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3
다시 초록으로 물든 세상이 나래의 눈앞에 펼쳐졌다.
오솔길 처럼 자그마한 길 하나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양쪽으로 색색의 꽃들이 바람결에 향기를 흘려보내며, 우거진 수풀이 나풀나풀거리고 있었다.
나래는 오솔길을 따라 차분하게 걷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세계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보다, 지금 이 순간, 수풀 길을 거닐고 있는 이 기분이 싫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조금 넓은 공터 위로 펼쳐진 놀이터가 보였다.
수풀과 맞닿은 지점은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자동차 타이어가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고, 무지개 색으로 장식된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 정글짐과 뺑뺑이 놀이기구가 보였다.
더군다나 거기에는 몇몇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나래는 신기한 표정으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아이들은 나래가 다가오거나 말거나 뛰어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몇몇은 앉아 있고, 몇몇은 뛰어다니는데 그중 술래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가 갑자기 나래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나래를 툭 치더니, "잡았다!"를 외쳤다.
나래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자, 다른 아이가 얼른 소리쳤다.
"걔는 방금 왔으니까, 깍두기야!"
그러자 술래였던 아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른 아이를 잡으러 달려갔고, 도망치던 아이는 잡힐 것 같자 얼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나래는 그 모습을 보고 '앉은뱅이'라는 놀이를 떠올렸다.
'저게 저렇게 하는 거였던가? 얼음땡이랑 비슷한 거였지.'
술래는 다른 아이를 잡으러 달려갔고, 술래가 멀어지자 앉았던 아이는 얼른 다시 일어났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녔고, 그중에 쌍둥이로 보이는 둘이 나래 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뭐해? 얼른 도망쳐!"
나래는 피식 웃더니, 두 쌍둥이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술래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놀이터 안에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느라 바빴다.
그네 뒤에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던 아이는 술래가 다가오자 얼른 도망치려다가 앞에 다른 아이에 막혀 잠깐 주춤한 사이, 술래가 그 아이의 등을 쳤다.
"잡았다!"
술래가 외치는 순간, 잡힌 아이는 울상이 되더니, 큰 소리로 "하나"를 외쳤다.
쌍둥이는 양쪽에서 나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도망쳐! 멀어져야 돼!"
나래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굳이 마다하지 않고 따라갔다.
"둘, 셋! 잡는다!"
술래가 된 아이는 큰 소리로 외치며, 뛰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어느새 아이들 틈 사이에서 신이 나게 놀고 있던 나래는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어느 순간 아이들이 지쳐서 한쪽에 모여 주저앉자 나래도 그 옆으로 주저앉았다.
이렇게 공기가 맑은 곳에서 숨이 찰 만큼 뛰어다니니,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매연이나 담배연기, 그리고 눈앞에 가득한 먼지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이렇게 마음껏 숨 쉬며 뛰는 기분이란 게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나 새삼스러웠다.
"넌 이름이 뭐야?"
누군가 나래에게 이름을 물었다.
"아, 나는 나래야."
그러자 나래에게 이름을 물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난 방방이야."
"방방?"
독특한 이름에 나래가 되묻는 사이, 반대쪽 옆에 있던 쌍둥이가 나서 말했다.
"나는 귀동이"
"나는 막동이"
이번에는 맨 처음 술래였던 아이가 나래를 보며 말했다.
"난 하람이야."
하람의 뒤를 이어 아이들이 마치 자기 소개하듯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난 다솜이야", "난 가람", "나는 새라야."
이어 뒤쪽으로 팔을 쭉 뻗어 기대고 있던 아이가 웃으면 눈이 가늘어지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한울이야."
나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방금 자신의 이름을 말한 아이를 쳐다봤다.
"네가 한울이라고?"
한울은 나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나를 알아?"
나래는 한울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나이는 대략 12, 13살 정도 되어 보였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크고 마른 편이었지만, 어떻게 봐도 어른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어... 그게...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이든이 한울이란 어른을 만나보라고 했거든."
그러자 한울이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이든이가 보냈구나. 내가 그 한울 맞아."
나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른이라고?"
그러자 오히려 한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 어른 맞는데? 왜?"
나래는 백하도령의 나이를 떠올리며, 혹시나 이 아이들도 그런 경우인가 싶어 조심스레 물어봤다.
"아... 외모가 어려 보여서... 요, 실례지만, 연세가..."
그러자 한울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 나이는 잘 모르겠어. 꼭 나이를 알아야 해?"
나래는 다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나 몇살인거지? 그렇게 오래되진 않은거 같은데"
한울은 다른 아이들에게 확인이라도 받는 듯 물었고, 아이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해 주었다.
"맞아. 한울이가 제일 나이가 많아. 막내가 7살인데..."
나래는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아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효, 내가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네."
나래의 말에 한울이 나래를 보며 물었다.
"왜? 뭔가 실망한 표정인데?"
나래는 그런 한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어른이라길래 나이가 많은 줄 알았지."
나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한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른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너무나 태연히 묻는 한울을 보며 오히려 나래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거야.... 어른은..."
어쩐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정작 설명을 하지 못했다.
"어른이 뭔데?"
한울이 다시 묻는 질문에도, 나래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망설이던 나래가 간신히 한마디 대답을 꺼내놓았다.
"그거야... 어른은...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거지."
막상 대답을 해놓고도, 뭔가 뻔한 대답을 한 것 같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울은 그런 나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면 어른인 거야? 그럼 애초에 책임질 일을 안 만들면 되겠네? 아주 지키기 쉬운 것들만 책임지면 누구든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야?"
한울의 되물음에 나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른이란 단어가 이렇게 설명하기 힘든 단어일 거라고 미처 생각조차 못해봤기 때문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네가 생각하는 어른이 뭔지 말해봐."
한울이 타이르듯 차분하게 묻는 말에, 나래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되는 건가... 그냥 나이 먹어서 되는 거지. 이제 더 이상... 아이일 수 없을 수 없으니까, 어른인 거 아닐까? 내 삶을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지."
"네게 있어 어른이란 건 더 이상 아이일 수 없는 상태란거지? 아이의 반대말 정도 되는 건가?"
뭔가 논리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한울의 대답에, 나래는 더 이상 한울이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가?"
나래가 멋쩍게 대답하자, 한울은 예의 눈이 보이지 않는 가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른이 아이의 반대말이라면, 아이는 뭐야? 뭘 보고 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이번에도 뭔가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래는 멍하니 한울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동심?"
"동심?"
"응. 뭐... 애들은 사소한 것에도 쉽게 웃고 즐거워하니까... 그런 게 동심 아닐까?"
한울은 당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네가 생각하는 어른은, 동심을 잃은 아이인 거네?"
나래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꽤나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거 같긴 해."
"그럼, 왜 어른은 동심을 가질 수 없는 거야?"
뜻밖의 질문에 나래의 표정은 여전히 아리송한 상태였다.
"그건.... 어른이니까?"
"어른은 동심을 가지면 안 되는 거야? 동심이 뭔데? 네가 그랬잖아. 사소한 것에도 쉽게 웃고 즐거워하는 거라고. 어른은... 그럼 안돼?"
"아니, 그럼 안 되는 건 아닌데..."
나래는 어른과 아이가 이렇게나 설명하기 힘든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는 어른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나래가 반대로 물어보자, 한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게 있어 어른이란 건 그래, 그냥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거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대답에, 나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거라고?"
"응. 자기가 누구인지 알면 어른인 거야."
뭔가 의미심장한 대답인 거 같으면서도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그래?"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알아?"
"나? 그럼... 난 최나래고..."
"아니 그런 거 말고, 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누구를 만나는 걸 좋아하는지, 그런 거 말이야. 너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나래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뭘 좋아할까, 그런 걸 제대로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었던가.
대답하지 못하는 나래를 보며 한울이 예의 웃는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넌 아직 어른이라고 할 수 없어. 내게 있어 어른은 그런 거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지도 못한 이 철학적인 대화 끝에, 나래는 더 이상 한울이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나를 왜 찾아왔는데? 이든이 뭐라고 한 건데?"
"그게...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그랬더니 이든이 너를 찾아가 보라고 해서..."
나래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한울이 큰 소리로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이제 이든이 왜 너를 나한테 보냈는지 알겠다. 우린 이미 이든이 기대한 대화를 나눈 거 같아. 네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모르는 건, 네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너 스스로가 모르는 것과 같아."
한울의 아리송한 대답에 나래는 더욱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였다. 수풀 쪽에서 "어흥~"하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아이들은 표정이 창백해지며 기겁했다.
"맙소사, 호랑이다."
"호랑이가 왔나 봐!"
아이들은 기겁을 해서 소리가 들려온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래도 얼떨결에 아이들을 따라가려는데, 돌연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
나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멈춰 섰고, 그녀의 눈앞에서 아이들 대신 다양한 색색의 도깨비불들이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도깨비?"
나래는 그 아이들이 도깨비란 사실을 깨달았고, 이든이 왜 '너랑 비슷하게 생긴 이들'이란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때 다시 한번 뒤쪽에서 "어흥!" 하는 호랑이 소리가 들려오자, 아주 지척인듯 크게 들려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래는 소리 난 곳을 돌아보았고, 수풀 속에서 드디어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솔길 처럼 자그마한 길 하나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양쪽으로 색색의 꽃들이 바람결에 향기를 흘려보내며, 우거진 수풀이 나풀나풀거리고 있었다.
나래는 오솔길을 따라 차분하게 걷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세계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보다, 지금 이 순간, 수풀 길을 거닐고 있는 이 기분이 싫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조금 넓은 공터 위로 펼쳐진 놀이터가 보였다.
수풀과 맞닿은 지점은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자동차 타이어가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고, 무지개 색으로 장식된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 정글짐과 뺑뺑이 놀이기구가 보였다.
더군다나 거기에는 몇몇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나래는 신기한 표정으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아이들은 나래가 다가오거나 말거나 뛰어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몇몇은 앉아 있고, 몇몇은 뛰어다니는데 그중 술래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가 갑자기 나래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나래를 툭 치더니, "잡았다!"를 외쳤다.
나래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자, 다른 아이가 얼른 소리쳤다.
"걔는 방금 왔으니까, 깍두기야!"
그러자 술래였던 아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른 아이를 잡으러 달려갔고, 도망치던 아이는 잡힐 것 같자 얼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나래는 그 모습을 보고 '앉은뱅이'라는 놀이를 떠올렸다.
'저게 저렇게 하는 거였던가? 얼음땡이랑 비슷한 거였지.'
술래는 다른 아이를 잡으러 달려갔고, 술래가 멀어지자 앉았던 아이는 얼른 다시 일어났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녔고, 그중에 쌍둥이로 보이는 둘이 나래 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뭐해? 얼른 도망쳐!"
나래는 피식 웃더니, 두 쌍둥이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술래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놀이터 안에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느라 바빴다.
그네 뒤에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던 아이는 술래가 다가오자 얼른 도망치려다가 앞에 다른 아이에 막혀 잠깐 주춤한 사이, 술래가 그 아이의 등을 쳤다.
"잡았다!"
술래가 외치는 순간, 잡힌 아이는 울상이 되더니, 큰 소리로 "하나"를 외쳤다.
쌍둥이는 양쪽에서 나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도망쳐! 멀어져야 돼!"
나래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굳이 마다하지 않고 따라갔다.
"둘, 셋! 잡는다!"
술래가 된 아이는 큰 소리로 외치며, 뛰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어느새 아이들 틈 사이에서 신이 나게 놀고 있던 나래는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어느 순간 아이들이 지쳐서 한쪽에 모여 주저앉자 나래도 그 옆으로 주저앉았다.
이렇게 공기가 맑은 곳에서 숨이 찰 만큼 뛰어다니니,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매연이나 담배연기, 그리고 눈앞에 가득한 먼지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이렇게 마음껏 숨 쉬며 뛰는 기분이란 게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나 새삼스러웠다.
"넌 이름이 뭐야?"
누군가 나래에게 이름을 물었다.
"아, 나는 나래야."
그러자 나래에게 이름을 물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난 방방이야."
"방방?"
독특한 이름에 나래가 되묻는 사이, 반대쪽 옆에 있던 쌍둥이가 나서 말했다.
"나는 귀동이"
"나는 막동이"
이번에는 맨 처음 술래였던 아이가 나래를 보며 말했다.
"난 하람이야."
하람의 뒤를 이어 아이들이 마치 자기 소개하듯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난 다솜이야", "난 가람", "나는 새라야."
이어 뒤쪽으로 팔을 쭉 뻗어 기대고 있던 아이가 웃으면 눈이 가늘어지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한울이야."
나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방금 자신의 이름을 말한 아이를 쳐다봤다.
"네가 한울이라고?"
한울은 나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나를 알아?"
나래는 한울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나이는 대략 12, 13살 정도 되어 보였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크고 마른 편이었지만, 어떻게 봐도 어른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어... 그게...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이든이 한울이란 어른을 만나보라고 했거든."
그러자 한울이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이든이가 보냈구나. 내가 그 한울 맞아."
나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른이라고?"
그러자 오히려 한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 어른 맞는데? 왜?"
나래는 백하도령의 나이를 떠올리며, 혹시나 이 아이들도 그런 경우인가 싶어 조심스레 물어봤다.
"아... 외모가 어려 보여서... 요, 실례지만, 연세가..."
그러자 한울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 나이는 잘 모르겠어. 꼭 나이를 알아야 해?"
나래는 다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나 몇살인거지? 그렇게 오래되진 않은거 같은데"
한울은 다른 아이들에게 확인이라도 받는 듯 물었고, 아이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해 주었다.
"맞아. 한울이가 제일 나이가 많아. 막내가 7살인데..."
나래는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아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효, 내가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네."
나래의 말에 한울이 나래를 보며 물었다.
"왜? 뭔가 실망한 표정인데?"
나래는 그런 한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어른이라길래 나이가 많은 줄 알았지."
나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한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른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너무나 태연히 묻는 한울을 보며 오히려 나래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거야.... 어른은..."
어쩐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정작 설명을 하지 못했다.
"어른이 뭔데?"
한울이 다시 묻는 질문에도, 나래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망설이던 나래가 간신히 한마디 대답을 꺼내놓았다.
"그거야... 어른은...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거지."
막상 대답을 해놓고도, 뭔가 뻔한 대답을 한 것 같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울은 그런 나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면 어른인 거야? 그럼 애초에 책임질 일을 안 만들면 되겠네? 아주 지키기 쉬운 것들만 책임지면 누구든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야?"
한울의 되물음에 나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른이란 단어가 이렇게 설명하기 힘든 단어일 거라고 미처 생각조차 못해봤기 때문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네가 생각하는 어른이 뭔지 말해봐."
한울이 타이르듯 차분하게 묻는 말에, 나래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되는 건가... 그냥 나이 먹어서 되는 거지. 이제 더 이상... 아이일 수 없을 수 없으니까, 어른인 거 아닐까? 내 삶을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지."
"네게 있어 어른이란 건 더 이상 아이일 수 없는 상태란거지? 아이의 반대말 정도 되는 건가?"
뭔가 논리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한울의 대답에, 나래는 더 이상 한울이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가?"
나래가 멋쩍게 대답하자, 한울은 예의 눈이 보이지 않는 가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른이 아이의 반대말이라면, 아이는 뭐야? 뭘 보고 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이번에도 뭔가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래는 멍하니 한울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동심?"
"동심?"
"응. 뭐... 애들은 사소한 것에도 쉽게 웃고 즐거워하니까... 그런 게 동심 아닐까?"
한울은 당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네가 생각하는 어른은, 동심을 잃은 아이인 거네?"
나래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꽤나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거 같긴 해."
"그럼, 왜 어른은 동심을 가질 수 없는 거야?"
뜻밖의 질문에 나래의 표정은 여전히 아리송한 상태였다.
"그건.... 어른이니까?"
"어른은 동심을 가지면 안 되는 거야? 동심이 뭔데? 네가 그랬잖아. 사소한 것에도 쉽게 웃고 즐거워하는 거라고. 어른은... 그럼 안돼?"
"아니, 그럼 안 되는 건 아닌데..."
나래는 어른과 아이가 이렇게나 설명하기 힘든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는 어른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나래가 반대로 물어보자, 한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게 있어 어른이란 건 그래, 그냥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거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대답에, 나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거라고?"
"응. 자기가 누구인지 알면 어른인 거야."
뭔가 의미심장한 대답인 거 같으면서도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그래?"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알아?"
"나? 그럼... 난 최나래고..."
"아니 그런 거 말고, 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누구를 만나는 걸 좋아하는지, 그런 거 말이야. 너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나래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뭘 좋아할까, 그런 걸 제대로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었던가.
대답하지 못하는 나래를 보며 한울이 예의 웃는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넌 아직 어른이라고 할 수 없어. 내게 있어 어른은 그런 거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지도 못한 이 철학적인 대화 끝에, 나래는 더 이상 한울이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나를 왜 찾아왔는데? 이든이 뭐라고 한 건데?"
"그게...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그랬더니 이든이 너를 찾아가 보라고 해서..."
나래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한울이 큰 소리로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이제 이든이 왜 너를 나한테 보냈는지 알겠다. 우린 이미 이든이 기대한 대화를 나눈 거 같아. 네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모르는 건, 네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너 스스로가 모르는 것과 같아."
한울의 아리송한 대답에 나래는 더욱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였다. 수풀 쪽에서 "어흥~"하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아이들은 표정이 창백해지며 기겁했다.
"맙소사, 호랑이다."
"호랑이가 왔나 봐!"
아이들은 기겁을 해서 소리가 들려온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래도 얼떨결에 아이들을 따라가려는데, 돌연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
나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멈춰 섰고, 그녀의 눈앞에서 아이들 대신 다양한 색색의 도깨비불들이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도깨비?"
나래는 그 아이들이 도깨비란 사실을 깨달았고, 이든이 왜 '너랑 비슷하게 생긴 이들'이란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때 다시 한번 뒤쪽에서 "어흥!" 하는 호랑이 소리가 들려오자, 아주 지척인듯 크게 들려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래는 소리 난 곳을 돌아보았고, 수풀 속에서 드디어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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