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1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모용연을 만났던 곳을 기준으로, 대략 그녀가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객잔을 하나 둘 살펴보고 있었다.
객잔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두 번째 객잔에 이르렀을 무렵, 때마침 아침 공기를 마시며 나와있는 모용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마는 지체 없이 모용연에게 달려가 말했다.
"저들이 여기 있는지 알고 있으니, 서둘러 피해야 합니다."
난데없는 라마의 등장에 모용연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가, 이야기를 듣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저들이라뇨? 누구 말입니까?"
"의천맹 말입니다. 의천맹에 섭위장이란 자가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라마의 말에 안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있던 모용연은 더 이상 커지기 힘들 만큼 크게 떴다.
"의천맹이? 이곳을 어찌 알고..."
"설명하기 힘드니, 서둘러 피합시다."
그 말에 모용연이 다시 객잔 방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가자니까 뭘..."
"아저씨, 일어나요. 의천맹이 오고 있답니다."
모용연의 말에, 예의 그 거지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났다.
"의천맹?"
라마는 그 거지를 보자 왠지 반갑기도 하고, 이 아침까지는 살아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나오시오."
라마의 재촉에 거지와 모용연이 밖으로 나왔다.
"엥? 이 사람은 여기 왜...? 그리고 그게 사실이오? 의천맹이 온다는 게?"
라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시간이 없소. 어서 몸을 피합시다. 설명은 그다음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라마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가다가 일단 몸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에 길이 아닌 산 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고작 해봐야 언덕배기 하나 올랐을 무렵이었다.
일련의 사람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나타나자 라마는 얼른 몸을 낮추어 나무 뒤에 몸을 숨겼고, 모용연과 거지도 그 뒤에 몸을 숨겼다.
과연 깃발은 의천맹의 깃발이었고, 대략 사십여 명의 사람들이 방금 전까지 모용연이 있던 객잔을 둘러쌌다.
거리가 좀 있었기에, 그들이 하는 말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멀리서나마 짜증을 내는 섭위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용연과 거지는 의천맹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가고, 라마가 몸을 일으키자 모용연이 따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협,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용연이 정중히 인사하자, 거지도 따라서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소인이 소협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하게 군것을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라오."
라마는 손사례를 치며 대답했다.
"됐소, 됐소. 나도 우연히 알게 되어 도와줄 수 있었던 것뿐이오. 이제 조심히 돌아가시오."
라마의 말에 모용연이 간곡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차례 도움을 받았으니, 이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저희 가문으로 가시지요. 제 아버지께서 크게 대접하실 겁니다."
이어 거지가 나서 말했다.
"우리를 구한 걸 알면 무림맹에서도 보답하려 할 거요, 실력도 출중하니 귀하게 쓰려 할터, 함께 가십시다."
무림맹이라...
이른바 정파무림을 대변한다는 무림맹에 대해서 좀 궁금하기는 했었다.
결코 모용연이 이뻐서 같이 있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쁘긴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고, 무림맹이 궁금했다.
장인어른, 아, 아니... 모용연의 아버지란 사람도 만나서 인물됨이 어떤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가족이 된다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니까. 훗!
라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대답했다.
"뭐... 그럽시다."
모용연과 거지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디로 가면 되오?"
"날 따라오시오, 내 길이라면 어디서든 찾아갈 자신이 있소."
거지의 말에 라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거지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기보다 산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어쨌든 지척에 의천맹이 있다는 걸 아는 이상, 섣불리 눈에 띄는 장소로 가기는 어려웠다.
걷는 동안 모용연이 물어왔다.
"소협께서는 존함이 라마라 하셨는데, 하오면 성이 어찌 되십니까?"
"아... 성이요?"
라마는 잠시 생각했다.
성은 마샤크 인데... 그게 이미 이름에 포함되어 있으니...
성을 하나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자 그냥 대충 둘러대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도 라에요, 라. 라라마."
"라라마?"
앞서 가던 거지가 의아한 듯 물었다.
"라씨 성도 있었나?"
라마는 그냥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나도 아직... 아, 저씨? 이름을 모르는데..."
라마가 말끝을 흐리자, 거지가 가다 말고 고개를 돌려 조금은 흉측해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개, 송이개라 하오. 원래는 개방(丐幇)의 소속이나, 인연이 있어 연 아가씨를 보필하게 되었소."
라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헌데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된 겁니까? 듣자 하니 의천맹이 무림맹의 지부를 공격했다고 하는 거 같던데..."
라마의 물음에 모용연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저들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자들이요. 감히 무림맹의 지부를 공격하였으니, 만천하에 이를 알려 저들을 지탄받게 할 것이며, 무림맹과 함께 저들을 처단할 것입니다."
"저들이라 함은... 의천맹을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입니다."
"의천맹에는 어떤 세력들이 있습니까?"
라마의 물음에 모용연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의천맹에 대해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라마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하하... 그게... 내 산골 깊숙이 살다 나와서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무림맹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 대변된다면, 의천맹은 북해궁, 해남검문, 철무방 등의 십오대 세력과 풍림양가, 황보세가등 일곱 가문으로 이루어진 사파 집단입니다."
라마는 철무방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금 백무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에게 있어 라마는 그저 데려온 다음날 말 한마디 없이 도망친 자일뿐이었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어찌 그렇게 싸우는 것입니까?"
"사파인들은 헛된 말로 선량한 무림인들을 현혹하며, 살생과 죄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사파라 부르고, 무림에서 처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마는 백무보를 떠올렸다.
섭위장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할 것 같았지만, 백무보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부부싸움은 아직 이르.... 아니 불필요한 다툼은 아직 성급해 보였다.
라마가 돌연 피식 웃자, 모용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라마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니오. 내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그렇소. 험험..."
라마는 애써 웃음을 참아내며 화제를 돌렸다.
"가문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라마의 물음에 앞서가던 이개가 걸어가며 대답했다.
"열심히 걸으면 칠일 이내에 당도할 것입니다."
칠일이란 말에 라마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7일?'
하... 괜히 따라온다고 했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어온다.
***
딱 6일째 되는 날, 라마와 모용연은 모용세가의 저택 앞에 이를 수 있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주구장창 걸어만 왔는데, 아마도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쓰러졌으리라.
이놈에 내공이란 놈은 쓸데없이 활용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이, 모용연이 서둘러 문을 두드렸다.
"나 왔어~"
그녀의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진다.
문이 열리고 안에 있는 사람이 모용연을 보자마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애기씨? 무사하셨습니까?"
"응. 아버지는 어디 계셔? 급히 아뢸 일이 있어."
"예예, 어서 들어오시지요."
모용연이 고개를 돌려 라마에게 오라고 손짓을 해 보이자, 송이개가 옆에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소협."
"아, 예예..."
두 사람은 모용연을 따라 드디어 모용세가 안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저택 문을 너머 안으로 들어서니 도저히 집안이라고 믿기 힘든 널찍한 마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내 아가씨가 돌아오셨습니다."
문을 열어준 이가 큰소리로 외치니, 이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진짜다! 연이 아가씨가 돌아오셨어."
"맙소사, 살아계셨구만. 하늘이 도왔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몰려들었고, 게 중에 꽤 훈남처럼 보이는 남자가 부랴부랴 달려 나오더니 모용연에게 다가왔다.
"연아!"
"담 오라버니!"
그는 달려와 연을 끌어안으며 그녀를 반겼다.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어제 지부 소식을 듣고 여태 가슴 졸였었다. 안 그래도 오늘 너를 찾으러 가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던 중이었다."
모용연이 글썽거리는 눈물을 훔치며, 뒤에 있는 라마를 가리켰다.
"저기 계신 소협께서 구명해 주셨습니다. 아니었다면 전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모용연의 말에 모용담이 라마를 보며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우리 연이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마도 황급히 마주 인사하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중년의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둘은 모용연을 보자 기뻐하며 다가왔다.
"연아!"
"아버지, 어머니."
모용연이 달려가 두 사람을 부둥켜안는 모습을 보며 모든 사람들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어떻게 살아 돌아온 것이야?"
이번에도 모용연이 라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협께서 구해주셨습니다."
라마가 어색하게 웃는 사이,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소협. 연이의 아비 되는 모용무훈이라 합니다."
라마는 서둘러 마주 인사하며 대답했다.
"저...저는 라마라 합니다."
"못난 제 여식을 구해주셔서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먼길을 오셨으니, 식사부터 하시지요."
"예예... 그러겠습니다."
다들 분주하게 바쁜 와중에 모용담이 라마를 보며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이곳에 계신 동안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라마는 모용담을 따라 모용세가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처음 보았던 커다란 마당을 지나 여러 개의 문중에 제일 끝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놀랍게도 집 안쪽으로 자그마한 강물이 흐르고 있고, 그 물 주위로 화려한 장식과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니 이곳저곳에 휘양 찬란한 장식들이 모였고, 장식들을 지나서 다시 커다란 문 하나를 지나자, 또다시 커다란 마당이 나왔다.
그 큰 마당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가니, 또다시 문이고, 또 마당이 나왔다.
정말 얼마나 큰 집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윽고 모용담과 라마는 아담하게 지어진 화려한 집 한 채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쉬십시오. 제가 전담할 하인을 불러올 테니, 잠시 여독을 풀며 쉬고 계시면 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처나... 아니, 감사합니다."
모용담이 물러가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집안이 꽤 넓고 화려했다.
갖가지 장식으로 꾸며진 널찍한 입구를 지나 화려한 찻잔들이 놓인 탁상이 보였고, 글공부를 할 수 있는 책상 하며, 이름 모를 서책들이 꽂혀있는 책장까지, 어느 것 하나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 장인이 잘 사는구나.'
속으로 했던 생각이지만, 이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하지만 저도 모르게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좋네. 좋아. 캬~ 그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지."
라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후~"
얼마 만에 가져보는 여유인가?
되도록이면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40년?
모용연을 만났던 곳을 기준으로, 대략 그녀가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객잔을 하나 둘 살펴보고 있었다.
객잔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두 번째 객잔에 이르렀을 무렵, 때마침 아침 공기를 마시며 나와있는 모용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마는 지체 없이 모용연에게 달려가 말했다.
"저들이 여기 있는지 알고 있으니, 서둘러 피해야 합니다."
난데없는 라마의 등장에 모용연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가, 이야기를 듣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저들이라뇨? 누구 말입니까?"
"의천맹 말입니다. 의천맹에 섭위장이란 자가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라마의 말에 안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있던 모용연은 더 이상 커지기 힘들 만큼 크게 떴다.
"의천맹이? 이곳을 어찌 알고..."
"설명하기 힘드니, 서둘러 피합시다."
그 말에 모용연이 다시 객잔 방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가자니까 뭘..."
"아저씨, 일어나요. 의천맹이 오고 있답니다."
모용연의 말에, 예의 그 거지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났다.
"의천맹?"
라마는 그 거지를 보자 왠지 반갑기도 하고, 이 아침까지는 살아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나오시오."
라마의 재촉에 거지와 모용연이 밖으로 나왔다.
"엥? 이 사람은 여기 왜...? 그리고 그게 사실이오? 의천맹이 온다는 게?"
라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시간이 없소. 어서 몸을 피합시다. 설명은 그다음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라마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가다가 일단 몸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에 길이 아닌 산 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고작 해봐야 언덕배기 하나 올랐을 무렵이었다.
일련의 사람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나타나자 라마는 얼른 몸을 낮추어 나무 뒤에 몸을 숨겼고, 모용연과 거지도 그 뒤에 몸을 숨겼다.
과연 깃발은 의천맹의 깃발이었고, 대략 사십여 명의 사람들이 방금 전까지 모용연이 있던 객잔을 둘러쌌다.
거리가 좀 있었기에, 그들이 하는 말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멀리서나마 짜증을 내는 섭위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용연과 거지는 의천맹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가고, 라마가 몸을 일으키자 모용연이 따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협,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용연이 정중히 인사하자, 거지도 따라서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소인이 소협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하게 군것을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라오."
라마는 손사례를 치며 대답했다.
"됐소, 됐소. 나도 우연히 알게 되어 도와줄 수 있었던 것뿐이오. 이제 조심히 돌아가시오."
라마의 말에 모용연이 간곡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차례 도움을 받았으니, 이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저희 가문으로 가시지요. 제 아버지께서 크게 대접하실 겁니다."
이어 거지가 나서 말했다.
"우리를 구한 걸 알면 무림맹에서도 보답하려 할 거요, 실력도 출중하니 귀하게 쓰려 할터, 함께 가십시다."
무림맹이라...
이른바 정파무림을 대변한다는 무림맹에 대해서 좀 궁금하기는 했었다.
결코 모용연이 이뻐서 같이 있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쁘긴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고, 무림맹이 궁금했다.
장인어른, 아, 아니... 모용연의 아버지란 사람도 만나서 인물됨이 어떤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가족이 된다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니까. 훗!
라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대답했다.
"뭐... 그럽시다."
모용연과 거지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디로 가면 되오?"
"날 따라오시오, 내 길이라면 어디서든 찾아갈 자신이 있소."
거지의 말에 라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거지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기보다 산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어쨌든 지척에 의천맹이 있다는 걸 아는 이상, 섣불리 눈에 띄는 장소로 가기는 어려웠다.
걷는 동안 모용연이 물어왔다.
"소협께서는 존함이 라마라 하셨는데, 하오면 성이 어찌 되십니까?"
"아... 성이요?"
라마는 잠시 생각했다.
성은 마샤크 인데... 그게 이미 이름에 포함되어 있으니...
성을 하나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자 그냥 대충 둘러대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도 라에요, 라. 라라마."
"라라마?"
앞서 가던 거지가 의아한 듯 물었다.
"라씨 성도 있었나?"
라마는 그냥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나도 아직... 아, 저씨? 이름을 모르는데..."
라마가 말끝을 흐리자, 거지가 가다 말고 고개를 돌려 조금은 흉측해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개, 송이개라 하오. 원래는 개방(丐幇)의 소속이나, 인연이 있어 연 아가씨를 보필하게 되었소."
라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헌데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된 겁니까? 듣자 하니 의천맹이 무림맹의 지부를 공격했다고 하는 거 같던데..."
라마의 물음에 모용연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저들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자들이요. 감히 무림맹의 지부를 공격하였으니, 만천하에 이를 알려 저들을 지탄받게 할 것이며, 무림맹과 함께 저들을 처단할 것입니다."
"저들이라 함은... 의천맹을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입니다."
"의천맹에는 어떤 세력들이 있습니까?"
라마의 물음에 모용연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의천맹에 대해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라마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하하... 그게... 내 산골 깊숙이 살다 나와서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무림맹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 대변된다면, 의천맹은 북해궁, 해남검문, 철무방 등의 십오대 세력과 풍림양가, 황보세가등 일곱 가문으로 이루어진 사파 집단입니다."
라마는 철무방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금 백무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에게 있어 라마는 그저 데려온 다음날 말 한마디 없이 도망친 자일뿐이었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어찌 그렇게 싸우는 것입니까?"
"사파인들은 헛된 말로 선량한 무림인들을 현혹하며, 살생과 죄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사파라 부르고, 무림에서 처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마는 백무보를 떠올렸다.
섭위장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할 것 같았지만, 백무보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부부싸움은 아직 이르.... 아니 불필요한 다툼은 아직 성급해 보였다.
라마가 돌연 피식 웃자, 모용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라마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니오. 내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그렇소. 험험..."
라마는 애써 웃음을 참아내며 화제를 돌렸다.
"가문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라마의 물음에 앞서가던 이개가 걸어가며 대답했다.
"열심히 걸으면 칠일 이내에 당도할 것입니다."
칠일이란 말에 라마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7일?'
하... 괜히 따라온다고 했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어온다.
***
딱 6일째 되는 날, 라마와 모용연은 모용세가의 저택 앞에 이를 수 있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주구장창 걸어만 왔는데, 아마도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쓰러졌으리라.
이놈에 내공이란 놈은 쓸데없이 활용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이, 모용연이 서둘러 문을 두드렸다.
"나 왔어~"
그녀의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진다.
문이 열리고 안에 있는 사람이 모용연을 보자마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애기씨? 무사하셨습니까?"
"응. 아버지는 어디 계셔? 급히 아뢸 일이 있어."
"예예, 어서 들어오시지요."
모용연이 고개를 돌려 라마에게 오라고 손짓을 해 보이자, 송이개가 옆에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소협."
"아, 예예..."
두 사람은 모용연을 따라 드디어 모용세가 안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저택 문을 너머 안으로 들어서니 도저히 집안이라고 믿기 힘든 널찍한 마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내 아가씨가 돌아오셨습니다."
문을 열어준 이가 큰소리로 외치니, 이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진짜다! 연이 아가씨가 돌아오셨어."
"맙소사, 살아계셨구만. 하늘이 도왔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몰려들었고, 게 중에 꽤 훈남처럼 보이는 남자가 부랴부랴 달려 나오더니 모용연에게 다가왔다.
"연아!"
"담 오라버니!"
그는 달려와 연을 끌어안으며 그녀를 반겼다.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어제 지부 소식을 듣고 여태 가슴 졸였었다. 안 그래도 오늘 너를 찾으러 가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던 중이었다."
모용연이 글썽거리는 눈물을 훔치며, 뒤에 있는 라마를 가리켰다.
"저기 계신 소협께서 구명해 주셨습니다. 아니었다면 전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모용연의 말에 모용담이 라마를 보며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우리 연이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마도 황급히 마주 인사하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중년의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둘은 모용연을 보자 기뻐하며 다가왔다.
"연아!"
"아버지, 어머니."
모용연이 달려가 두 사람을 부둥켜안는 모습을 보며 모든 사람들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어떻게 살아 돌아온 것이야?"
이번에도 모용연이 라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협께서 구해주셨습니다."
라마가 어색하게 웃는 사이,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소협. 연이의 아비 되는 모용무훈이라 합니다."
라마는 서둘러 마주 인사하며 대답했다.
"저...저는 라마라 합니다."
"못난 제 여식을 구해주셔서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먼길을 오셨으니, 식사부터 하시지요."
"예예... 그러겠습니다."
다들 분주하게 바쁜 와중에 모용담이 라마를 보며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이곳에 계신 동안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라마는 모용담을 따라 모용세가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처음 보았던 커다란 마당을 지나 여러 개의 문중에 제일 끝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놀랍게도 집 안쪽으로 자그마한 강물이 흐르고 있고, 그 물 주위로 화려한 장식과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니 이곳저곳에 휘양 찬란한 장식들이 모였고, 장식들을 지나서 다시 커다란 문 하나를 지나자, 또다시 커다란 마당이 나왔다.
그 큰 마당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가니, 또다시 문이고, 또 마당이 나왔다.
정말 얼마나 큰 집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윽고 모용담과 라마는 아담하게 지어진 화려한 집 한 채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쉬십시오. 제가 전담할 하인을 불러올 테니, 잠시 여독을 풀며 쉬고 계시면 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처나... 아니, 감사합니다."
모용담이 물러가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집안이 꽤 넓고 화려했다.
갖가지 장식으로 꾸며진 널찍한 입구를 지나 화려한 찻잔들이 놓인 탁상이 보였고, 글공부를 할 수 있는 책상 하며, 이름 모를 서책들이 꽂혀있는 책장까지, 어느 것 하나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 장인이 잘 사는구나.'
속으로 했던 생각이지만, 이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하지만 저도 모르게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좋네. 좋아. 캬~ 그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지."
라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후~"
얼마 만에 가져보는 여유인가?
되도록이면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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