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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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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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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간 예측: 약 10.98분

2화 - #10


깊은 밤, 달빛마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그런 어두운 밤이었다.

곳곳에 밝혀둔 등불이 스며드는 어둠을 쫓아내고 있는 가운데, 세자는 미동도없이 서안(書案) 위에 놓인 책을 읽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문밖에서부터 이따금 불어오는 은은한 바람에 촛불이 살랑거렸지만, 개의치 않고 책 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시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고, 또한 그러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 있기에 가능했다.

"저하, 도총부 부총관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내관의 목소리에 책 속에 빠져 있던 세자가 고개를 들었다.

"들라하라."

곧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수현이 세자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한 뒤, 지척 앞으로 다가왔다.

"앉게."

세자의 말에 수현이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연희가 잡혀온 장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근 마을까지 조사 중에 있습니다. 세세한 것은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듯합니다."

세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미련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온 것은 없고?"

"뭐... 타다만 물건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벽조목으로 만들어진 벽륜봉이라고 합니다. 귀신을 쫓거나 제압하는 힘이 있다고 하는데... 사교도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무의 말에 의하면, 그런 것을 다룰 정도면 일반적인 사교도는 아닌 것 같다고 우려하였습니다."

"그래... 그것 말고는?"

"그것 말고는... 조사 중에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 말이, 그곳을 관리하는 현감이..."

수현이 말끝을 흐리자, 세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쳤...다는 말을 했습니다."

"현감이... 미쳐?"

"예. 일단 뭐 시덥지 않은 이야기라 생각하긴 했는데, 영 찜찜하여 수하를 시켜 감시하라 일러두었습니다. 보고가 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자는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듯 중얼거렸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구나."

수현이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뭔가 찜찜한 것이... 아무래도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세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잡히지 않는 답답함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세자를 보며, 수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희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수현의 물음에, 세자가 그를 보며 되물었다.

"응? 무엇을 말이냐?"

말없이 세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현은, 느지막이 다시 물었다.

"연희를... 계속 곁에 두실 생각이십니까?"

세자는 수현의 물음에 이해할 수없다는 눈빛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곁에 둔다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나 때문에 상한 것이니, 보살피는 것이다."

"그 보살핌이 끝나면... 그다음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수현의 집요한 질문에 세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가?"

수현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저는 지금 세자마마의 행동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어찌해서 그러냐? 너마저 나를 탓하는 것이냐?"

"제가 어찌 감히 세자마마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세자마마는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하... 연희는 다릅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의 표정이 굳어지고, 아미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보살피신 뒤, 남겨진 연희에게 어떤 시련이 올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시련이라니? 무슨 뜻이냐?"

"저하께서 이나라의 세자이옵고, 어느 누구도 감히 저하의 허물을 탓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딱히 이렇다 할 명분이 없다면, 좌상대감도 섣불리 저하를 건드리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나, 연희는 다를 것입니다. 어찌하지 못하는 세자마마의 보살핌을 받았던 저 가녀린 아이는, 저하를 대신한 희생양이 될것 입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네. 내 기필코, 연희만은 지킬 것이야."

수현은 그런 세자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하...."

수현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실수록... 그렇게 감싸실수록, 연희는 오히려 저들에 빌미가 될것이며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수현의 말에 세자는 속상한 마음에 한탄하듯 외쳤다.

"너마저 어찌 그러느냐? 나보고 손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방관하고 있으라는 것이냐? 그저...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아이를 보살핀 것뿐이다. 한 나라의 세자가 아니냐? 한 나라의 세자가,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은 한 백성을 보살핀 것이.. 그렇게 대단히 잘못한것이라 생각하느냐?"

"그것이라면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뿐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자마마가 보살핀 사람은 상처 받은 한 백성이 아닙니다."

세자는 수현을 도무지 무슨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그런 세자를 보며 수현이 말을 이었다.

"세자마마가 보살핀 사람은, 한 백성이 아니라, 한 여인입니다. 그것이 문제이옵니다."

세자는 수현의 말을 듣고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

"그래도..."

세자는 알면서도 체념하듯 이야기했다.

"지켜주고 싶구나. 나 때문에, 내가 세자라서... 그 아이가 더 고통을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된다면...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질 것 같구나."

수현 역시 처음부터 세자의 마음을 모르고 물은것은 아니었다. 세자가 스스로를 먼저 생각하길 바랐고, 저들이 앞으로 무수히 쳐놓을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멀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는대로, 제가 은밀히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세자는 수현의 말을 딱히 마다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 이목을 피해, 멀리, 아주 먼 곳에, 찾기 힘든 곳에 데려다 놓겠습니다. 그곳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해 주겠습니다. 저하를 대신해 확인해야할 일이 있을때 제가 은밀히 움직이겠습니다. 그리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수현의 물음에 세자는 순간 거절의 말이 입밖으로 나오려 하였으나 그리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고 세자 역시 그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자는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마음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밤은 그렇듯 쓰디쓴 약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



무거운 한숨과 함께 눈을 뜬 연희는 힘겹게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아직도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통증이, 온몸에 가시가 돋친 듯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며 참으면 참을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지내던 평범했던 방이 아님을 알았다.

고풍스러운 가구들만 보더라도 이곳이 직감적으로 궁궐 안임을 느낄 수 있던 연희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벽에 손을 짚은 체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지만, 이대로 누워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검은바탕에 금빛 자수가 놓인 용포를 입은, 세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들어서다, 힘겹게 서 있는 연희를 보고 놀라 다가가려 했다.

연희 역시 갑작스레 들어선 세자를 보고 놀란 마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듯 했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휘청거렸다.

"연...!"

세자는 그녀를 부르다 말고 연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쓰러지려는 연희를 부둥켜안고, 간신히 자세를 잡은 세자의 눈에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연희의 얼굴이 그대로 들어왔다.

연희 역시 바로 코앞에 잘생긴 세자의 걱정스런 얼굴이 보이니, 서로 말없이 그렇게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눈을 피해야 할까. 아니 그것이 더 어색할까.

어쩐지 서로의 품에서 느껴지는 아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서로의 숨소리만이 고요히 들려오고, 마치 시간이 하염없이 늘어지고 있는 것인 양, 모든 것이 멈춰 서 있는것 같았다.

"저하!"

놀란 내관과 궁녀들이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제야 세자는 궁녀들에게 연희를 내어주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연희 역시 정신을 차린 듯, 궁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괜찮느냐? 아직 다 낫지 않았거늘, 어찌 일어난 것이냐?"

걱정스런 세자의 물음에, 연희는 고개를 숙인 체 대답했다.

"이대로 누워만 있을 수 없단 생각에 일어났습니다. 저하..."

"아니다. 지금은 일단 낫는 것에만 신경 쓰도록 하거라. 이것은 내가 네게 내리는 명이다."

세자가 완강하게 나오니, 연희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어서 침상으로 데려가 눕히거라."

세자의 명에 궁녀들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연희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고, 연희도 마지못한 듯, 궁녀들의 부축을 받아, 침상으로 돌아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내관은 즉각 의관을 들라하라."

"예, 저하."

내관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세자가 연희의 곁으로 다가서, 가까이 앉으며 명했다.

"내관이 올 때까지, 모두 나가들 있거라."

"예, 저하."

궁녀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방안에는 오롯이 세자와 연희만이 남았다.

세자는 생각에 잠긴듯 무표정한 얼굴로 연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누워있는 연희는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애꿎은 천정만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것이..., 불편하냐?"

세자의 물음에 연희는 세자를 바라보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세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로 인해 네게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구나."

연희는 세자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하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연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려 했다.

아무리 기억을 잃어 예법 같은 것을 모른다 할지라도, 누운 상태로 세자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일어나려는 연희를 세자가 만류하였다.

"아니다. 괜찮으니 누워 있거라."

연희는 세자의 만류에도, 일어나 앉으려 애썼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일어나려 몸에 힘을주면,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탓에 쉽게 일어나 앉기 어렵지만, 이대로 누워서 대화를 하는 것은 좀처럼 맘이 편치 않았다.

"지금은 그저 누워서 몸을 편히 하거라.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으니... 이것만이라도 들어주거라."

어딘지 모를 공허한 듯한 세자의 말에, 연희는 더 이상 일어나려 애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누워서 세자를 바라보고 있는 연희를 보며, 세자가 다시금 씁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게 궁금한 것이 많아, 그저 좀 물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너를 힘들게 하였구나."

연희는 왠지 세자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저 높은 곳에 있는 고결하고 고귀한 신분의 세자에게서 이런 슬픔이 느껴지는걸까...

연희의 머릿속에 세자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듬직하고 강직해보이는 세자의 외용과 달리 한편에는 쓸쓸한 외로움이 보이는듯하여 이름로를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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