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2
왠지 우울해 보이는 라마의 표정을 살피던 송이개와 유림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이내 송이개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소협, 황궁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러자 멍한 표정에 라마가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완전히 당하고 나왔어요."
그 말에 송이개와 유림이 놀라 표정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누, 누구에게 패했단 말입니까?"
"아니, 환골탈태까지한 소협을 이길 정도의 고수가 황궁 안에 있단 말입니까?"
라마가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예, 그렇더이다. 승상인가 뭔가 하는 사람한테도 철저하게 밟힌 거 같더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공주인지 황녀인지한테도 밟힌 것 같네요."
송이개와 유림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살던 세계에서도 정치란 게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 들었는데, 여기서도 다를 바 없네요."
라마의 말에 대충 눈치챈, 송이개와 유림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뭐... 그렇죠. 세상 쉬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송이개가 다독거리듯 이야기하니 유림이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뭐든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중요하죠. 그래도 소협은 당대에 당할 자가 거의 없는 사람 아닙니까?"
"그래요? 그럼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갑자기 라마가 태도를 바꾸자 유림이 "예?" 하며 당황해했다.
"장하기와 전소풍이 나와 겨루면 내가 이길까요?"
난데없이 쟁쟁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니 유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그 장하기라면 무림맹의 맹주님을 이야기하시는 거겠고... 전소풍이라면 의천맹의 맹주님을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데... 하하하하.... 참...."
유림이 차마 대답 못하고 망설이자, 송이개가 물어왔다.
"소협, 그 두 사람은 당대 무림에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환골탈태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환골탈태했다고 해서 쉬이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라마가 송이개를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아, 아니... 꼭 진다는 건 아니지만, 결코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란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둘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장하기와 전소풍."
송이개와 유림이 다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워했다.
"뭐...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래도 장하기 맹주가... 한수 위가 아닐까... 합니다."
송이개의 대답에 유림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째 그 노인네가 이긴다 하시오? 내 보기엔 전소풍이 훨씬 잘 싸우겠고만."
유림의 말에 송이개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나이가 있음은 그만큼 내력과 경험이 충만하다는 뜻 아닌가? 아직 새파란 전소풍이 감히 무림맹주인 장대협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두 사람이 흥분하니, 라마가 얼른 손을 들어 만류했다.
"아아, 됐습니다. 무슨 소린지 알았으니.... 누가 더 세든지 간에, 일단 전소풍부터 만나보는 게 좋겠네요."
그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놀라 물었다.
"전소풍을 만난다구요?"
"네."
둘은 다시 황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송이개가 물었다.
"허나.... 공주마마야, 이전에 조철웅 대인에게서 받은 출입패가 있어 만났다지만, 전소풍 대협은 어찌 만나려 하십니까?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얼굴이나 있는 장소를 내가 알면 당장이라도 만날 텐데... 아쉽게도 얼굴을 모르니, 일단 의천맹으로 찾아가야지요."
"의천맹의 본원으로 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곳은 황궁 못지않은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럼 어쩔까요? 의천맹주를 만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는데..."
잠시 생각하던 송이개가 얼른 대답했다.
"차라리 장하기 맹주를 먼저 만나시지요."
"어째서요?"
"어차피 싸우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면, 장하기 맹주를 먼저 만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왜죠?"
"모용세가의 도움을 받으면, 장하기 맹주를 만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과연 송이개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일단 장하기 맹주를 만나서 그와 대화를 잘 나눌 수 있다면, 그다음엔 의천맹 맹주를 만날 명분이 설 것입니다."
"명분이요? 어떤 명분 말이죠?"
"황궁의 명에 따라 장하기 맹주를 만났고, 이제 의천맹의 맹주를 만나려 한다, 이렇게 말이죠."
라마가 수긍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듯하네요."
"제 말대로 하시죠. 일단 저와 함께 모용세가로 돌아가십시오."
"그럼... 이쪽에 거처를 마련하라고 한건 어떻게 되었죠?"
이번에는 유림이 나서 대답했다.
"그냥 알아만 보았습니다. 아직 매매를 성사하진 않았으니, 천천히 진행하시지요."
"아뇨. 유림은 이곳에 남아 그 일을 마저 진행해 주세요. 모용세가는 제가 송이개님과 다녀오도록 하죠."
유림이 그 말에 송이개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뭐, 말은 안 해도, 돈 쓰는 일은 자신 있는 유림이었다.
"허면 내일 아침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모용세가는 한번 가봤으니까."
"예?"
"손 내밀어 봐요."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손을 내밀자, 라마가 그의 손을 붙잡는 순간, 갑자기 주변 풍경이 확 바뀌어 버렸다.
놀란 송이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놀랍게도 그곳은 모용세가 안에 위치한 수많은 접객실 중 하나였다.
"여... 여긴...."
"모용세가에 왔을 때 제가 머물던 곳입니다."
단숨에 모용세가가 있는 곳까지 왔다는 말에 송이개의 표정은 아연실색 해졌다.
"어...어떻게..."
"뭐... 설명하려면 길어요. 어때요? 다시 나가서 입구부터 들어올까요?"
"아,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라마가 다시 송이개를 붙잡고 휙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입구에 와 있었다.
잠시 균형을 못 잡고 휘청거린 송이개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소협을 따라다니려면 운동을 좀 해야겠습니다."
이어 송이개가 문을 두드렸다.
"여보시오. 나 왔소. 나 송이개요."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가문에서 일하는 나이 든 종이 그를 알아본 듯 반가운 얼굴로 웃어 보였다.
"돌아오셨군요. 안 그래도 아가씨께서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송이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워낙 정이 많으신 분이시지요."
이어 라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소협."
라마는 다시 모용세가의 문턱을 넘었다.
처음 이 문턱을 넘으며 느꼈던 기분이 생각나서였을까,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괜스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가씨께 고할까요?"
"아닐세. 내일 내가 직접 인사 올리겠네."
"예."
송이개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아까 그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제가 아가씨와 도련님께 아뢰고 오겠습니다. 모용담 도련님은 소협을 꽤나 흠모하고 있으니, 크게 반기실 겁니다."
모용담 얘기가 나오니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하하, 네...."
그에게 신세 아닌 신세를 졌으면서도, 도리어 그를 미워했으니, 소심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라마가 접객실로 향한 사이, 송이개는 모용연이 있는 거처 쪽으로 향했다.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모용세가의 몇몇 무사들이 때마침 마주 오다가, 송이개를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썩은내가 난다 했더니, 거지냄새 였구만."
누군가의 힐난에 다른 무사들이 키득키득거렸지만, 송이개는 못 들은 척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치고 있었다.
순간, 툭하는 소리와 함께 균형을 잃은 송이개가 "엇?" 하는 사이 털썩 넘어지자, 송이개를 지나가던 무사들이 다시금 키득 거리며 웃어댔다.
"모용세가에 똥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하니, 코를 막고 다녀야 겠구만."
그들은 송이개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하며 걸어갔고, 송이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옷에 묻는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일어났다.
발목에 통증을 느껴 절뚝거리며 걸으면서도, 그런 것이 익숙한 듯 괘념치 않았다.
송이개가 모용연의 거처가 있는 건물 마당에 다다르자, 때마침 마당을 쓸고 있던 하녀가 송이개를 보자 순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 송이개님 오셨어요?"
송이개는 신경 쓰지 않은 듯, 그녀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는 안에 계신가?"
그녀는 송이개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안에 계십니다. 아뢸까요?"
"그래 주게나."
그녀는 얼른 송이개 곁을 도망치듯 집 쪽으로 달려가서는 안에 대고 이야기했다.
"아가씨, 거지... 아니 송이개님 오셨습니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고, 모용연이 환한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아저씨!"
그녀가 한없이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달려오니, 되려 송이개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냄새납니다요,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에이 아저씨두 참!"
그녀는 달려오다 말고 송이개의 말에 피식 웃고는,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식사는? 오는 길에 뭣 좀 드셨어요?"
"그럼요. 소협과 함께 다니니 아주 진수성찬 가득하게 먹고 다닙니다."
"피~ 거짓말 같은데?"
"진짜입니다. 어찌나 잘 챙겨주시는지 이제는 아주 의기가 좋습니다."
"소협은 잘 도착하셨구요?"
"예. 그런데... 일이 있어 다시 오셨습니다."
그의 말에 모용연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예? 다시 오셨다구요?"
"예, 먼저 묵었던 접객실에 가 계시라고 하고, 아가씨를 먼저 뵈러 왔습니다. 혹시, 도련님도 계십니까?"
"오라버니요? 오라버니는 지금 무림맹의 분파에 가계세요."
"아~ 아직 안 돌아오셨나요? 그곳 인근의 조철웅 대인 댁에서 뵈옵기는 했었는데..."
"오라버니를요?"
"예, 도련님께서 소협의 편을 들어주셔서,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직 이곳까지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예, 아직 못 들었어요. 그곳에서 만났을 줄은 몰랐네요. 소협도 와계시다고 하니, 제가 얼른 식사 준비를 하라고 이를게요."
이어 고개를 돌려 하녀에게 고개를 돌려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하더니, 송이개를 보며 물었다.
"먼저 접객실에 가 계시라 하셨다구요?"
"예."
"그곳에는 먼저 온 손님이 와계실 텐데..."
"손님이요? 누가 온 거죠?"
"무림맹에서 급히 큰아버님을 부르셔서, 큰아버님께서 아버지와 가신들을 데리고 급히 출타하셨어요. 그 소식을 전하러 왔던 서화란 사람이 와 있어요."
그 말에 송이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평소와는 달리 문중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했더니, 무림맹으로 가신 거였군요."
"예, 지난번 의천맹의 기습에 대한 조사 때문에, 오라버니가 분파로 간 것인데, 이번에는 큰아버님께 가신 대부분을 데리고 무림맹 본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아 서둘러 가셨어요. 아무래도 큰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송이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림맹에서 가신 대부분을 데리고 오라 했단 말입니까?"
"예."
"그것 참 이상하군요. 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죠?"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가 겪었던 일 때문 아닐까요?"
"의천맹의 기습 말입니까?"
"예. 저도 그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이내 다시 웃는 얼굴이 된 모용연이 하녀를 보며 말했다.
"선아야, 식사 준비를 하라고 전해주렴."
"예, 아가씨."
선아라 불린 하녀가 행여나 송이개 몸에 닿을까, 잔뜩 웅크린 체 그를 피해 달려 나가자, 모용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그... 신경 쓰지 마세요, 아저씨."
그녀의 말에 송이개는 익숙한 듯 웃어 보였다.
"이미 익숙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럼 저도 이따가 금방 갈게요. 소협과 함께 계세요."
"예, 그리하겠습니다."
송이개가 인사를 하고 물러나니, 그녀는 마치 친구를 보내듯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송이개는 왠지 그녀를 만나고 나면 기분이 좋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주인으로 모시고 살라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터벅한 걸음으로 라마가 묵는 거처로 총총이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이미 손님이 와있다는 말이 생각나 헐레벌떡 뛰어갔다.
"소협, 황궁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러자 멍한 표정에 라마가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완전히 당하고 나왔어요."
그 말에 송이개와 유림이 놀라 표정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누, 누구에게 패했단 말입니까?"
"아니, 환골탈태까지한 소협을 이길 정도의 고수가 황궁 안에 있단 말입니까?"
라마가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예, 그렇더이다. 승상인가 뭔가 하는 사람한테도 철저하게 밟힌 거 같더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공주인지 황녀인지한테도 밟힌 것 같네요."
송이개와 유림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살던 세계에서도 정치란 게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 들었는데, 여기서도 다를 바 없네요."
라마의 말에 대충 눈치챈, 송이개와 유림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뭐... 그렇죠. 세상 쉬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송이개가 다독거리듯 이야기하니 유림이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뭐든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중요하죠. 그래도 소협은 당대에 당할 자가 거의 없는 사람 아닙니까?"
"그래요? 그럼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갑자기 라마가 태도를 바꾸자 유림이 "예?" 하며 당황해했다.
"장하기와 전소풍이 나와 겨루면 내가 이길까요?"
난데없이 쟁쟁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니 유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그 장하기라면 무림맹의 맹주님을 이야기하시는 거겠고... 전소풍이라면 의천맹의 맹주님을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데... 하하하하.... 참...."
유림이 차마 대답 못하고 망설이자, 송이개가 물어왔다.
"소협, 그 두 사람은 당대 무림에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환골탈태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환골탈태했다고 해서 쉬이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라마가 송이개를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아, 아니... 꼭 진다는 건 아니지만, 결코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란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둘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장하기와 전소풍."
송이개와 유림이 다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워했다.
"뭐...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래도 장하기 맹주가... 한수 위가 아닐까... 합니다."
송이개의 대답에 유림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째 그 노인네가 이긴다 하시오? 내 보기엔 전소풍이 훨씬 잘 싸우겠고만."
유림의 말에 송이개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나이가 있음은 그만큼 내력과 경험이 충만하다는 뜻 아닌가? 아직 새파란 전소풍이 감히 무림맹주인 장대협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두 사람이 흥분하니, 라마가 얼른 손을 들어 만류했다.
"아아, 됐습니다. 무슨 소린지 알았으니.... 누가 더 세든지 간에, 일단 전소풍부터 만나보는 게 좋겠네요."
그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놀라 물었다.
"전소풍을 만난다구요?"
"네."
둘은 다시 황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송이개가 물었다.
"허나.... 공주마마야, 이전에 조철웅 대인에게서 받은 출입패가 있어 만났다지만, 전소풍 대협은 어찌 만나려 하십니까?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얼굴이나 있는 장소를 내가 알면 당장이라도 만날 텐데... 아쉽게도 얼굴을 모르니, 일단 의천맹으로 찾아가야지요."
"의천맹의 본원으로 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곳은 황궁 못지않은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럼 어쩔까요? 의천맹주를 만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는데..."
잠시 생각하던 송이개가 얼른 대답했다.
"차라리 장하기 맹주를 먼저 만나시지요."
"어째서요?"
"어차피 싸우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면, 장하기 맹주를 먼저 만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왜죠?"
"모용세가의 도움을 받으면, 장하기 맹주를 만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과연 송이개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일단 장하기 맹주를 만나서 그와 대화를 잘 나눌 수 있다면, 그다음엔 의천맹 맹주를 만날 명분이 설 것입니다."
"명분이요? 어떤 명분 말이죠?"
"황궁의 명에 따라 장하기 맹주를 만났고, 이제 의천맹의 맹주를 만나려 한다, 이렇게 말이죠."
라마가 수긍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듯하네요."
"제 말대로 하시죠. 일단 저와 함께 모용세가로 돌아가십시오."
"그럼... 이쪽에 거처를 마련하라고 한건 어떻게 되었죠?"
이번에는 유림이 나서 대답했다.
"그냥 알아만 보았습니다. 아직 매매를 성사하진 않았으니, 천천히 진행하시지요."
"아뇨. 유림은 이곳에 남아 그 일을 마저 진행해 주세요. 모용세가는 제가 송이개님과 다녀오도록 하죠."
유림이 그 말에 송이개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뭐, 말은 안 해도, 돈 쓰는 일은 자신 있는 유림이었다.
"허면 내일 아침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모용세가는 한번 가봤으니까."
"예?"
"손 내밀어 봐요."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손을 내밀자, 라마가 그의 손을 붙잡는 순간, 갑자기 주변 풍경이 확 바뀌어 버렸다.
놀란 송이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놀랍게도 그곳은 모용세가 안에 위치한 수많은 접객실 중 하나였다.
"여... 여긴...."
"모용세가에 왔을 때 제가 머물던 곳입니다."
단숨에 모용세가가 있는 곳까지 왔다는 말에 송이개의 표정은 아연실색 해졌다.
"어...어떻게..."
"뭐... 설명하려면 길어요. 어때요? 다시 나가서 입구부터 들어올까요?"
"아,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라마가 다시 송이개를 붙잡고 휙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입구에 와 있었다.
잠시 균형을 못 잡고 휘청거린 송이개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소협을 따라다니려면 운동을 좀 해야겠습니다."
이어 송이개가 문을 두드렸다.
"여보시오. 나 왔소. 나 송이개요."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가문에서 일하는 나이 든 종이 그를 알아본 듯 반가운 얼굴로 웃어 보였다.
"돌아오셨군요. 안 그래도 아가씨께서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송이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워낙 정이 많으신 분이시지요."
이어 라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소협."
라마는 다시 모용세가의 문턱을 넘었다.
처음 이 문턱을 넘으며 느꼈던 기분이 생각나서였을까,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괜스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가씨께 고할까요?"
"아닐세. 내일 내가 직접 인사 올리겠네."
"예."
송이개가 라마를 보며 말했다.
"아까 그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제가 아가씨와 도련님께 아뢰고 오겠습니다. 모용담 도련님은 소협을 꽤나 흠모하고 있으니, 크게 반기실 겁니다."
모용담 얘기가 나오니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하하, 네...."
그에게 신세 아닌 신세를 졌으면서도, 도리어 그를 미워했으니, 소심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라마가 접객실로 향한 사이, 송이개는 모용연이 있는 거처 쪽으로 향했다.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모용세가의 몇몇 무사들이 때마침 마주 오다가, 송이개를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썩은내가 난다 했더니, 거지냄새 였구만."
누군가의 힐난에 다른 무사들이 키득키득거렸지만, 송이개는 못 들은 척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치고 있었다.
순간, 툭하는 소리와 함께 균형을 잃은 송이개가 "엇?" 하는 사이 털썩 넘어지자, 송이개를 지나가던 무사들이 다시금 키득 거리며 웃어댔다.
"모용세가에 똥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하니, 코를 막고 다녀야 겠구만."
그들은 송이개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하며 걸어갔고, 송이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옷에 묻는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일어났다.
발목에 통증을 느껴 절뚝거리며 걸으면서도, 그런 것이 익숙한 듯 괘념치 않았다.
송이개가 모용연의 거처가 있는 건물 마당에 다다르자, 때마침 마당을 쓸고 있던 하녀가 송이개를 보자 순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 송이개님 오셨어요?"
송이개는 신경 쓰지 않은 듯, 그녀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는 안에 계신가?"
그녀는 송이개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안에 계십니다. 아뢸까요?"
"그래 주게나."
그녀는 얼른 송이개 곁을 도망치듯 집 쪽으로 달려가서는 안에 대고 이야기했다.
"아가씨, 거지... 아니 송이개님 오셨습니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고, 모용연이 환한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아저씨!"
그녀가 한없이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달려오니, 되려 송이개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냄새납니다요,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에이 아저씨두 참!"
그녀는 달려오다 말고 송이개의 말에 피식 웃고는,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식사는? 오는 길에 뭣 좀 드셨어요?"
"그럼요. 소협과 함께 다니니 아주 진수성찬 가득하게 먹고 다닙니다."
"피~ 거짓말 같은데?"
"진짜입니다. 어찌나 잘 챙겨주시는지 이제는 아주 의기가 좋습니다."
"소협은 잘 도착하셨구요?"
"예. 그런데... 일이 있어 다시 오셨습니다."
그의 말에 모용연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예? 다시 오셨다구요?"
"예, 먼저 묵었던 접객실에 가 계시라고 하고, 아가씨를 먼저 뵈러 왔습니다. 혹시, 도련님도 계십니까?"
"오라버니요? 오라버니는 지금 무림맹의 분파에 가계세요."
"아~ 아직 안 돌아오셨나요? 그곳 인근의 조철웅 대인 댁에서 뵈옵기는 했었는데..."
"오라버니를요?"
"예, 도련님께서 소협의 편을 들어주셔서,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직 이곳까지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예, 아직 못 들었어요. 그곳에서 만났을 줄은 몰랐네요. 소협도 와계시다고 하니, 제가 얼른 식사 준비를 하라고 이를게요."
이어 고개를 돌려 하녀에게 고개를 돌려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하더니, 송이개를 보며 물었다.
"먼저 접객실에 가 계시라 하셨다구요?"
"예."
"그곳에는 먼저 온 손님이 와계실 텐데..."
"손님이요? 누가 온 거죠?"
"무림맹에서 급히 큰아버님을 부르셔서, 큰아버님께서 아버지와 가신들을 데리고 급히 출타하셨어요. 그 소식을 전하러 왔던 서화란 사람이 와 있어요."
그 말에 송이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평소와는 달리 문중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했더니, 무림맹으로 가신 거였군요."
"예, 지난번 의천맹의 기습에 대한 조사 때문에, 오라버니가 분파로 간 것인데, 이번에는 큰아버님께 가신 대부분을 데리고 무림맹 본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아 서둘러 가셨어요. 아무래도 큰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송이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림맹에서 가신 대부분을 데리고 오라 했단 말입니까?"
"예."
"그것 참 이상하군요. 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죠?"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가 겪었던 일 때문 아닐까요?"
"의천맹의 기습 말입니까?"
"예. 저도 그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이내 다시 웃는 얼굴이 된 모용연이 하녀를 보며 말했다.
"선아야, 식사 준비를 하라고 전해주렴."
"예, 아가씨."
선아라 불린 하녀가 행여나 송이개 몸에 닿을까, 잔뜩 웅크린 체 그를 피해 달려 나가자, 모용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그... 신경 쓰지 마세요, 아저씨."
그녀의 말에 송이개는 익숙한 듯 웃어 보였다.
"이미 익숙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럼 저도 이따가 금방 갈게요. 소협과 함께 계세요."
"예, 그리하겠습니다."
송이개가 인사를 하고 물러나니, 그녀는 마치 친구를 보내듯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송이개는 왠지 그녀를 만나고 나면 기분이 좋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주인으로 모시고 살라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터벅한 걸음으로 라마가 묵는 거처로 총총이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이미 손님이 와있다는 말이 생각나 헐레벌떡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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