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1
순식간에 마법 세계의 신들과 줄줄이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라마는, 서둘러 길을 재촉하여 송이개, 서유림과 함께 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공터에 도착했다.
독특하게 생긴 움막 하나가 공터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거지 행세의 노인이 한 명 서 있다가, 막 도착한 라마 일행을 보며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고 있었다.
"아니, 여기 계셨습니까?"
송이개가 그를 알아보고 먼저 달려가 인사를 건네었고, 라마도 이내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얼마 전 무림맹 분파로 조철웅의 집에서 만난 적 있는 개방의 홍두평이었다.
라마와 유림이 다가가 함께 인사를 하니, 홍두평이 라마를 보며 말했다.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가 보구만."
농담하듯 웃으며 건네는 말에, 라마도 그냥 웃음만 지어 보였다.
"내 자네에게 줄 선물이 하나 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아... 예."
"다름이 아니라 자네에게 무공를 가르쳐 줄까 하였네만. 보아하니 자네는... 별로 내켜하지 않는 듯 하이."
그의 말에 라마가 다시금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그의 말 따나 사실이었다.
지금에 이르러 라마는 마법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과 계약을 맺은 상태, 그야말로 마법사 중에서도 궁극의 상태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무공 초식 몇 가지 정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시바삐 계약한 신들의 힘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라마의 말에 홍두평은 예상했었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나와 비무를 한번 해봄세. 그러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겠는가?"
홍두평의 말에 라마는 살짝 놀란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비, 비무를 하자구요?"
이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찌 제가...."
그런 라마를 보며 홍두평이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되려 나를 걱정하는 모양인데... 내 자네를 죽이진 않을 테니, 너무 염려치 말게."
이쯤 되면 라마도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 적당히 봐주면서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야 뭔가 소득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얼마든지. 내 죽어도 자네를 탓하지 않음세."
옆에서 보고 있는 송이개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 어찌 그러십니까, 어르신. 이보시오, 소협, 소협까지 왜 그러시나."
그런 송이개를 보며 홍두평이 말했다.
"어어, 이개야 걱정하지 말거라. 네 주군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송이개는 그런 홍두평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르신... 소협 무공이 보기보다 아주 고강합니다."
"허허, 이놈 이제 보니 네놈도 나를 못 믿는구나. 허허...."
"그... 그게 아니라..."
홍두평이 느긋하게 걸어 공터의 한가운데 가 서서, 라마를 돌아보았다.
"준비하는데 얼마나 기다려 주면 되겠는가?"
홍두평의 여유로운 태도에, 이젠 라마도 호승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따로 준비는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예의상, 체면은 세워줘야지. 처음부터 마법을 쓰지는 말자 싶은 생각에 홍두평의 맞은편에 선 라마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시작은 검으로 하겠습니다."
"그 말인즉슨, 더 강한 무공이 있으나, 일단 검으로 맛을 보겠다는 건가?"
홍두평의 물음에 라마는 따로 대답하지 않고 검끝을 홍두평에게로 향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라마는 재빨리 홍두평의 중심부를 치고 들었다.
사실 실전에서 익힌 검술이었기에 이렇다 할 초식이나 검결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라마의 공격이었으나, 내공이 실린 공격이라 별생각 없이 막아섰다가는 바로 내공 대결로 이어질 수 있었다.
홍두평은 라마의 이런 공격이 자신의 내력에 자신이 있는 것임을 알고, 돌진해 오는 라마의 검끝을 피하기는커녕 오른손을 뻗어 검에 맞섰다.
순간 라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랍게도 홍두평은 검지와 엄지로 라마의 검끝을 잡고 멈춰 세운 것이다.
분명 상당한 내력이 실려 있었음에도, 마치 벽에 막힌 듯 꼼짝하지 않았다.
'내력이 엄청나구나!'
라마는 속으로 깜짝 놀라 해 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검은 홍두평의 두 손가락 사이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힘대결이구나 싶은 생각에 라마는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마나로 치환된 양을 경험해본 라마는, 자신의 내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엄청난 힘으로 홍두평의 손에서 검을 빼내려 하는 순간, 검은 황당하게도 쏙 빠져나와 버렸다.
"읏!"
순간 신음소리와 함께 라마가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당황한 라마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의 앞에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웃고 서 있는 홍두평이 보였다.
"이번에는 진짜로 갑니다!"
라마가 경고하듯 말을 하며 이번엔 내력을 최대로 끌어보아 홍두평의 정면을 공격했다.
힘과 힘대결에서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라마의 의도와 달리, 이번에 홍두평은 라마의 공격을 옆으로 살짝 피해 흘려버렸다.
"엇!"
이번에도 너무 힘을 실은 나머지 라마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라마의 그런 어색한 행동에 구경하던 유림과 이개 역시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간 고수들과의 싸움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왔던 라마이니, 이런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악물고, 매섭게 홍두평을 쏘아보며 검을 고쳐 잡았다.
"이얏!"
기합소리와 함께 라마의 검이 홍두평에게로 향했다.
더 이상 체면이고 뭐고 없었고, 급소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런데 홍두평은 그런 라마의 공격을 흘리듯 기묘하게 움직이다가, 어느새 라마의 안쪽을 파고들었다.
"세 번 봐주었네."
그 한마디 말과 동시에, 라마의 복부에 홍두평의 두 손이 펼쳐진 체 다가왔다.
'펑!'
흡사 그러한 소리였다.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동시에 라마가 뒤로 훌쩍 날아갔다.
바닥에 고꾸라져 뒹굴더니,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뒤척거렸다.
"백결신장(百結神掌)이라 하네. 육성의 힘만을 쓴 것이니, 자네 내력 정도면 버틸만 할 것일세."
라마는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 곳에서 콜록거리며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일어났다.
그런 라마를 보며 홍두평이 말을 이었다.
"어찌하여 그리 큰 내력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힘만 쎈 바보 같구나. 기본도 기초도 없고, 강한 힘을 가지고도 운용하는 법을 모르니, 어찌 고수라 할 수 있겠는가?"
홍두평이 혀를 차며 말을 하니, 라마가 매서운 눈으로 홍두평을 응시하며 말했다.
"진짜는 이제부터 입니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라마의 말에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제야 제대로 해볼 마음이 생긴 모양이구만. 그럼 내 이번에는 삼초를 봐주지는 않겠네."
여전히 여유 부리는 홍두평을 보며 라마는 내공을 마나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라마의 머리카락이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고, 눈이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이를 홍두평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홍두평을 보며 송이개가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소협이 변하면 신묘한 무공을 씁니다."
라마는 마나의 기운을 느끼면서 오른손을 들어 말했다.
"권능의 불꽃..."
그러나 그 말을 체 다하기도 전에, 언제 다가왔는지 홍두평이 바로 코앞에서 라마의 오른손 손목을 거머쥐며 말했다.
"느려."
이어 라마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내쳐졌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라마는 순간적인 통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력이 마나로 치환되면서, 내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몸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고, 그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라마는 코에서 비릿한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옷소매로 코를 훔쳤다가,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피?"
그런 라마를 홍두평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텐가? 내가 적이었다면 자넨 벌써 죽었네."
"이익!"
라마가 있는 힘껏 양손을 뻗어 올리자, 라마를 중심으로 둥근 보랏빛 원이 그려짐과 동시에 홍두평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오호라?"
홍두평은 당황하기는커녕 신기하다는 듯이 점점 빠르게 올라가는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라마는 중력계 마법으로 홍두평을 위로 올렸다가 강한 중력으로 바닥에 내리 꽃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허공에 떠오른 홍두평이 손을 튕기자, 라마의 몸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홍두평은 자신을 떠올리던 힘이 사라지자, 마치 허공에서 계단을 딛고 내려오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사뿐하게 내려섰다.
그는 누워서 두 팔을 든 체, 가만히 있는 라마에게 다가갔다.
라마는 온몸이 굳어진 체 말을 듣지 않았고, 눈만 껌뻑거리며 움직일 수 있었다.
"점혈을 하였네. 잠깐 동안 움직이지 못할 것이야.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을 터이니, 잠시 누워서 생각을 좀 정리해 보시게."
홍두평은 그리 말하고는 뒷짐을 쥔 체, 송이개 쪽으로 갔다.
"자네는 이름이 뭔가?"
유림에게 묻는 말에, 유림은 누워있는 라마를 보다가, 움찔하고 놀라고는 얼른 대답했다.
"서, 서유림이라 하옵니다, 어르신."
공손하게 대답하는 유림을 보며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자네는 예의가 바른 사람같구만. 이리 안으로 들어오시게. 소협이 생각을 정리할 동안, 우린 차 한잔 함세."
"예예, 그리하겠습니다."
유림이 굽신 거리며 따라가려 하니, 송이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 하오나, 어르신. 소협을 저리 두고 가기엔...."
그런 송이개를 보며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염려 말거라. 그저 생각할 시간을 준 것뿐이니, 저도 들어와 차 한잔 하거라."
그의 말대로 라마는 꼼작도 하지 못한 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엇일까, 뭔가를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불쾌하고 짜증 나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법계 최강의 힘을 손에 넣었음에도 이렇게 무력하게 패배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적수가 없을 줄 알았건만, 웬 거지 할아버지한테 실력 발휘 한번 못해보고 당하다니 너무 치욕스러웠다.
비록 씩씩 거릴 순 없었지만, 분을 삭이기 힘들 만큼 원통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고 생각이 점차 차분해졌다.
생각해보면 제대로 무공을 배운 거라고는 철무방 백무보에게 며칠 배운 철근공이 전부였다. 죽었다 다시 시작하는 윤회의 고립 덕택에 무수한 고수들과의 실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요령을 터득한 것이 있다곤 하나, 뭔가 체계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운용하는 법을 모르니, 힘만 센 바보와 같다는 홍두평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이렇게 누워서 생각하고 있으니,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막상 싸우려 할 때, 무슨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힘의 운용, 그것을 가지지 못한다면, 홍두평의 말대로 힘만 센 바보와 뭐가 다를까.
어쩌면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진정한 스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무렵, 스르륵 몸에 점혈이 풀렸다.
"어?"
라마가 얼른 몸을 일으켜 자신의 손을 살폈다.
확 저 움막에다가 메테오를 던져 버릴까 싶은 생각도 잠시, 뭔지 모르지만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이 드는 라마였다.
독특하게 생긴 움막 하나가 공터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거지 행세의 노인이 한 명 서 있다가, 막 도착한 라마 일행을 보며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고 있었다.
"아니, 여기 계셨습니까?"
송이개가 그를 알아보고 먼저 달려가 인사를 건네었고, 라마도 이내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얼마 전 무림맹 분파로 조철웅의 집에서 만난 적 있는 개방의 홍두평이었다.
라마와 유림이 다가가 함께 인사를 하니, 홍두평이 라마를 보며 말했다.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가 보구만."
농담하듯 웃으며 건네는 말에, 라마도 그냥 웃음만 지어 보였다.
"내 자네에게 줄 선물이 하나 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아... 예."
"다름이 아니라 자네에게 무공를 가르쳐 줄까 하였네만. 보아하니 자네는... 별로 내켜하지 않는 듯 하이."
그의 말에 라마가 다시금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그의 말 따나 사실이었다.
지금에 이르러 라마는 마법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과 계약을 맺은 상태, 그야말로 마법사 중에서도 궁극의 상태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무공 초식 몇 가지 정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시바삐 계약한 신들의 힘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라마의 말에 홍두평은 예상했었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나와 비무를 한번 해봄세. 그러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겠는가?"
홍두평의 말에 라마는 살짝 놀란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비, 비무를 하자구요?"
이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찌 제가...."
그런 라마를 보며 홍두평이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되려 나를 걱정하는 모양인데... 내 자네를 죽이진 않을 테니, 너무 염려치 말게."
이쯤 되면 라마도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 적당히 봐주면서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야 뭔가 소득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얼마든지. 내 죽어도 자네를 탓하지 않음세."
옆에서 보고 있는 송이개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 어찌 그러십니까, 어르신. 이보시오, 소협, 소협까지 왜 그러시나."
그런 송이개를 보며 홍두평이 말했다.
"어어, 이개야 걱정하지 말거라. 네 주군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송이개는 그런 홍두평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르신... 소협 무공이 보기보다 아주 고강합니다."
"허허, 이놈 이제 보니 네놈도 나를 못 믿는구나. 허허...."
"그... 그게 아니라..."
홍두평이 느긋하게 걸어 공터의 한가운데 가 서서, 라마를 돌아보았다.
"준비하는데 얼마나 기다려 주면 되겠는가?"
홍두평의 여유로운 태도에, 이젠 라마도 호승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따로 준비는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예의상, 체면은 세워줘야지. 처음부터 마법을 쓰지는 말자 싶은 생각에 홍두평의 맞은편에 선 라마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시작은 검으로 하겠습니다."
"그 말인즉슨, 더 강한 무공이 있으나, 일단 검으로 맛을 보겠다는 건가?"
홍두평의 물음에 라마는 따로 대답하지 않고 검끝을 홍두평에게로 향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라마는 재빨리 홍두평의 중심부를 치고 들었다.
사실 실전에서 익힌 검술이었기에 이렇다 할 초식이나 검결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라마의 공격이었으나, 내공이 실린 공격이라 별생각 없이 막아섰다가는 바로 내공 대결로 이어질 수 있었다.
홍두평은 라마의 이런 공격이 자신의 내력에 자신이 있는 것임을 알고, 돌진해 오는 라마의 검끝을 피하기는커녕 오른손을 뻗어 검에 맞섰다.
순간 라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랍게도 홍두평은 검지와 엄지로 라마의 검끝을 잡고 멈춰 세운 것이다.
분명 상당한 내력이 실려 있었음에도, 마치 벽에 막힌 듯 꼼짝하지 않았다.
'내력이 엄청나구나!'
라마는 속으로 깜짝 놀라 해 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검은 홍두평의 두 손가락 사이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힘대결이구나 싶은 생각에 라마는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마나로 치환된 양을 경험해본 라마는, 자신의 내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엄청난 힘으로 홍두평의 손에서 검을 빼내려 하는 순간, 검은 황당하게도 쏙 빠져나와 버렸다.
"읏!"
순간 신음소리와 함께 라마가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당황한 라마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의 앞에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웃고 서 있는 홍두평이 보였다.
"이번에는 진짜로 갑니다!"
라마가 경고하듯 말을 하며 이번엔 내력을 최대로 끌어보아 홍두평의 정면을 공격했다.
힘과 힘대결에서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라마의 의도와 달리, 이번에 홍두평은 라마의 공격을 옆으로 살짝 피해 흘려버렸다.
"엇!"
이번에도 너무 힘을 실은 나머지 라마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라마의 그런 어색한 행동에 구경하던 유림과 이개 역시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간 고수들과의 싸움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왔던 라마이니, 이런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악물고, 매섭게 홍두평을 쏘아보며 검을 고쳐 잡았다.
"이얏!"
기합소리와 함께 라마의 검이 홍두평에게로 향했다.
더 이상 체면이고 뭐고 없었고, 급소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런데 홍두평은 그런 라마의 공격을 흘리듯 기묘하게 움직이다가, 어느새 라마의 안쪽을 파고들었다.
"세 번 봐주었네."
그 한마디 말과 동시에, 라마의 복부에 홍두평의 두 손이 펼쳐진 체 다가왔다.
'펑!'
흡사 그러한 소리였다.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동시에 라마가 뒤로 훌쩍 날아갔다.
바닥에 고꾸라져 뒹굴더니,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뒤척거렸다.
"백결신장(百結神掌)이라 하네. 육성의 힘만을 쓴 것이니, 자네 내력 정도면 버틸만 할 것일세."
라마는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 곳에서 콜록거리며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일어났다.
그런 라마를 보며 홍두평이 말을 이었다.
"어찌하여 그리 큰 내력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힘만 쎈 바보 같구나. 기본도 기초도 없고, 강한 힘을 가지고도 운용하는 법을 모르니, 어찌 고수라 할 수 있겠는가?"
홍두평이 혀를 차며 말을 하니, 라마가 매서운 눈으로 홍두평을 응시하며 말했다.
"진짜는 이제부터 입니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라마의 말에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제야 제대로 해볼 마음이 생긴 모양이구만. 그럼 내 이번에는 삼초를 봐주지는 않겠네."
여전히 여유 부리는 홍두평을 보며 라마는 내공을 마나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라마의 머리카락이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고, 눈이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이를 홍두평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홍두평을 보며 송이개가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소협이 변하면 신묘한 무공을 씁니다."
라마는 마나의 기운을 느끼면서 오른손을 들어 말했다.
"권능의 불꽃..."
그러나 그 말을 체 다하기도 전에, 언제 다가왔는지 홍두평이 바로 코앞에서 라마의 오른손 손목을 거머쥐며 말했다.
"느려."
이어 라마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내쳐졌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라마는 순간적인 통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력이 마나로 치환되면서, 내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몸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고, 그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라마는 코에서 비릿한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옷소매로 코를 훔쳤다가,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피?"
그런 라마를 홍두평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텐가? 내가 적이었다면 자넨 벌써 죽었네."
"이익!"
라마가 있는 힘껏 양손을 뻗어 올리자, 라마를 중심으로 둥근 보랏빛 원이 그려짐과 동시에 홍두평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오호라?"
홍두평은 당황하기는커녕 신기하다는 듯이 점점 빠르게 올라가는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라마는 중력계 마법으로 홍두평을 위로 올렸다가 강한 중력으로 바닥에 내리 꽃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허공에 떠오른 홍두평이 손을 튕기자, 라마의 몸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홍두평은 자신을 떠올리던 힘이 사라지자, 마치 허공에서 계단을 딛고 내려오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사뿐하게 내려섰다.
그는 누워서 두 팔을 든 체, 가만히 있는 라마에게 다가갔다.
라마는 온몸이 굳어진 체 말을 듣지 않았고, 눈만 껌뻑거리며 움직일 수 있었다.
"점혈을 하였네. 잠깐 동안 움직이지 못할 것이야.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을 터이니, 잠시 누워서 생각을 좀 정리해 보시게."
홍두평은 그리 말하고는 뒷짐을 쥔 체, 송이개 쪽으로 갔다.
"자네는 이름이 뭔가?"
유림에게 묻는 말에, 유림은 누워있는 라마를 보다가, 움찔하고 놀라고는 얼른 대답했다.
"서, 서유림이라 하옵니다, 어르신."
공손하게 대답하는 유림을 보며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자네는 예의가 바른 사람같구만. 이리 안으로 들어오시게. 소협이 생각을 정리할 동안, 우린 차 한잔 함세."
"예예, 그리하겠습니다."
유림이 굽신 거리며 따라가려 하니, 송이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 하오나, 어르신. 소협을 저리 두고 가기엔...."
그런 송이개를 보며 홍두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염려 말거라. 그저 생각할 시간을 준 것뿐이니, 저도 들어와 차 한잔 하거라."
그의 말대로 라마는 꼼작도 하지 못한 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엇일까, 뭔가를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불쾌하고 짜증 나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법계 최강의 힘을 손에 넣었음에도 이렇게 무력하게 패배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적수가 없을 줄 알았건만, 웬 거지 할아버지한테 실력 발휘 한번 못해보고 당하다니 너무 치욕스러웠다.
비록 씩씩 거릴 순 없었지만, 분을 삭이기 힘들 만큼 원통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고 생각이 점차 차분해졌다.
생각해보면 제대로 무공을 배운 거라고는 철무방 백무보에게 며칠 배운 철근공이 전부였다. 죽었다 다시 시작하는 윤회의 고립 덕택에 무수한 고수들과의 실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요령을 터득한 것이 있다곤 하나, 뭔가 체계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운용하는 법을 모르니, 힘만 센 바보와 같다는 홍두평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이렇게 누워서 생각하고 있으니,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막상 싸우려 할 때, 무슨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힘의 운용, 그것을 가지지 못한다면, 홍두평의 말대로 힘만 센 바보와 뭐가 다를까.
어쩌면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진정한 스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무렵, 스르륵 몸에 점혈이 풀렸다.
"어?"
라마가 얼른 몸을 일으켜 자신의 손을 살폈다.
확 저 움막에다가 메테오를 던져 버릴까 싶은 생각도 잠시, 뭔지 모르지만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이 드는 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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