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23
여왕은 둘째 현우와의 만남 이후 조금 우울해진 감이 있었지만, 막내 현준이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금세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여왕의 표정을 살핀 나래가 살짝 웃어 보이며 친근감 있게 물었다.
"셋째 아드님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으신 거 같아요."
나래의 물음에 여왕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답했다.
"네. 현준이는 어려서부터 애교도 많고, 셋 중에서 건강이 제일 안 좋다 보니,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옥이야 금이야 키우다 보니, 정이 제일 많이 갔죠."
"현준 씨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현준이는... 말을 이쁘게 잘했어요. 현서나 현우는 좀 무뚝뚝한 면이 있어서, 대화는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에 비해 현준이는 말도 잘 들어주고, 잘하기도 하고... 장가도 잘 갔어요. 장인어른이 고위공무원이라고, 결혼식에 사람도 엄청 많이 왔었죠."
여왕은 현준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고, 그런 여왕을 보면서 나래는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앞서 가던 백하도령이 어쩐지 이리저리 헤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걱정이 된 나래가 앞쪽으로 나서며 물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백하도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이상하구나. 어째서인지 좀처럼 현준이란 사람의 기(氣)가 잡히지 않고 있다."
"왜 그런 걸까요?"
"보통 몸의 기운이 쇠하거나, 다른 것이 방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다만..."
백하도령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래는 그런 백하도령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자, 얼른 여왕에게 물었다.
"혹시 현준 씨가 사는 집 주소를 아세요?"
"아, 알 것도 같은데... 왜? 무슨 문제 있어요?"
"아... 가끔 기를 잘 못 찾는 경우가 있다시네요. 주소를 알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래의 설명을 들은 여왕은 기억을 더듬거려 현준의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집주소를 들은 나래는 백하도령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앞장 설게요."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래는 허공을 딛고 날으며 여왕이 알려준 주소지로 향했고, 바람결을 타고 나는 만큼 순식간에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현준이 산다는 아파트 10층에 도착하자, 아파트 외벽 쪽에 붙어서 백하도령을 바라보았다.
백하도령은 집안을 응시하더니,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구나. 이곳에는 현준이란 사람이 없다."
그 말에 여왕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럴 리가... 여기 맞아요."
잠시 고민하던 나래가 백하도령에게 물었다.
"그럼 안에 지금 누가 있는지 살펴봐줘요."
백하도령이 안쪽으로 손을 뻗어 살피더니, 여왕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녀에게 집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맞아요. 며느리예요."
안방에서 자고 있는 여인을 보여주자, 여왕은 그녀가 현준의 아내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홀로 잠들어 있었고, 현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한테 물어보면 안 될까요?"
나래의 물음에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왕은 살짝 주저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제가 물어볼게요."
나래는 여왕 대신 나섰다.
그녀가 왜 주저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가워하지 않는 듯 해, 묻지 않고 자신이 나선 것이었다.
"알았다."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래의 손을 붙잡는 순간, 나래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오색빛이 반짝 거리는 기묘한 풍경 속에 서 있었다.
나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앞쪽을 바라보았다.
한 여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반짝 거리는 오색 풍경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초췌해 보이는 그녀에게 다가간 나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나래의 부름에도 그녀는 무심한 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저기요..."
나래가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여왕에게 그녀의 이름이라도 듣고 올걸 그랬나 싶으면서도, 빨리 물어볼 것만 물어보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녀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혹시 현준 씨 아내분 되시죠? 현준 씨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현준 씨가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비로소 그녀의 시선이 나래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는 순간, 나래는 저도 모르게 "헉"소리를 내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은 코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 얼굴은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반대쪽 얼굴은 시커멓게 타버린 듯한 피부에 시뻘건 눈을 번득거리는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구시죠?"
처음에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물어왔지만, 이내 그녀 아닌 다른 사람의 인격이 또 있는 듯 재차 물어왔다.
"네년은 또 뭐야? 너도 그놈이랑 바람피운 년이냐?"
나래는 두 번의 목소리가 너무 상이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마치 좌우의 사람이 다른 사람인양 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의 얼굴 반이 정확히 나뉜 것이 아니라, 울긋불긋 검은색 피부가 조금씩 정상 피부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현준 씨가 바람을 피웠다구요?"
나래가 되묻는 말에, 반쪽의 여인은 흐느껴 울듯이 눈물을 흘렸고, 반대쪽 얼굴은 눈을 부릅떴다.
"그래, 맨날 바람피웠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 너도 그중 하나야! 그렇지!"
그녀가 돌연 나래에게 달려들자, 나래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가 어떤 힘에 이끌려 바깥으로 쑤욱 빨려 나갔다.
잠든 현준 아내의 꿈속에서 나온 나래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황해 하자, 백하도령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다.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괜찮으니 마음 놓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저건 뭐죠? 왜 저런 꿈을 꾸는 거죠?"
"저건 꿈이 아니다."
"꿈이 아니라구요?"
"그래. 앞서 두 아들들이 그러했듯이, 지금 우린 꿈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의식이요? 그런데 왜 저런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백하도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도 정확한 내막을 알 수는 없으나, 현준이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긴 한 것 같구나."
백하도령은 뒤쪽에 조금 떨어져 있는 여왕을 흘낏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어떤 일인지 알아보기 전에, 여왕이 이 일을 알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래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럴게요."
"그럼 이번엔 나와 함께 이곳의 기억을 읽어보자."
"이곳의 기억이요?"
나래가 놀란 표정을 짓자,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내 능력은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장소, 그 사물, 그 어떤 무엇이라도 그것이 가졌던, 또는 존재했던 시간을 되돌려 볼 수 있다. 현준이란 사람이 이곳에 살았던 것은 분명한 것 같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자꾸나."
나래가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백하도령이 건물 쪽을 바라보고 손을 뻗자, 다시금 어떤 힘에 이끌려 몸이 쑤욱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두 사람은 환한 대낮의 그 건물 위 허공에 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보는 것은 순수한 기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의식할 수 없고, 또한 우리가 영향을 줄 수도 없다."
나래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하도령이 사뿐히 나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잡으며 앞으로 이끌자, 허공에 뜬 나래의 몸이 백하도령을 따라 건물의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아기가 발육에 좋다는 아이 놀이터 장난감 속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었고,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가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현준이었고, 아기를 돌보고 있는 모습에서 어쩐지 그의 웃음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돌보는 현준의 뒤로, 현관문이 열리며 그의 아내가 들어섰다.
현준이 돌아보자, 아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준을 노려보더니, 성큼성큼 현준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종이 몇 장을 들이밀며 물었다.
"0733 뭐야?"
"뭐?"
현준이 의아해하니, 아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0733 뭐냐고? 누구랑 통화한 거야? 왜 이렇게 자주 통화하는데?"
현준은 아내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이거 뭐야? 내 통화내역이야?"
"그래. 0733, 1845, 6943, 이 사람들 다 누구야? 누군데 전화 걸어서 통화했어? 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랑 통화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빼액 소리를 지렀다. 그 모습에 현준은 더욱 인상을 썼다.
"누구긴 누구야? 거래처 사람들이지. 하... 여기 이 6943은... 자..."
현준이 자기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봐봐. 통화 시간이 15초야 15초. 이 사람 우리 아파트 사람이야, 아침 출근길에 차 빼 달라고 전화했어."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어 성을 냈다.
"지금 그걸 핑계라고 대는 거야?"
"핑계가 아니라... 하아..."
현준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해했다.
"이젠 하다 하다 통화내역까지 뽑아보냐?"
"오죽하면 그럴까 생각 안 해?"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그래?"
"수시로 바람피울 생각밖에 안 하니까 그렇지!"
"내가 대체 언제?"
두 사람의 고성이 오가는 사이,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현준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기에게 가려고 했지만, 아내가 돌연 그의 팔을 낚아채며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말하다 말고 어디가?"
"애 울잖아, 애!"
현준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며 아내의 팔을 뿌리치자, 아내는 더욱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애 핑계 대지 마!"
그녀가 지르는 고함 소리에, 현준은 물론이거니와 지켜보고 있던 나래까지 눈살을 찌푸렸다.
"왜 저래요?"
나래가 의아한 듯 묻는 말에, 백하도령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네가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변해가던 그녀의 내면이었던 모양이구나."
"변해가요?"
"그래... 의심이란 요물이 그녀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래가 다시 현준의 아내를 돌아보니, 아기를 안고 있는 현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서 있는 아내가 보였다.
"왜... 그러는 거죠?"
"당장은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이제 그녀의 무의식으로 넘어간다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백하도령이 현준 아내 쪽으로 손을 뻗자, 나래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의식 속 인물의 무의식으로 또 들어갈 수 있어요?"
백하도령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우린 지금 이 건물의 기억을 읽었고, 우리 앞에는 지금 그녀가 잠들어 있다. 나는 이 건물의 기억 속에 그녀를 매개체로, 이안에 있는 그녀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
나래는 사실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여왕의 표정을 살핀 나래가 살짝 웃어 보이며 친근감 있게 물었다.
"셋째 아드님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으신 거 같아요."
나래의 물음에 여왕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답했다.
"네. 현준이는 어려서부터 애교도 많고, 셋 중에서 건강이 제일 안 좋다 보니,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옥이야 금이야 키우다 보니, 정이 제일 많이 갔죠."
"현준 씨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현준이는... 말을 이쁘게 잘했어요. 현서나 현우는 좀 무뚝뚝한 면이 있어서, 대화는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에 비해 현준이는 말도 잘 들어주고, 잘하기도 하고... 장가도 잘 갔어요. 장인어른이 고위공무원이라고, 결혼식에 사람도 엄청 많이 왔었죠."
여왕은 현준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고, 그런 여왕을 보면서 나래는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앞서 가던 백하도령이 어쩐지 이리저리 헤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걱정이 된 나래가 앞쪽으로 나서며 물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백하도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이상하구나. 어째서인지 좀처럼 현준이란 사람의 기(氣)가 잡히지 않고 있다."
"왜 그런 걸까요?"
"보통 몸의 기운이 쇠하거나, 다른 것이 방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다만..."
백하도령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래는 그런 백하도령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자, 얼른 여왕에게 물었다.
"혹시 현준 씨가 사는 집 주소를 아세요?"
"아, 알 것도 같은데... 왜? 무슨 문제 있어요?"
"아... 가끔 기를 잘 못 찾는 경우가 있다시네요. 주소를 알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래의 설명을 들은 여왕은 기억을 더듬거려 현준의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집주소를 들은 나래는 백하도령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앞장 설게요."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래는 허공을 딛고 날으며 여왕이 알려준 주소지로 향했고, 바람결을 타고 나는 만큼 순식간에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현준이 산다는 아파트 10층에 도착하자, 아파트 외벽 쪽에 붙어서 백하도령을 바라보았다.
백하도령은 집안을 응시하더니,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구나. 이곳에는 현준이란 사람이 없다."
그 말에 여왕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럴 리가... 여기 맞아요."
잠시 고민하던 나래가 백하도령에게 물었다.
"그럼 안에 지금 누가 있는지 살펴봐줘요."
백하도령이 안쪽으로 손을 뻗어 살피더니, 여왕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녀에게 집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맞아요. 며느리예요."
안방에서 자고 있는 여인을 보여주자, 여왕은 그녀가 현준의 아내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홀로 잠들어 있었고, 현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한테 물어보면 안 될까요?"
나래의 물음에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왕은 살짝 주저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제가 물어볼게요."
나래는 여왕 대신 나섰다.
그녀가 왜 주저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가워하지 않는 듯 해, 묻지 않고 자신이 나선 것이었다.
"알았다."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래의 손을 붙잡는 순간, 나래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오색빛이 반짝 거리는 기묘한 풍경 속에 서 있었다.
나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앞쪽을 바라보았다.
한 여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반짝 거리는 오색 풍경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초췌해 보이는 그녀에게 다가간 나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나래의 부름에도 그녀는 무심한 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저기요..."
나래가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여왕에게 그녀의 이름이라도 듣고 올걸 그랬나 싶으면서도, 빨리 물어볼 것만 물어보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녀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혹시 현준 씨 아내분 되시죠? 현준 씨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현준 씨가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비로소 그녀의 시선이 나래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는 순간, 나래는 저도 모르게 "헉"소리를 내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은 코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 얼굴은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반대쪽 얼굴은 시커멓게 타버린 듯한 피부에 시뻘건 눈을 번득거리는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구시죠?"
처음에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물어왔지만, 이내 그녀 아닌 다른 사람의 인격이 또 있는 듯 재차 물어왔다.
"네년은 또 뭐야? 너도 그놈이랑 바람피운 년이냐?"
나래는 두 번의 목소리가 너무 상이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마치 좌우의 사람이 다른 사람인양 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의 얼굴 반이 정확히 나뉜 것이 아니라, 울긋불긋 검은색 피부가 조금씩 정상 피부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현준 씨가 바람을 피웠다구요?"
나래가 되묻는 말에, 반쪽의 여인은 흐느껴 울듯이 눈물을 흘렸고, 반대쪽 얼굴은 눈을 부릅떴다.
"그래, 맨날 바람피웠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 너도 그중 하나야! 그렇지!"
그녀가 돌연 나래에게 달려들자, 나래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가 어떤 힘에 이끌려 바깥으로 쑤욱 빨려 나갔다.
잠든 현준 아내의 꿈속에서 나온 나래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황해 하자, 백하도령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다.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괜찮으니 마음 놓거라."
나래는 백하도령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저건 뭐죠? 왜 저런 꿈을 꾸는 거죠?"
"저건 꿈이 아니다."
"꿈이 아니라구요?"
"그래. 앞서 두 아들들이 그러했듯이, 지금 우린 꿈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의식이요? 그런데 왜 저런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백하도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도 정확한 내막을 알 수는 없으나, 현준이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긴 한 것 같구나."
백하도령은 뒤쪽에 조금 떨어져 있는 여왕을 흘낏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어떤 일인지 알아보기 전에, 여왕이 이 일을 알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래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럴게요."
"그럼 이번엔 나와 함께 이곳의 기억을 읽어보자."
"이곳의 기억이요?"
나래가 놀란 표정을 짓자,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내 능력은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장소, 그 사물, 그 어떤 무엇이라도 그것이 가졌던, 또는 존재했던 시간을 되돌려 볼 수 있다. 현준이란 사람이 이곳에 살았던 것은 분명한 것 같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자꾸나."
나래가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백하도령이 건물 쪽을 바라보고 손을 뻗자, 다시금 어떤 힘에 이끌려 몸이 쑤욱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두 사람은 환한 대낮의 그 건물 위 허공에 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보는 것은 순수한 기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의식할 수 없고, 또한 우리가 영향을 줄 수도 없다."
나래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하도령이 사뿐히 나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잡으며 앞으로 이끌자, 허공에 뜬 나래의 몸이 백하도령을 따라 건물의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아기가 발육에 좋다는 아이 놀이터 장난감 속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었고,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가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현준이었고, 아기를 돌보고 있는 모습에서 어쩐지 그의 웃음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돌보는 현준의 뒤로, 현관문이 열리며 그의 아내가 들어섰다.
현준이 돌아보자, 아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준을 노려보더니, 성큼성큼 현준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종이 몇 장을 들이밀며 물었다.
"0733 뭐야?"
"뭐?"
현준이 의아해하니, 아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0733 뭐냐고? 누구랑 통화한 거야? 왜 이렇게 자주 통화하는데?"
현준은 아내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이거 뭐야? 내 통화내역이야?"
"그래. 0733, 1845, 6943, 이 사람들 다 누구야? 누군데 전화 걸어서 통화했어? 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랑 통화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빼액 소리를 지렀다. 그 모습에 현준은 더욱 인상을 썼다.
"누구긴 누구야? 거래처 사람들이지. 하... 여기 이 6943은... 자..."
현준이 자기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봐봐. 통화 시간이 15초야 15초. 이 사람 우리 아파트 사람이야, 아침 출근길에 차 빼 달라고 전화했어."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어 성을 냈다.
"지금 그걸 핑계라고 대는 거야?"
"핑계가 아니라... 하아..."
현준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해했다.
"이젠 하다 하다 통화내역까지 뽑아보냐?"
"오죽하면 그럴까 생각 안 해?"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그래?"
"수시로 바람피울 생각밖에 안 하니까 그렇지!"
"내가 대체 언제?"
두 사람의 고성이 오가는 사이,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현준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기에게 가려고 했지만, 아내가 돌연 그의 팔을 낚아채며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말하다 말고 어디가?"
"애 울잖아, 애!"
현준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며 아내의 팔을 뿌리치자, 아내는 더욱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애 핑계 대지 마!"
그녀가 지르는 고함 소리에, 현준은 물론이거니와 지켜보고 있던 나래까지 눈살을 찌푸렸다.
"왜 저래요?"
나래가 의아한 듯 묻는 말에, 백하도령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네가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변해가던 그녀의 내면이었던 모양이구나."
"변해가요?"
"그래... 의심이란 요물이 그녀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래가 다시 현준의 아내를 돌아보니, 아기를 안고 있는 현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서 있는 아내가 보였다.
"왜... 그러는 거죠?"
"당장은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이제 그녀의 무의식으로 넘어간다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백하도령이 현준 아내 쪽으로 손을 뻗자, 나래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의식 속 인물의 무의식으로 또 들어갈 수 있어요?"
백하도령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우린 지금 이 건물의 기억을 읽었고, 우리 앞에는 지금 그녀가 잠들어 있다. 나는 이 건물의 기억 속에 그녀를 매개체로, 이안에 있는 그녀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
나래는 사실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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