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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의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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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3.21분

53화 - #3


아직 부상으로 인해 몸이 불편한 주동환은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서다 멈춰섰다.

천태호가 머물고 있는 방안은 기괴한 부적들로 가득했고, 방 한가운데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천태호 앞으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아 보였다.

주동환은 방안 풍경에 놀라 그대로 입구에 굳어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뭘 놀래? 들어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천태호의 말에, 주동환이 신중하게 천태호 곁으로 다가갔다.

"이것들은... 대체 다 무엇입니까?"

주동환의 물음에 천태호가 맺고 있던 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동환을 바라보았다.

"내가 공을 들이고, 들여 키운 율무단의 인원이 백 명이 넘는다. 그 백 명이 넘는 인원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잘 알겠지? 뭐, 사실 율무단을 키우는 데에 네 공이 컸으니 말이야."

주동환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랬는데, 어제 문초를 받다가 죽은 녀석까지 포함해서 뒈진 녀석이 아흔 하나다. 지금 여기 머물고 있는 율무단이 고작 열한 명이고, 아직 잡혀 있는 녀석들이 스물둘이다."

천태호는 분함을 참기 힘든 듯, 이를 갈듯이 분노를 토했다.

"내가... 내가 그것들 만든 다고 들인 공이 얼만데... 씨벌... 내가... 되지도 않는 교주 행세까지 해가면서 만든 녀석들이야, 내가... 이, 이...."

당장이라도 포효할 것 같았던 천태호가 눈을 감고 분을 삭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녀석들을... 그냥 이대로 넋놓고 잃어버릴 수 없는 노릇 아니냐? 보거라, 이것들이 바로 언령(言靈)들이다. 아흔하나의 언령..."

"언...령? 그것이 무엇입니까?"

천태호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원래는 기생령으로 부릴 녀석들이었지. 그들이 들어갈 육신도 준비되기 전에 모두 죽어버렸으니, 언령으로라도 쓸 생각이다. 언령은, 다른 이들에게 의지를 심는 신술(神術)이다. 이제 이들에게 다가갈 대상과 목적을 알려주면, 그들에게 그 의지를 심어주게 되지. 이들을 모두 임금 주위의 사람들에게 심어, 임금을 주살하라 의지를 심게 되면, 그동안 임금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모두 임금을 죽이려 혈안이 되게 될 것이다. 흐하하하"

재밌다는 듯이 웃는 천태호를 보며 주동환이 놀라 물었다.

"임금을... 죽이실 겁니까?"

주동환의 질문에 천태호는 웃다 말고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아니. 예가 그렇다는 것이다. 임금을 죽여서 얻을 것이 없지 않느냐? 더군다나 그 곁에는 홍여립이 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의지를 심는다는 것은, 그가 본디 가지고 있는 욕망을 일깨우거나, 숨겨진 야심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의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어."

천태호는 고개를 돌려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언령들을 보며 말했다.

"이들은 각계각층의 인사들에게 내가 원하는 의지를 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가, 아니 상당수가 폐세자 옹립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주동환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제와 폐세자를 한다고 해서 얻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의 물음에 천태호가 이를 갈듯이 말했다.

"박지언 그 씨벌 새끼랑... 세자... 이 두 새끼를 쳐 죽이지 않으면 내가 분이 안 풀릴 것 같아서 그래, 분이..."

"세자의 몸을 뺏으면 복수는 자연스럽게 하는 것 아닙니까? 차라리 박지언을 쳐내는 것이..."

"아니!"

천태호가 갑자기 주동환의 말을 자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분함을 애써 삭이려 실핏줄까지 터져 충혈된 눈으로 희번덕 거리며 말했다.

"세자 그 새끼... 이제 너무 깊이 들어왔어. 위험해. 세자라는 신분 때문에 쉬이 접근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곁을 지키는 녀석들의 눈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무리하게 세자를 노리지 않겠어. 그보다는, 먹기 쉬운 놈에게 미리 손을 써놓고서, 왕이 되기 직전에 빼앗는 게 낫겠어."

"그게 안영군인 겁니까?"

천태호가 재밌다는 듯이 히히덕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안영군. 이미 두 개의 언령으로 의지를 심어 두었다. 재밌는 건, 그놈 마음속에 가려져 있던 야심이 어마어마하다는 거야. 단지 언령만으로도 사람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러고는 미친놈처럼 한참을 키득 거리며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변했다고 이야기할 거야. 마치 미치광이나 살인마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게 바로 그자의 본성이야. 내내 감춰져 있던 본성이 드러난 거지. 이리가... 이빨을 드러낸 거야. 크흐흐"

주동환은 키득 거리며 웃는 천태호를 보며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연희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연희의 영을 불러들이려면 차라리 일찍 불러들이시는 것이..."

"안돼!"

천태호가 주동환의 말을 단칼에 잘라내며 말했다.

"넌 기생령의 숙주들 목을 자르는 이유를 알지 않느냐? 입막음을 하기 전에 빠져나왔다가, 진실을 알게 되면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어."

"그럼 언제...."

"기다려... 곧 사교도로 몰려 의금부로 압송이 될 거야."

주동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의금부라뇨? 그렇게 되면... 문초를 당할 것이 아닙니까?"

주동환은 이를 악물며 다시 말했다.

"제가 빼낼 것입니다."

단호한 주동환의 목소리에 천태호가 싸늘하게 변한 표정으로 주동환을 노려보았다.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마. 기생령이고 나발이고, 너랑 연희랑 둘 다 소멸시켜 버리는 수가 있어."

하지만 주동환은 조금도 겁먹거나 물러서는 기색 없이 천태호를 응시했다.

"설령 소멸된다 해도 연희는 양보 못합니다."

그런 주동환을 보며 천태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 빌어먹을 순정파 새끼... 잘 들어. 연희가 의금부로 압송되는 건 순전히 세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거야. 언령을 조금 더 써서, 연희가 문초를 당하지는 않게 해 줄게. 됐지?"

주동환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지자, 천태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연희가 의금부에 잡혀가서 심문을 받는다 하면, 세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 아냐. 나서서 구하려 들 거고, 그럼 같이 사교도로 몰아서 폐세자를 시킨다. 그게 계획이야."

"주상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제아무리 주상이라도 대역죄를 막지는 못해."

"그다음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어쩌긴... 안영군을 밀어줘서 세자로 만들고, 보위에 올려놓아야지."

"그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동환의 말에 천태호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대역죄로 몰아 폐세자 시키는 것은 뜻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응당 대역죄이니 사약이 내려질 것입니다."

"당연하지. 그런 후환은 죽여 없애는 게 좋아."

"주상에게 은밀히 협상을 제안하십시오."

"협상?"

"그렇습니다. 세자를 살려주는 대신, 안영군에게 보위를 넘기라 하십시오. 상왕이 되어 물러나면, 세자를 살려주겠다고 한다면... 주상은 받아들일 것입니다."

천태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헌데... 세자를 살려뒀다가 나중에 후환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일단 폐세자 시킨 후, 멀리 유배 보내 두십시오. 주상이 상왕이 되어 물러나고 안영군을 보위에 올려놓은 뒤, 적당한 때에 상왕을 제거하고, 그다음에 세자에게 사약을 내리시면 됩니다."

주동환의 말에 천태호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나마 있는 놈들 중에 네가 제일 낫구나. 너 같은 녀석이 한놈만 더 있었어도... 좋아, 그리하마."

그리고는 몸을 돌려 언령들을 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이제 곧, 내가 왕이 될 것이다. 으하하하"

그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이른 아침부터, 연희는 분주하게 준비하여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오다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 세자가 보여, 황급히 달려 나가 세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천천히 오거라, 그러다가 넘어지겠구나."

세자의 걱정스런 말에, 연희가 당황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 어찌 이리 이른 시간에 오신 것이옵니까?"

"어찌 오긴? 네가 보고 싶어서 왔지."

"하, 하오나 저하..."

당황해하는 연희를 보면서, 세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지척까지 다가서며 물었다.

"너... 요즘 궁궐 예법을 공부하느냐? 공부하지 말거라. 이제와 예법은 뭣하러 익히느냐?"

연희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세자를 바라보았다.

"저하... 무섭다 하실 땐 언제시고..."

"이젠 익숙해서 괜찮다. 아니,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구나."

그러더니 고개를 둘러 주위를 살폈다.

"어디 보자, 이주변 나무들은 꽃이 피지 않는구나. 어디 산이라도 가야 하나? 내 머리 위로 떨어질 꽃이 없음이 안타깝구나."

장난 같은 세자의 농담에 연희는 과거의 행동이 생각나 그제야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연희를 보며 세자는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세자의 등 뒤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수현의 모습이 보였다.

"저하, 금호 나리께서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가 고개를 돌리니, 그의 앞으로 달려온 수현이 숨을 헐떡이며 인사를 건네 왔다.

"무슨 일이냐?"

세자의 물음에 수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저하,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간밤에 잡혀온 사교도 무리들이 고변을 했다 합니다."

세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몸을 완전히 돌려 수현에게 다가섰다.

"그래? 천태호란 작자에 대해 불었더냐?"

수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수현의 눈길이 연희에게로 향하며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이어 말했다.

"연희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연희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세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연희는 왜?"

"그자들이 모두 연희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이라 고변했다 합니다."

세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런 고변을 했다고? 간밤에? 간밤에 한 것을 왜 이제 이야기하는 것이냐?"

"추국장에서 고변한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시간이 없다. 일단 연희를 궁궐 밖으로..."

그때 세자의 눈에, 이곳으로 달려오는 병사들이 보였다.

세자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연희 앞을 가로막아 섰다.

"이 웬 소란이냐?"

세자가 버럭 소리치자, 병사들이 세자 앞에 도열하고 섰고,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한걸음 나서 세자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저하, 송연희를 의금부로 압송하라는 명을 받고 왔사옵니다."

"의금부라니, 누구의 명을 받고 그리한단 말이냐?"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병사들 뒤에서 들려왔다.

"소신이 그리 하라 명하였습니다."

그는 태연히 걸어와 세자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니, 바로 대사헌인 윤일호 대감이었다.

"간밤에 사교도 잔당들의 입에서 송연희라는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하여, 조사하기 위해 명을 내렸습니다."

윤일호 대감은 병졸을 이끌고 온 수장에게 고갯짓하며 명령했다.

"영이는 뭐하느냐? 당장 명을 수행하라."

근엄한 그의 목소리에, 영이라 불린 수장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예, 아버지."

이어 세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하,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습니다. 엄연히 국법을 수행하고 있으니, 그만 물러나 주십시오."

거기에 힘을 보태듯 윤일호대감이 나서 말했다.

"이 일은 의금부의 일입니다. 저하께옵서 의금부의 일을 막아설 수는 없습니다."

세자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계속 막아선다면, 자신 조차 위험해진다는 것을. 허나 그렇다고 연희를 그들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

세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때, 등 뒤에 있던 연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연희야!"

세자가 연희를 만류하며 그녀를 붙잡았지만, 오히려 연희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저하."

세자는 보낼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연희를 바라보았고, 연희는 괜찮다는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자신을 붙잡은 세자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추포 하라!"

명이 내려지자, 뒤에 있던 의금부 병사들이 달려와 연희를 양쪽에서 붙잡았다.

"잠깐!"

문득 불러세우는 세자의 목소리에, 연희를 데려가려던 영이란 수장이 세자를 돌아보았다.

세자는 그에게로 다가서며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는다 했더니, 처음 연희를 만났을 때 추국장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었구나."

세자의 말에 그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의금부 동지사 윤하령이라 하옵니다."

그의 곁으로 대사헌 윤일호가 다가서며 말했다.

"이 사람의 막내아들입니다. 성격이 유순하여 의금부 일이 맞지 않는다 말렸는데도... 굳이 나서 하고 있습니다."

경계하듯 이야기하는 윤일호와 일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 윤하령을 보며 세자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다시... 보십시다."

세자의 짧은 인사에 윤하령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연희를 데리고 병사들과 함께 의금부로 향했다.

세자는 굳은 표정으로 붙잡혀 가는 연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 주먹을 꽉쥔 체,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연희를 바라보고 서 있는 세자는, 잡혀가는 연희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똑같은 모습으로 잡혀갔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또...."

세자는 나지막하게 되뇌며, 분한 얼굴로 끌려가는 연희의 뒷모습 바라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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