게 될 것이야."
족장의 이기적인 모습에 나래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뚜껑을 들어 천윤도를 덮었다.
그러자 그 즉시 빛이 사라져 버렸고, 족장의 표정은 굳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제 다신 안 할 겁니다."
나래의 단호한 목소리에 족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불같이 화를 내며 외쳤다.
"감히...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족장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며 외쳤다.
"자귀를 오라 해라."
족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쪽 무리에서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똑같이 검은 털을 뒤집어쓴 동글동글한 체형이지만, 부리부리한 눈에 어쩐지 다른 이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보이는 이였다.
자귀라 불린 이가 족장 앞으로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하자, 족장이 나래를 가리켰다.
"자귀는 고문에 능통하였으니, 네가 우리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너희를 자귀에게 맡길 것이다."
나래는 고문이란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이 물건은 총명 부인의 물건입니다. 지금 총명 부인께서 우리를 찾고 계실 거라고요."
나래가 총명 부인의 이름을 빌어 보려 했으나, 족장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흥! 어림도 없다. 자귀, 네 실력을 보여주거라."
자귀라 불린 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쓴웃음을 짓고는 나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진작에 시키는 대로 했으면 험한 꼴을 보지 않았을 것을...."
자귀가 험악하게 중얼거리며 뒤쪽에 있던 이들에게 손짓을 하자, 젊은 까미 둘이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저 아이의 발을 붙잡아라."
자귀의 명령에 까미 둘이 나래에게 달려들어 나래의 양발을 잡고 당겼다.
"꺅!"
나래는 그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천윤도를 놓쳤고, 천윤도는 옆으로 굴러가 솔이 앞에 가 멈췄다.
자귀가 큼지막해 보이는 울퉁불퉁한 몽둥이를 손에 들고는 나래 발 쪽으로 다가갔다.
"이를 꽉 무는 게 좋을 것이다."
말과 동시에 자귀의 손이 치켜 올라가자, 나래는 무서움에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순간, 발바닥에 상당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윽!"
분명 꽤나 묵직한 충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비명을 지른다거나, 고문이라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래는 이상해서 살짝 눈을 떠보니, 자귀가 다시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발바닥을 힘껏 후려쳤지만, 이번엔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반복되어 가는 동안 자귀는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반면, 발바닥을 그렇게 두드려주니, 나래는 오히려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몸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때릴 때는 나래가 몸을 일으켜 발을 뻗고 앉았다.
약간 힘들어하던 자귀가 의아해 하자, 나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어서 하세요. 자..."
나래는 때리기 편하라고 자귀 앞으로 발바닥을 내밀었다.
자귀는 당황하여 고개를 돌려 족장의 눈치를 보았다가 다시 한번 있는 힘껏 후려쳤다.
나래는 일부러 여유를 부리듯 말했다.
"아~ 시원하다~ 좀 더 세게 쳐봐요."
자귀는 이해할 수없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눈빛이 흔들렸다.
"당장 치워!"
족장이 버럭 소리치자, 나래를 넘어뜨렸던 까미 둘이 자귀를 붙잡아 끌고 나갔다.
"자, 잠깐만요, 족장님! 족장님!"
자귀는 끌려가며 비명 지르듯 소리쳤고, 이를 보고 있던 솔이가 나래를 보며 소근거렸다.
"까미들은 발바닥이 예민해서 조금만 세게 때려도 굉장히 아파해요."
나래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아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이 족장이 끝이 날카로운 죽창을 들고 나래 앞으로 다가왔다.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먼저 저기 있는 닭을 잡아다가 닭죽을 끓여 먹을 것이야. 그다음엔 고양이를 잡아먹고, 저 도깨비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족장의 협박에 나래가 그를 노려보자, 족장은 밖으로 나가 버렸다.
창살문이 닫히고, 족장이 창 너머에서 나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마. 잘 생각해 보거라.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니... 닭죽을 먹고 싶다면, 그리 해보든지."
족장이 협박의 말을 남긴 체, 무리를 이끌고 가버리자 나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솔이를 돌아보았다.
"잠깐만."
나래는 얼른 자신의 발에 묶인 줄을 풀러 낸 다음, 솔이에게 다가가 줄을 풀어 주었다.
솔이는 줄이 풀리자, 얼른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천윤도부터 집어 들었다.
이어서 초코와 아토까지 풀어주자, 정신을 차린 아토가 눈을 껌뻑 거리며 물었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래가 초코의 밧줄을 풀어주는 사이, 솔이는 그간 있었던 일을 초코와 아토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토는 인상을 쓰며 성질을 냈다.
"내 이것들을 그냥... 감히 이 몸을 속여?"
나래는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보물에 집착하는 거야,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보물을 왜 찾는 거야?"
나래의 말에 옆에 있던 솔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까미니깐요. 까미들은 항상 보물을 찾아요."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았다.
"그래? 왜?"
"까미 도깨비는 누군가의 보물이었거든요."
솔이의 말에 나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의 보물이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솔이가 나래의 되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린아이들이, 보물찾기 같은 놀이를 하려고 곳곳에 숨겨두거나 땅속에 묻어둔 물건을 찾지 못해, 그대로 버려지게 된 물건들... 그 물건들에 아이들의 마음이 깃들어 탄생한 게 까미 도깨비예요. 그래서 이 도깨비들은 항상 보물을 찾아요. 마치 숙명과도 같은 거죠."
나래는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 뭔가 큰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울림을 느꼈다.
보물 찾기를 하다가 찾지 못한 물건이 까미 도깨비라니...
"그럼... 실제로는 보물을 찾아서 뭔가를 얻으려 한다기보다, 그저 보물을 찾는 그 자체를 바라고 있단 말이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나래의 목소리에, 솔이는 대답 없이 웃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끊임없이 보물 찾기를 갈구하는 도깨비라니...
하지만 손이 뒤쪽으로 돌려진 체 묶여 있고 발도 묶여있어, 몸을 일으켜 앉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어나셨어요?"
뒤쪽에서 들려오는 솔이의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솔이 역시 손과 발이 묶여 누운 체 고개를 들어 나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솔이 너머로 아토와 초코 역시 꽁꽁 싸매듯이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당황스런 상황에 나래가 묻자, 솔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저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깨 보니까... 이렇게..."
나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거지?"
나래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살폈다.
토굴 한쪽 벽을 파고, 트인 곳에 창살을 세워 만든 감옥 같은 곳이었다.
공간 자체가 넓지는 않았지만, 체격이 작은 나래와 솔이가 있기에 부족한 크기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보려고 바둥거리고 있는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드는가?"
소리 난 곳을 보니, 아까 그 노인 난쟁이가 뒷짐을 쥔 체 자신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왜 이러시는 거죠?"
나래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으니, 노인 난쟁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대답했다.
"말했지 않느냐? 천윤도는 신물이라, 제 주인이 아닌 자에게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말에 나래는 얼른 대답했다.
"저도 주인이 아니에요. 주인은 따로 있다고요."
믿지 않는 얼굴로 노인 난쟁이가 옆에 있는 병사를 돌아보자, 그 병사가 창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래에게 다가와 나래 손을 풀어주더니, 나래 앞에 천윤도를 놓고 한걸음 물러섰다.
"천윤도를 들어보거라."
노인 난쟁이의 말에 나래는 바닥에 놓인 천윤도를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내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말해 보거라."
노인 난쟁이의 말에 나래는 천윤도의 뚜껑을 열어 내려놓고는 양손으로 천윤도를 들고 잠시 바라보다가 노인 난쟁이에게 물었다.
"하지만 전.... 할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걸요."
나래의 말에 노인 난쟁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대답했다.
"나는 봉오솔길 까미족의 족장이다."
족장의 말에 나래는 양손으로 천윤도를 꼭 쥐고 이야기했다.
"봉오솔길 까미족, 족장님이 어디 있는지 알려줘."
그러자 천윤도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천윤도의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
신기한 현상에 나래가 놀란 것도 잠시, 어느새 화살표는 족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윤도에서 희미한 빛이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와 족장에 가 닿고 있었다.
이를 본 족장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봐라. 천윤도는 지금 너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자, 이제 우리를 도와 보물을 찾거라."
"보물이요?"
"그래, 보물. 보물 말이다. 우리는 보물을 찾아야 한다."
나래는 당황하여 되물었다.
"어떤 보물이요?"
"모든 보물. 보물이라면 뭐든 상관없다. 땅에 묻혀 있는 세상 모든 보물을 다 찾아낼 것이다."
족장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 마치 광기가 어려있는 것만 같았다.
나래는 난처한 표정으로 족장을 바라보다가 천윤도를 꼭 쥐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후 천윤도의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한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뿜어져 나온 빛이 족장 옆을 지나 어딘가의 벽에 가 닿았다.
다만 그 빛은 방금 전 족장을 가리킬 때보다는 훨씬 희미했다.
"저쪽이다. 저쪽에 보물이 있다. 어서 광부들을 불러라!"
족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자, 뒤에 있던 젊은 까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알려줬으니까 보내주세요."
나래의 요청에, 족장은 흥분이 체 가라앉지 않은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 단지 방향만 안다고 찾을 수 있는 줄 아느냐? 가다 보면 막히기도 하고 돌아서도 가야 한다. 더군다나 천윤도는 빛의 밝기로 거리를 가늠케 해준다. 세상 모든 보물을 다 찾을 때까지 너희는 내 손에 있게 될 것이야."
족장의 이기적인 모습에 나래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뚜껑을 들어 천윤도를 덮었다.
그러자 그 즉시 빛이 사라져 버렸고, 족장의 표정은 굳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제 다신 안 할 겁니다."
나래의 단호한 목소리에 족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불같이 화를 내며 외쳤다.
"감히...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족장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며 외쳤다.
"자귀를 오라 해라."
족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쪽 무리에서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똑같이 검은 털을 뒤집어쓴 동글동글한 체형이지만, 부리부리한 눈에 어쩐지 다른 이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보이는 이였다.
자귀라 불린 이가 족장 앞으로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하자, 족장이 나래를 가리켰다.
"자귀는 고문에 능통하였으니, 네가 우리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너희를 자귀에게 맡길 것이다."
나래는 고문이란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이 물건은 총명 부인의 물건입니다. 지금 총명 부인께서 우리를 찾고 계실 거라고요."
나래가 총명 부인의 이름을 빌어 보려 했으나, 족장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흥! 어림도 없다. 자귀, 네 실력을 보여주거라."
자귀라 불린 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쓴웃음을 짓고는 나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진작에 시키는 대로 했으면 험한 꼴을 보지 않았을 것을...."
자귀가 험악하게 중얼거리며 뒤쪽에 있던 이들에게 손짓을 하자, 젊은 까미 둘이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저 아이의 발을 붙잡아라."
자귀의 명령에 까미 둘이 나래에게 달려들어 나래의 양발을 잡고 당겼다.
"꺅!"
나래는 그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천윤도를 놓쳤고, 천윤도는 옆으로 굴러가 솔이 앞에 가 멈췄다.
자귀가 큼지막해 보이는 울퉁불퉁한 몽둥이를 손에 들고는 나래 발 쪽으로 다가갔다.
"이를 꽉 무는 게 좋을 것이다."
말과 동시에 자귀의 손이 치켜 올라가자, 나래는 무서움에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순간, 발바닥에 상당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윽!"
분명 꽤나 묵직한 충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비명을 지른다거나, 고문이라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래는 이상해서 살짝 눈을 떠보니, 자귀가 다시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발바닥을 힘껏 후려쳤지만, 이번엔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반복되어 가는 동안 자귀는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반면, 발바닥을 그렇게 두드려주니, 나래는 오히려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몸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때릴 때는 나래가 몸을 일으켜 발을 뻗고 앉았다.
약간 힘들어하던 자귀가 의아해 하자, 나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어서 하세요. 자..."
나래는 때리기 편하라고 자귀 앞으로 발바닥을 내밀었다.
자귀는 당황하여 고개를 돌려 족장의 눈치를 보았다가 다시 한번 있는 힘껏 후려쳤다.
나래는 일부러 여유를 부리듯 말했다.
"아~ 시원하다~ 좀 더 세게 쳐봐요."
자귀는 이해할 수없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눈빛이 흔들렸다.
"당장 치워!"
족장이 버럭 소리치자, 나래를 넘어뜨렸던 까미 둘이 자귀를 붙잡아 끌고 나갔다.
"자, 잠깐만요, 족장님! 족장님!"
자귀는 끌려가며 비명 지르듯 소리쳤고, 이를 보고 있던 솔이가 나래를 보며 소근거렸다.
"까미들은 발바닥이 예민해서 조금만 세게 때려도 굉장히 아파해요."
나래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아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이 족장이 끝이 날카로운 죽창을 들고 나래 앞으로 다가왔다.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먼저 저기 있는 닭을 잡아다가 닭죽을 끓여 먹을 것이야. 그다음엔 고양이를 잡아먹고, 저 도깨비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족장의 협박에 나래가 그를 노려보자, 족장은 밖으로 나가 버렸다.
창살문이 닫히고, 족장이 창 너머에서 나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마. 잘 생각해 보거라.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니... 닭죽을 먹고 싶다면, 그리 해보든지."
족장이 협박의 말을 남긴 체, 무리를 이끌고 가버리자 나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솔이를 돌아보았다.
"잠깐만."
나래는 얼른 자신의 발에 묶인 줄을 풀러 낸 다음, 솔이에게 다가가 줄을 풀어 주었다.
솔이는 줄이 풀리자, 얼른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천윤도부터 집어 들었다.
이어서 초코와 아토까지 풀어주자, 정신을 차린 아토가 눈을 껌뻑 거리며 물었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래가 초코의 밧줄을 풀어주는 사이, 솔이는 그간 있었던 일을 초코와 아토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토는 인상을 쓰며 성질을 냈다.
"내 이것들을 그냥... 감히 이 몸을 속여?"
나래는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보물에 집착하는 거야,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보물을 왜 찾는 거야?"
나래의 말에 옆에 있던 솔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까미니깐요. 까미들은 항상 보물을 찾아요."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았다.
"그래? 왜?"
"까미 도깨비는 누군가의 보물이었거든요."
솔이의 말에 나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의 보물이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솔이가 나래의 되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린아이들이, 보물찾기 같은 놀이를 하려고 곳곳에 숨겨두거나 땅속에 묻어둔 물건을 찾지 못해, 그대로 버려지게 된 물건들... 그 물건들에 아이들의 마음이 깃들어 탄생한 게 까미 도깨비예요. 그래서 이 도깨비들은 항상 보물을 찾아요. 마치 숙명과도 같은 거죠."
나래는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 뭔가 큰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울림을 느꼈다.
보물 찾기를 하다가 찾지 못한 물건이 까미 도깨비라니...
"그럼... 실제로는 보물을 찾아서 뭔가를 얻으려 한다기보다, 그저 보물을 찾는 그 자체를 바라고 있단 말이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나래의 목소리에, 솔이는 대답 없이 웃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끊임없이 보물 찾기를 갈구하는 도깨비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